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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200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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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을 가진 사업가나 부자 아버지를 둔 한량이거나 환락의 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의례 찾는 곳으로 소위 룸살롱 이란 게 있다.  어쩌다 맘에 드는 여급을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뿐 아니라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줍잖은 박애정신과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를 가진 남자라면 자본과 성의 결합인 동거 또는 시한부 애인의 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까지 이르기에는 여자의 치밀한 계획과 적절한 몸 지키기와 남자의 물량공세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이제 한 편의 영화를 보자.
1977년 작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이다.
이 영화 속 남녀의 행태는 경제학적으로 본 성 거래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거니와 거래가 성사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심리전이 더해지면서 인간 내면에 가득 찬 욕망의 실체를 스스로 자백하기에 이른다.  감독은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이 가진 것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 속의 내재한 심리를 탐구하며 빛나는 걸작 한편을 만들어낸다.


오늘, 스페인 세비아 기차역에서 한 처녀에게 물세례를 받는 중년 사업가 마티유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1년 전, 프랑스 파리 대저택을 거쳐 5개월 후 파리근교의 호화별장을 지나 다시
7개월 후 스페인 세비아의 한 작은 마을로 이어진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절대 섹스를 하지 않는다” 라고 공언하던 이 남자, 마티유.
초보하녀 콘치타에게 홀딱 반해 돈으로 환심을 사려고 갖은 안감 힘을 쓴다.
편지 한통과 함께 마티유를 떠난 그녀는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파리 근교의 술집에서 마티유를 다시 만나 동거를 시작하나 콘치타는 “나의 모든 것을 주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것” 이라는 속이 빤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면서 애를 태운다.
결국 마티유의 집에서 애인과 놀아나다가 덜미를 잡힌 그녀는 쫓겨난다.

다시 7개월 후, 스페인 세비아의 한 작은 마을.
점점 시들어가던 마티유, 참다못해 콘치타를 찾아간다.
하지만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스트립쇼를 하고 있는 콘치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니 그에게 그녀의 팬티는 난공불락이 아니었던가? 이젠 정말 때가 온 것일까?
마티유는 콘치타에게 집을 한 채 사주고 일을 그만두게 한다.
밤마다 펼쳐질 그녀와의 멋진 밀애를 상상하고 자신의 욕망이 성취됨을 자축하면서...

자, 이제 사랑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두 사람의 무기를 점검해 보자.
처음에 말한 경우와 비교하면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마티유는 사촌에게 빙긋 웃으며 여유 있게 말한다.
‘결혼은 최후의 무기이니 그것만은 남겨 두겠노라‘고...
하지만 정작 같이 살자고 애걸복걸하는 건 마티유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한번도 그의 무기인 결혼을 원하거나 안 할까 봐 두려워한 적이 없다. 
어차피 서로의 목적이 달랐음이 아니던가.

그는 자신의 무기를 가진 것까진 좋았으나, 그녀의 무기가 무엇인지 뿐 아니라
그녀가 자기 무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했는지 조차 파악하질 못했다.

하지만 콘치타는 애초부터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건 당신을 처리할 무기가 내겐 확실히 있다는 뜻이지만, 불쌍하게도 마티유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데 마티유는 적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녀의 최후의 무기인 정조대는 그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히며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한다.  옷감 한 쪽짜리 정조대는 가난뱅이인 그녀가 부자 나리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셈이다.  실로 대단한 정조대다.  이는 팬티 끈을 부여잡고 승강이를 벌이던 홍상수의 이나 브뉘엘의 다른 작품 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아무리 힘센 무기라도 먹혀들지 않는 상대에겐 쓸모가 없는 법이다.
즉, 그녀의 순결을 그처럼 원하지 않는 상대에겐 전혀 무기가 될 수 없는 것임에도 마티유는 그녀의 순결을 간절히 원한다는 최대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녀의 무기를 더욱 빛나게 하고 말았다. 적에게 약점을 다 드러내 놓고 하는 전투 결과야 뻔하지 않은가.

