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범죄를 할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창호지에 물을 적셔서 영아의 입과 코에 붙여두면 흔적 없이 살인할 수 있습니다. 만취한 사람을 벽에 대고 가슴을 밀면 역시 죽을 수 있지만 부검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케이스를 만나면 만날수록 얄팍한 과학의 한계가 두렵고,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
사람이 죽어 아래쪽으로 피가 몰릴 때 생기는 멍자국 비슷한 형태의 시반(屍班)이 수사 단서로 쓰이는 장면도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 부검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
부검의가 스무 가지 단서를 말할 수 있는 사건도 기본 정보가 부족하면 다섯 개 정도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무소견 부검(negative autopsy)’으로 결론 날 확률이 커지고, 잡을 수 있는 범인도 놓치게 되는 겁니다.”
부검의 첫 번째 작업은 사체의 눈꺼풀을 확인하는 일. 질식사의 경우 눈꺼풀에 있는 모세혈관이 터진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부검팀이 샤워기로 사체의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현장 감식반이 확인한 스물일곱 군데의 상처 이외에 왼쪽 어깨 위로 화상 모양 비슷한 긁힌 상처가 발견됐다. 쇠로 된 자를 상처에 넣어 찔린 깊이와 크기를 확인하는 작업을 마친 부검팀이 사망자의 굽은 손을 폈다. 손가락 군데군데에 베인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방향이나 각도로 봐서 칼을 막다 생긴 방어흔임에 분명하다.
“묶여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과장이 담당 경찰관에게 묻는다.
“네. 감식반 말로는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팔다리에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요.”
경찰관의 말에 이과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뭐야, 찌르고 나서 묶었다는 얘기야?”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칼이 이 각도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찌르고 묶고 다시 찔렀다? 말이 안 되잖아. 현장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담당 경찰관이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게…, 저도 감식반이 작업을 끝내고 현장을 본 거라서….”
형사의 말에 이과장이 한숨을 내쉰다.
CSI 과학수사대’나 ‘X 파일’ 같은 외화에서는 흔히 사체의 온도나 경직상태(屍剛)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사람이 죽어 아래쪽으로 피가 몰릴 때 생기는 멍자국 비슷한 형태의 시반(屍班)이 수사 단서로 쓰이는 장면도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 부검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부검실에 올 때까지 보통 이틀이 걸린다. 법의관(ME : Medical Examiner)이 현장을 조사하고 부검 여부를 판단하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사건을 보고하면 담당검사가 부검 필요성 여부를 결정한다. 검사가 판사로부터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비로소 사체는 국과수로 올 수 있다. 그 사이 냉장 시설에 보관된 사체의 온도나 시강을 따지는 일은 의미 없는 작업이다. 부검의는 현장에 나간 경찰이나 감식반이 기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기본 정보란 발견 당시 사체의 상황이나 현장의 정황을 말한다. 발견 당시 사체의 자세와 상태, 혈흔의 모양 등을 정확히 알수록 죽음을 해석하는 일도 더 정확해진다. 사체와 함께 감식반이 작성한 감식 보고서가 부검의에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한영 과장의 설명이다.
“단순히 이 사람이 왜 죽었나, 질식사인지 약물중독인지 그 사인(cause of death)을 확인하는 것이 부검의 임무라면 기본 정보가 부실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병사인지 의료사고인지 죽음의 종류(manner of death)를 알아내려면 기본 정보가 필수적이죠. 법의학은 단순히 사체만 들여다보는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처 숫자 세려고 부검하는 게 아니니까요.
부검의가 스무 가지 단서를 말할 수 있는 사건도 기본 정보가 부족하면 다섯 개 정도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무소견 부검(negative autopsy)’으로 결론 날 확률이 커지고, 잡을 수 있는 범인도 놓치게 되는 겁니다.”
