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경은 미국 영화 "우리의 골짜기는 얼마나 푸르렀던가"라는 1950년대 미국영화를 기억나게 만들었다. 이 영화도 미국의 광산촌에서 대공황시대에 힘들게 살아가는 광부들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은 소년들의 영화였다. 아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죤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모티브를 딴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공황시대 만큼 절실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도 대처 영국 수상이 그 당시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정부지원을 축소하자 광산촌의 노조원들은 파업을 벌인다. 빌리의 아버지도 광부. 파업에 동참하면서 생계를 꾸릴 돈은 점점 줄어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Billy. 치매에 걸린 할머니. 노조 운동으로 도망다니는 토니형. 그리고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젊은 때의 꿈을 접고 늙은 몸으로 발레를 가르치는 여 주인공. 그리고 소년의 친구들이 나온다. 소년의 친구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Billy를 사랑한다. 빌리가 어머니 무덤가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할머니는 엉뚱한 무점에 가서 헤매고 있다. 빌리는 어머니 무덤에 난 풀을 열심히 자르면서 할머니를 목청껏 부른다. "할머니 여기야. 이쪽으로 와" 따뜻했던 피아노를 치던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는 소년이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고단한 현실의 삶도 책임도 지켜야 한다. 어두운 밤 빌리가 침대에 누워 옆 침대에서 잠들려는 형에게 묻는다. "형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 "개소리" 빌리의 사색과 고민은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기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레. 그러나 그 속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그 마을의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그 길만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권투를 하지 않고 발레를 배운다는 말에 분노한다. 여자들의 하는 발레를. 당연 아들과 갈등 국면에 오랫동안 노출된다. 오랫동안의 파업으로 어머니가 쓰던 피아노를 부셔서 크리스마스 식사에 불을 밝히는 땔감으로 쓰는 모습은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에 나오는 모습과 유사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춤을 배우던 소년의 꿈을 어떻게 아버지가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감동적인 영국영화의 특징, 소년은 결국 꿈을 버리지 않고 창고에서 아버지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춤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다. 비록 엉터리 춤이지만. 결국 아버지는 아들이 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꿈이었던 권투가 아니라 아들이 원하는 발레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발레 여선생을 찾아가서 자기 아들의 발레를 맡아 달라고부탁하고 자신의 아들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가장 강력하게 노조에 몸 담았으면서 참가했던 파업을 풀고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탄광으로 복귀한다. 노조 위원장인 큰 아들과 싸우면서, 평생을 같이 했던 노조원들을 배신하면서 아들의 발레 수업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욕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탄광으로 복귀하는 아버지의 부정은 우리 정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우리의 아버지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고 자신의 평생을 포기하면서 아들의 장래를 밀어 주려는 그의 뜨거운 부정이 가슴에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다. 뻔한 스토리인데도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 동시대의 모습을 체험했기 때문이겠지.
소년은 결국 영국 왕립 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떠난다. 어머니의 패물을 다 팔아서. 아버지의 저금통을 다 털어서. 물론 소년은 기본기가 전혀 없는 엉터리 발레 초년생. 그렇지만 소년은 말한다. "춤을 추면 마치 새가 된듯한 기분이다. 전기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라고. 발레 선생이 이야기 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너가 얼마나 발레를 잘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건 거기서 배우게 된다. 그들이 보는 것은 너가 너의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그리고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해 진다고 말한다.
Billy는 결국 왕립학교에 입학허가를 얻게 된다. 통지를 받자 마자 아버지는 동네로 뛰쳐 나간다. "He fucking didi it."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힘들면 돌아 와도 되죠?" "농담하냐? 이미 너 방은 세 놓았다." 무뚝뚝한 어버지와 아들의 이 간단한 대화가 다시 나를 감동시켰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아들을 격려하는 것이 아닌 간접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것, 아버지의 이 말이 백마디 격려보다 얼마나 아들에게 더 큰 힘이 될 것인가.
마지막 장면 또한 압권. 10년이 지나 소년은 발레리노가 되었고 그의 늙은 아버지는 그의 첫 주연 무대를 보러 온다. 객석에서 그의 아버지는 정말 기묘한 얼굴로 앉아 있다. 늙은 아버지의 얼굴에는 눈물이 배여있고, 슬픈 듯, 기쁜 듯 그는 아들의 첫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뒤에 한 스탶이 막 무대로 나오려는 Billy에게 말한다. "너의 가족이 와 있어'" 커버린 Billy는 가벼운 미소로 답한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로 나가 큰 도약을 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성인 Billy역에는 영국의 유명한 남성 발레단 매튜 본의 발레리노 아담 쿠퍼가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백조의 호수를 남성으로만 출현시켜서 유명해진 발레단인데 그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른다고한다. 오즉하면 영국의 여배우 엠마 톰슨이 그의 발레복 백조깃털이라도 한번 핥아 봤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을까.
결국 Billy는 자신이 춤을 출때 새가 된 느낌을 마침내 백조의 호수의 주연 백조가 됨으로써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이 영화의 Jamie Bell은 그해 영국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고 발레 여선생이던 Julie Walters는 여주 조연상을 수상했다. 200명의 지원자중에서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 소년. 정말 이 역할에 너무적격이다. 깡 마른 체구에 고집스런 눈, 그렇지만 춤을 추면 정말 행복한 듯한 표정. 미국에서만 220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고 한다. 추억에 잠겨 감동적으로 행복해 지고 싶으면 이 영화 꼭 권하고 싶다.
Billy Elliot
(성인역의 Adam Cooper)
영국영화 중에 Billy Elliot(2001)이라는 영화가 있다.
