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지리 유래

박성준200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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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관악구 지리 유래 복은말 ‘보그니마을’ 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신림2동 118번지 일대 지금의 신성초등학교 뒤편을 말한다.
‘복은말’이란 이름은 옛날 이 마을에 돈많은 부자들이 살았다 하여 복이 숨어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관악구 지리 유래 원신림 신림동이라고 하는 고유명사의 동명은 이곳을 맨 처음 신림이라 칭한 신림6동을 일컫는 말이었다.
원신림은 신림6동에서 신림1동으로 넘어가는 길 아래에 있던 마을이다.
1911년 신림리, 서원리, 난곡리가 통합되자 이곳을 포함한 일대를 ‘양산리’라 부르기도 하였다. 관악구 지리 유래 서원동 서원동은 서원말. 뜻은 서원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서원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서원저이라는 작은 청자가 있었는데 강감찬 장군이 송도에 왕래할 때 자주 머물렀다고 하는데서 연유한다. 관악구 지리 유래 난곡 난곡은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는 옛 지명이지만 그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 명장 강홍립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관악구 지리 유래 은정골 은정골은 관악산 입구 주차장에서 성불암을 지나 관악산으로 오르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은이 나왔다 하여 은정골이라 한다. 채광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대략 신림9동 208번지의 훨씬 위다.
현재는 금호아파트 및 건영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관악구 지리 유래 합실 신림10동 335,336 번지 주변일대로 지형이 큰조개모양을 하고 있어 ‘합곡’이라 적었던 것을 소리와 뜻을 옮겨 ‘합실’ 이라 하였다. 관악구 지리 유래 자하동 자하동은 신림9동 서울대학교 정문 동쪽 운동장 부근에 있던 마을로 서울대학교 종합 캠퍼스 공사때 마을 위쪽에 있던 107만평의 관악골프장과 함께 서울대학교 부지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의성 김씨가 수백년간 터전을 닦아온 곳으로 조선조 말 시.서.화 로 이름을 떨친 신위의 아호인 자하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봉천동 관악구 지리 유래 당곡 당곡은 봉천동 714번지 일대의 자연부락으로 봉천1동 중심에서 볼 때 북쪽에 있으며 지금의 당곡초등학교와 당곡시장 뒤편마을이다. 당곡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이 골짜기였으며 제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화다리 화다리마을은 봉천본동에 위치한 마을로 당곡마을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맨 처음에는 활다리 마을로 불리워지다가 화다리로 변했다. 옛날 강감찬 장군이 뚝방에서 봉천천을 건너 장군봉 쪽으로 다리를 놓고 활을 쏘았던 곳으로, 마을 뒷산을 궁교산이라고 함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호리목 호리목은 봉천5동에서 봉천9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지금의 현대시장 일대이다. 지형이 호리병처럼 오목하게 생긴 데서 이름이며 일명 호리목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능고개라 하였는데 상도동으로 넘어가자마자 양녕대군묘가 있기 때문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박재궁 박재궁은 지금의 봉천10동 봉천 중앙시장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재궁이 있었다 하여 박지궁 또는
박자궁이라고도 한다. ‘재궁’은 지방의 분묘나 무덤을 지키려고 그 옆에 지은 집을 가리킨다. 박재궁 뒷산을 넘어 상도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를 어리골 고개라 불렀으며, 관악로 고개는 살피재 고개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인적이 드물고 해가 지면 도적들이 행패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살피면서 넘어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산막골 산막골은 현재 봉촌11동에 해당되었으며 산골로 막을 두른 것처럼 아늑한 골짜기였다. 이곳 산막골 골짜기에는 약수터가 많이 있어 1970년대까지도 인근 주민들의 식수와 약수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오염으로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낙성대 쪽으로 안산이라는 동산이 있었는데 현재 인헌초등학교 자리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독적골 독적골은 현재 봉천6동에 있는 원당초등학교 부근의 자연부락으로 예부터 이곳에서 옹기를 만들어 쌓아 두고 팔았다는 데서 옹적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변해서 생긴 명칭이다. 독적골 마을 북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지루레라 불렀으며 이 길을 따라 살피재를 넘으면 상도동이다. 