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에관한 그들의 환상

손기주200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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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에관한 그들의 환상


"한국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다리를 꼬고 앉니?"베트남의 수도 하노

 

이 옛동네 시끄러운 골목길, 낡은 호텔의 옥상에서 그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새로 이사온 동네 총각들을 한눈에 사로잡은

 

담배 가게 아가씨처럼 우쭐해졌다. 우중충하고 습도 높은 날씨 때문

 

인지 4월 초 하노이에는 여행자가 뜸했으며, 내가 머물렀던 호텔에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낡고 텅 빈 호텔에서 일하는 세 명의

 

직원들은 번갈아 내 방문을 두드리며 요구르트를 나눠 먹지 않겠느

 

냐는 둥 , 과자를 두 봉지 샀으니 한봉지는 나더러 먹으라는 둥, 소

 

박한 요구사항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호텔 옥상에서 매끼 자신즐

 

의 밥상을 차릴 때마다 나를 불러 밥 공기 하나와 젓가락 하나를 나

 

누어주었다. 내가 담배 가게 아가씨 같은 새침한 얼굴로 동네 총각

 

들이 정성껏 차린 밥을 한숟갈 뜰 때마다, 그들은 밥알을 세듯 끝도

 

없이 이런 질문들을 쏟아냈다."한국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소주를

 

좋아하나?" "한국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춤을 잘 추니? 너도 그러

 

니?" 여섯 개의 눈이 나를 말똥말똥 쳐다봤다.그러고 보니, 그들은

 

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발목을 까딱까딱 흔들고 있는 것, 물을 벌

 

컥벌컥 들이켜는 모습까지 하나하나 뚫어지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

 

들은 왜 이렇게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 대체 왜 예쁘지도 않은 한

 

국의 노쳐녀가 낯선 나라의 동네 퀸카로 들극했을까. 그들이 틈틈이

 

새우잠을 자는 옥탑방 창문 에는 한국 영화 에 나

 

온 전지현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한국의 내 친구들이 들

 

으면 경악할 일이지만 순진한 베트남 총각들은 나에게서 전지현 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혹은 의 송혜교, 의 최지우 를 . 그들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물었다. "한국 여

 

자들은 왜 모두 암에 걸려 죽지? 한국에는 그렇게 아픈 여자들이 많

 

니?" 총각들만이 아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던나를 발견하고 동네 미

 

용실에서 뛰어나온 베트남 처녀의 질문, "빠뤼!빠뤼?"몇발자국을 더

 

걷고 난 뒤에 깨달았다. 그녀는 나의 파마머리가 드라마 의 김정은 스타일이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아직도 유교문화

 

의 전통에서 자유롭지못한 베트남의 처녀총각들은 섹시하고 사나우

 

며(?) 슬프게 죽어버리는 한국여자들 때문에 열병을 앓고 있었다.

 

내가 남자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장면에 꼭 등장해야 하는

 

미끈한 하이힐을 한 번도 신어본적이 없으며, 소주는 입에도 대지

 

못하고, 섹시 웨이브는커녕 디스코도 못 추는 몸치며, 평생 병원에

 

입원한 적도 한번 없는 건강녀란 사실을 실토했을 때, 그들은 아마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그 많은 영화와 소

 

설들 덕분에 우리에게도 베트남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다. 검고 긴

 

생머리를 땋아 내린 수줍은 미소의 소녀가 머리엔 논(야자나무잎을

 

엮어 만든 삿갓모양의 모자)을 쓰고 새하얀 아오자이(베트남 여성

 

들의 전통의상)자락을 나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이다.

 

 베트남 여학생들은 아직도 교복 대신 아오자이를 입기 때문에 하노

 

이의 거리엔 여전히 햐얀 아오자이 자락이 나폴거린다. 하지만 하노

 

이시의 인구보다 더 많은 게 오토바이다. 아오자이 소녀들은 애잔하

 

고 고풍스러운 논 대신 투박한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매연을 막아주

 

는 두꺼운 마스크로 얼굴을 질끈 동여맨 채 자전거 대신 부릉부릉

 

오토바이를 몰고 지나간다. 그래서 애행은 지구인의 소통이다. 여행

 

은 그곳에 관한 나의 환상에서 비로소 깨어나게 해주며, 이렇게 한

 

국 여자에 관한 그들의 환상을 일부러 거기까지 날아가서 깨뜨려주

 

게하니까>차한잔의여유/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