그리고,,, 믿지않는 불신자분들은 믿음의 세계가 당연히 믿기지도 않고 이해가 가지는 않으실겁니다..
사람은.. 자기가 체험해보기전에는 잘 모르죠.. 그래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게시판을 보다보니 개신교분들이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같아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몇가지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요즘.. 천주교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것이 사실입니다..
천주교내에서도 깨어있는 교우들은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참된 사제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그에 맞서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고
진리를 지키시려고 많이 노력하십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어둠이 성교회내로 침투해 들어왔기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미미해보일수도 있겠지요..
전 원래 천주교신자였다가 냉담을 10년 이상하다 우연하게 교회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서 다시 성당으로 오게됬는데..
개신교는 말씀선포때 주님이 임하시고 천주교는 성체에 주님이 현존해계십니다..
어느날.. 깨달음이 왔는데..
목적지가 서울입니다. 출발지는 대구입니다.
서울까지가는 방법은 기차와 버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4시간 똑같습니다..
신앙도... 주님의 이끄심이며 주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때문에
주님께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십니다..
천주교도.. 개신교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관한 비밀과 최종 결정은 오로지 주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저의 바램으로는... 믿지않으신 많은 분들도 우리가 만난 주님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그런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분노하고... 남을 비방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에도 마이너스가 될것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랄 시간들...
내가 아닌 타인이 부족하고 나의 뜻과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언정
우리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갑시다...
아랫글은 최근 교황청이 가톨릭 신자는 타종교인(불교등)과 `함께' 기도해선 안되며 신앙믿음 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며 작금의 뉴에이지 사태를 우려하셔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1997년 아시아주교회의는 (아시아교회가 이제는 정통 가톨릭 교리를 따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가톨릭 삼위일체 교리를 변형시킨 이설형태의 뉴에이지 신학(이름은 `수용적 다원주의')을 선언하였고 이에 대해 교황청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상실하는 다원주의 신학 (뉴에이지)이라며 크게 개탄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주 교황청 홈페이지 자료실 )
이 사실은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보도 되었고, 이미 주 바티칸 대사관 홈페이지 자료실에도 게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뉴에이지를 따라 예수님을 부인할 것인가 아니면 신앙을 굳게 지킬 것인가 부디 단순한 선입견을 버리시고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국내 교회 안의 타종교인과의 기도행위, 기도의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습니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세상의 평화, 그리스도인들의 대화,
그리고 타종교인들과 나누는 대화.
...교회 일치 대화와 종교간 대화는 서로 연계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있지만, 서로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둘 사이에는 뚜렷한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둘을 혼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 일치 대화는 모든 인간적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과 관용에 바탕을 두는 것만은 아니며, 편견 없는 박애주의나 단지 정중한 예의에 바탕을 두는 것만도 아닙니다. 반대로 교회 일치 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같은 신앙과 세례의 상호 인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되고(갈라 3,28; 1고린 12,13; 「하나 되게 하소서」, 42항 참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다른 종교들 안에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요한 1,9) 진리의 빛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충만히 계시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길이시며 진리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요한 14,6;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2항 참조).
그러므로 종교간 대화를 거시적 교회 일치 운동이라든지 새롭고 더
광범위한 단계의 교회 일치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은 기도는 할 수 있지만
함께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형태의 [종교 혼합주의]는 배척되어야 합니다.
"딸아, 이것을 받아써라. 나는 정의의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자비의 왕으로 온다.
마지막 심판 날이 오기 전에 하늘에서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켜라."
"영혼들은 내 쓰디쓴 수난에도 불구하고 멸망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 자비의 축일이다
(하느님 자비의 축일의 성녀 파우스티가 받은 계시 중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녀 파우스티나 시성식 강론 중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심장을 통하여 인류 존재에 도달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이 땅에서 인간의 미래는 무엇과 같겠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여정 위에서 불행하게도 아픈 체험들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 수녀의 카리스마를 통하여 주님께서 전 세계가 이 길 안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길인 하느님 자비의 빛은 삼천년기의 남자와 여자들의 길을 환히 비추일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상의 메세지
"예수님 나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하느님 자비의 상은 파우스티나 수녀가 1931년 2월 22일에 보았던 환시에서 기인한다.
