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지전을 각오하고 PSI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거대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 군수산업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네오콘 세력에게나 어울릴법한 이런 발언들을 연일 거침없이 쏟아 내는 그들은 미 국방부가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해 2003년에 작성한 보고서를 보지 못한 듯 하다. 비밀문서로 되어 있는 이 보고서는 13일 호주의 한 신문이 공개하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개전 첫 90일 동안에 5만2천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100만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년 남짓한 전쟁으로 3천여명의 미군 사망자를 낸 이라크 전쟁과 비교한다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한 폭력적 정치 행위인 전쟁은 이렇듯 인간의 생존을 파괴하는 잔혹한 결과를 남길 뿐이다.
2. 핵 시험을 전후한 상황 배경
불신의 축적과 증오의 정치, 갈등의 증폭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를 통해 공표된 북한의 핵시험1)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80년대 중반 프랑스의 상업 위성이 북한 지역에서 포착한 ‘의심스러운 행동’이 현실화 되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탁자에 실제 올라온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번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우려, 전망과 예측이 난무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북미관계는 가속도가 붙은 열차가 하나의 레일에서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2000년 조미공동선언 이후 북미관계 정상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출발한 부시 대통령은 기존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한 북미관계 개선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기본 전제는 Anything But Clinton(ABC)이었던 것이다. 의회에서 다수파였던 공화당은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 예산을 축소하였고, 2001년 9.11 테러 직후 일명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2003년에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단정적 의심을 이유로 이라크에 대한 2차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에는 북한에 대한 아무런 증거 제시 없이 우라늄농축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시인을 종용하였다. 이를 근거로 IAEA 정례 이사회는 북핵 결의문을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북한은 핵 동결 해제 및 NPT 탈퇴 선언으로 맞대응한다. 점증되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직접대화를 통한 양자대화에서 다자 틀로 형식을 변경하며 2003년 8월 1차 6자회담을 시작하였지만 회담은 차수를 변경하며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북한은 미국을 역으로 압박하기 위해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5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를 인출을 완료했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2005년 6월의 정동영 장관 방북에 이어 7월에는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방북으로 6자회담은 재개되었고, 마침내 9월 한반도를 둘러싼 6개국이 합의 서명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조미공동선언에 이어 비핵화와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 골자로 하는 세 번째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강경 네오콘 세력은 이 합의에 불만을 표출하며 핵문제 외에 인권, 마약, 위폐 등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른바 ‘북핵문제에서 북한 문제로의 확대 정책’을 취한 것이다. 제일 먼저 시작된 조치는 BDA 계좌 동결로 시작된 금융제재였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 유통 혐의를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관련 20여개 계좌 총 2400만불에 대해 동결 조치를 취했고, 추가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북한은 이 문제와 관련해 2006년 3월 7일 리근 북한 외무성 국장이 미국에 가서 ‘증거 제시 관련자 처벌, 위폐 감별 기술 지원 및 협조, 미국 내 북한 계좌 개설 요청’등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뚜렷한 증거 제시 없이 ‘북한이 혐의를 인정하고 위폐 제작 인물과 기계를 미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2002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이은 ‘진실게임’이 반복된 것이다. 이후 6월 크리스토퍼 힐의 평양 초청 거부, 6-7월에 연이어 벌어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2) 등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세 차례에 걸쳐 합의된 북미 적대관계 청산 및 근본적인 관계 개선에 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했으며, 7월 5일 다량의 미사일 시험발사 후 UN안보리의 1695호 대북결의안이 통과되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다시 10월 3일 핵 시험 예고 뒤 6일 만인 9일에 공식적인 첫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악의적 무시’와 ‘초강경 선군’의 충돌
