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라야 나의 남자....................... 대개는 '여자가 남자 품에 안긴다'는 뻔한 스토리가 걸리긴 하지만 꿈 꿀 권리쯤은 누구에게라도 있는 게 아닌가. 나의 남자는 다음과 같은 리스트를 갖고 있어야 했다. 내가 그를 안았을 때 나의 연약한 두 팔에 꽉 들어치는 체격의 소유자, 즉 내 가느다란 팔 안에 답삭 아기거나 헐렁하게 빈 공간이 생기면 안 되는 키 크고 건장한 사나이가 나는 좋았다. 이마가 번듯하며 눈썹이 짙고 우뚝 솟은 콧날에 항상 빛나는 두 눈, 입술 색이 붉어 윤곽이 선명하고 특히 귀와 턱이 잘생긴 귀족풍의 사내를 선망했다. 이것은 곧 무한한 포용력과 장대한 기개, 특히 통이 큰 능력자를 일컬었다. 이런 사내야말로 결혼 후에 혹시 도둑이 들어와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발발 떠는 졸장부가 아닐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바람은 끝이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남자는 박식한 사람이어야 했다. 전공 과목이 두드러져야 함은 물론이고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운동,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낯설어 하지 않아야 내가 쓰는 소설에 조언은 못 해줄망정 "소설 속의 내용이 너의 직접 체험이 아니었느냐"는 식의 트집은 잡지 않을 것이기에... 뾰로통해 뒤돌아 앉은 내 옆모습을 슬쩍 스케치하여 나를 웃길 수 있는 남자라면 벌거벗은 여배우의 사진보다 반 고흐의 그림이 있는 캘린더를 방 안에 걸겠지. 내가 치는 피아노 반주에 흥겹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이. 하다못해 탁구대라도 들여놓고 싶어하는 운동에의 관심, 일년에 단 네 번만이라도 연극 구경을 시켜 주는 이. 세계 정세를 예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건 내 지나친 욕심일 테고.... 남자가 적어도 바둑쯤은 둘 줄 알아야겠지. 내가 바라는 박식한 남자란 그렇게 생활할 줄 아는 사람을 뜻 했다. 술, 담배도 적절히 해야 매력이 있고, 특정한 종교를 가진 신앙인은 아니더라도 무신론자만 아니라면... 목소리가 굵으면서도 낭랑해야겠고 호탕한 웃음과 멋진 걸음새, 정직한 성품이지만 수완 또한 좋아야겠고, 어떤 환경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남자. 부모가 생존해 계시고 순탄한 삶을 지내 왔으면서도 의지력과 개척력이 투철한 남자가 의외로 여자를 끔찍이 아낀다던데.... 자신의 생일도 자축할 줄 알고 아내나 자식의 생일날도 기념해 주는 남자라면 너무 선이 가는 사람일까?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서도 나는 그 흔해빠진 남자 친구 하나 없었다. 마치 차돌멩이를 삶아 낸 물, 그나마 따뜻하지도 않고 다 식어 빠진 맹탕 같은 청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친구, 연인, 남편 또 내 아기의 아빠가 동일 인물이어야 하는다는 어릴 적부터의 원칙이 나로 하여금 남자와의 교제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에 대한 조건까지 그리 까다로웠으니 애인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1970년 5월 25일 나는 한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결혼하는 이 남자야말로 바로 끝가는 데 모르고 콧대 높았던 처녀 시절에 꿈꾸었던 남자라고 믿으면서, 나는 그렇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얼마 후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고요히 잠든 새벽 3시, 지금 나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그윽이 내려다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시간 속으로 길어 올리며 추억 한다. 1995.4 걸레를 든 마릴린 먼로, 민서현...... --------------------------------------------------------- 군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걸레를 든 마릴린 먼로
이런 사람이라야 나의 남자.......................
대개는 '여자가 남자 품에 안긴다'는 뻔한 스토리가 걸리긴 하지만 꿈 꿀 권리쯤은 누구에게라도 있는 게 아닌가. 나의 남자는 다음과 같은 리스트를 갖고 있어야 했다.
내가 그를 안았을 때 나의 연약한 두 팔에 꽉 들어치는 체격의 소유자, 즉 내 가느다란 팔 안에 답삭 아기거나 헐렁하게 빈 공간이 생기면 안 되는 키 크고 건장한 사나이가 나는 좋았다.
이마가 번듯하며 눈썹이 짙고 우뚝 솟은 콧날에 항상 빛나는 두 눈, 입술 색이 붉어 윤곽이 선명하고 특히 귀와 턱이 잘생긴 귀족풍의 사내를 선망했다.
이것은 곧 무한한 포용력과 장대한 기개, 특히 통이 큰 능력자를 일컬었다.
이런 사내야말로 결혼 후에 혹시 도둑이 들어와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발발 떠는 졸장부가 아닐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바람은 끝이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남자는 박식한 사람이어야 했다.
전공 과목이 두드러져야 함은 물론이고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운동,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낯설어 하지 않아야 내가 쓰는 소설에 조언은 못 해줄망정 "소설 속의 내용이 너의 직접 체험이 아니었느냐"는 식의 트집은 잡지 않을 것이기에...
뾰로통해 뒤돌아 앉은 내 옆모습을 슬쩍 스케치하여 나를 웃길 수 있는 남자라면 벌거벗은 여배우의 사진보다 반 고흐의 그림이 있는 캘린더를 방 안에 걸겠지.
내가 치는 피아노 반주에 흥겹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이. 하다못해 탁구대라도 들여놓고 싶어하는 운동에의 관심, 일년에 단 네 번만이라도 연극 구경을 시켜 주는 이. 세계 정세를 예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건 내 지나친 욕심일 테고....
남자가 적어도 바둑쯤은 둘 줄 알아야겠지.
내가 바라는 박식한 남자란 그렇게 생활할 줄 아는 사람을 뜻 했다.
술, 담배도 적절히 해야 매력이 있고, 특정한 종교를 가진 신앙인은 아니더라도 무신론자만 아니라면...
목소리가 굵으면서도 낭랑해야겠고 호탕한 웃음과 멋진 걸음새, 정직한 성품이지만 수완 또한 좋아야겠고, 어떤 환경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남자.
부모가 생존해 계시고 순탄한 삶을 지내 왔으면서도 의지력과 개척력이 투철한 남자가 의외로 여자를 끔찍이 아낀다던데....
자신의 생일도 자축할 줄 알고 아내나 자식의 생일날도 기념해 주는 남자라면 너무 선이 가는 사람일까?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서도 나는 그 흔해빠진 남자 친구 하나 없었다. 마치 차돌멩이를 삶아 낸 물, 그나마 따뜻하지도 않고 다 식어 빠진 맹탕 같은 청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친구, 연인, 남편 또 내 아기의 아빠가 동일 인물이어야 하는다는 어릴 적부터의 원칙이 나로 하여금 남자와의 교제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에 대한 조건까지 그리 까다로웠으니 애인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1970년 5월 25일 나는 한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결혼하는 이 남자야말로 바로 끝가는 데 모르고 콧대 높았던 처녀 시절에 꿈꾸었던 남자라고 믿으면서, 나는 그렇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얼마 후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고요히 잠든 새벽 3시, 지금 나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그윽이 내려다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시간 속으로 길어 올리며 추억 한다.
1995.4
걸레를 든 마릴린 먼로, 민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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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