“부검의도 현장에 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청객인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위해 이상용 법의관이 열변을 토했다. 사건의 절반밖에 볼 수 없는 ‘앉은뱅이 부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부검의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경찰조서 등 간접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그들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기 쉬우니까요. 또 법의학자의 눈으로 보면 감식반이 그냥 넘길 수 있는 단서들을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장 감식과 부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최소한 현재 인원의 두 배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은 한해 대략 6만 건 내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변사자의 30~50%에 대해 부검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10%를 간신히 넘어섰다. 그나마 법의관에 의해 부검이 이뤄지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국과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경우 경찰에서 일반 외과의사를 ‘공의’로 위촉해 메스를 맡긴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부검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의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5급 의무사무관 신분인 국과수 법의관의 임금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비슷한 연차의 의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때문에 법의관은 이직률이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부병리학을 전공한 의사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돈 되는’ 과목에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해부병리학과는 정원의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상용 법의관이 국과수의 앞날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가 처음 국과수에 온 1997년 무렵에는 상황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서울본소에 법의관이 네 명뿐이었으니까요. 각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단순 변사는 의뢰를 자제해 달라’고 사정했죠. 그후 힘겹게 사람을 끌어모아 이 정도 인력이라도 확보했습니다.
의대생들의 요즘 추세로 보면 부검의 구하기가 점점 더 하늘의 별따기일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1960~70년대처럼 일반 의사가 부검을 맡아야 할 판이에요.”
학문적 성취감 아니면 사명감
외상 확인을 끝낸 부검팀이 메스를 들었다. 흉복부를 Y자로 절개하자 누런 지방층 밑으로 흉곽이 드러났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피가 출혈이 심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엌에서 쓰는 국자로 피를 떠낸 뒤, 펜치처럼 생긴 늑골도로 갈비뼈를 하나하나 잘라내고 흉골판을 들어올린다. 순간 견디기 힘든 비릿한 냄새가 부검실에 가득 퍼졌다. 무슨 냄새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온다.
“예상대롭니다. 폐와 간에 난 상처가 깊었습니다. 심장은 말끔한데요.”
사체의 장기를 하나하나 꺼내 저울에 달기 시작했다. 간 1170g, 비장 120g, 신장 210g…. 위를 절개해 내용물을 밀폐용기에 담는다. 소화가 덜 된 밥알이 보인다.
“오전에 죽었다고 했죠? 아침 먹고 바로 살해당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목도 좀 살펴봅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것 같은데.”
목 졸린 흔적이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사체의 가슴 위부터 턱밑까지 절개해 나갔다. 한참을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뒷목을 깊이 찔린 상처가 뇌까지 닿았음이 발견됐다.
“현장에 피가 많던가요? 뿌려진 형태던가요, 그냥 흘렀던가요?”
이과장이 다시 경찰관을 향해 물었다.
“둘 다였습니다. 군데군데 분수처럼 흩어진 자국도 있었고요. 온통 피 천지였습니다.”
“그럼 맞는 것 같은데…. 사인은 과다출혈이에요. 묶인 채로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겁니다. 이제는 머리 좀 살펴봅시다.”
부검은 대개 오후가 늦기 전에 끝난다. 이때부터 법의관들은 감정서를 쓰는 작업에 몰두한다. 부검 당직이 아니었던 법의관들도 마찬가지다. 오전 내내 부산하던 건물이 조용해졌다. 대개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는 부검의들은 돌아볼 틈도 없이 사진자료와 분석 결과에 파묻힌다. 박혜진 법의관의 방문을 두드렸다.
“왜 부검의가 되셨습니까. ‘의료계의 3D 업종’이라던데.”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냥 감기환자나 보며 살긴 싫었거든요. 검사로 일하고 있던 남편도 부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까 선뜻 동의했고요.”
“만족하세요?”
“할수록 재미있어요. 집요하게 뭔가를 파헤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리하고, 그 결과를 감정서에 논리적으로 담아 설득하는 일은 평범한 의사라면 경험하기 힘드니까요. 점점 더 어려운 케이스를 만나면서 새로운 걸 익히는 성취감도 있고요.