성녀 파우스티나의 예수님 자비신심
자비주일 강론(부활2주일)
어떤 신자가 암 때문에 앞으로 일주일 이상 힘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은 이미 자포자기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가산은 탕진되었고 술집여자들과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도망가고 혼자 외로이 인생을 비관하며 그렇게 살다가 암이라는 병을 만난 것입니다.
성당에 안 나간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형제님께 고해성사를 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오히려 역정만 내고 사제가 자기를 찾아오는 것을 완고한 마음으로 거절합니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하느님도 거절하고 신부도 거절하고 자기 인생을 저주만 하고 있습니다. 다급한 친척들은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묵주기도와, 특히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던 자비심 기도를 열심히 가족들이 돌아가며 온종일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며칠 후에 갑자기 이 형제님이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제가 당첨이 되어서 그 형제님이 있은 병원에 갔습니다. 그 형제님이 아주 힘든 몸으로도 아주 또렷하게 저에게 총고해를 하였습니다. 고해성사는 감동자체였습니다. 얼마나 깊게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겸손되이 고백하는 지~~ 저는 이런 고해자를 만나면 미칠 것 같은 기쁨을 느낍니다. 임종자들에게는 교황성하께서 내리신 특별권한에 의해 전대사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 형제님께 전대사를 베풀고 성체를 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틀 후 우연히 그 병원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임종을 하였고 저는 임종 순간 그 형제님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제의 기도 중에 그 형제님은 임종을 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신자가 사제의 기도 중에 임종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렇게 극적으로 풍요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자비주일입니다.
사람이 어떤 병을 앓고 나면 그 병이 나았다고 해도 그 몸은 약해져 있듯이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로 나약해지고 항구하지 못함과 쉽게 의기소침 해지고 실망에 빠지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죄가 남겨놓은 상처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자포자기 내지는 치유될 수 없는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약한 인간을 알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당신의 연민에 넘쳐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성심에서 흘린 피와 물이 기원이 된 자비주일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주일의 위로의 메시지는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있거나 삶의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에로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자비주일은 폴란드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1905-1938)수녀에게 발현한 ‘자비로우신 예수님’에 의한 것으로 성녀는 자신에게 발현한 예수님께서 이를 온 교회가 성대하게 지내기를 원하셨다고 그의 일기에서 열 네 번에 걸쳐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다음 주일에 지내라고 명한 ‘하느님의 자비’주일은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인가로 1980년부터 우선 폴란드 지역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희년인 2000년 5월 5일 새 천년기의 첫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하느님의 자비주일을 온 교회가 공식적으로 지내도록 제정되었습니다. 교황님은 또한 이날에 전대사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하느님의 자비를 몸소 체험하고, 증오와 폭력과 전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적극적으로 증거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심장에서부터 밝게 비쳐 나와 세상을 비추는 두 줄기 광선을 보았습니다. “그 두 줄기 광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피와 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친히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요한 복음사가의 증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보았듯이 군인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고 증언했습니다(요한 19,34)더욱이 그 피가 십자가의 희생과 성체성사의 선물을 상기시킨다면 물은 세례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도 나타냅니다. (요한 3,5; 4,14; 7,37-39).
가슴 속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서로 서로의 장벽을 허물어뜨려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동시에 성부의 사랑과 가정공동체와 교회공동체의 기쁨을 다시 찾아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이 상처 입은 심장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는 치유됩니다. 하느님의 이 자비로우신 사랑의 흐름은 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확산되기를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성체 성사와 자비심 상본을 통해서 그리고 그 상본에 해당되어 하도록 명하신 기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전달됩니다.
