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 배달국시대 14대 자오지한웅(치우천황)으로 일컬어지는 뿔달린 투구와 갑옷입은 모습.

박일규200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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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 배달국시대 14대 자오지한웅(치우천황)으로 일컬어지는 뿔달린 투구와 갑옷입은 모습.

조의선인(早衣仙人)이란 '검은 빛깔의 조복(早服) 을 입은 선인'이란 뜻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 불렀다.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선배는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킨다. 선배는 화랑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다. 했다. 조의선인의 눈부신 활약이 기록으로 보이는 것이 안시성 전투였다. 당태종의 당군(唐軍)은 요동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많은 공성기구(攻城機具)를 사용해 안시성을 맹렬히 공격했지만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당태종은 60일 동안 50만을 동원하여 성을 내려다보고 공격하기 위해 성의 동남쪽에 높은 토산을 쌓게 했는데 토산이 무너져 안시성 성벽을 치는 바람에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이때 고구려군 결사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당군을 물리치고 토산을 점령해 버리고 주변을 깎아 나무를 쌓아 불을 놓고 지키니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기록은 이 장면을 '이때 성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백 명의 용사가 뛰어나와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듯 당나라 2만 기병을 산 아래로 팽개치고는 오히려 토산을 차지해 버렸다' 라고 적고 있다. 이 검은 옷의 용사(勇士)들을 조의선인이라 부른다. 당시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3만여 명에 달했고, 그 수장은 연개소문이었다고 한다..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유년의 어린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하여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된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이 부딪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된다. 을파소나 명림답부, 을지문덕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모두 조의선인들이었고, 우리 문화전통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때의 조의선인으로 선발되었던 을밀선인(乙密仙人) 문하에는 조의선도 3,000명이 다물방지가(多勿邦之歌)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고구려는 신라의 화랑도를 능가하는 전문무사집단이 있었는데 그 집단이 조의선인 또는 선배(선비라고 도함)입니다. 조의선인이라는 것은 조의(검은 옷)를 입고 전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무사집단 입니다. 고구려가 강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조의선인 이란 무사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고구려의 관등을 살펴보면 선인이라는 관등이 있어 이것이 고구려에 조의선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명림답부,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고구려의 마지막 막리지 연개소문 또한 조의선인 출신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