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비(北扉) 제1부 무시림(無始林) 사람들(제1권)

글누림 출판사200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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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권 별메를 찾아드는 별들


제 1 장 생문(生門)


1.

어미 송씨가 달아주는 향낭을 차고 곡우일에 가야산 자락으로 소풍을 가는 아비 삼형제를 따라 나선 열남은 아비 이이신이 친구 하무길 일행을 만나 합석한 자리에서 난생 처음 또래의 계집아이 선옥을 만나 육절금을 타는 솜씨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하무길이 짓다만 싯구의 말구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까지 한다.


2.

아이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나누고자 이이신은 열남을 집안 종 부솔이가 있는 곳에 심부름을 보낸다. 제각각 주인을 따라온 종들이 벌이는 무예판을 구경하던 열남은 오줌을 누러 가고 덫에 치인 흰 노루 새끼를 구해주려다 그만 길을 잃고 만다.


3.

해가 저물도록 열남의 행방을 찾지 못한 이이신과 하무길 일행은 애가 타는데, 신동으로 알려진 열남의 실종 소식을 들은 성주 목사가 독용진 수첩군관 방교강을 보내와 수색을 돕게 한다. 하지만 밤중에 산에 올라간 장정이 표범에 물려 죽은 일이 일어나고 이이신은 자식을 찾을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때 하무길이 열남의 생문은 오직 무시림(無始林)이라고 한다.



제 2 장  무곡성(武曲星)의 정기


1.

가야산 깊은 곳에 초가삼간 영산재를 짓고 살던 당대의 선객 허방산인은 밤중에 뜰에 나와 천기를 잃다가 북두칠성의 일곱 별 가운데 하나인 무곡성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산길을 나선다. 마침내 흰 노루 새끼와 체온을 나누며 열남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들쳐 업으려는 순간 열남이 차고 있던 향낭이 그 자리에 떨어진다. 허방산인은 열남을 업고 영산재로 돌아온다.


2.

하무길은 무시림에 영산재라는 초당을 짓고 사는 허방산인에 관해 말하고 선비들은 반신반의 한다. 누군가 일전에 전 대제학 김유가 두 자제(김상로와 김약로)를 데리고 찾았다가 비명횡사를 바로 그 곳임을 새삼 떠올린다.

날이 밝아 소식을 들은 송씨가 집안에서 기르는 개 더펄이를 데리고 와 부솔이와 함께 산으로 보내고 더펄이는 열남의 향낭을 찾아낸다. 향낭이 떨어져 있던 곳의 자취를 살펴보던 하무길이 열남이 살아있음을 확신하고 이이신은 하무길과 함께 무시림을 찾아 나선다.

가는 길에 이이신은 하무길이 열남의 스승이 되어주기를 청하지만 그는 열남의 스승이 될 사람은 따로 있다며 조선의 두 도인 허방산인과 자오선랑을 거론한다. 이이신은 유가의 선비가 되어야 할 열남을 도가의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영 탐탁치 않다. 그러나 하무길이 열남이 다리 저는 병증까지 치유할 방도가 있다는 말에 혼란스러워진다.


3.

영산재에 도착한 이이신은 허방산인이 도가의 사람 아니라 조선 신가의 정통한 맥을 잇고 있는 신인임을 알아보고 열남을 맡길 생각을 굳힌다. 허방산인 역시 열남을 탐내고 있음을 간파한 까닭이기도 했고, 하무길의 말대로 다리 저는 병증까지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이다. 열남을 불러 제자가 되는 예를 갖추게 하는 겨를에 어디선가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 이이신과 하무길은 깜짝 놀란다.



제 3 장  와우지형(臥牛之形)


1.

산 속 영산재에 열남을 맡기고 왔다는 말을 들은 송씨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어 그리했거니 하지만 맏형 이이정은 영 못마땅하다. 후사가 없는 자신에게 열남을 양자로 주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이신은 허방산인에게 열남을 맡긴 것을 번복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 동안 집안 살림을 맡아보던 뱅구리아범이 늙어 더 이상 마름 일을 볼 수 없어 그에게 후임자를 물색하게 하였는데 그가 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2.

