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김려일200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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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Onze Minutos / Eleven Minutes)

                                         ...  파울로 코엘료 (Paulo Coelho)

 

     11분


[시작]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잠깐 '옛날 옛적에'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줄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반면,

'창녀'는 나이든 자들의 용어다.
어떻게 이러한 명백한 모순을 이제부터 들어갈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린 삶의 매 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발은 나락 속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으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도록 하자.

 

 

 

[모험] 스위스로 떠나기로 결정한 날...

 

...확실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뭔가를 잃은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로 자신

에게 속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뭐 있는가.

 

오늘이 내 존재의 첫날이거나 마지막 날인 양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갈등] 스위스에서 한 아랍인의 하룻밤 제안을 받으며...

 

...물론 사랑은 한 인간의 삶을 눈 깜짝할 사이에 180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렇다, 사랑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은 훨씬 더 신속하게 그 일을 해치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까?  브라질로 돌아가 프랑스어 교사가 되고, 직물 가게 주인

과 결혼해야 할까?  

아니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아무도 그녀를 모르는 도시에서 단 하룻밤이라도 갈

데까지 가봐야 할까?

단 하룻밤이라는 생각과 손쉽게 버는 돈이 그녀를 더 멀리까지, 돌아나올 수 없는 곳

까지 나아가도록 만들까?

 

지금 그녀를 갈등하게 만드는 이것은 뜻밖에 찾아온 기회일까, 아니면 성모 마리아의

시험일까?

 

 

 

[11분] 창녀생활 2개월.11분 이라는 소설을 쓰기를 꿈꾸며...

 

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십오 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옷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심일 분밖에 안 되잖아.

 

......  오늘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자립적이고

용감하고 행복한 여자로 여기게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11분' 들 보다 우위에 있는 유일한 낱말,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나에겐 금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껏 사랑을 자발적인 노예상태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자유

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존재하니까.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

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낀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실천하고, 발견하더라도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다시 나

자신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나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사랑한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것은 각자의 책임일 뿐, 그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도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재 가지는 것.

 

 

 

[만남] 범상치 않은 남자 랄프를 만나고...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인간 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

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섹스에 지쳐 있는 것일까?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섹스가 무

엇인지 모르고 있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 중 하나를 죽어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해 주길 원하고 있고, 그는 내가 그를 구원해 주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열정] 사랑을 배재하고 살고있는 마리아의 마음의 흔들림...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평화롭게 먹고 자고 일할 수 없다. 열정은 과거에 속하는

것들을 모두 파괴해 버린다. 사람들이 열정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가 와해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여 위협을 통제하고, 이미 먼지로 변해버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낡아버린 것의 기술자들이다.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열정에서 찾기를 희망하며 무작정 뛰어든다. 그들은 행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기

열정의 대상에게 돌리고, 불행이 닥치면 그들을 죄인으로 삼는다. 그들은 뭔가 신비

스러운 것이 그들에게 닥쳤기 때문에 행복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사건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열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그것에 맹목적으로 뛰어드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덜 파괴적인 태도일까?

 

 

 

[경험] 사디즘(sadism)에 대해 생각하며...

 

사디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 존재는 앎만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땅을 경작하고, 비를 기다리고, 밀을 심고, 곡식을 거둬들이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태어난다.

 

나는 두 여자다. 한 여자는 기쁨, 정열, 삶이 그녀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모험들을 맛

보길 갈망하고, 다른 한 여자는 진부한 일상, 가족적인 삶, 계획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자잘한 행위들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한다.

 

나는 한 몸 속에 살면서 서로 싸우는 주부이자 창녀다.

한 여자에게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는 하나의 게임이다. 신성한

춤이다.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두 개의 신적 에너지, 서로 출동하는 두 개의 우주다.

그 만남에 서로에 대한 경의가 부족하면, 한 우주는 다른 우주를 파괴한다.

 

 

 

[질투] 랄프와 사랑을 시작, 질투를 느끼며...

 

삶을 통해 누군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걸, 마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질투에 대한 거창한 이론을 갖고 있고, 그것이 연약함의 증거임을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러한 감정을 결코 억누르지 못할 터였다.

 

가장 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랑이다.

아무튼, 내 사랑이 진실이라면, 자유가 질투와 그것이 촉발시키는 고통을 극복할 것이다.

 

고통 역시 자연스런 과정의 일부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목표달성을 원한다면, 매일 일정량의 고통이나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고통에 집착하는 것, 그 고통에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고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쾌락] 사디즘의 쾌락에 취해...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얻었다. 나 자신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전적인 굴욕과 복종을 경험했을 때, 나는 자유로웠다......

 

사실, 고통이 약간 두려웠다. 하지만 고통은 굴욕감보다는 훨씬 약했다.

그 숱한 남자들이 내 몸을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가진 후에, 그런 수 개월 만에 처음

으로 오르가슴을 느꼈을 때, 나는 내가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느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섹스의 기술은 통제력의 상실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아픔] 마리아의 사디즘적 쾌락을 닦아주며 랄프의 말...

 

당신이 고통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진전일 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말아요. 고통받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

도 없소.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픔을, 희생을 추구하고 있소. 그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깨끗하다고, 자식, 배우자, 이웃, 그리고 신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거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만

 알아둬요.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가는 거요.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녀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저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그가 알아

주기를 바라오. 남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치는 거요. 자식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

해, 또 부모는 자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꿈을 포기하오. 아픔과 고통이, 오로지 기쁨만

을 가져다주어야 마땅한 사랑의 증거가 되는 거요.

 

 


[충만] 랄프와 사랑을 나눈후...

 

마치 내가 늘 현명하고, 행복하고, 활짝 피어난 여자였던 것처럼 어떤 충만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어떻게 창녀를 사랑할 수 있었어요?"


"그때는 나도 이해할 수 없었소. 하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의 육체가 결코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의 영혼을 정복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소."


"그럼 질투는?"


"우리는 '봄이 좀더 일찍 찾아온다면 더 오래 봄을 즐길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순 없어요.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오. '어서 와서 날 희망으로 축복애 주기를, 그리고 머물 수

있는 만큼 머물러 주기를.' "

 

...... 이 사람과 두 번 사랑을 나눴어... 그런데 마치 평생을 함께 보낸 사이 같아. 내 삶을,

내 영혼을, 내 육체를, 내 빛을, 내 고통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아.'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말]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성(性)의 성(聖)스러운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

이 걸렸다......


모두가 듣고 싶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의무

말입니다.

 

세상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책도 있고, 또 우리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도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글을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나는 최초의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내 어머니의 팔이니
나는 불임이자 다산이니
나는 유부녀이자 독신녀이니
나는 빛 가운데 분만하는 여자이자 결코 출산해 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나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여자이니
나는 아내이자 남편이니
그리고 나를 창조한 것이 내 남자라
나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이니
나는 내 남편의 누이이니
그리고 그는 버려진 내 자식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고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

 


[이시스 찬가], 기원전 3~4세기경 나그 함마디 에서 출토 



 

- 코엘료의 소설 또 하나,

  '11분'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들을 발췌했다.

 

... 性에 대한 聖스런 탐구 .

... 모든 창녀가 그렇듯,

    아니, 모든 여자가 그렇듯,

... 동정녀로 태어나 사랑을 꿈꾸고

    처녀를 잃고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의 부재를 경험하고

    사랑을 거부하고

    삶의 목표를 수정하고

    자유를 연습하고

    다시 사랑을 발견하는

... 성과 사랑의 본질을 일깨우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