중요한 말씀들을 발췌하자면 이렇습니다. “오 하느님의 은총의 감도를 충실히 따르는 영혼은 얼마나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지 아느냐! 나는 세상의 구세주를 주주었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리고 그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켜라. 그분은 자비로운 구세주가 아니라 정의의 심판관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그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될지! 정의의 날. 하느님의 분노의 날은 결정되었다! 천사들은 그 앞에서 뛴다. 아직 자비의 시간일 때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려라”(일기 635)
“이것을 써라. 나는 정의의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자비의 왕으로 온다. 마지막 심판 날이 오기 전에 하늘에서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하늘의 모든 빛이 사라질 것이고 암흑이 세상을 덮을 것이다. 그때 하늘에 십자가의 표지가 나타나고 못 박히신 구세주의 손과 발을 통하여 큰 빛들이 나타나 한동안 지구를 밝혀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날이 오기 바로 직전에 일어날 것이다.”(일기 83)
“오 이 자비심 기도를 바치는 영혼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은총이 주어지는지! 내 깊숙한 성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비가 이 기도를 바치는 영혼들을 위해 움직인다. 내 딸아 이 말을 받아 적어라. 내 자비에 대하여 세상에 말하여라. 모든 인류가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표징이다. 이것이 자나면 정의의 날이 올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들이 내 자비의 샘에 의지하게 하여라. 그들을 위해 살았던 내 피와 물의 공로를 입게 하여라.”(일기 848)
예수님은 직접 하느님 자비의 기도는 아주 쉽고 기도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기도는 내 분노를 가라앉힐 것이다. 너는 9일 동안 묵주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먼저 너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바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각 단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큰 묵주 알에서) 주님의 기도 대신 다음 기도문을 바쳐라.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그리고 매단마다 성모송 대신에 다음 기도문을 바쳐라.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5단을 모두 바친 후, 다음 기도문을 세 번 바쳐라.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일기 976)
예수님은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영혼들은 내 쓰디쓴 수난에도 불구하고 멸망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 자비의 축일이다. 만일 그들이 내 자비를 공경하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내 자비의 비서야, 적어라. 이 크나큰 나의 자비에 대해 영혼들에게 전하여라. 그 무서운 날, 내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 (일기 965)
"대죄인들이 나를 신뢰하게 하여라.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내 무한한 자비를 신뢰할 권리가 있다. 나의 딸아,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한 내 자비에 관해 기록하여라. 내 자비에 호소하는 사람을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은총을 내릴 것이다. 내 동정심에 호소하는 사람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벌하지 않고 오히려 내 무한한 자비로 그를 의롭게 할 것이다.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정의로운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내 자비의 문을 활짝 연다. 내 자비의 문을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내 정의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일기 1146)
" 나의 딸아, 너는 3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듣거든 자주 나의 자비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너 자신을 나의 자비에 완전히 잠기게 하여라. 온 세상을 위해, 특별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나의 자비의 전능함을 청하여라. 그 순간에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일기 1320)
" 이 시간에 너는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그 시간은 자비가 정의를 누르고 승리한, 온 세상을 위한 은총의 시간이다." (일기 1572)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의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실 것이 없습니다. 온전한 의탁만이 이 전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자비주일의 핵심입니다. 온전한 의탁입니다. 내 결점까지도 의탁하며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축일에 전대사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벌은 오늘로써 완전히 깨끗해집니다. 죄가 온전히 사해진 사람만이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빛이 비추어옵니다. 내 마음의 창에 끼인 작은 얼룩도 오늘 완전히 없어집니다. 나의 목소리가 되어주시는 성모님의 도움에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성녀 파우스티나와 함께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며 온전한 의탁에서 오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도록 합시다. 죄를 묵인하는데 하느님의 자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빛 앞에 열어 보임으로써 말끔히 정화되어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온전한 의탁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 게시판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개신교나.. 천주교나.. 우리는 주님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그리고,,, 믿지않는 불신자분들은 믿음의 세계가 당연히 믿기지도 않고 이해가 가지는 않으실겁니다..
