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살 이었고 그 친구는 12살이면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을꺼다. 학기초에는 기억에 없고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나의 참모가 되어 있었다. 교실에 앉을 때도 맨 앞줄 두 줄로 서도 맨 앞이고 한 줄로 세우면 비로소 두 번째에 서게 되는 작은 명희가 대장이 된 이유는 나의 능력이 아니고 부모의 능력이었을게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다른 친구들과 노는 사이에 그 친구에 의해서 내 책가방은 집으로 배달되곤 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담임선생님의 빨래도 이 친구가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또래가 둘러앉아 그 당시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됐는데 선생님들이 국민학생을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극심하게 남자애들과 대립이 되었었는데 아무도 날 못건드린 것은 이 친구의 덩치 때문이었다. 그렇게 충실한 참모였던 그 아이가 4학년을 마치면서 서울에 있는 오빠네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전학이 아니고 5학년 진학을 포기한채... 그 아이가 간곳이 종로5가 - 그당시 정신여중과 기독교방송국이 거기에 있었는데 방학이 되자 정신여중 다니는 언니가 집에 왔을때- 일찌기 우리부모님은 언니를 서울로 유학 보냈었다.그때의 계획은 우리들을 하나씩 서울서 교육시키고자 하셨었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사업이 점차 곤두박질치자 물거품이 되곤 말았지만- 언니에게 학교 앞에 있는 그 아이가 말한 집을 아느냐고 물으니까 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가보지 못하고 한 학기가 지났다. 다음 방학이 되어 또다시 집(운천)으로 온 언니에게 먼저 방학때 물어봤던 집에 대하여 말하니까 언니는 내가 물어봤다는 사실조차전혀 기억에도 없는 것이었고 그렇게 그 아이와는 영영 이별을 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37년이 지나간 친구의 생각이 왜 자다말고 떠올랐을까 그제밤도 어젯밤도 문득 떠오른 생각에 머리속이 깨끗해지면서 일어나 앉았다. 벌써부터 나와 함께 학교다니던 아이들이 몇 명은 이세상을 떠났으므로 이 친구가 반드시 살아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쩌면,어쩌면 어젯밤에 문득 이 친구의 기억에 내가 떠오른 것은 아닐런지... 이 친구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은, 그 집에서 처음 망원경을 통해 사물을 본적이 있다. 망원경으로 앞산을 바라보자 산이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데 꼬마돼지가 죽자고 나를 뒤쫓아와서 숨이 턱에 찰때까지 꼬마돼지에게 쫓겨다녔던 것. 그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빨래를 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것 등등 너무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주마등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다시금 꺼내보는 것은 얼마전 동갑내기들 클럽에 가입하고 부터이다. 아무리 교육청홈피를 뒤져도 내가 졸업한 운암국민학교는 존재하지 않고, 사촌머슴애 말고는 국민학교 때의 기억을 공유할 친구가 없었던 터에 동갑들을 온라인에서지만 접하니까 갑자기 물밀듯이 그때그 친구가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있다.
늘 지워지지 않는 친구가 궁금하다
내가 10살 이었고
그 친구는 12살이면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을꺼다.
학기초에는 기억에 없고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나의 참모가 되어 있었다.
교실에 앉을 때도 맨 앞줄
두 줄로 서도 맨 앞이고
한 줄로 세우면 비로소 두 번째에 서게 되는 작은 명희가
대장이 된 이유는 나의 능력이 아니고 부모의 능력이었을게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다른 친구들과 노는 사이에
그 친구에 의해서 내 책가방은 집으로 배달되곤 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담임선생님의 빨래도 이 친구가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또래가 둘러앉아 그 당시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됐는데
선생님들이 국민학생을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극심하게 남자애들과 대립이 되었었는데
아무도 날 못건드린 것은 이 친구의 덩치 때문이었다.
그렇게 충실한 참모였던 그 아이가 4학년을 마치면서
서울에 있는 오빠네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전학이 아니고 5학년 진학을 포기한채...
그 아이가 간곳이 종로5가 -
그당시 정신여중과 기독교방송국이 거기에 있었는데
방학이 되자 정신여중 다니는 언니가 집에 왔을때-
일찌기 우리부모님은 언니를 서울로 유학 보냈었다.그때의 계획은 우리들을 하나씩 서울서 교육시키고자 하셨었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사업이 점차 곤두박질치자 물거품이 되곤 말았지만-
언니에게 학교 앞에 있는 그 아이가 말한 집을 아느냐고 물으니까 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가보지 못하고 한 학기가 지났다.
다음 방학이 되어 또다시 집(운천)으로 온 언니에게 먼저 방학때 물어봤던 집에 대하여 말하니까 언니는 내가 물어봤다는 사실조차전혀 기억에도 없는 것이었고 그렇게 그 아이와는 영영 이별을 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37년이 지나간 친구의 생각이 왜 자다말고 떠올랐을까
그제밤도 어젯밤도 문득 떠오른 생각에 머리속이 깨끗해지면서
일어나 앉았다.
벌써부터 나와 함께 학교다니던 아이들이 몇 명은 이세상을 떠났으므로 이 친구가 반드시 살아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쩌면,어쩌면
어젯밤에 문득 이 친구의 기억에 내가 떠오른 것은 아닐런지...
이 친구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은,
그 집에서 처음 망원경을 통해 사물을 본적이 있다.
망원경으로 앞산을 바라보자 산이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데 꼬마돼지가 죽자고 나를 뒤쫓아와서 숨이 턱에 찰때까지 꼬마돼지에게 쫓겨다녔던 것.
그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빨래를 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것 등등
너무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주마등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다시금 꺼내보는 것은 얼마전 동갑내기들 클럽에 가입하고 부터이다.
아무리 교육청홈피를 뒤져도 내가 졸업한 운암국민학교는 존재하지 않고, 사촌머슴애 말고는 국민학교 때의 기억을 공유할 친구가 없었던 터에 동갑들을 온라인에서지만 접하니까 갑자기 물밀듯이 그때그 친구가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그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