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Tillich

이광일200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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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 교수는 당시 철학과 신학,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이었다. 그런 폴 틸리히 교수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영어에 익숙치않아 억센 독일식 악센트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영어 발음을 낸다는 것이었다. 그의 강의 시간 내내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 학기 동안 이런 일이 계속되자, 폴 틸리히 교수는 강의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더군다나 그는 사랑하는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고독한 망명객의 처지였다. 본의 아니게 낯선 땅에서 망명 생활을 감내해야하는 그에게 학생들의 비웃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한없는 좌절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모든 의욕을 잃어갔다.


2학기가 되자 폴 교수는 강의실 앞에만 서면 벌벌 떨었다. 강의는 안 할 수 없고 하자니 어렵고, 그 사이 폴 교수의 마음에 생긴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롤로 메이에게 이런 틸리히 교수의 고통을 바라보게 하셨다. 어느 날 경직된 마음으로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틸리히 교수는 우편함에서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선생님, 힘을 내세요. 우리가 웃는 것은 선생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오. 우리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롤로 메이 드림.”


그날 저녁 카드를 읽은 폴 틸리히 교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 있다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 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날 폴 틸리히 교수가 뜨거운 가슴으로 써 내려간 책이 그 유명한 이다.


그날부터 폴 틸리히 교수는 롤로 메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롤로 메이는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틸리히 교수는 신학자로서 서로를 도왔다.


후일 시카고 대학에서 폴 틸리히 교수의 장례가 치러졌을 때도 롤로 메이가 조사를 낭독했다. 그날 롤로 메이의 눈물의 조사는 수천 명의 조문객들을 울리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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