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철길이 있는 강가에서

신용연20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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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철길이 있는 강가에서

 

오늘은 입추, 가을로 들어섰습니다. 덥지만 너무 덥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어코, 기필코, 마침내 가을 속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가을이면서 가을이 아닌, 이 때 쯤에서는 강가에 서 있어 볼 일입니다. 강물에 노을이 빠져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철길이 있어 기차 울음이 강물에 빠지면 더욱 좋겠지요. 제 고향에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넓고 긴 둑길이 있고, 노을이 있고, 철길이 있었습니다. 그 둑길에 서 있으면 세상은 참 평화로웠습니다.

 

강물은 흐르고

노을은 눕고

기차는 달리고

마을은 앉아 있었습니다.

저만 홀로 서 있었습니다.

 

더럽거나 속이 상한 것들은 강물에 버려서 씻기고

그럭저럭 쓸만한 것들은 노을 자락으로 덮고

아련한 것들은 기차에 실어 보내고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황홀하게 몇 번의 해를 어둠에 묻다보면 들녘에 하나 둘 허수아비가 나타났습니다. 허수아비는 새떼를 풀어 가을을 물어오게 했습니다. 가을은 우리가 불러야 비로소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슬슬 가을에 익힐 것들, 노을자락으로 덮을만한 것들을 골라보시지요.

 

〈김택근/시인〉 경향신문 아침글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