풀밭골 장터에 빈 쇠지게를 진 채 나타난 백호성은 대장간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먹만한 돌멩이를 놓고는 그것과 똑같은 종류로 빨랫돌만한 것을 가져온다면 닷 냥을 주겠노라는 글을 쓴 종이를 지게에 내건다.

오가는 사람들은 이상히 여긴다. 백호성을 수상히 여긴 장터 순라 군졸들이 그를 잡아가려 하자 선비 하나가 그런 돌을 찾는다면 한개 고을 대초당 댁으로 가 보라고 하며 국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백성의 사사로운 생화까지 일일이 참견하는 순졸들을 꾸짖어 보낸다.

이이신의 집 앞에 이른 백호성은 땅 속에 박혀 있는 노둣돌을 보고는 자기가 찾고 있던 돌이기도 하거니와 그 크기에 놀란다. 이이신을 만나 흥정하려고 하지만 이이신은 그냥 가져  가라고 한다.

쇠지게에 돌을 지고 장터로 돌아온 백호성은 옛적에 알고 지냈던 대장간 주인 신노수에게 대장간을 팔 것을 제의하고 값을 쳐 준 뒤, 그를 스승 겸 양아비 삼아 대장간 일을 배우기로 한다. 백호성이 지고 온 운석을 본 신노수는 어디서 구했느냐며 놀라워한다.


3.

소가 누워서 새벽별을 보고 있다는 형국이라는 성주 고을 어귀에 이른 시달은 주막을 찾았다가 키가 작고 화상을 입어 얼굴 반쪽이 쭈글쭈글해진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왈패들을 제압한다.

고을에 이른 시달은 뱅구리아범과 함께 이이신을 만나고 밀양의 마목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자신의 내력을 고한 뒤, 뱅구리아범의 뒤를 이어 마름 일을 맡아보기로 한다.



제 4 장  하늘의 요체


1.

영산재의 살림을 홀로 맡아보고 있는 억두가 나무를 하려고 도끼질 하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듯하다. 나무를 다 하고 무예 연습까지 마침 그는 산을 내려오며 열남을 떠올린다. 기력을 회복하는 대로 돌려보낼 줄 알았던 도령이 영산재에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말에 허방산인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억두는 열남이에게 허방산인이 시킨 일들을 일러준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떨어진 댓잎을 손으로 주우라는 것과 십 리 산길 위에 있는 무시림에서 소나무 잎을 따 그 앞개울 완영계에 있는 대통 속에 넣으라는 것, 그리고는 다시 영산재로 내려와서 대통을 따라 내려온 솔잎을 건져 말리라는 것이다.

하찮은 일을 시키는 것에 실망한열남이 산을 내려가려 하자 허방산인은 호통을 친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혀가 닳도록 읽은 성현의 말씀에서 살아날 방도를 찾을 수 있었더냐는 산인의 물음에 대답이 막힌 열남은 며칠만 지내보기로 한다.


2.

댓잎을 손으로 줍다가 나뭇가지를 빗자루 삼아 쓸고 있는데 또 산인의 호통이 떨어진다. 끊어질 듯한 허리를 잡고 겨우 일을 마친 열남은 산으로 무시림으로 올라가 솔잎을 따려고 하지만 나무 위에 오를 수조차 없다. 밑동에 붙은 것을 따 개울 속 대통에 집어넣고 내려오다가 금줄이 쳐진 막돌탑 터를 발견한다. 한 가운데 있는 선돌을 호위하듯 쌓여진 세 탑 중 한 탑은 허물어져 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땅 속에 반쯤 박혀있는 칠보옥룡잠을 줍는다. 막돌탑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다.

영산재로 내려와 솔잎을 건져 멍석에 펴 말리다가 바람에 다 날려버리고 만다. 그나마 남은 것을 주워 억두와 함께 산인의 처소에 든다. 산인은 솔잎을 밑동에서 딴 것을 꾸지람 한다.

