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늑대

권옥선200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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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리 플래닛'을  아는가? '외로운 행성' 이란 뜻이다. 로운리 플래닛(Lonely Planet)을 모른다면 당신은 아직 여행자랄 수 없다. 로운리 플래닛은 호주에 있는 한 출판사 이름이다. 당신이 인도나 중국 혹은 세계 어느 곳을 간다 한들 로운리 플래닛에서 펴낸 여행자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면 아직 제대로 여행했다고 할 수 없다.

 

'외로운 행성' 출판사에서 만든 가이드북에는 세세한 뒷골목 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룻밤 1천원으로 편안한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 여인숙 이름들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다. 심지어 어느 레스토랑의 어떤 웨이터에게 부탁하면 기차표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까지 들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매년 개정판을 낸다.

 

나는 지금도 책장 앞에 로운리 플래닛이 펴낸 인도와 네팔 가이드북을 올려놓고 있다. 여행 때마다 나는 오로지 이 책 한 권만을 들고 다녔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길 안내자였으며, 밤에 노숙할 때는 머리맡에 놓거나 베고 자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으로 로운리 플래닛의 책들을 꼽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책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이따금씩 펼쳐보며 한숨 짓는다. 언제가 되어야 또다시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로운리 플래닛은 그렇다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가이딩 울프' 라는 정령(精靈)이 있다. 이 '길잡이 늑대' 는 지상에서의 인생 행로를 보살펴주는 안내자다. 사냥감이 어디에 많은가도 알려주고 위험한 적이 어디서 노려보고 있는가도 귀띔해준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길잡이 늑대가 있어서 그 정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길을 잃는 법이 없다고 인디언들은 믿는다.

 

길을 잃을 때란, 숲 전체를 조망하고 있는 길잡이 늑대의 말을 듣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제멋대로 나무들 속으로 걸어갈 때이다.

 

따라서 로운리 플래닛의 책들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당신이 만일 길잡이 늑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면 인생을 여행하는 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여행길에서 혼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두려움을 동행자로 데리고 간다" 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길잡이 늑대가 없다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또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삶의 어느 길을 걸어가든 나는 몇 권의 책과 내 안의 길잡이 늑대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메뉴판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다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쓰며 길을 잃을 때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길잡이 늑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류시화 님의 산문집 / 문학동네(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