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신적, 금전적인 부당한 일을 다하였는데,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와 사회적 지위와 풍부한 경제적 여건임에도 해결을 계속 미뤄와서 어디에 호소를 해야할 지 몰라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현재 대부 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로 일의 발단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전라북도 익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9년 저는 그 당시 최등규씨가 운영한 전북 익산시 낭산면 ㈜대보석산과 돌 채석 수출에 관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돌 공급 물량은 적고, 수요가 급증하였던 관계로 선 계약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계약을 채결하지 못하였기에 돌 채석 우선 공급함을 조건으로 계약금 3,400만원을 지불하였습니다.
계약금 지불후 현 대부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와 협의하여 일본과의 채석 수출 무역을 위하여 대전 국제 석공회사 사장인 이기익씨와 대일 무역 관련 자금 및 부서 운영비 등 제반시설 자금 분담은 제가 하는 조건으로 사내 무역 전담 본부를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무역 신설후 대일 채석 무역 관련 직원들을 스카우트 하였고, 일본 바이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10여차례 일본을 다녀온 후, 발굴 채석 전량을 수출 하기로 계약을 채결하였습니다. 계약 체결과 관련하여 사무실 운영 및 직원 인권비, 바이어 접촉 등 사용 비용이 자그마치 1억 4천만원 가량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 부탁을 하여 마련한 돈과 제가 그동안 저축하여 놓은 자금,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빌린돈을 가지고 업무 추진하는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며칠 머리 식힐려고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사실 확인 결과 채석장에서 돌이 나오지 않아 회사를 내버려둔체 모든 협력업체들을 배신하고 혼자 서울로 도피를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등규씨의 도피로 인해 주변에서 빌려운 돈을 갚기 위해 저희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몇십년을 한곳에 살고 계시던 집까지 팔고 거리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또한, 최등규씨 도피하면서 일본 바이어들과의 계약 해지와 함께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했고, 자금 마련이 안되어 주변 친지분, 친구들, 아는 모든 지인에게 또다시 자금을 빌렸지만, 그 분들의 돈을 갚지 못해 결국 저는 지금까지 도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ㆍ답은 물론 기본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살림 살이 까지 빚쟁이들에게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가정에서 아내에게 신용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단칸방으로 옮긴 살림에 매일 찾아오는 빚쟁이들로 인해 신경쇠약 및 정신 이상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며칠이면 나타나리라고 굳게 믿었던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의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채 27년을 살았습니다. 27년 동안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의 도피로 인해 발생한 일 때문에 현재 고3, 중2인 두 딸에게 빚쟁이들로 인해 매일 도망다니다 시피 하는 관계로 아이들이 성장할 때 든든한 애비가 되어 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함과 안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최등규 현 대보그룹 회장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연락도 받지 못하면서 아직도 27년 전 그 일로 인해 쫓기고 있어며 집에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족들 역시 27년동안 거의 매일 찾아 오고, 전화해 오는 빚쟁이들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거의 가정 파탄에 이러렀습니다.
하지만, 3개월전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 소식에 화가 나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인의 말은 아는 지인을 통해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날수 있었고, 회사로 찾아가니 최등규씨가 27년 전 채석 장비 및 기름 값 등 그동안 자신이 빚을 졌던 금액의 2배, 3배 보상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비슷한 보상을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저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개인 채무를 갚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3개월 전에 현 대보그룹 비서실에 메모를 남겨 최등규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날 수 는 없었지만, 이번 보상과 관련하여 모든 일을 일임한 최등규씨의 조카인 최성규씨가 비서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대보그룹으로 찾아 갔습니다.
최성규씨는 지금 회장님이 안계셔서 자기가 대신 모든일을 일임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해주시기를 바라냐고 물어 봤습니다. 처음에 제가 대보그룹 관련 협력 업체 공사 하청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뜻 최성규씨는 협력업체 관련 서류 18가지를 준비해오라고 해서 회사자본 7억원의 법인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대보그룹 협력 업체는 최소 30억 이상의 자본이 기본 조건이기에 다시 30억원의 협력업체 서류를 준비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서류 제출과 동시에 어떤 확답을 해 주신다는 대보그룹 측에서는 2개월이상 대답을 차일피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며칠전 마음을 다잡고 현 대보그룹 회장이신 최등규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 대보그룹을 찾아 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최성규씨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던중 제 나름대로 보상 가격을 책정해보니 27년 전 2억이면 현재 얼마로 환급 받을지 모르겠기에 그 당시 아파트 가격이 채당 300만원 정도 했으니까 현재 가격은 1억 정도 하므로 50억 이상 계산적으로 나왔지만, 너무 과한 것 같아 억정도를 제시 하면서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나 자고 제안 했지만, 자리에 안계시다는 핑계로 아직 까지 만나지 못하고 추후 약속을 예정으로 대보그룹 비서실을 나왔습니다.