댓잎을 줍고 솔잎을 따게 하는 까닭을 묻지만 억두도 알지 못한다. 억두는 산인이 얼마나 큰 어른인지 알려주려고 지난 번, 한양 사는 양반(전 대제학 김유)이 두 아들(김약로와 김상로)을 데리고 와 아들들을 맡기려고 했다가 허방산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운 후 죽어 나갔지만 목사도 어쩌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남은 다시 스승의 처소로 가 시험하지만 오히려 반문에 자신의 말문이 막히고 만다. 처소로 돌아와 곤히 잠에 떨어지자마자 잠꼬대로 어미 송씨를 찾는다.



제 5 장  두 사내


1.

백호성은 대장간으로 연장을 사러 오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쇠추를 들어보게 한 다음에 연장을 판다. 그렇게 한 뒤 그가 권하는 연장을 써 본 사람은 하나 같이 만족스러워 다시 찾곤 하여 장날이면 그의 대장간 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처음 와 까닭을 묻는 농사꾼에게 사람마다 근력이 다르니 연장도 그에 알맞게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이신의 집에서 가져온 운석의 쓸모를 묻자 백호성은 천하제일의 칼 한 자루를 벼리는 것이라고 한다. 신노수는 양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대장간의 설비를 새로이 하기로 하고 터를 넓히기 위해 뒷집 넝마전을 사들인다.

백호성이 백황토를 사 오자 신노수는 새로 쇠둑부리(용광로)를 짓고 풀무까지 만든다. 운석을 가공할 연장까지 새로 만들어놓은 뒤, 참숯을 사러 간다. 억두 아비가 죽기 전까지는 그의 숯을 썼다. 가끔 장에 나타나는 억두가 안 보이는 것이 궁금하다. 그에게 60근 도끼 한 자루를 만들어 준 기억이 새롭다.

백호성은 철광산으로 가 장날마다 내다 팔 연장의 재료가 되는 쇠를 한꺼번에 많이 사 온다. 그로써 채비는 다 마친 셈이다.


2.

시달은 마름 일을 보는 틈틈이 직접 농사일을 한다. 온 고을이 그의 근면함을 칭찬한다. 소작의 불합리함으로 인한 소작농의 게으름을 방지할 비책을 내어 더욱 이이신의 신임을 받는다.

아파 누워있던 뱅구리아범이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아야겠다고 떠난 뒤, 부솔이에게 이이신의 아들이 영산재에서 수학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만감이 교차한다.

송씨는 시달을 춘례와 혼례시키려고 하지만 춘례가 펄쩍 뛰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만다.

대문 앞 노둣돌을 가져간 대장장이 얘기를 듣고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나무를 한 짐 하러 산에 올랐다가 어지러워진 심사를 달래려 무예 연습을 하고 있는데 고을 뒷산 감응사 주지와 산책을 하던 이이신의 눈에 띄어 예사롭지 않은 무예 솜씨를 지닌 것을 추궁 당한다. 감추고 있는 내력을 묻지만 시달은 사실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



6 장  바람의 길


1.

새벽마다 영산재 마당에 떨어진 댓잎을 줍고 무시림에 올라 솔잎을 따는 동안 석문의 몸은 날로 좋아진다. 허방산인은 열남이 막돌탑 터에 들르는 것을 알고 내심 걱정한다.

무시림에서 솔잎을 따고 있던 열남은 우두산 산신령이라고 자칭하는 검은 천으로 온몸과 얼굴을 가린 사내를 만나 술래잡기를 벌인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따라 걸음을 옮겨 놓는 것을 보고 문득 바람의 길을 깨닫고 영산재 뜰에서 댓잎을 주울 때 적용해 본다. 큰 성과를 얻는다.(복면을 한 사내는 시달임이 나중에 시달과 백호성과늬 대화에서 밝혀진다)

억두에게 말돌탑 터에 관해 물어도 여전히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 칠보옥룡잠을 보이자 억두의 낯이 파랗게 질린다. 열남은 무시림에 들러 솔잎을 따는 틈틈이 무너진 막돌탑을 쌓는다.

허드렛일만 하는 억두는 한번도 산인을 원망하는 기색이 없다. 그간 무얼 배웠느냐는 열남의 물음에 하기 싫은 일을 늘 신명나게 해낼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스승이 자신에게 내린 가르침이라고 대답한다. 스승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자신은 분명히 그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의 요체를 억두에게 묻는다. 억두는 하늘을 들먹이는 놈 치고 사람 노릇 제대로 하는 놈 한 놈도 없다는 스승의 말을 전한다.