사람은.. 자기가 체험해보기전에는 잘 모르죠.. 그래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게시판을 보다보니 개신교분들이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같아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몇가지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요즘.. 천주교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것이 사실입니다..
천주교내에서도 깨어있는 교우들은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참된 사제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그에 맞서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고
진리를 지키시려고 많이 노력하십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어둠이 성교회내로 침투해 들어왔기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미미해보일수도 있겠지요..
전 원래 천주교신자였다가 냉담을 10년 이상하다 우연하게 교회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서 다시 성당으로 오게됬는데..
개신교는 말씀선포때 주님이 임하시고 천주교는 성체에 주님이 현존해계십니다..
어느날.. 깨달음이 왔는데..
목적지가 서울입니다. 출발지는 대구입니다.
서울까지가는 방법은 기차와 버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4시간 똑같습니다..
신앙도... 주님의 이끄심이며 주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때문에
주님께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십니다..
천주교도.. 개신교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관한 비밀과 최종 결정은 오로지 주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저의 바램으로는... 믿지않으신 많은 분들도 우리가 만난 주님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그런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분노하고... 남을 비방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에도 마이너스가 될것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랄 시간들...
내가 아닌 타인이 부족하고 나의 뜻과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언정
우리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갑시다...
아랫글은 최근 교황청이 가톨릭 신자는 타종교인(불교등)과 `함께' 기도해선 안되며 신앙믿음 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며 작금의 뉴에이지 사태를 우려하셔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1997년 아시아주교회의는 (아시아교회가 이제는 정통 가톨릭 교리를 따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가톨릭 삼위일체 교리를 변형시킨 이설형태의 뉴에이지 신학(이름은 `수용적 다원주의')을 선언하였고 이에 대해 교황청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상실하는 다원주의 신학 (뉴에이지)이라며 크게 개탄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주 교황청 홈페이지 자료실 )
이 사실은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보도 되었고, 이미 주 바티칸 대사관 홈페이지 자료실에도 게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뉴에이지를 따라 예수님을 부인할 것인가 아니면 신앙을 굳게 지킬 것인가 부디 단순한 선입견을 버리시고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국내 교회 안의 타종교인과의 기도행위, 기도의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습니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세상의 평화, 그리스도인들의 대화,
그리고 타종교인들과 나누는 대화.
...교회 일치 대화와 종교간 대화는 서로 연계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있지만, 서로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둘 사이에는 뚜렷한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둘을 혼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 일치 대화는 모든 인간적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과 관용에 바탕을 두는 것만은 아니며, 편견 없는 박애주의나 단지 정중한 예의에 바탕을 두는 것만도 아닙니다. 반대로 교회 일치 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같은 신앙과 세례의 상호 인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되고(갈라 3,28; 1고린 12,13; 「하나 되게 하소서」, 42항 참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다른 종교들 안에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요한 1,9) 진리의 빛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충만히 계시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길이시며 진리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요한 14,6;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2항 참조).
그러므로 종교간 대화를 거시적 교회 일치 운동이라든지 새롭고 더
광범위한 단계의 교회 일치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은 기도는 할 수 있지만
함께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형태의 [종교 혼합주의]는 배척되어야 합니다.
"딸아, 이것을 받아써라. 나는 정의의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자비의 왕으로 온다.
마지막 심판 날이 오기 전에 하늘에서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켜라."
"영혼들은 내 쓰디쓴 수난에도 불구하고 멸망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 자비의 축일이다
(하느님 자비의 축일의 성녀 파우스티가 받은 계시 중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녀 파우스티나 시성식 강론 중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심장을 통하여 인류 존재에 도달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이 땅에서 인간의 미래는 무엇과 같겠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여정 위에서 불행하게도 아픈 체험들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 수녀의 카리스마를 통하여 주님께서 전 세계가 이 길 안에서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길인 하느님 자비의 빛은 삼천년기의 남자와 여자들의 길을 환히 비추일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상의 메세지
"예수님 나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하느님 자비의 상은 파우스티나 수녀가 1931년 2월 22일에 보았던 환시에서 기인한다.