북한의 핵 시험 이후에도 미국은 국내외 대북 정책 실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북한과의 직접 대화 요구도 거부한 상태다. UN안보리 1718호3)의 대북결의안으로 국제사회대 북한 구도를 만들고 41조에 기반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 시험과 핵 보유 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이제는 핵 물질의 이전 문제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대북 압박을 본격화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북의 핵 보유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핵 개발 확산을 차단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악의적 무시’ 전략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제국주의에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사생결단의 반제 투쟁정신’을 강조하는 선군정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정전협정(停戰協定)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이라크에 대한 무차별 침공을 지켜보며, 반세기 넘게 초강대국 미국과의 대결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학습한 생존 전략으로 독특한 선군정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3. 북한 핵시험의 다중 포석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북한의 핵 시험에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강력한 UN의 제재 조치와 전방위적 압박 전략을 예상했을 북한은 이 시점에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일까? 다음의 몇 가지 이유들은 북한의 핵시험 강행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첫째 미국과의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북한의 손익계산 속에 이번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북미간 상호 적대 관계 청산과 국교 수립이다. 핵 시험 이전에도 그랬고, 핵 시험 이후에도 외무성 성명, 김영남, 리종혁 등 고위 당국자의 발언 등에서 초지일관하게 주장했다. 핵포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 개혁을 통해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등장하길 원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에 대해 ‘악의적 무시’와 ‘선제공격’, ‘정권 교체’ 등을 추구하고 있다고 최종 판단한 북한은 미국의 정책변경을 압박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 조치로 이번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2000년의 조미공동선언은 북한이 이번 핵 시험을 선택하는 데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둘째 핵 포기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핵보유를 통한 물리적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은 궁극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핵을 가진 국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불가능하다는 국제사회의 경험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과거 혈맹국가들과의 관계 변화와 균열, 이라크 전쟁 등을 보며 자위적 수단의 최종 목표를 핵 보유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핵이 주는 억지력은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위협’ 능력에 있다. 북한은 그 ‘위협’ 능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단계적으로 보여 주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편과 전략적 유연성, 한반도 주변에서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 작전계획 5027-30의 수정 보완 등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북한 당국이 버릴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선택은 향후 북핵 포기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핵 군축을 위한 회담4)으로서 ‘틀’ 변경을 시사한다.
셋째 북한 당국은 핵 시험을 통한 핵무기 보유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고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북한 당국은 98년 광명성 발사 이후 소원했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 또한 2000년 조미공동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또한 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재는 해제되었고 국제사회는 두 국가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아졌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시위는 국력의 또 다른 표현이 되는 현실 속에서 북한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넷째 핵시험 발표 후 조선중앙통신사는 보도를 통해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도 발표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북한은 인민들의 단결과 결속이 핵심적인 과제로 나섰고, ‘선군정치’의 유용성을 선전하는 좋은 정치적 기재가 핵시험의 성공 소식이었을 것이다.
4. 미국의 반격과 한국 정부의 대응
악의적 무시에서 강력한 제재로
북한의 핵 시험 실시 이후 미국과 일본은 바쁘게 움직였다. 핵 시험 실시 직후 독자적인 제재안을 UN안보리에 제출했던 미국과 일본은 각자가 낸 안을 병합하여 6일 만에 UN안보리 대북 결의안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초안에 비해 수위가 조절되긴 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각 국은 결의안 이행 상황에 대해 안보리 산하 제재위원회에 보고의 의무가 주어졌다. 결의안 통과 직후 박길연 주유엔북한대표부 대사는 "우리는 이번 결의안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서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면 북한은 이를 전쟁선포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17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결의안 통과 후 한, 중, 일 순회 방문을 하면서 “이들 지역 나라들은 미국과 전략적 동맹관계의 혜택(benefits)을 누리는 동시에 그에 따른 "부담(burden)"도 같이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전면적인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PSI5) 참여를 적극 주문하였다. 온건파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힐도 북한을 강하게 비난하며 전 세계의 단일한 대응을 주문하면서 한국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라이스 장관의 동북아 순방 이후 UN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하기 위한 대북 제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며, 여기에는 PSI를 통한 선박검색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대북제재로 북한을 고립, 압박하여 북한 당국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 북한의 대응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제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두 나라를 압박하고 있으나, 한국과 중국 정부는 제재를 위한 제재에 반대하며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선별적 제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정쩡한 한국 정부의 선택은?