열남이 댓잎을 줍는 것을 본 스승은 무시림에 오를 때 억두를 동행시켜 축지법의 초보적인 걸음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


2.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피는 열남에게 억두는 발눈으로 걷는다고 한다. 열남은 문득 무시림에서 나무를 타고 오를 적마다 허리의 반탄력을 이용한 것과 흡사한 몸놀림이라는 걸 깨닫는다.

억두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스승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한다. 걸음은 갈 짓자를 그리듯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걸음을 어느 정도 익히자 숨이 가빠온다. 억두가 숨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열남이 숨쉬는 법까지 익히자 억두는 비로소 걸음의 명칭이 나비걸음, 접보(蝶步)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어느 새 열남이 다리 저는 병증은 씻은 듯이 나아 있다.


3.

열남은 바람이 눈에 보이는 경지에 이른다. 바람의 길을 확연히 깨닫는 순간 몸속에서 신명이 터진다. 막돌탑을 다 쌓고 난 뒤 선돌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억두가 방을 뒤진 흔적이 있다. 열남은 칠보옥룡잠 때문에 그러는가 하여 가지고 싶으면 주겠다고 한다. 억두는 청소만 한 것뿐이라고 얼버무린다.(억두가 칠보옥룡잠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그의 것이고, 그의 어미가 죽기 전에 그것에 관한 비밀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억두는 앞서 영산재를 찾아든 무당이 낳은 쌍둥이 남매 중 아들인데 그 무당이 산후 숨을 거두기 직전에 두 아기에게 각각 하나씩 남긴 것이다.)

아침마다 마당에 가득 떨어져 쌓이는 댓잎에 궁금증이 인다. 질기디 질긴 댓잎은 손으로 뜯으려 해도 잘 뜯겨지지 않는데 바람도 불지 않는 밤마다 뜰에 쌓이는 생댓잎 자못 이상하기만하다.



제 7 장  소터의 꿈


1.

신 노수의 감독으로 백호성은 노둣돌을 깨뜨리고 부수고 찧어 재 같이 고운 가루로 만든다. 그것을 흰숯 등과 쇠둑부리에 넣어 제련을 한다. 첫 쇳물을 받아낸다. 그것의 불순을 거듭 제거하여 백옥과도 같은 쇳물을 받아내어야만 한다. 그것이 백탄선이다.


2.

시달은 이이신의 심부름으로 장터 대장간에 갔다가 어릴 때 영산재에서 동문수학 하던 백호성을 만난다. 둘은 눈물을 흘리며 해후를 기뻐한다. 시달은 횃대칼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고 백호성은 시달의 상전이 바로 이이신임을 알고 호검(胡劒:횃대칼)까지 아는 걸 보아 무예의 고수로 여긴다.

시달은 백호성에게 영산재에 이이신의 아들이 수학하고 있다고 알려준 뒤, 자신이 직접 검은 옷과 천으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한 차례 올라가 만나보았다고 전한다.(우두산 산신령이라 자칭하면서 열남 앞에 나타났던 사람이 시달임을 밝히는 장면이다)

시달이 돌아간 뒤 백호성은 잠자리에 들어 옛 기억에 잠겨 있다가 또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예전에 영산재에서 동문수학했던 섭치이다)


3.

졸개 하나가 정 진사 집을 염탐하다가 붙들려 목사에게 치죄를 당하다가 죽은 것을 안 나주 화적패 두목 섭치는 복수를 계획한다.

뒷채에서는 딸 비령(泌玲)이 어미 금선(金仙)에게 복화전음술을 배우다가 무지개칼(홍예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금선은 비령에게 비익조의 전설을 이야기 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칠보옥룡잠 하나를 준다.

섭치가 왔다가 암수칼, 다른 말로는 자웅쌍검이라고 한다고 일러준다. 금선은 남편 섭치가 화적패인 것이 못마땅하다. 섭치는 뒷날 천하를 얻고 나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두고 보자며 산채로 사라진다.

섭치는 정 진사와 그 식솔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나주 관아까지 습격해 목사 정각선의 식솔들을 모조리 죽인다.

