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 논란에 대한 논란

최완석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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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 논란에 대한 논란

성유리, 김태희, 윤은혜, 신지, 박한별의

연기력 논란에 대한 논란

 

레드 카펫에서는 당당한 보무를 자랑하던 그녀들이 어찌 된 일인지 인터넷의 바다에만 들어가면 익사당하기 일보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다. 아마 당신은 그들의 불안한 표정 옆에 공포 영화 카피처럼 써 있는 다음과 같은 충격과 공포의 문장들을 한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윤은혜 <포도밭 그 사나이> 또 연기력 논란 <궁> 초기와 비슷, 신지 연기력 논란에 관한 속내 고백 “얄미운 배역을 맡았을 뿐”, 하지원, 연기력 논란은 연출 의도 때문?, 박한별, “연기력 논란? 반드시 뒤엎겠다”, 성유리 연기력 논란에 “왼쪽 뺨마저 내놓겠다”. 이마저도 다음과 같은 문장에 비하면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김태희, 100억짜리 영화에서 재롱잔치’. 요즘 포털 사이트 뉴스 면을 장식하는 인기 기사들이다. 인터넷 검색 창에 ‘연기력 논란’이란 단어를 넣어 보면 여자 연기자들이 ‘연기력 논란’이라는 단어 아래 석고대죄하는 얼굴로 집합한다. 스크린에서 한 명의 지아비를 섬기느라 눈물 빠지도록 연기한 그들을 도대체 누가 일렬 종대로 불러 세웠나?

 

김태희와 성유리 연기력을 물고 늘어져 ‘연기력 비판 전문 언론’이란 별명이 붙은 <뉴시스>에 대해 용감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김태희가 출연한 <중천>의 시놉시스부터 살펴보자. ‘자신을 대신해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퇴마무사 ‘이곽(정우성)’은 원귀들의 반란으로 깨져버린 결계를 통해 죽음의 세계, 중천에 들어가게 된다. 환생을 기다리며 죽은 영혼들이 49일간 머무는 중천에서 죽은 연인과 꿈에 그리던 재회를 이룬 이곽. 하지만 그녀는 모든 기억을 지운 채 중천을 지키는 하늘의 사람 천인 ‘소화(김태희)’가 되어 더 이상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라는 걸까? 사실 <중천>의 시나리오는 충무로에서 완성도가 낮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시나리오를 읽었던 한 기자는 “<중천> 시나리오는 본 중 최악이었다. 읽고 나서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하늘의 사람이라는 소화는 도대체 무슨 역할인지, 아무도 몰랐다. 한편, 성유리는 <눈의 여왕>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휴거’가 와도 카메라 앞에서 망부석처럼 이런 대사를 읊겠다는 듯 진지하게 말한다. “눈의 여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또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야.” 이게 지금 다 큰 성인 남녀가 주고받을 대사들인가? 초등학교 구연동화의 대사 수준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이런 대사를 연기 잘한다는 칭찬받으면서 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다른 건 몰라도 ‘성유리 연기력 논란, 올 것이 왔다!’라는 기사를 클릭하는 사람은 확실히 많은 것 같다. 속보 전쟁과 클릭수의 강박에 시달리는 인터넷 언론들은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는 기사 순위에 오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며 댓글의 성격보다는 댓글의 양에 따라 매체력이 결정된다. 포털 대문에서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선정적이어야 한다. 선정적인 것은 주로 부정적인 것에서 나온다. ‘<90일 사랑할 시간> 마니아 층 생겨’보다 ‘<주몽>에 합류한 송지효 연기력 논란’이 우리의 얄팍하고 간사한 시선을 더 잡아끈다. 그건 빈약해진 매체 환경으로 인한 부작용들이다. 인터넷 언론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그들 사이에서 속보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누가 더 빨리, 화제의 기사를 올리느냐에 따라 그들의 공과 실이 결정된다. 연기력 논란은 ‘성유리-김태희 연기력 논란 대처 방법’ 등과 같은 후속 기사를 계속 양산한다는 점에서 그들에겐 매력적인 소재다. 연기력 논란이라는 화살을 맞는 연기자들은 자신의 팬 사이트를 통해 심경을 고백하고 그들을 캐스팅한 제작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등 연기력 논란의 불씨는 점점 확대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유리는 <뉴시스>의 연기력 논란 기사에 “서슬이 시퍼런 당신의 펜 날에 오른쪽 뺨을 맞았다”면서 “당신이 단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면 왼쪽 뺨마저 내놓겠다”는 반론을 제기하다가 바로 이 문구가 그대로 기사화되어 ‘왼쪽 뺨까지 내놓겠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혹으로 얻었다.