북핵 시험 실시 이후 대통령의 포용정책 재검토 시사 발언이 나온 직후 열린우리당은 신중론의 우세 속에 재검토론이 동시에 나오고, 원래부터 반대를 해왔던 한나라당은 즉각 폐기를 재촉하고, 햇볕정책의 적자인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관리 실패론을, 민주노동당은 정책노선 전환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격렬히 논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통일부 이종석 장관은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나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포용정책 폐기론의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남북관계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유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은 운용 규정 변경과 교역 물품에 대한 세관 검색 강화 등을 통해 UN대북 결의안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밝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금강산 관광 지원금 중단, PSI의 부분 참여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 ‘조율된 조치’로서 이번 사건에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던 참여정부의 모습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적 평가
참여정부는 출범하면서 햇볕정책을 확대, 발전시키는 평화번영정책을 제시하고, 북핵 해결의 3원칙으로 ‘한반도의 비핵화, 북핵의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평화체제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평화번영과 자주 지향적인 외교정책의 총론적 문제의식은 옳았지만 각론과 접근 방법에 대한 심각한 오류로 인해 남북관계가 중단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은 다음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의 철학과 전략의 부재로 인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제약하였다. 정부가 이야기 하는 북핵 해결의 3원칙이 가능한 전제 조건은 남북 관계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남북 사이에 대화와 협상을 위한 채널이 가동되고, 남북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주변 국가들도 한국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는 법이다. 또한 정부가 밝힌 것처럼 북핵 문제의 해결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남북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남북관계를 급랭시키고, 남북 사이에 존재하던 채널들을 단절하면서 스스로 외교적 지렛대를 포기하였다. 북한은 참여 정부 출범 직후, 비밀리에 특사 교환을 제의하였으나, ‘대북 특검법 수용’으로 대응하였고, 남북 관계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핫라인은 가동이 중단되었다.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의 해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와 2004년 탈북자 대량 입국, 김일성 주석 조문 불허 등을 거치며 남북관계는 불신의 늪에 빠져버렸다. 2005년 6.17 김정일-정동명 만남 이후 9.19 공동성명이 완성되고 남북관계는 민간교류의 활성화와 당국 교류의 재개 등으로 잠시 활력 있게 움직이는 듯 했으나, 대북금융제재 이후 미국의 적대 정책이 심화되면서 남북관계 또한 일정하게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결국 북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전후로 당국 교류가 전면 중단되게 이르렀다..
둘째 경제지원 만능주의로 인한 기능적 접근으로 정경분리 원칙의 훼손하였다. 정부는 햇볕정책을 계승해 남북관계의 정경분리 원칙을 지키겠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주의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정치·군사적 사안들과 연계시키면서 정경분리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철도·도로연결을 위한 군사적 안전보장 조치를 해주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겠다거나, 미사일을 쏘면 쌀·비료 제공이 없다는 등의 사례들은 대표적인 예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상호주의의 변형인 '신(新) 상호주의'라 명명한다. 이런 식의 정책에는 '북한은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무모한 자신감은 북이 남북간의 문제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미사일 발사 같은 사안에서도 '경협을 지렛대로 걸면 된다.'는 안이한 정책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미국 눈치 보기’식의 대북정책은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가 되었다. ‘긴밀한 한미공조를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은 외통부와 정부 당국의 단골 브리핑 내용이다. 이러한 외교 기조는 사실상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북한 및 주변국에게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하면서,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과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2003년 말 결정된 이라크 파병과 1년 후의 파병연장, 전략적 유연성, PSI에 대한 참관,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한미 FTA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책들을 미국의 입장이 유리한 상황에서 합의하거나 협상중이다. 노무현 정부는 다른 것을 다 내주더라도 ‘북한’ 관련 문제만큼은 미국이 양보해 주기를 원했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전혀 없는 무력한 한국 외교의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넷째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보수적인 여론에 극도로 민감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의 미사일 발사 논란이 있던 시점에 이종석 장관은 한나라당과의 면담에서 “미사일을 시험발사 하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미리 선언해 버렸다. 또한 미사일 발사 직후 장관급 회담의 의제는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 문제만 논의하겠다고 한정해 버렸다. 물론 장관급회담이라도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를 논의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만' 하겠다는 경직된 태도였는데, 보수적인 여론을 의식한 행보였던 것이다. 즉 ‘미사일과 6자회담만 얘기하겠다.’는 선언은 북쪽이 아닌 남쪽에 대한 발언이다. 회담 중 “선군” 발언에 대한 북측 당국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남북 당국, 민간 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회담 대변인이 특화시켜 브리핑을 한 것은 회담결렬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 향후 전망과 과제
불안한 전망과 추가적인 조치