산채에서 잔치판을 벌이는 도중에 섭치는 딸 비령과 아내 금선을 찾아 패물함을 주지만 금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금선은 소중히 간직해 오던 칠보옥룡잠을 딸에게 주고 나중에 남편될 사람을 만나면 쪽을 찌라고 한다.(석문이 무시림 근처 막돌탑 터에서 주운 것과 한 쌍인 비녀이다. 금선이 억두와 남매지간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섭치는 화적패의 명분을 졸개들에게 주지시킨다. 백성들 머리를 밟고 서는 이들이 없는지라 백성들이 눌림을 받지 아니하고, 눌리지 않기에 헐벗고 굶주리지 않으며, 헐벗고 굶주리지 않기에 남의 것을 눈여겨 탐하거나 억지로 빼앗지 않으며, 탐하거나 빼앗지 않기에 백성들이 서로 가족처럼 여기는, 신명나는 소터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한다.

졸개들은 목숨을 바쳐 따를 것을 맹세한다. 섭치는 산채의 규율인 신율명조(神律明條)를 발표하고 졸개들에게 외우게 한다.

나주 목사 정각선이 전라 감영의 군사들을 이끌고 산채를 치러 온다. 수와 무기의 열세로 화적패는 패배하고 섭치는 수족 같은 두 졸개 짝귀와 떡보, 개봉(개봉은 뒷날 섭치가 나주괘서사건을 꾸미러 다시 들를 때 만나게 된다) 등과 비령, 금선과 함께 비밀리에 파놓은 지하 굴속에 들어가 숨는다.

짝귀와 떡보가 관군의 이목을 따돌리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금선이 먼저 나간다. 졸개들은 모두 뒤따라 나가고 섭치는 비령을 데리고 산채를 탈출한다. 금선은 실종 되고 짝귀와 떡보도 부상을 입은 채 쓰러진다.


4.

백호성은 노둣돌을 가루 내어 녹여낸 쇳물을 제련에 제련을 거듭하여 눈부시게 흰 쇳물인 백탄선을 뽑아낸다. 가마 안벽에 덕지덕지 붙은 쇠똥을 긁어내어 시달이 부탁한 고검 한 자루와 시달에게 줄 박장검을 만든다.

시달이 오자 십련호검(十煉胡劒)과 지겟작대기 속에 감춘 칼인 박장검(樸杖劒)을 내놓는다. 시달은 백호성과 뒤뜰에 가 칼을 한 차례 시험한다. 두 칼 다 날이 평평하고 얇은 창포검의 종류이지만 열 번 두들겨 접은 것이라 여간 강하지 않다.

백호성은 꿈에서 섭치가 화적패 두목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었다는 말을 전한다. 시달은 새 임금(영조)이 선왕(경종)을 독살하고 왕이 되었다는 말이 나도는 민심을 걱정하며 늘 세상을 갈아엎으려는 소리를 했던 섭치를 걱정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영산재를 못 잊어 다시 성주 고을로 숨어든 것처럼 조만간 그의 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예견한다.(영산재의 옛 제자 시달, 백호성, 섭치의 면면이 다 드러난 장면이다)



제 8 장  신맥(神脈)을 찾아서


1.

영산재 마당에 댓잎이 떨어지는 것이 스승과 무관하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지만 묻지는 못한다. 댓잎을 줍는 솜씨를 본 스승은 바람의 길을 스스로 살필 수 있기에 열남이 그 동안 피웠던 향을 더 이상 피우지 말라 이른다. 산으로 오를 적에는 접보를 완벽하게 해 낸 데 이어 벌날음질까지 치기에 이른다. 무시림에 올라 나무 타는 솜씨도 날다람쥐와 같다.

열남은 자신이 오기 전, 영산재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음을 궁금히 여긴다. 부엌에 놓인 그릇과 수저만 보더라도 대여섯 사람 이상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식기도 있다. 그러나 억두는 스승의 허락 없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열남은 막돌탑 터도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승은 열남에게 영산재 앞을 흐르는 완영계 가마소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코끝까지 물 속에 대게 한 뒤 숨쉬기를 익히라 명한다. 바람의 길을 알았으니 이제 물의 길을 알 차례라는 것이다. 더구나 바람 속에 들어야 바람의 길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물 속에 들지 않고는 물길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물길을 안다는 것이 대체 어떤 뜻인지 궁금하다.