연기력 논란이라는 이슈에는 이상한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언론의 뭇매를 맞는 연예인들이 주로 여자라는 점이다. 함께 <궁>에 출연했어도 김정훈보다 윤은혜가 ‘관심’을 더 많이 받았다. 관객들은 연기 못하는 남자 연기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연기 못하는 여자 연기자는 다르다. 칸영화제에서 상 받은 연기 잘하는 여배우들보다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선 여자 연기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존재들이다. 거기다가 그들 대부분은 가수 출신(윤은혜, 성유리, 신지, 이효리 등)이거나 갑자기 캐스팅이 변경돼 중간에 드라마에 합류한 경우(송지효)라는 태생의 비밀을 안고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두고 보자’라는 앙다문 각오의 눈들이 그들의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등 모든 것을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연기자들의 사생활 역시 연기력을 쉽게 판단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연극 배우이자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 신용욱 교수는 “정보가 거의 없고 잘 모르는 외국 배우에 대해 연기력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국내 배우들은 쇼 오락프로그램 등에서 자신을 많이 드러내서인지 관객들이 그들을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즉,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개인적인 호감이나 취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건 바꿔 말하면, 연기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애매모호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잣대는 언제나 네티즌들이었다. 연기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이나 일부 인터넷 사이트라는 점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네티즌들이 틀렸다거나 옳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뒷짐 지고 연기력을 평가하는 네티즌들에게 지나치게 편승해 기사를 쓴다. 그들이 주옥 같은 말이라도 할까 싶어 받아 적느라 정신이 없다. 네티즌들은 캐스팅이나 연기력에 있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한다. 그건 네티즌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인터넷은, 그들이 자신도 전문가이며 전문가의 의견에 꼭 수긍하진 않겠다라는 현대판 신문고다. 최근에 <노컷뉴스> 김대오 기자가 본인의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내 언론의 인용 소스는 ‘네티즌들에 따르면’에 너무 많이 편중돼 있다. 네티즌들의 말은 성경이며, 인터넷 언론은 성경 말씀에 따라 연기력 논란이라는 바벨 탑을 쌓는다. 요즘엔 제작진조차 네티즌들의 눈치를 본다. 연기력 논란의 불이 거세지자 <거침없이 하이킥>의 제작진은 게시판을 통해 “우린 신지의 연기에 만족한다”는 해명의 글을 올린 사실이 대표적인 예다. 연기력 논란은, “예쁘고 어린 여자 연예인은 연기를 잘 못할 것이다”라는 우리의 편견과 그 편견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속물적인 욕망을 반영한다. 때론 그런 이유로 종종 논란이 없는 곳에 논란이 생겨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연기력 논란의 시작은 잡음이었으나 끝은 언제나 창대했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온갖 험담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논란을 극복한 연예인들은 마치 성공스토리의 전형적인 사례로 포장된다. 김민희, 한예슬, 한고은, 윤정희, 한은정 등은 데뷔 초기에 모두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연예인들이다. 그들이 공격받는 주요 요소는 부정확한 발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민희는 <굿바이 솔로>를 통해, 한예슬은 <환상의 커플>로, 한고은은 <사랑과 야망>으로, 윤정희는 <하늘이시여>를 통해 이런 논란을 잠재웠다. 논란이 가라앉은 후 그들의 인터뷰 기사에는 “그땐 정말 힘들었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온다. 그때부터 적군은 줄어들고 창과 방패를 들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아군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연기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상황에 따라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연기력 논란의 그물에서 벗어난 건 갑자기 발음을 또박또박 잘해서가 아니다. 그건 캐릭터 때문이었다. 김민희는 사랑에 아파하는 여자 캐릭터로, 한예슬은 재수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철부지로, 한고은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 힘들어하는 여자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최민식처럼 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만의 인물 해석을 내리는 연기의 달인들이 아닌 이상, 연기자 또한 극의 요소 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기자를 다룰 수 있는 연출자의 능력과 그들의 캐릭터를 살아있는 질감으로 만들어내는 극본이다. 신용욱 교수는 “드라마 연기의 경우 작가의 몫이 꽤 크다”고 지적한다. 한예슬은의 경우 <환상의 커플>의 뛰어난 각본과 생생한 캐릭터가 그녀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민희와 한고은 역시 노희경 작가의 극본을 통해 연기력 논란이라는 소음을 제거했다. 전성기 때의 심은하도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김수현 작가의 <불꽃>에서 보여준 모습이 다른 작품의 그것보다 더 강했다. 그건 감독과 시나리오, 그리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라는 외부 인자에 의해 배우들이 화면을 통해 전달하는 매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기 경험이 수북하게 쌓여 어떤 역할을 맡아도 수준급 이상으로 해내는 베테랑이 아닌 이상,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연기력보다는 매력을 발산해줄 장치들이다. 결국 연기력 논란은 캐스팅에 불만을 표시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싶어하는 네티즌들과 낚시 기사를 통해 조회수를 올리려는 인터넷 언론의 합작품이다. 신용욱 교수는 말한다. “직장에서도 일을 못하면 지적 받듯이 연기를 못하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그 기준이라는 게 지나치게 개인적인 취향에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다.”....By 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