현재 관련 당사국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시험의 성공 여부, 추가 핵시험 실시 가능성, 한국정부의 PSI 참여 문제, 대북 제재의 실효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인가? 그리고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지수를 높이기 위해 관련국들과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현재 북핵 시험의 성공 여부에 대해 미국과 일본, 우리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국방정보국은 16일 핵시험 사실을 공표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북 제재의 수위가 조절되지 않고, 전면적인 선박 검색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조치에는 2차 핵시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국가준전시체제 선포, 정전 협정 무효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PSI와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면 참여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참관 수준보다 한 단계 진전시키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해를 통과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 남북해운합의서에 근거한 엄격한 선박 검색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요구하는 전면적인 PSI 참여는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은 큰 틀에서 계속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되 운용 방법을 개선하고, 추가적인 경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보류하고 민간교류를 분리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상황 유지 수준에서 관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측면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명시하며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군사위원회는 이와 같은 내용을 합의하였으며, 20일 예정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핵우산 정책의 지속’, '북핵문제 등 한반도안보상황 평가 및 연합방위태세', '한미동맹 미래비전 연구보고',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및 연합지휘체계',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간의 현안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분주한 중국과 러시아
북핵 시험 실시 이후 통과된 UN안보리 대북결의안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대화를 강조한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안 통과를 전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14일 북한에 이어 15일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화 메신저를 자임하고 나섰고, 중국은 탕자쉬안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미국과 러시아의 방문에 이어 19일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전격 회동하였다. 탕 특사의 방북에는 다이빙궈 외교부 상무 부부장과 6자 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부부장이 총출동하였다. 이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북핵 공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방북 직전 미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한국 정부도 중국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발동해 본다면 대화 재개를 위해 중국 측이 ‘모종의 제안’을 미국에 하였고, 북한에 이것을 설명한 후, 다시 미국 측에 전달하는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전망을 할 수 있다. 중국 측이 제안한 ‘모종의 제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미국은 금융제재 조사에 대한 일시 중지나 일부 자금 해제, 그리고 중국이 참여하는 북미중 3자 대화 개최 등의 내용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이 거부한다면 북한의 추가적인 대응은 즉각적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UN안보리 결의안을 존중하되 형식적인 제재로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며,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의 전면적 대북제재는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분풀이 경제제재’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상황을 열어줄 돌파구는?
실제 PSI를 통해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정선, 검문, 검색이 일어난다면 북한의 물리적 대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당분간 미국은 북한에 대화 제의하지 않을 것이 명확하나, 뉴욕타임스, FT, 가디언, 르몽드 등 언론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11월 7일 미국 중간선거에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공화당이 대외 정책의 실패를 이유로 패배한다면, 냉각기를 가진 후 상황 변화에 따라 물밑 흐름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마주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양 기관차의 기관사가 서로 대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2007 국방예산법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대북정책조정관에게는 의회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대북 정책의 검토와 북한 협상의 지휘권 등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으며, 예산안 통과 이후 60일 이내에 임명하게 되어 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미 양국에 전달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앞에서 예측한 수준이었다면 2006년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은 추가 조치 중단과 금융제재 일시 해제 등으로 상호 대화의사를 표명하고 중국이 중재하는 대화에 참가한다.
그리고 미국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신뢰할만한 인물 중 북미 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같은 인물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여 제2의 지미카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고 동시행동의 원칙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참여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연일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DJ의 방북을 추진하고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노력하는 모습을 남북이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한편 제한적인 역할이지만 북핵 시험 이후 정치인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하는 민주노동당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단 1%의 전쟁 가능성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는 7천만 민족의 단일한 ‘반전평화’ 열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2006년 10월 20일 작성)
증오의 정치. 북미핵공방의 끝은? [현대사연구소 발표문]
아래 글은 10월 20일 경인문화사에서 열린 (사)현대사연구소 발표회 발제문입니다.