물론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저에게 보상을 안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압니다. 어느 골프 잡지에서 “자신은 정직과 사랑을 신념으로 주위 어려우신분들을 많이 도우며, 앞으로도 그렇게 사시고 싶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최등규씨가 보상을 안한다는게 아니라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저희 가족들이 그만큼 고통을 감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3개월 동안 이 문제로 서울에 숙식을 하면서 소비한 비용이 1,000만원 이상이 됩니다. 저한테는 단돈 만원의 가치도 높은데, 결과를 기다리면서 사용한 1,000만원 이상의 돈이 웬 말이란 말입니까?! 그로인해 저희 가족이 받아야 하는 고통은
또 얼마나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께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난 27년의 세월은 저에게나 제 가족들에게 너무 혹독한 세월이였습니다. 현 대보 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는 익산에서 자취를 감추고 현 대보그룹을 만들었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갖추고 있지만, 저는 그 사람으로 인해 제 인생을 거의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1000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 하고 싶지만, 사회 통념적인 생각으로 억원정도를 제시하였는데 그 조차도 받아 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분이 터져 이렇게 몇자 적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의 부당한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꼭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법적으로 대응을 대보그룹 쪽에서 한다면 저희 같은 일반인은 법적으로 대보그룹과 싸워 이길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법적 해결이 힘들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전 모든 방법(민원, 시민참여 동의서, 일인 시위등)을 동원하여 대보그룹과 싸울것을 맹세합니다.
읽어 주신 분께 감사 드리며, 작은 도움이라도 저한테는 크나큰 은덕이 된다는 것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대보그룹을 찾아갔지만 정작 회장이라는 사람은 한번도 못보고 전무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말"그 부채는 최등규씨와 해결하지 왜 여기 자꾸 오시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최등규 회장이 매일 출근하니까 그럼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지금 부재중이시니 담에 오시라는 말과 함께 법적으로 하든 알아서 하시라는말을 듣고 저는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27년동안 그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 살아왔것만.. 도대체 세상의 정의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회사는 지금 정부기관 관련 고속도록 공사 몇 백억 수주를 하고 있으니 과연 무엇이 옳은건지 모르겠네요.
현대보그룹회장 최등규씨에게 짓밟힌 저희가족..
안녕하십니까?
저는 익산시 합열읍에 사는 51세의 김기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정신적, 금전적인 부당한 일을 다하였는데,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와 사회적 지위와 풍부한 경제적 여건임에도 해결을 계속 미뤄와서 어디에 호소를 해야할 지 몰라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현재 대부 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로 일의 발단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전라북도 익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9년 저는 그 당시 최등규씨가 운영한 전북 익산시 낭산면 ㈜대보석산과 돌 채석 수출에 관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돌 공급 물량은 적고, 수요가 급증하였던 관계로 선 계약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계약을 채결하지 못하였기에 돌 채석 우선 공급함을 조건으로 계약금 3,400만원을 지불하였습니다.
계약금 지불후 현 대부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와 협의하여 일본과의 채석 수출 무역을 위하여 대전 국제 석공회사 사장인 이기익씨와 대일 무역 관련 자금 및 부서 운영비 등 제반시설 자금 분담은 제가 하는 조건으로 사내 무역 전담 본부를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무역 신설후 대일 채석 무역 관련 직원들을 스카우트 하였고, 일본 바이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10여차례 일본을 다녀온 후, 발굴 채석 전량을 수출 하기로 계약을 채결하였습니다. 계약 체결과 관련하여 사무실 운영 및 직원 인권비, 바이어 접촉 등 사용 비용이 자그마치 1억 4천만원 가량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 부탁을 하여 마련한 돈과 제가 그동안 저축하여 놓은 자금,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빌린돈을 가지고 업무 추진하는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며칠 머리 식힐려고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사실 확인 결과 채석장에서 돌이 나오지 않아 회사를 내버려둔체 모든 협력업체들을 배신하고 혼자 서울로 도피를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등규씨의 도피로 인해 주변에서 빌려운 돈을 갚기 위해 저희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몇십년을 한곳에 살고 계시던 집까지 팔고 거리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또한, 최등규씨 도피하면서 일본 바이어들과의 계약 해지와 함께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했고, 자금 마련이 안되어 주변 친지분, 친구들, 아는 모든 지인에게 또다시 자금을 빌렸지만, 그 분들의 돈을 갚지 못해 결국 저는 지금까지 도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ㆍ답은 물론 기본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살림 살이 까지 빚쟁이들에게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가정에서 아내에게 신용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단칸방으로 옮긴 살림에 매일 찾아오는 빚쟁이들로 인해 신경쇠약 및 정신 이상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며칠이면 나타나리라고 굳게 믿었던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의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채 27년을 살았습니다. 27년 동안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의 도피로 인해 발생한 일 때문에 현재 고3, 중2인 두 딸에게 빚쟁이들로 인해 매일 도망다니다 시피 하는 관계로 아이들이 성장할 때 든든한 애비가 되어 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함과 안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최등규 현 대보그룹 회장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연락도 받지 못하면서 아직도 27년 전 그 일로 인해 쫓기고 있어며 집에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족들 역시 27년동안 거의 매일 찾아 오고, 전화해 오는 빚쟁이들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거의 가정 파탄에 이러렀습니다.