성녀 파우스티나의 예수님 자비신심
자비주일 강론(부활2주일)
어떤 신자가 암 때문에 앞으로 일주일 이상 힘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은 이미 자포자기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가산은 탕진되었고 술집여자들과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도망가고 혼자 외로이 인생을 비관하며 그렇게 살다가 암이라는 병을 만난 것입니다.
성당에 안 나간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형제님께 고해성사를 보라고 아무리 권해도 오히려 역정만 내고 사제가 자기를 찾아오는 것을 완고한 마음으로 거절합니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하느님도 거절하고 신부도 거절하고 자기 인생을 저주만 하고 있습니다. 다급한 친척들은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묵주기도와, 특히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던 자비심 기도를 열심히 가족들이 돌아가며 온종일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며칠 후에 갑자기 이 형제님이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제가 당첨이 되어서 그 형제님이 있은 병원에 갔습니다. 그 형제님이 아주 힘든 몸으로도 아주 또렷하게 저에게 총고해를 하였습니다. 고해성사는 감동자체였습니다. 얼마나 깊게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겸손되이 고백하는 지~~ 저는 이런 고해자를 만나면 미칠 것 같은 기쁨을 느낍니다. 임종자들에게는 교황성하께서 내리신 특별권한에 의해 전대사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 형제님께 전대사를 베풀고 성체를 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틀 후 우연히 그 병원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임종을 하였고 저는 임종 순간 그 형제님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제의 기도 중에 그 형제님은 임종을 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신자가 사제의 기도 중에 임종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렇게 극적으로 풍요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자비주일입니다.
사람이 어떤 병을 앓고 나면 그 병이 나았다고 해도 그 몸은 약해져 있듯이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로 나약해지고 항구하지 못함과 쉽게 의기소침 해지고 실망에 빠지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죄가 남겨놓은 상처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자포자기 내지는 치유될 수 없는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약한 인간을 알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당신의 연민에 넘쳐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성심에서 흘린 피와 물이 기원이 된 자비주일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주일의 위로의 메시지는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있거나 삶의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에로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자비주일은 폴란드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1905-1938)수녀에게 발현한 ‘자비로우신 예수님’에 의한 것으로 성녀는 자신에게 발현한 예수님께서 이를 온 교회가 성대하게 지내기를 원하셨다고 그의 일기에서 열 네 번에 걸쳐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다음 주일에 지내라고 명한 ‘하느님의 자비’주일은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인가로 1980년부터 우선 폴란드 지역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희년인 2000년 5월 5일 새 천년기의 첫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하느님의 자비주일을 온 교회가 공식적으로 지내도록 제정되었습니다. 교황님은 또한 이날에 전대사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하느님의 자비를 몸소 체험하고, 증오와 폭력과 전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적극적으로 증거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심장에서부터 밝게 비쳐 나와 세상을 비추는 두 줄기 광선을 보았습니다. “그 두 줄기 광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피와 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친히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요한 복음사가의 증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보았듯이 군인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고 증언했습니다(요한 19,34)더욱이 그 피가 십자가의 희생과 성체성사의 선물을 상기시킨다면 물은 세례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도 나타냅니다. (요한 3,5; 4,14; 7,37-39).
가슴 속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서로 서로의 장벽을 허물어뜨려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동시에 성부의 사랑과 가정공동체와 교회공동체의 기쁨을 다시 찾아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이 상처 입은 심장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는 치유됩니다. 하느님의 이 자비로우신 사랑의 흐름은 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확산되기를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성체 성사와 자비심 상본을 통해서 그리고 그 상본에 해당되어 하도록 명하신 기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전달됩니다.