현재 독적골 앞을 지나 탑골을 거쳐 서울대 후문을 통해 관악산으로 올라가는 도로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새실 새실은 지금의 관악구청 일대인 봉천7동 1597번지 인근에 있던 마을이다 새실이란 이름은 청룡종합시장 부근에 이미 있었던 청능말보다 새실이 늦게 생긴데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또한 마을 입구에 3백년이 넘는 느티 나무와 향나무가 있었는데 예전부터 이 나무들이 참새들의 근거지로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관악구 지리 유래 원당 원당은 봉천6동 낙성대역에서 장미원아파트를 지나 사당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부근의 마을이며 원댕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사당이 많이 있었다 하여 사당동이라 칭하였고, 원당은 사당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관악구 지리 유래 탑골 탑골은 현재 봉천7동 218번지 일대의 자연부락으로 약3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이 마을은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이다. 지금은 낙성대라 하지만 고려시대부터 삼층석탑이 이곳에 있어 예로부터 탑골이라 불려왔다. 관악구 지리 유래 안골 안골마을은 봉천7동 1608번지 일대이며, 골짜기 안이 분지형으로 바람 한점없이 아늑한 골짜기라는 데서 이름 붙여진 자연부락으로 농가5호가 있었다 한다. 관악구 지리 유래 청능말 청능마을은 현재 봉천4동 1574번지부터 1584번지 일대의 청능산 밑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지금의 청룡종합시장 부근에 해당한다. 옛날에 능이 있었다고 하여, 강감찬 장군이 말을 타고 이 마을 뒷산을 지나다가
유달리 푸른 것을 보고 능자리로 좋은 곳이라 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관악구 지리 유래 국사봉

국사봉은 봉천1동과 동작구 상도동에 접해있는 궁교산(해발179m)으로, 여기에는 이름에 얽힌 두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양녕대군이 이 산에 올라 멀리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와 세종의 일을 걱정했다고 해서 붙여진 국사봉(國思峰)과, 조선을 창건하는데 기여한 무학대사가 사자암이라는 절을 궁교산에 지었는데, 그를 국사로 보고 사자암의 뒷산을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렀다는 견해가 있는데, 무학대사는 왕사였지 국사였다는 기록이 없어 후자(國師峰)보다는 전자(國思峰)가 더 타당하다고 적고 있다.(참고자료:서울의 산《1997,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관악구 지리 유래 장군봉 봉천8동과 신림본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18.5m의 산인데, 강감찬 장군이 활쏘기를 하던 곳이라고 하며,
또 어느 장군이 거처하던 곳이라고도 하여 장군봉이라 불리어오고 있다. 관악구 지리 유래 남현동 관악구 지리 유래 남성동 남성동은 지금의 관악구 남현동과 동작구 사당동을 관할하던 행정동 이름이다. 이 지역이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신동면에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신동출장소 남성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가
1970년 5월 18일 사당1동과 사당2동으로 분동되면서 동이름이 없어졌다. 관악구 지리 유래 승방벌(심방뜰) 남현동 관음사 아래에 있던 마을 이름 또는 들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심방뜰의 원래 이름은 승방평으로
승방뜰 또는 심방뜰이라 불렀고, 승려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살피재 동작구 상도1동 숭실대학교 밑 로타리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봉천3동 현대아파트 앞 고개를 살피재라 하였다. 그 연유는 고개는 높고 험한데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슬프다는 뜻으로 슬피재라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하여 살피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악구 지리 유래 호리목고개 동작구 상도2동 대림아파트에서 살피재로 넘어가다가 오른쪽 봉천5동 은천초등학교쪽 호리목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호리목고개라 하였다. 호리목 마을은 오늘날 봉천5동지역으로 지형이 호리병처럼 생겼다 하여 명칭이 붙여졌다. 관악구 지리 유래 까치고개 남부순환로의 관악구 봉천동과 남현동 사이의 고개를 까치고개 혹은 가추재라 하고, 한자로 작현(鵲峴)이라 한다.예전 이 고개가 숲이 울창하여 까치가 많이 서식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관악구 지리 유래 쑥고개 봉천8동에서 신림2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쑥고개라 한다. 그 명칭 유래는 이 고개가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숯을 굽던 가마가 있어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고개이름을 숯고개라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쑥고개로 변하여 지금까지 불리어오고 있다. 관악구 지리 유래 남태령 사당사거리에서 경기도 과천시쪽으로 뻗어서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를 남태령이라 한다.
이 고개를 남태령으로 부르게 된 연유는 어느 해 정조가 융릉으로 가는 길에 이 고개마루에서 잠시 쉬던 중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고개의 이름을 물었다. 이 때 과천현 이방이 이 고개이름은 본디 여우고개라고 불리어졌으나 그런 요망스런 이름을 신하로서 감히 아뢸 수 없어 “삼남대로 상에서 첫번째로 맞이하는 큰 고개이므로 남태령입니다” 라고 이후부터 부르게 되었다 한다. 관악구 지리 유래 새실고개 지금의 관악구청에서 서울대학교로 난 고개를 새실고개라 하였다. 고개 가까이에 새실마을이 있었다.
이 길이 바로 관악로의 옛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