하지만, 3개월전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 소식에 화가 나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인의 말은 아는 지인을 통해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날수 있었고, 회사로 찾아가니 최등규씨가 27년 전 채석 장비 및 기름 값 등 그동안 자신이 빚을 졌던 금액의 2배, 3배 보상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비슷한 보상을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저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개인 채무를 갚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3개월 전에 현 대보그룹 비서실에 메모를 남겨 최등규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날 수 는 없었지만, 이번 보상과 관련하여 모든 일을 일임한 최등규씨의 조카인 최성규씨가 비서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대보그룹으로 찾아 갔습니다.
최성규씨는 지금 회장님이 안계셔서 자기가 대신 모든일을 일임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해주시기를 바라냐고 물어 봤습니다. 처음에 제가 대보그룹 관련 협력 업체 공사 하청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뜻 최성규씨는 협력업체 관련 서류 18가지를 준비해오라고 해서 회사자본 7억원의 법인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대보그룹 협력 업체는 최소 30억 이상의 자본이 기본 조건이기에 다시 30억원의 협력업체 서류를 준비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서류 제출과 동시에 어떤 확답을 해 주신다는 대보그룹 측에서는 2개월이상 대답을 차일피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며칠전 마음을 다잡고 현 대보그룹 회장이신 최등규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 대보그룹을 찾아 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최성규씨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던중 제 나름대로 보상 가격을 책정해보니 27년 전 2억이면 현재 얼마로 환급 받을지 모르겠기에 그 당시 아파트 가격이 채당 300만원 정도 했으니까 현재 가격은 1억 정도 하므로 50억 이상 계산적으로 나왔지만, 너무 과한 것 같아 억정도를 제시 하면서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를 만나 자고 제안 했지만, 자리에 안계시다는 핑계로 아직 까지 만나지 못하고 추후 약속을 예정으로 대보그룹 비서실을 나왔습니다.
물론 현 대보그룹 회장인 최등규씨가 저에게 보상을 안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압니다. 어느 골프 잡지에서 “자신은 정직과 사랑을 신념으로 주위 어려우신분들을 많이 도우며, 앞으로도 그렇게 사시고 싶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최등규씨가 보상을 안한다는게 아니라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저희 가족들이 그만큼 고통을 감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3개월 동안 이 문제로 서울에 숙식을 하면서 소비한 비용이 1,000만원 이상이 됩니다. 저한테는 단돈 만원의 가치도 높은데, 결과를 기다리면서 사용한 1,000만원 이상의 돈이 웬 말이란 말입니까?! 그로인해 저희 가족이 받아야 하는 고통은
또 얼마나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께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난 27년의 세월은 저에게나 제 가족들에게 너무 혹독한 세월이였습니다. 현 대보 그룹 회장인 최등규씨는 익산에서 자취를 감추고 현 대보그룹을 만들었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갖추고 있지만, 저는 그 사람으로 인해 제 인생을 거의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1000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 하고 싶지만, 사회 통념적인 생각으로 억원정도를 제시하였는데 그 조차도 받아 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분이 터져 이렇게 몇자 적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의 부당한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꼭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법적으로 대응을 대보그룹 쪽에서 한다면 저희 같은 일반인은 법적으로 대보그룹과 싸워 이길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법적 해결이 힘들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전 모든 방법(민원, 시민참여 동의서, 일인 시위등)을 동원하여 대보그룹과 싸울것을 맹세합니다.
읽어 주신 분께 감사 드리며, 작은 도움이라도 저한테는 크나큰 은덕이 된다는 것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대보그룹을 찾아갔지만 정작 회장이라는 사람은 한번도 못보고 전무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말"그 부채는 최등규씨와 해결하지 왜 여기 자꾸 오시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최등규 회장이 매일 출근하니까 그럼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지금 부재중이시니 담에 오시라는 말과 함께 법적으로 하든 알아서 하시라는말을 듣고 저는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27년동안 그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 살아왔것만.. 도대체 세상의 정의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회사는 지금 정부기관 관련 고속도록 공사 몇 백억 수주를 하고 있으니 과연 무엇이 옳은건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슬픈 현실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