북미핵공방과 향후 전망에 대한 분석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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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전쟁의 잔혹성, 그 참혹함의 실제.
“국지전을 각오하고 PSI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거대 야당의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 군수산업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네오콘 세력에게나 어울릴법한 이런 발언들을 연일 거침없이 쏟아 내는 그들은 미 국방부가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해 2003년에 작성한 보고서를 보지 못한 듯 하다. 비밀문서로 되어 있는 이 보고서는 13일 호주의 한 신문이 공개하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개전 첫 90일 동안에 5만2천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100만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년 남짓한 전쟁으로 3천여명의 미군 사망자를 낸 이라크 전쟁과 비교한다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한 폭력적 정치 행위인 전쟁은 이렇듯 인간의 생존을 파괴하는 잔혹한 결과를 남길 뿐이다.
2. 핵 시험을 전후한 상황 배경
불신의 축적과 증오의 정치, 갈등의 증폭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를 통해 공표된 북한의 핵시험1)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80년대 중반 프랑스의 상업 위성이 북한 지역에서 포착한 ‘의심스러운 행동’이 현실화 되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탁자에 실제 올라온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번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우려, 전망과 예측이 난무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북미관계는 가속도가 붙은 열차가 하나의 레일에서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2000년 조미공동선언 이후 북미관계 정상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출발한 부시 대통령은 기존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한 북미관계 개선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기본 전제는 Anything But Clinton(ABC)이었던 것이다. 의회에서 다수파였던 공화당은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 예산을 축소하였고, 2001년 9.11 테러 직후 일명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2003년에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단정적 의심을 이유로 이라크에 대한 2차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에는 북한에 대한 아무런 증거 제시 없이 우라늄농축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시인을 종용하였다. 이를 근거로 IAEA 정례 이사회는 북핵 결의문을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북한은 핵 동결 해제 및 NPT 탈퇴 선언으로 맞대응한다. 점증되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직접대화를 통한 양자대화에서 다자 틀로 형식을 변경하며 2003년 8월 1차 6자회담을 시작하였지만 회담은 차수를 변경하며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북한은 미국을 역으로 압박하기 위해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5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를 인출을 완료했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2005년 6월의 정동영 장관 방북에 이어 7월에는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방북으로 6자회담은 재개되었고, 마침내 9월 한반도를 둘러싼 6개국이 합의 서명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조미공동선언에 이어 비핵화와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 골자로 하는 세 번째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강경 네오콘 세력은 이 합의에 불만을 표출하며 핵문제 외에 인권, 마약, 위폐 등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른바 ‘북핵문제에서 북한 문제로의 확대 정책’을 취한 것이다. 제일 먼저 시작된 조치는 BDA 계좌 동결로 시작된 금융제재였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 유통 혐의를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관련 20여개 계좌 총 2400만불에 대해 동결 조치를 취했고, 추가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북한은 이 문제와 관련해 2006년 3월 7일 리근 북한 외무성 국장이 미국에 가서 ‘증거 제시 관련자 처벌, 위폐 감별 기술 지원 및 협조, 미국 내 북한 계좌 개설 요청’등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뚜렷한 증거 제시 없이 ‘북한이 혐의를 인정하고 위폐 제작 인물과 기계를 미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2002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이은 ‘진실게임’이 반복된 것이다. 이후 6월 크리스토퍼 힐의 평양 초청 거부, 6-7월에 연이어 벌어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2) 등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세 차례에 걸쳐 합의된 북미 적대관계 청산 및 근본적인 관계 개선에 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했으며, 7월 5일 다량의 미사일 시험발사 후 UN안보리의 1695호 대북결의안이 통과되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다시 10월 3일 핵 시험 예고 뒤 6일 만인 9일에 공식적인 첫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악의적 무시’와 ‘초강경 선군’의 충돌