물론 사명감이나 동료애 때문에 남아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직을 생각하는 법의관이 꽤 있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자리를 지킬까, 이 사람들이 더 고생할 텐데,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박법의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부검을 의뢰한 경찰관이 감정서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네, 타살인 건 확실해요. 그런데 유족들이 뭐라고 한다고요? 아니에요. 겉으로 멍이 안 보인다고 해서 목 졸린 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팔로 목을 조르면 이번처럼 외상 없이 피하출혈만 생겨요. 잘 아시잖아요. 조른 사람이 여자 아니냐고요? 그건 알 수가 없죠. 수사로 밝혀내셔야지. 중요한 사항이 나오면 연락 드릴게요.”
경찰이나 검찰은 흔히 법의학을 만능으로 생각한다는 박법의관의 말이 이어진다.
“영화에서처럼 한 번의 부검으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 주길 바라죠. 물론 소설 쓰듯 지어내면 황당한 스토리도 만들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법의학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돼 있거든요. 법의 부검을 해본 일이 없는 의사들이 대충 쓱 보고 생각나는 대로 유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정말 화나요. 법의관은 프로입니다. 별다른 게 없어 보이는 교통사고 하나를 해석하기 위해 직접 차체를 들여다보고 교통분석과 연구관들과 회의를 해요. 부검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지는 거니까요.”
칼보다 천 배는 무거운 펜
메스로 머리를 한바퀴 돌려나가자 생각보다 쉽게 벗겨진 두피 아래로 두개골이 드러난다. 톱질이 시작됐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힘이 부친 연구사들이 교대로 톱을 잡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두개골이 열렸다.
하얀 경뇌막을 걷어내자 누런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뇌를 들어내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이 순서에 따라 척척 진행되는 부검. 목관절을 살피던 연구사의 한마디가 무거운 침묵을 깬다.
“골절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부검팀의 표정이 달라졌다. 연구사가 들고 있는 뼛조각을 한참 동안 살피던 이한영 과장이 입을 열었다.
“골절은 아니야. 간혹 발견되는 기형의 일종인데,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모르니까 사진 찍어두세요. 이따가 다시 얘기해 보자고. 자, 더 봐야 할 것 있습니까? 없으면 그만 끝냅시다.”
이과장의 말에 따라 봉합이 시작됐다. 흉골판을 다시 잘 닫고 피부를 덮은 뒤 가슴부터 바느질을 하는 작업과, 두개골을 닫고 두피를 봉합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익숙한 손길만이 낼 수 있는 속도였다. 순식간에 봉합을 마친 연구사들이 사체를 닦아내고 방수포를 덮었다. 왔던 길 그대로, 사체는 냉장실을 거쳐 앰뷸런스에 실렸다. 썰렁한 대기실에서는 유족들이 멍한 표정으로 TV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회의가 열렸다. 흩어져 있던 법의관들이 각자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회의실에 모였다. 대부분의 부검은 논란 없이 종결되지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1%가 부검의를 괴롭힌다. 이럴 때 부검의는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각 대학 법의학 교실에 흩어져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배 법의관들에게 도움말을 듣는다. 방안 가득 쌓여 있는 외국 서적이나 저널은 물론 인터넷도 뒤져야 한다.
사체 하나를 부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봐야 두 시간 남짓이지만, 감정서 작성에는 두 달이 걸리는 수도 있다. 펜을 드는 것이 메스를 드는 것보다 천 배는 더 무겁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견을 나눈다 해도 사람에 따라, 그동안 경험한 케이스 차이에 따라 의견이 나뉘면, 끝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훈 중위,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 등 ‘법의학자들끼리 싸운다’며 사회적 시선을 모은 사건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뒤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뇌성마비 1급 장애아인데요, 뇌의 3분의 1이 없습니다. 뇌경막과 우측 두개골 사이에 또 다른 뇌경막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 안에는 누런 점액만 가득하고요. 사인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인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이 사체 부검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양경무 법의관이 사진을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 난민처럼 비쩍 마른 팔다리로는 나이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죽은 아이의 나이는 열 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다른 법의관들이 하나 둘씩 의견을 제시한다.
