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으로 만드는 쌩얼 열풍?

김애화200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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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으로 만드는 쌩얼 열풍?

  '쌩얼’의 빛과 그림자‘

여자의 특권일까? 굴레의 숙명일까? 화장을 통한 아름다움의 추구는 여성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시대도 있었다. 요즘은 여자만 화장을 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도 아닌 바에야 화장은 차라리 구속하는 굴레가 된지 모른다. 직장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들을 눈 흘겨본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여자 혹은 어디가 아픈 여자라는 말도 던진다. 심하긴 심한 모양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은 ‘화장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나.

하루라도 화장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피부도 햇볕을 보고 싶고, 여성들 자신들도 화장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럼에도 화장을 하는 이유는 맨얼굴보다 아름답고 예쁘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래 보인다. 역설적으로 화장을 하지 않는 맨얼굴로 예쁜 사람이 진정한 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쌩얼”이란 바로 이렇게 맨얼굴, 아무 것도 치장하거나 꾸미지 않은 생얼굴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연예인들의 학창 시절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다니는 현상에 비롯했다. 현재의 연예인들이야 성형도 많이 하고 짙은 화장 때문에 본 모습을 알 수도 없다. 일반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과거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스타들이 학창 시절에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지 관심이 증폭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점이 쌩얼 열풍의 시초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쌩얼 미인 혹은 쌩얼 스타들의 순위가 매겨지기 시작했고, 쌩얼 미인을 자임하는 연예인들은 앞 다투어 홍보수단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네티즌과 인터넷 언론들이 연예인을 포함해 쌩얼들의 사진들을 폭발시키듯 내쏟았다.

이러한 쌩얼 열풍에 반영된 사람들의 심리는 간단하다. 연출되고 만들어진 미인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순수한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여기에는 은폐와 가식의 분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도 있다. 즉 인공미와 가공미를 거부 하고 자연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매일 매일 연출하고 꾸미기에 진력이 난 여성들의 해방 욕구심리도 들어 있다. 매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덧씌우지 않고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성들이야 화장 너머의 여성 얼굴에 관심을 가지니 그들도 쌩얼에 열광한다. 쌩얼 미인 대회도 생겼다. 그렇게도 연출과 화장에 대한 중압감이 심했던 것일까?

연출과 꾸밈을 강조 하는 상품들은 힘을 울상일 듯싶다. 쌩얼은 그동안 연출하는 삶, 꾸미는 삶이 중요하다는 패션, 화장품 업계들의 논리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맨얼굴이 예쁘기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의 피부는 그렇게 영상 매체에서 나오는 피부와 같이 깨끗한 상태일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토샵으로 손을 보는 게 아닌가. 인생 역정이 험난할수록 얼굴에 그대로 그 역정이 반영되지 않나.

그럼 연예인들은 어떨까? 사실 쌩얼이라고 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쌩얼처럼 보이려고 또 다른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광고 속에 보이는 맨 얼굴 같은 순수 이미지의 여성 스타들은 쌩얼 메이크업의 개가이다. 또한 인터넷의 쌩얼 사진은 쌩얼 각도와 쌩얼 분위기 연출의 과정을 거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선보이는 생얼굴은 생얼굴처럼 보이게 꾸민 것이다. 이를 두고 미디어는 자연스러운 쌩얼 미인이라고 추켜세우고 경쟁하듯이 보도해왔다.

한편, 예상하지 못한 쌩얼 문화현상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쌩얼 신드롬 때문에 생얼로 다니면 자기가 마치 생얼 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뽐낸다고 한소리를 듣는 경우도 생겼다. 쌩얼 열풍 덕분에 연애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도 생겼다. 남자 친구들이 맨얼굴을 보고자 별 수를 다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가 수영장에 가자는 게 쌩얼을 보자는 의도에서였다고 말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 여성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수영장에 가기 위해 피부 관리 비용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쌩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맨 얼굴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여드름, 기미, 잡티 제거, 쌩얼 연출을 위한 피부 치료 등을 받기에 피부과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기에서 주름치료를 받거나 보톡스를 주입한다. 화장을 지웠을 때 눈썹 모나리자로 보이지 않게 하는 눈썹 문신이나 립스틱 없이도 예쁜 입술 문신도 유행이라는 말도 들린다.

각종 쌩얼 만들기 상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반영구 화장도 인기라고 한다. 이는 물이나 땀에 지워지지 않는 천연 색소를 표피에 주입해 아이라인이나 입술라인 등을 새겨 넣는 시술법을 말한다. 결국 울상을 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쌩얼로 쾌재를 부르는 쪽이 피부 관련 업계들이다.

맨얼굴로 자랑스럽게 활보하는 연예인들이나 쌩얼 미인들은 역설적으로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였다는 생각을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게 쌩얼 미인이 되려면 일정한 수입 이상을 가진 여성들이어야 하고 피부 관리에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여성들 입장에서야 어디 꿈이라고 꾸겠는가?

인공미와 가공의 연출미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하려는 심리를 반영한 ‘쌩얼’! 그러나 어느새 쌩얼은 또다른 인공미와 가공미다. 쌩얼은 그 속에 갇혀버렸다. 여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심각한 스트레스 요소가 되기도 했다. 모든 여성들이 맨얼굴을 드러낼 이유는 없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외모지상주의이자 루키즘의 전형이 되어버렸다. 이제 쌩얼=미인이라는 말은 사기에 가깝다고 한다면 지나치지만은 않으리라.

다만, 쌩얼 열풍 덕에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 많이 들렸으면 싶다. 화장은 여성의 특권이 더 이상 아니기에 여성은 화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피부도 숨 쉬고 싶어 한다. 화장품-가식의 중독과 찌듦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