북한의 핵 시험 이후에도 미국은 국내외 대북 정책 실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북한과의 직접 대화 요구도 거부한 상태다. UN안보리 1718호3)의 대북결의안으로 국제사회대 북한 구도를 만들고 41조에 기반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 시험과 핵 보유 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이제는 핵 물질의 이전 문제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대북 압박을 본격화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북의 핵 보유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핵 개발 확산을 차단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악의적 무시’ 전략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제국주의에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사생결단의 반제 투쟁정신’을 강조하는 선군정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정전협정(停戰協定)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이라크에 대한 무차별 침공을 지켜보며, 반세기 넘게 초강대국 미국과의 대결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학습한 생존 전략으로 독특한 선군정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3. 북한 핵시험의 다중 포석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북한의 핵 시험에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강력한 UN의 제재 조치와 전방위적 압박 전략을 예상했을 북한은 이 시점에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일까? 다음의 몇 가지 이유들은 북한의 핵시험 강행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첫째 미국과의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북한의 손익계산 속에 이번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북미간 상호 적대 관계 청산과 국교 수립이다. 핵 시험 이전에도 그랬고, 핵 시험 이후에도 외무성 성명, 김영남, 리종혁 등 고위 당국자의 발언 등에서 초지일관하게 주장했다. 핵포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루어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 개혁을 통해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등장하길 원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에 대해 ‘악의적 무시’와 ‘선제공격’, ‘정권 교체’ 등을 추구하고 있다고 최종 판단한 북한은 미국의 정책변경을 압박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 조치로 이번 핵 시험을 실시하였다.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2000년의 조미공동선언은 북한이 이번 핵 시험을 선택하는 데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둘째 핵 포기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핵보유를 통한 물리적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은 궁극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핵을 가진 국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불가능하다는 국제사회의 경험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과거 혈맹국가들과의 관계 변화와 균열, 이라크 전쟁 등을 보며 자위적 수단의 최종 목표를 핵 보유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핵이 주는 억지력은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위협’ 능력에 있다. 북한은 그 ‘위협’ 능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단계적으로 보여 주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편과 전략적 유연성, 한반도 주변에서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 작전계획 5027-30의 수정 보완 등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북한 당국이 버릴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선택은 향후 북핵 포기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핵 군축을 위한 회담4)으로서 ‘틀’ 변경을 시사한다.
셋째 북한 당국은 핵 시험을 통한 핵무기 보유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고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북한 당국은 98년 광명성 발사 이후 소원했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 또한 2000년 조미공동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또한 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한 이후 미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재는 해제되었고 국제사회는 두 국가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아졌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시위는 국력의 또 다른 표현이 되는 현실 속에서 북한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넷째 핵시험 발표 후 조선중앙통신사는 보도를 통해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도 발표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북한은 인민들의 단결과 결속이 핵심적인 과제로 나섰고, ‘선군정치’의 유용성을 선전하는 좋은 정치적 기재가 핵시험의 성공 소식이었을 것이다.
4. 미국의 반격과 한국 정부의 대응
악의적 무시에서 강력한 제재로
북한의 핵 시험 실시 이후 미국과 일본은 바쁘게 움직였다. 핵 시험 실시 직후 독자적인 제재안을 UN안보리에 제출했던 미국과 일본은 각자가 낸 안을 병합하여 6일 만에 UN안보리 대북 결의안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초안에 비해 수위가 조절되긴 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각 국은 결의안 이행 상황에 대해 안보리 산하 제재위원회에 보고의 의무가 주어졌다. 결의안 통과 직후 박길연 주유엔북한대표부 대사는 "우리는 이번 결의안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서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면 북한은 이를 전쟁선포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17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결의안 통과 후 한, 중, 일 순회 방문을 하면서 “이들 지역 나라들은 미국과 전략적 동맹관계의 혜택(benefits)을 누리는 동시에 그에 따른 "부담(burden)"도 같이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전면적인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PSI5) 참여를 적극 주문하였다. 온건파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힐도 북한을 강하게 비난하며 전 세계의 단일한 대응을 주문하면서 한국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라이스 장관의 동북아 순방 이후 UN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하기 위한 대북 제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며, 여기에는 PSI를 통한 선박검색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대북제재로 북한을 고립, 압박하여 북한 당국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 북한의 대응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제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두 나라를 압박하고 있으나, 한국과 중국 정부는 제재를 위한 제재에 반대하며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선별적 제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정쩡한 한국 정부의 선택은?