중요한 말씀들을 발췌하자면 이렇습니다. “오 하느님의 은총의 감도를 충실히 따르는 영혼은 얼마나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지 아느냐! 나는 세상의 구세주를 주주었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리고 그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켜라. 그분은 자비로운 구세주가 아니라 정의의 심판관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그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될지! 정의의 날. 하느님의 분노의 날은 결정되었다! 천사들은 그 앞에서 뛴다. 아직 자비의 시간일 때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에 대해 알려라”(일기 635)
“이것을 써라. 나는 정의의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자비의 왕으로 온다. 마지막 심판 날이 오기 전에 하늘에서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하늘의 모든 빛이 사라질 것이고 암흑이 세상을 덮을 것이다. 그때 하늘에 십자가의 표지가 나타나고 못 박히신 구세주의 손과 발을 통하여 큰 빛들이 나타나 한동안 지구를 밝혀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날이 오기 바로 직전에 일어날 것이다.”(일기 83)
“오 이 자비심 기도를 바치는 영혼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은총이 주어지는지! 내 깊숙한 성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비가 이 기도를 바치는 영혼들을 위해 움직인다. 내 딸아 이 말을 받아 적어라. 내 자비에 대하여 세상에 말하여라. 모든 인류가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표징이다. 이것이 자나면 정의의 날이 올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들이 내 자비의 샘에 의지하게 하여라. 그들을 위해 살았던 내 피와 물의 공로를 입게 하여라.”(일기 848)
예수님은 직접 하느님 자비의 기도는 아주 쉽고 기도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기도는 내 분노를 가라앉힐 것이다. 너는 9일 동안 묵주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먼저 너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바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각 단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큰 묵주 알에서) 주님의 기도 대신 다음 기도문을 바쳐라.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그리고 매단마다 성모송 대신에 다음 기도문을 바쳐라.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5단을 모두 바친 후, 다음 기도문을 세 번 바쳐라.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일기 976)
예수님은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영혼들은 내 쓰디쓴 수난에도 불구하고 멸망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 자비의 축일이다. 만일 그들이 내 자비를 공경하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내 자비의 비서야, 적어라. 이 크나큰 나의 자비에 대해 영혼들에게 전하여라. 그 무서운 날, 내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 (일기 965)
"대죄인들이 나를 신뢰하게 하여라.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내 무한한 자비를 신뢰할 권리가 있다. 나의 딸아,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한 내 자비에 관해 기록하여라. 내 자비에 호소하는 사람을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은총을 내릴 것이다. 내 동정심에 호소하는 사람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벌하지 않고 오히려 내 무한한 자비로 그를 의롭게 할 것이다.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정의로운 심판관으로 오기 전에 먼저 내 자비의 문을 활짝 연다. 내 자비의 문을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내 정의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일기 1146)
" 나의 딸아, 너는 3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듣거든 자주 나의 자비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너 자신을 나의 자비에 완전히 잠기게 하여라. 온 세상을 위해, 특별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나의 자비의 전능함을 청하여라. 그 순간에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일기 1320)
" 이 시간에 너는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그 시간은 자비가 정의를 누르고 승리한, 온 세상을 위한 은총의 시간이다." (일기 1572)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의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실 것이 없습니다. 온전한 의탁만이 이 전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자비주일의 핵심입니다. 온전한 의탁입니다. 내 결점까지도 의탁하며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축일에 전대사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벌은 오늘로써 완전히 깨끗해집니다. 죄가 온전히 사해진 사람만이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빛이 비추어옵니다. 내 마음의 창에 끼인 작은 얼룩도 오늘 완전히 없어집니다. 나의 목소리가 되어주시는 성모님의 도움에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성녀 파우스티나와 함께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며 온전한 의탁에서 오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도록 합시다. 죄를 묵인하는데 하느님의 자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빛 앞에 열어 보임으로써 말끔히 정화되어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온전한 의탁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