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생님을 찾습니다. 임인옥 선생님

윤정일2006.10.12
조회71
그리운 선생님을 찾습니다. 임인옥 선생님

[빼다지를 열다]86년 초등 6학년 여름 
"지금쯤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경남도민일보 webmaster@idomin.com>
 
초등학교 6학년 여름, 가슴이 미어지는 날이었다.
7월 무더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의 내지르는 열기에
국화는 행여 목이라도 부러질까봐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는 때였다.
방학이라 해도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야 하니 13살 내인생은 꼬여 있었다.
그걸 잊으려면 뙤약볕에서 열심히 공이라도 차거나
또래 여자 아이들의 고무줄놀이를 방해하는 수밖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혹 운이 좋다면 도시에 나간 부산 누나집에 가거나….그때였다.
"얘들아 모여!" 6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교편을 잡은 선생님의 목소리.
누군들 그녀의 부름에 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악동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얘들아, 선생님이랑 사진을 찍자꾸나."
한 반이라고 해봐야 27명 남짓. 평소에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시던 분이라
우리는 서로 선생님과 서려고 난리벚꽃장을 연출했다.
"자, 반장과 부반장부터 먼저 찍자꾸나."
사진에 보면 선생님 이외에도 다섯 명이 보인다.
무슨 작은 학교에 반장 부반장이 다섯이냐고?
실은 2학기 반장선거를 끝낸 참이었다.
말하자면 대통령선거를 끝낸 시점이니
선생님은 전·현직 대통령을 모아놓고 기념사진을 찍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줄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개인기가 좋아 친구들이 반장 다음으로 추앙하는 존재였다.
아마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20년 전의 추억이 고스란히 자리잡은 이 사진.
하지만 졸업 사진에 그녀는 없다.
선생님은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돼서 전근을 갔다.
그 이유는…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선생님이 떠나고 난 뒤, 나에겐 두 가지 버릇이 생겼다.
3월에도 눈이 녹지 않았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높다고 생각했던 산봉우리를
보며 발뒤꿈치를 드는 버릇이 생겼다.
꿈 속에서 발뒤꿈치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면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다.
밤마다 대청마루에 서서 오줌을 누다가도 멀리 흰 봉우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든다.
그러다보면 요강에 들어가야 할 오줌이 대청마루에 흩날린다.
다음날이면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스무 살. 지리산을 오르면서도
그 봉우리와 선생님은 잊혀졌다.
봉우리 넘어 봉우리, 내가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십여 년이 지나고 어느날. 해외 출장차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히말라야 산맥을 지날쯤 흰 봉우리들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제야 난 신발을 벗고 발뒤꿈치를 치켜들면서 옛 추억을 떠올렸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 수많은 봉우리를 넘어왔지만
아직까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선생님은 어떤 봉우리 뒤에 계실까? (뒷줄 왼쪽이 필자).

/윤정일(33·부산시 해운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