북핵 시험 실시 이후 대통령의 포용정책 재검토 시사 발언이 나온 직후 열린우리당은 신중론의 우세 속에 재검토론이 동시에 나오고, 원래부터 반대를 해왔던 한나라당은 즉각 폐기를 재촉하고, 햇볕정책의 적자인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관리 실패론을, 민주노동당은 정책노선 전환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격렬히 논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통일부 이종석 장관은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나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포용정책 폐기론의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남북관계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유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은 운용 규정 변경과 교역 물품에 대한 세관 검색 강화 등을 통해 UN대북 결의안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밝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금강산 관광 지원금 중단, PSI의 부분 참여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 ‘조율된 조치’로서 이번 사건에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던 참여정부의 모습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적 평가
참여정부는 출범하면서 햇볕정책을 확대, 발전시키는 평화번영정책을 제시하고, 북핵 해결의 3원칙으로 ‘한반도의 비핵화, 북핵의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평화체제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평화번영과 자주 지향적인 외교정책의 총론적 문제의식은 옳았지만 각론과 접근 방법에 대한 심각한 오류로 인해 남북관계가 중단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은 다음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의 철학과 전략의 부재로 인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제약하였다. 정부가 이야기 하는 북핵 해결의 3원칙이 가능한 전제 조건은 남북 관계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남북 사이에 대화와 협상을 위한 채널이 가동되고, 남북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주변 국가들도 한국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는 법이다. 또한 정부가 밝힌 것처럼 북핵 문제의 해결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남북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남북관계를 급랭시키고, 남북 사이에 존재하던 채널들을 단절하면서 스스로 외교적 지렛대를 포기하였다. 북한은 참여 정부 출범 직후, 비밀리에 특사 교환을 제의하였으나, ‘대북 특검법 수용’으로 대응하였고, 남북 관계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핫라인은 가동이 중단되었다.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의 해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노무현 정부의 태도와 2004년 탈북자 대량 입국, 김일성 주석 조문 불허 등을 거치며 남북관계는 불신의 늪에 빠져버렸다. 2005년 6.17 김정일-정동명 만남 이후 9.19 공동성명이 완성되고 남북관계는 민간교류의 활성화와 당국 교류의 재개 등으로 잠시 활력 있게 움직이는 듯 했으나, 대북금융제재 이후 미국의 적대 정책이 심화되면서 남북관계 또한 일정하게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결국 북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전후로 당국 교류가 전면 중단되게 이르렀다..
둘째 경제지원 만능주의로 인한 기능적 접근으로 정경분리 원칙의 훼손하였다. 정부는 햇볕정책을 계승해 남북관계의 정경분리 원칙을 지키겠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주의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정치·군사적 사안들과 연계시키면서 정경분리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철도·도로연결을 위한 군사적 안전보장 조치를 해주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겠다거나, 미사일을 쏘면 쌀·비료 제공이 없다는 등의 사례들은 대표적인 예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상호주의의 변형인 '신(新) 상호주의'라 명명한다. 이런 식의 정책에는 '북한은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무모한 자신감은 북이 남북간의 문제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미사일 발사 같은 사안에서도 '경협을 지렛대로 걸면 된다.'는 안이한 정책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미국 눈치 보기’식의 대북정책은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가 되었다. ‘긴밀한 한미공조를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은 외통부와 정부 당국의 단골 브리핑 내용이다. 이러한 외교 기조는 사실상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북한 및 주변국에게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하면서,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과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2003년 말 결정된 이라크 파병과 1년 후의 파병연장, 전략적 유연성, PSI에 대한 참관,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한미 FTA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책들을 미국의 입장이 유리한 상황에서 합의하거나 협상중이다. 노무현 정부는 다른 것을 다 내주더라도 ‘북한’ 관련 문제만큼은 미국이 양보해 주기를 원했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전혀 없는 무력한 한국 외교의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넷째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보수적인 여론에 극도로 민감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의 미사일 발사 논란이 있던 시점에 이종석 장관은 한나라당과의 면담에서 “미사일을 시험발사 하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미리 선언해 버렸다. 또한 미사일 발사 직후 장관급 회담의 의제는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 문제만 논의하겠다고 한정해 버렸다. 물론 장관급회담이라도 미사일과 6자회담 복귀를 논의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만' 하겠다는 경직된 태도였는데, 보수적인 여론을 의식한 행보였던 것이다. 즉 ‘미사일과 6자회담만 얘기하겠다.’는 선언은 북쪽이 아닌 남쪽에 대한 발언이다. 회담 중 “선군” 발언에 대한 북측 당국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남북 당국, 민간 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회담 대변인이 특화시켜 브리핑을 한 것은 회담결렬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 향후 전망과 과제
불안한 전망과 추가적인 조치
