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민장(國民葬)은 1949년 7월 5일 백범 김구 선생 장례식이었다. 운구행렬이 오전 10시 백범이 살던 경교장(京橋莊), 지금 강북삼성병원 자리를 떠나 영결식장인 서울운동장을 거쳐 장지(葬地) 효창공원에 도착한 게 저녁 8시였다.
애도 인파가 1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일보 7월 6일자는 ‘하관식 끝난 효창공원 여기저기엔 님과의 마지막 작별을 아껴함인지 집에 돌아갈 줄 모르는 이들의 한숨과 함께 밤은 깊어갔다’고 적고 있다.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숨진 뒤 장례식 절차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백범 진영에선 민족장을, 이승만 정부에선 국장(國葬)을 들고 나왔다.
임시정부 내무·재무부장을 지낸 조완구 선생은 “자기들이 죽여놓고 무슨 국장이냐”고 호통을 쳤다.
겨우 타협을 본 게 ‘국민장’이라는 이름이었다. 장례위원장은 3·1운동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이 맡았다.
지금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국장을 치를지 국민장을 치를지를 국무회의가 심의해 대통령이 정하도록 돼 있다. 정부수립 후 국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9일장이 유일했다.
국장 당일 관공서는 휴무하고 장례기간에 줄곧 조기(弔旗)를 내건다.
국민장은 장례날만 조기를 게양한다. 국민장은 신익희, 조병옥, 장면, 육영수, 그리고 아웅산사태 희생자까지 12차례 있었다.
1974년 육 여사 국민장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소복의 여인에서 검은 리본을 단 신사, 삼베 띠를 두른 시골노인에 이르기까지 중앙청~동작동국립묘지 연도를 메운 인파는 가로등에 설치된 100여 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영결식 중계에 귀를 기울였다.”
장례에 앞서 청와대 빈소에서 일반인 문상도 받았는데 사흘간 3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이 오늘 열린다. 27년 전 자신을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뜨렸던 바로 그날 10월 26일에 영면(永眠)한다.
고인은 발인제(서울대병원), 영결식(경복궁 뜰)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모셔진다. 생시에 극진히 생각했던 부인 홍기 여사(2004년 별세)도 원주에서 이장(移葬)돼 합장된다.
그런데 국민장 주무부서인 행자부가 국민에게 국민장을 알리는 공고문을 신문에 내면서 대다수 독자가 보는 조선·동아·중앙일보만 빼놓았다고 한다.
성품이 무던했던 고인도 지하에서 그 얘기를 들으면 ‘참 잘게도 구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찰 법하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
**** 이 정부가 참 쪼잔하게도 군다...갋고 또 갋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면서....
마치 세살 먹은 어린애 같구나....그러니 쳐주지를 않지.. 참패할 밖에...*****
‘植物 정당’이 돼버린 열린우리당(닫친너희당)
열린우리당은 25일 국회의원 補闕보궐선거 두 곳에서 모두 졌고 시장·군수 재·보선 네 곳 모두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못했다.
선거 패배보다 심각한 것은 일부 지역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집권당의 간판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로써 지방선거까지 합친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성적표는 ‘0대31’에서 ‘0대40’으로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이 시장·군수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에는 전남 두 곳이 포함돼 있다.
大選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몰표가 나왔던 곳이다. 열린우리당은 ‘100년 정당’ 구호를 내건 지 3년 만에 그런 곳에도 후보조차 내지 못할 정도가 돼 버린 것이다.
한나라당까지도 이 지역에 모두 후보를 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모습은 침몰하는 배의 갑판 풍경과 비슷했다.
아무리 정신 나간 정당도 선거기간에만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 뜻을 받들어 모시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기본 生理생리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정반대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지도부는 선거운동까지 접고 개성공단으로 달려가 춤을 췄고, 70여 소속 의원들은 금강산관광 守護隊수호대를 자임하고 나섰다.
심지어 선거기간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어도 금강산에서 인질로 잡히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금강산 관광을 다녀 왔다는 정신이 이상한 듯한 의원까지 나타났다.
그와 같이 갔던 다른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금강산에서 만난 북측 인사들은 ‘핵실험은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고 말했다”며 ‘북한 대변인’을 자처했다.
선거 승리를 아예 포기했기 때문에 이럴 수 있는 것이다.
배를 수선하고 바로 세워 계속 타고 갈 생각보다 배가 침몰한 후 뜻 맞는 사람끼리 구명보트에 올라탈 계산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그 흔한 引責論인책론조차 나오기 힘든 분위기다.
패배의 아픔을 느낄 신경도 마비돼 버렸고 사실 뾰족한 代案대안도 없다.