그녀의 정조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가 그녀의 순결을 원하면 원할수록 그의 처치곤란 한 욕망 덩어리는 더욱더 커져 만 갈 뿐이다. 말하자면 정조대의 힘과 부대자루의 크기가 정비례하며 순결에 대한 욕망이 비대해 질수록 그에 대한 대가도 커지기 마련이니 성의 자본화, 경제학으로 본 매매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영화를 대략 여기까지 보면 이 전쟁은 잡초같이 영악한 콘치타의 승리다.
그러나 가난뱅이 외국인인 콘치타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의 부와 친절과 관심을 나누어줄 부자도 흔치는 않다. 그리고 싫건 좋건 그녀에겐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그것 없이는 제 아무리 콘치타라도 살아가기가 힘들게 뻔하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이건 사랑의 마음이건 심지어 나 갖기는 싫어도 남 주기는 더 싫은 마음에서건, 그녀는 마티유를 떠날 수는 없다.
그래서 애정보다 애증이 더 무서운 것이라던가...
대략 비슷한 종류의 싸움에서는 이런 산식에 의해 일이 진행되어 간다.

어쩌면 돈 밖에 없는 부자 나리가 이것저것 다 재미가 떨어지면 최후에는 결국 자기에게 미지의 세계인 가난뱅이의 순결을 탐내고, 잡초 같은 민중은 욕을 할지언정 재력과 거기서 나오는 친절과 여유를 탐낼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진 자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호한 욕망이나,
유일한 무기를 가지고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것이나 모두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딱 알맞다. 
감독은 이런 두 사람을 등장시켜 인간의 내재된 본성을 탐구한다. 

영화로만 보자면 콘치타의 승리가 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가진 물건이 희소성을 잃을 때, 가장 유력한 구매희망자가 떠났을 때 가진 자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는 것 외에는 손해 볼 일이 없지만 빈자의 경우는 인생의 사활이 살려있을 만큼 위험하기에 결국 흥정하고 부여잡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론’은 먼저 움직이는 자가 진다 고 말했던가.


오늘 날의 세상은 확실히 '적과의 동침'이다.
서로 이를 갈고 질투하면서도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런 식의 욕망의 부딪침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욕망의 줄다리기는 귀엽게 봐주기엔 너무나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아마도 영화가 더 계속된다면 둘 중에 하나가 파멸되기 십상이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지만, 모순 되고 상반된 욕망이나 철저히 도구화 된 욕망, 예의도 모르고 윤리도 없는 욕망은 인간을 파멸시킬 뿐이다. 

이 모든 게 둘 다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 가지 영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루이스 브뉘엘은 욕망이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명의 여배우(안젤리나 몰리나 / 캐롤 부케)를 교차시키면서 욕망이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리고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지만 결국 자신을 지배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하는 마티유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콘치타 역시 이를 이해하고 마티유의 환상과 마음을 곡예질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노감독이 오늘날의 상호 파괴적인 인간의 모습과 세상에 대하여 던진 경고는 깊이 새겨볼 만 하다.  부터 에 이르는 브뉘엘의 필모그래피는 현대성의 찬란함과 고고함의 근저에 놓인 근원적 세계의 구조를 진단한다.
그의 영화의 근원에는 교회의 무능, 파시즘의 공포, 불가해한 성적 욕망이 들끓는다.
인간내면의 잠재된 성적욕망과 암울한 심리를 끊임없이 관찰해온 루이스 브뉘엘은 이 영화에서 현미경을 들이대듯 그 대상을 탐색한다.  브뉘엘이 존경하는 인물로 ‘파브르의 곤충기’의 저자 앙리 파브르를 꼽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적이 되어야 하는 세상은, 욕망만 있을 뿐이고.
진실이 사라진 세상은, 담론만 남아 존재하며.
최소한의 진리가 사라진 세상은, 폭파직전의 위험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분명 모호한 대상인 욕망이 인간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생은 지리멸렬함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거나 펄떡거리는 생명력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노감독은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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