석문은 아차 하여 물 속에서 몸의 균형을 잃어 코를 쳐 박기 일쑤다. 마침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면서부터 물의 길을 깨닫는다.

스승은 사람의 목숨은 숨에 달려 있으니 바른 숨쉬기를 통해 심신을 바르게 할 수 있으며 생사불이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며 이제 천지간의 숨인 바람의 길과 물의 길을 알았으니 그 한 고비를 넘었다고 한다. 열남은 스승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스승은 영산재에서 생활하는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에 구차히 매달리지 않게 되었으니 탐냄을 다스릴 줄 알았고, 나날이 쏟아지는 꾸지람을 견디었으니 성냄을 누를 줄 알았으며, 새벽마다 댓잎을 주우면서는 싫어함을 이겨내었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슬픔을 용케 삭여내었으며, 홀로 무시림으로 가 높은 나무에 오르면서부터는 두려움을 떨쳐내게 되었고, 이제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쳐 가는 기쁨을 넘어 고즈넉한 평기허심에 이르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열남은 스승의 깊은 뜻을 비로소 헤아리고 깊이 고개를 숙인다. 스승은 이어 숨에 관하여 차근히 설명해 주며 바르게 숨을 쉬는 것으로써 마음 속 참길을 따라 가는 걸음으로 삼으라 이른다. 영산재에 든 이래로 처음으로 내린 자상한 가르침이다.


2.

산인을 산 속 개울가에서 조릿대를 엮고 사는 쭈그렁 늙은이라 여겼던 열남은 하루아침에 스승에 대한 의구심을 훅 불어 날리고는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철없는 제자였던가 반성한다. 물 속에 있는 열남을 향해 시간은 마음의 흐름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이어진다. 열남은 물 속에서 갑자기 황홀감을 겪는다.

물 속에서 겪었던 황홀감을 다시 겪어볼 생각으로 밤에 처소에서 면벽하여 숨쉬기를 한다. 그때 비로소 댓잎이 날아드는 이유를 깨닫는다. 다음날 스승은 간밤에 석문이 한 짓을 호되게 나무란다.

천지 만물 어떤 것이건 참된 것이 사람을 홀리는 일은 없고, 오직 사람이 그 스스로 빠져드는 것이니, 그것은 오직 가만히 앉아 일삼아 숨쉬기를 할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일삼아 숨을 쉬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산인은 숨은 몸이 거동하면 절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침내 석문은 크게 깨달아 심신의 숨통을 다 틔워 천지자연의 숨결과 상통하는 경지에 이른다.



제 9 장  또 한 사내


짚멍석에 도도를 말아 감추어 등에 맨 섭치는 비령과 함께 초췌한 몰골로 산길을 가고 있다. 다리쉼을 하며 비령의 신을 삼아주고 우비접보로써 걸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루터에 이르러 이이신과 부솔의 도움으로 배 삯을 내고 건넌다.

한양 우변포도청과 좌변포도청에서 파견된 교외도장군사(郊外都掌軍士)들이 섭치를 뒤쫓아 나루터에 이른다. 강을 건넌 섭치는 비령과 함께 산길로 달아난다. 기포관 설우석(나중에 석문이 내금위 초관이 될 때 금위우별장이 되어 있는 인물이다) 일행이 뒤쫓고 섭치는 급기야 비령을 업고 뛰다가 결국은 포도군사들에게 포위 되고 만다.

비령을 보호하며 혼자서 무예에 뛰어난 포리 여럿을 감당할 수 없어 제압되고 그 자리에서 참수되기에 이르지만 나루터에서부터 기포관 일행의 뒤를 따라온 퇴무자 만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퇴무자 만올은 조선 최고의 무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허방산인에 이어 영산재의 두 번째 스승이다)

퇴무자 만올과 영산재에 이른 섭치를 허방산인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나, 비령이 금선이 낳은 아이라는 퇴무자의 말에 무언의 허락으로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