12살 소년의 성장 영화로 배경은 1984년 영국의 광산촌.
이 배경은 미국 영화 "우리의 골짜기는 얼마나 푸르렀던가"라는 1950년대 미국영화를 기억나게 만들었다. 이 영화도 미국의 광산촌에서 대공황시대에 힘들게 살아가는 광부들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은 소년들의 영화였다. 아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죤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모티브를 딴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공황시대 만큼 절실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도 대처 영국 수상이 그 당시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정부지원을 축소하자 광산촌의 노조원들은 파업을 벌인다. 빌리의 아버지도 광부. 파업에 동참하면서 생계를 꾸릴 돈은 점점 줄어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Billy. 치매에 걸린 할머니. 노조 운동으로 도망다니는 토니형. 그리고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젊은 때의 꿈을 접고 늙은 몸으로 발레를 가르치는 여 주인공. 그리고 소년의 친구들이 나온다. 소년의 친구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Billy를 사랑한다. 빌리가 어머니 무덤가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할머니는 엉뚱한 무점에 가서 헤매고 있다. 빌리는 어머니 무덤에 난 풀을 열심히 자르면서 할머니를 목청껏 부른다. "할머니 여기야. 이쪽으로 와" 따뜻했던 피아노를 치던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는 소년이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고단한 현실의 삶도 책임도 지켜야 한다. 어두운 밤 빌리가 침대에 누워 옆 침대에서 잠들려는 형에게 묻는다. "형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 "개소리" 빌리의 사색과 고민은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기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레. 그러나 그 속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그 마을의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그 길만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권투를 하지 않고 발레를 배운다는 말에 분노한다. 여자들의 하는 발레를. 당연 아들과 갈등 국면에 오랫동안 노출된다. 오랫동안의 파업으로 어머니가 쓰던 피아노를 부셔서 크리스마스 식사에 불을 밝히는 땔감으로 쓰는 모습은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에 나오는 모습과 유사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춤을 배우던 소년의 꿈을 어떻게 아버지가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감동적인 영국영화의 특징, 소년은 결국 꿈을 버리지 않고 창고에서 아버지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춤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다. 비록 엉터리 춤이지만. 결국 아버지는 아들이 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꿈이었던 권투가 아니라 아들이 원하는 발레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발레 여선생을 찾아가서 자기 아들의 발레를 맡아 달라고부탁하고 자신의 아들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가장 강력하게 노조에 몸 담았으면서 참가했던 파업을 풀고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탄광으로 복귀한다. 노조 위원장인 큰 아들과 싸우면서, 평생을 같이 했던 노조원들을 배신하면서 아들의 발레 수업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욕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탄광으로 복귀하는 아버지의 부정은 우리 정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우리의 아버지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고 자신의 평생을 포기하면서 아들의 장래를 밀어 주려는 그의 뜨거운 부정이 가슴에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다. 뻔한 스토리인데도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 동시대의 모습을 체험했기 때문이겠지.
소년은 결국 영국 왕립 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떠난다. 어머니의 패물을 다 팔아서. 아버지의 저금통을 다 털어서. 물론 소년은 기본기가 전혀 없는 엉터리 발레 초년생. 그렇지만 소년은 말한다. "춤을 추면 마치 새가 된듯한 기분이다. 전기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라고. 발레 선생이 이야기 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너가 얼마나 발레를 잘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건 거기서 배우게 된다. 그들이 보는 것은 너가 너의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그리고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해 진다고 말한다.
Billy는 결국 왕립학교에 입학허가를 얻게 된다. 통지를 받자 마자 아버지는 동네로 뛰쳐 나간다. "He fucking didi it."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힘들면 돌아 와도 되죠?" "농담하냐? 이미 너 방은 세 놓았다." 무뚝뚝한 어버지와 아들의 이 간단한 대화가 다시 나를 감동시켰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아들을 격려하는 것이 아닌 간접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것, 아버지의 이 말이 백마디 격려보다 얼마나 아들에게 더 큰 힘이 될 것인가.
마지막 장면 또한 압권. 10년이 지나 소년은 발레리노가 되었고 그의 늙은 아버지는 그의 첫 주연 무대를 보러 온다. 객석에서 그의 아버지는 정말 기묘한 얼굴로 앉아 있다. 늙은 아버지의 얼굴에는 눈물이 배여있고, 슬픈 듯, 기쁜 듯 그는 아들의 첫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뒤에 한 스탶이 막 무대로 나오려는 Billy에게 말한다. "너의 가족이 와 있어'" 커버린 Billy는 가벼운 미소로 답한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로 나가 큰 도약을 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성인 Billy역에는 영국의 유명한 남성 발레단 매튜 본의 발레리노 아담 쿠퍼가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백조의 호수를 남성으로만 출현시켜서 유명해진 발레단인데 그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른다고한다. 오즉하면 영국의 여배우 엠마 톰슨이 그의 발레복 백조깃털이라도 한번 핥아 봤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을까.
결국 Billy는 자신이 춤을 출때 새가 된 느낌을 마침내 백조의 호수의 주연 백조가 됨으로써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이 영화의 Jamie Bell은 그해 영국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고 발레 여선생이던 Julie Walters는 여주 조연상을 수상했다. 200명의 지원자중에서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 소년. 정말 이 역할에 너무적격이다. 깡 마른 체구에 고집스런 눈, 그렇지만 춤을 추면 정말 행복한 듯한 표정. 미국에서만 220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고 한다. 추억에 잠겨 감동적으로 행복해 지고 싶으면 이 영화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