현재 관련 당사국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시험의 성공 여부, 추가 핵시험 실시 가능성, 한국정부의 PSI 참여 문제, 대북 제재의 실효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인가? 그리고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지수를 높이기 위해 관련국들과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현재 북핵 시험의 성공 여부에 대해 미국과 일본, 우리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국방정보국은 16일 핵시험 사실을 공표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북 제재의 수위가 조절되지 않고, 전면적인 선박 검색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조치에는 2차 핵시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국가준전시체제 선포, 정전 협정 무효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PSI와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면 참여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참관 수준보다 한 단계 진전시키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해를 통과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 남북해운합의서에 근거한 엄격한 선박 검색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요구하는 전면적인 PSI 참여는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은 큰 틀에서 계속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되 운용 방법을 개선하고, 추가적인 경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보류하고 민간교류를 분리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상황 유지 수준에서 관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측면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명시하며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군사위원회는 이와 같은 내용을 합의하였으며, 20일 예정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핵우산 정책의 지속’, '북핵문제 등 한반도안보상황 평가 및 연합방위태세', '한미동맹 미래비전 연구보고',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및 연합지휘체계',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간의 현안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분주한 중국과 러시아
북핵 시험 실시 이후 통과된 UN안보리 대북결의안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대화를 강조한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안 통과를 전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14일 북한에 이어 15일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화 메신저를 자임하고 나섰고, 중국은 탕자쉬안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미국과 러시아의 방문에 이어 19일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전격 회동하였다. 탕 특사의 방북에는 다이빙궈 외교부 상무 부부장과 6자 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부부장이 총출동하였다. 이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북핵 공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방북 직전 미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한국 정부도 중국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발동해 본다면 대화 재개를 위해 중국 측이 ‘모종의 제안’을 미국에 하였고, 북한에 이것을 설명한 후, 다시 미국 측에 전달하는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전망을 할 수 있다. 중국 측이 제안한 ‘모종의 제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미국은 금융제재 조사에 대한 일시 중지나 일부 자금 해제, 그리고 중국이 참여하는 북미중 3자 대화 개최 등의 내용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이 거부한다면 북한의 추가적인 대응은 즉각적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UN안보리 결의안을 존중하되 형식적인 제재로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며,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의 전면적 대북제재는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분풀이 경제제재’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상황을 열어줄 돌파구는?
실제 PSI를 통해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정선, 검문, 검색이 일어난다면 북한의 물리적 대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당분간 미국은 북한에 대화 제의하지 않을 것이 명확하나, 뉴욕타임스, FT, 가디언, 르몽드 등 언론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11월 7일 미국 중간선거에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공화당이 대외 정책의 실패를 이유로 패배한다면, 냉각기를 가진 후 상황 변화에 따라 물밑 흐름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마주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양 기관차의 기관사가 서로 대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2007 국방예산법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대북정책조정관에게는 의회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대북 정책의 검토와 북한 협상의 지휘권 등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으며, 예산안 통과 이후 60일 이내에 임명하게 되어 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미 양국에 전달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앞에서 예측한 수준이었다면 2006년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은 추가 조치 중단과 금융제재 일시 해제 등으로 상호 대화의사를 표명하고 중국이 중재하는 대화에 참가한다.
그리고 미국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신뢰할만한 인물 중 북미 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같은 인물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여 제2의 지미카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고 동시행동의 원칙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참여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연일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DJ의 방북을 추진하고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노력하는 모습을 남북이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한편 제한적인 역할이지만 북핵 시험 이후 정치인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하는 민주노동당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단 1%의 전쟁 가능성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는 7천만 민족의 단일한 ‘반전평화’ 열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2006년 10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