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연하장이 확 줄었다. 대신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떠오르는 신년인사 문자메시지에 짜증이 날 정도다. 그 가운데 동년배인 한 중년남자가 보낸 인사말은 희미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새해에는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인사라 애교로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 문자메시지가 품고 있는 세태에 대한 품평이 그럴듯하다. 교육과 처신의 근본이었던 바른생활을 제쳐둬야 할 정도로 먹고사는 일이 위기에 처했다는 뜻인지, 어느 정도 사리사욕에 치중해도 안심할 수 있을 만큼 공동체 윤리가 견고해졌다는 뜻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말, 대학교수 200명에게 2005년의 정치·사회 상황을 빗대는 사자성어를 물어본 결과 ‘상화하택(上火下澤)’을 꼽았다 한다. 주역에 나오는 이 말은 ‘위에 불이 있고 아래에 물 있으니 불과 물처럼 서로 상극하여 이반하고 분열하는 형국’을 말한다.
그에 짝을 맞춰 ‘천지교태(天地交泰)’라는 말이 등장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새해 첫날 올해의 고사성어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천지교태’는 주역의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괘로 ‘상화하택’의 정반대 개념이며 ‘하늘과 땅의 마음이 화합하여 서로 상통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누천년의 역사를 들먹이지만 우리나라는 58년의 역사를 가진 신생국가다. 그동안 수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1인당 국민소득 1만7000달러의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에 살고 있다.
일제 부역자들까지 포용하며 나라를 세웠고 개발독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미군 병참교육을 받은 군 장교출신들의 진두지휘로 괄목상대할 만한 산업국가를 이루어냈으며,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그동안 방치됐던 민주화를 완성했다.
아직 미진한 면은 있지만 한 발의 총성도 없이 대선과 총선을 치르고 여야 정권교체가 민의에 의해 가능하다. 현직 경찰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최고통수권자를 향해 욕설에 가까운 고언을 토해놓거나, 구도자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권력에 저항할 정도라면 민주화 진행속도와 밀도가 지나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러고 보니 이제는 사리사욕을 위해 공리적 긴장을 조금 늦추겠다는 중년남자의 신년 인사말을 이해할 만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그 혼자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 국회 운영위원회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들은 경제발전(84.6%)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는 진보적(23.4%)이라는 응답보다는 보수적(36.7%)이라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왕좌왕’도 ‘상화하택’도 급속한 국가발전에 배행하는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밥을 뜸 들이기 위해서는 아궁이 안에 있는 장작의 위아래를 뒤집어 마지막 화력을 불땀 좋게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불씨와 재가 튀고 매운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나오게 마련이다. 카오스 없는 코스모스가 어디 있겠는가.
‘상화하택’을 ‘천지교태’로 대응하면서 스스로 신명을 북돋우고 흥을 되살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는 한 중년남자의 신년인사가 세태에 대한 푸념이나 체념의 욕설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고자 하는 국민의 여망이 담긴 말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력 : 2006.01.03 18:4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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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신 세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지배해 온 유교적 세계관에서 ‘富’란 흔히 비도덕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많은 고전에서 청련한 선비는 곧 빈곤하며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현대 한국 자본주의에서 자주 문제시되는 부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성,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평등 우선주의의 현실이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압축 경제 성장과 군사독재, 민주화 등의 경험이 한 세대에 집중되면서 그 세대는 과거의 청빈함을 추구한 전통을 잊고 정글과도 같은 ‘천민 자본주의’를 경험했다. 특히 그중에서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은 자본을 일부 재벌과 자본가들에게 집중시키면서 온갖 불합리한 폐단을 낳고,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富란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는 기억을 새겼을 것이다. 그런 불합리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사람들은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과, ‘어쨋든 돈을 버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회적 이슈에는 경제적 논리가 우선하게 되었다. 모든 경제 문제의 온상이고 한국 자본주의의 치부라고 여겼던 재벌들조차 국가 경제의 선봉으로 칭송받는 모습도 보인다. 역시 생존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시작한 노무현 정부도 이런 논리에 밀려 결국 이쪽도 저쪽도 아닌 혼란스럽고 단발적인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는 말을 어떻게 신명을 북돋고 흥을 되살리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사실 매우 슬픈 의미이다. 잘못된 경제 발전의 과정이 덜 착하게, 덜 도덕적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즉 잘못된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체념을 만든 원인이다. 필자는 밀도가 높은 민주화 경험이 이른바 ‘개혁 피로감’을 만들고 그래서 경제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고 보지만, 그런 의견 자체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층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비도덕적으로 돈을 벌어도 용인되는 세상은 바로 천국이다. 최근의 삼성의 편법 증여나 현대자동차의 비자금 사건을 보면 항상 따라다니는 의견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경제 논리를 끼워 넣으니 이런 결론이 나오는 판국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그 중년남자에게 새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양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덜 도덕적’으로 돈을 벌 수록, 사회 정의는 더 문란해지며, 좀 더 ‘덜 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자.