식물정당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픔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번민이나 고뇌도 없다.
이제 집권세력 本隊본대는 해체되고 특정 이념 동아리들만 남아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무슨 殘黨잔당 비슷한 분위기다.
뉴스엮인 글 ; 이 나라를 걱정하며...
국민장(國民葬)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숨진 뒤 장례식 절차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백범 진영에선 민족장을, 이승만 정부에선 국장(國葬)을 들고 나왔다.
임시정부 내무·재무부장을 지낸 조완구 선생은 “자기들이 죽여놓고 무슨 국장이냐”고 호통을 쳤다.
겨우 타협을 본 게 ‘국민장’이라는 이름이었다. 장례위원장은 3·1운동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이 맡았다.
지금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국장을 치를지 국민장을 치를지를 국무회의가 심의해 대통령이 정하도록 돼 있다. 정부수립 후 국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9일장이 유일했다.
국장 당일 관공서는 휴무하고 장례기간에 줄곧 조기(弔旗)를 내건다.
국민장은 장례날만 조기를 게양한다. 국민장은 신익희, 조병옥, 장면, 육영수, 그리고 아웅산사태 희생자까지 12차례 있었다.
1974년 육 여사 국민장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소복의 여인에서 검은 리본을 단 신사, 삼베 띠를 두른 시골노인에 이르기까지 중앙청~동작동국립묘지 연도를 메운 인파는 가로등에 설치된 100여 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영결식 중계에 귀를 기울였다.”
장례에 앞서 청와대 빈소에서 일반인 문상도 받았는데 사흘간 3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이 오늘 열린다. 27년 전 자신을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뜨렸던 바로 그날 10월 26일에 영면(永眠)한다.
고인은 발인제(서울대병원), 영결식(경복궁 뜰)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모셔진다. 생시에 극진히 생각했던 부인 홍기 여사(2004년 별세)도 원주에서 이장(移葬)돼 합장된다.
그런데 국민장 주무부서인 행자부가 국민에게 국민장을 알리는 공고문을 신문에 내면서 대다수 독자가 보는 조선·동아·중앙일보만 빼놓았다고 한다.
성품이 무던했던 고인도 지하에서 그 얘기를 들으면 ‘참 잘게도 구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찰 법하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 **** 이 정부가 참 쪼잔하게도 군다...갋고 또 갋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면서.... 마치 세살 먹은 어린애 같구나....그러니 쳐주지를 않지.. 참패할 밖에...*****‘植物 정당’이 돼버린 열린우리당(닫친너희당)
열린우리당은 25일 국회의원 補闕보궐선거 두 곳에서 모두 졌고 시장·군수 재·보선 네 곳 모두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못했다. 선거 패배보다 심각한 것은 일부 지역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집권당의 간판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로써 지방선거까지 합친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성적표는 ‘0대31’에서 ‘0대40’으로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이 시장·군수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에는 전남 두 곳이 포함돼 있다.
大選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몰표가 나왔던 곳이다. 열린우리당은 ‘100년 정당’ 구호를 내건 지 3년 만에 그런 곳에도 후보조차 내지 못할 정도가 돼 버린 것이다.
한나라당까지도 이 지역에 모두 후보를 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모습은 침몰하는 배의 갑판 풍경과 비슷했다.
아무리 정신 나간 정당도 선거기간에만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 뜻을 받들어 모시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기본 生理생리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정반대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지도부는 선거운동까지 접고 개성공단으로 달려가 춤을 췄고, 70여 소속 의원들은 금강산관광 守護隊수호대를 자임하고 나섰다.
심지어 선거기간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어도 금강산에서 인질로 잡히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금강산 관광을 다녀 왔다는 정신이 이상한 듯한 의원까지 나타났다.
그와 같이 갔던 다른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금강산에서 만난 북측 인사들은 ‘핵실험은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고 말했다”며 ‘북한 대변인’을 자처했다.
선거 승리를 아예 포기했기 때문에 이럴 수 있는 것이다.
배를 수선하고 바로 세워 계속 타고 갈 생각보다 배가 침몰한 후 뜻 맞는 사람끼리 구명보트에 올라탈 계산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그 흔한 引責論인책론조차 나오기 힘든 분위기다.
패배의 아픔을 느낄 신경도 마비돼 버렸고 사실 뾰족한 代案대안도 없다.
식물정당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픔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번민이나 고뇌도 없다.
이제 집권세력 本隊본대는 해체되고 특정 이념 동아리들만 남아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무슨 殘黨잔당 비슷한 분위기다.
이런 정권, 이런 집권당이 이 나라를 1년 4개월이나 더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