기고] “덜 착하더라도 돈되는 일을…” 중년남자의
기고] “덜 착하더라도 돈되는 일을…”
중년남자의 연하장 속엔 풍자 넘는 국민생각 담겨
▲ 심상대 소설가
올해는 연하장이 확 줄었다. 대신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떠오르는 신년인사 문자메시지에 짜증이 날 정도다. 그 가운데 동년배인 한 중년남자가 보낸 인사말은 희미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새해에는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인사라 애교로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 문자메시지가 품고 있는 세태에 대한 품평이 그럴듯하다. 교육과 처신의 근본이었던 바른생활을 제쳐둬야 할 정도로 먹고사는 일이 위기에 처했다는 뜻인지, 어느 정도 사리사욕에 치중해도 안심할 수 있을 만큼 공동체 윤리가 견고해졌다는 뜻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말, 대학교수 200명에게 2005년의 정치·사회 상황을 빗대는 사자성어를 물어본 결과 ‘상화하택(上火下澤)’을 꼽았다 한다. 주역에 나오는 이 말은 ‘위에 불이 있고 아래에 물 있으니 불과 물처럼 서로 상극하여 이반하고 분열하는 형국’을 말한다.
그에 짝을 맞춰 ‘천지교태(天地交泰)’라는 말이 등장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새해 첫날 올해의 고사성어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천지교태’는 주역의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괘로 ‘상화하택’의 정반대 개념이며 ‘하늘과 땅의 마음이 화합하여 서로 상통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누천년의 역사를 들먹이지만 우리나라는 58년의 역사를 가진 신생국가다. 그동안 수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1인당 국민소득 1만7000달러의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에 살고 있다.
일제 부역자들까지 포용하며 나라를 세웠고 개발독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미군 병참교육을 받은 군 장교출신들의 진두지휘로 괄목상대할 만한 산업국가를 이루어냈으며,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그동안 방치됐던 민주화를 완성했다.
아직 미진한 면은 있지만 한 발의 총성도 없이 대선과 총선을 치르고 여야 정권교체가 민의에 의해 가능하다. 현직 경찰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최고통수권자를 향해 욕설에 가까운 고언을 토해놓거나, 구도자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권력에 저항할 정도라면 민주화 진행속도와 밀도가 지나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러고 보니 이제는 사리사욕을 위해 공리적 긴장을 조금 늦추겠다는 중년남자의 신년 인사말을 이해할 만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그 혼자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 국회 운영위원회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들은 경제발전(84.6%)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는 진보적(23.4%)이라는 응답보다는 보수적(36.7%)이라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왕좌왕’도 ‘상화하택’도 급속한 국가발전에 배행하는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밥을 뜸 들이기 위해서는 아궁이 안에 있는 장작의 위아래를 뒤집어 마지막 화력을 불땀 좋게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불씨와 재가 튀고 매운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나오게 마련이다. 카오스 없는 코스모스가 어디 있겠는가.
‘상화하택’을 ‘천지교태’로 대응하면서 스스로 신명을 북돋우고 흥을 되살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는 한 중년남자의 신년인사가 세태에 대한 푸념이나 체념의 욕설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고자 하는 국민의 여망이 담긴 말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력 : 2006.01.03 18:4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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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신 세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지배해 온 유교적 세계관에서 ‘富’란 흔히 비도덕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많은 고전에서 청련한 선비는 곧 빈곤하며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현대 한국 자본주의에서 자주 문제시되는 부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성,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평등 우선주의의 현실이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압축 경제 성장과 군사독재, 민주화 등의 경험이 한 세대에 집중되면서 그 세대는 과거의 청빈함을 추구한 전통을 잊고 정글과도 같은 ‘천민 자본주의’를 경험했다. 특히 그중에서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은 자본을 일부 재벌과 자본가들에게 집중시키면서 온갖 불합리한 폐단을 낳고,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富란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는 기억을 새겼을 것이다. 그런 불합리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사람들은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과, ‘어쨋든 돈을 버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회적 이슈에는 경제적 논리가 우선하게 되었다. 모든 경제 문제의 온상이고 한국 자본주의의 치부라고 여겼던 재벌들조차 국가 경제의 선봉으로 칭송받는 모습도 보인다. 역시 생존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시작한 노무현 정부도 이런 논리에 밀려 결국 이쪽도 저쪽도 아닌 혼란스럽고 단발적인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는 말을 어떻게 신명을 북돋고 흥을 되살리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사실 매우 슬픈 의미이다. 잘못된 경제 발전의 과정이 덜 착하게, 덜 도덕적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즉 잘못된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체념을 만든 원인이다. 필자는 밀도가 높은 민주화 경험이 이른바 ‘개혁 피로감’을 만들고 그래서 경제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고 보지만, 그런 의견 자체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층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비도덕적으로 돈을 벌어도 용인되는 세상은 바로 천국이다. 최근의 삼성의 편법 증여나 현대자동차의 비자금 사건을 보면 항상 따라다니는 의견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경제 논리를 끼워 넣으니 이런 결론이 나오는 판국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그 중년남자에게 새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양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덜 도덕적’으로 돈을 벌 수록, 사회 정의는 더 문란해지며, 좀 더 ‘덜 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자.
씨발 심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