“누런 점액의 성분은 뭐예요? 분석 결과 나왔어요?”
“아직 안 나왔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인 것은 확실한데 사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일단 분석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양선생 생각은 어때요?”
“저도 일단 분석 결과를 받아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검은 곧 인권’
법의관이 작성한 부검감정서는 의뢰기관에 발송되기 전에 법의학 과장과 부장의 결재를 거친다. 결재 과정에서 성급한 결론이나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바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지적일 뿐, 최종 결정권은 사체를 직접 부검한 담당자에게 있다.
과장이나 부장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경우 담당 법의관에게 재검토를 지시할 수 있다. 담당자의 견해가 확고부동할 경우 전체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이후에도 담당자가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면 그대로 최종 감정서가 발송된다. 대신 부검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감정서에 서명을 한 담당 법의관이 진다. 감정서에는 과장이나 부장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진이나 자료를 본 선배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실체를 보았던 부검의라는 판단 때문이다.
“감정은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대우 받을 수 있는 최후의 절차입니다. 누군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부검이니까요. 거꾸로 잘못된 부검은 결백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확신할 수 있는 것만을 기록할 수밖에요. ‘부검은 곧 인권’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부검의들의 심경은 재판정에 선 판사의 그것과 비슷할 겁니다.”
경력 14년, 4000여 건의 부검을 집도한 이원태 법의학 부장의 말이다.
부검을 오래 한 법의학자들은 대부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을 한두 개씩은 갖고 있다. 이부장의 경우 1989년 5월 발생한 조선대생 이철규씨 변사사건이 그랬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중이던 이씨는 얼굴이 검게 변색된 처참한 모습으로 광주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됐다. 2년차 법의관이었던 이부장은 이 사건의 부검을 맡으면서 ‘실족사냐 타살이냐’의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
“시위 학생들이 건물 밖에 몰려든 상황에서 부검을 하는데, 메스 끝이 덜덜 떨리더군요. 장기 내부의 플랑크톤 검출 결과 등을 종합해 익사라고 결론지었지만 외력에 의한 것인지 실족사인지는 확정할 수 없었습니다.”
신의 영역 1%
그 사건을 통해 이부장은 부검의에게는 부검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사체의 진실을 둘러싼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죽음의 종류를 단정지을 수 없을 때 부검의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비난에 맞서, 부검도 신의 영역에 속하는 1%는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완전 범죄를 할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창호지에 물을 적셔서 영아의 입과 코에 붙여두면 흔적 없이 살인할 수 있습니다. 만취한 사람을 벽에 대고 가슴을 밀면 역시 죽을 수 있지만 부검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케이스를 만나면 만날수록 얄팍한 과학의 한계가 두렵고,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부검의가 진실을 감출 수 있다는 의심, 권력에 의해 감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의혹은 뿌리가 깊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국과수 법의학 과장으로 재직하던 황적준 박사(현 고려대 교수)가 경찰의 단순 쇼크사 발표를 뒤집고 진실을 폭로한 일은 국과수로서는 자랑스런 기억이자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법의관들은 그 사건 이후 국과수가 권력에 흔들린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명시적인 압력이 아니라도 기본 정보의 왜곡이나 선입견이 부검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때문에 국과수가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행정자치부 소속이다. 경찰관에게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듣거나 중요한 단서를 구두로 통보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고 회의해야 하는 것이 법의관의 원칙이라고 이부장은 말한다.
[밀착 취재]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과의 4박5일
“완전 범죄를 할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창호지에 물을 적셔서 영아의 입과 코에 붙여두면 흔적 없이 살인할 수 있습니다. 만취한 사람을 벽에 대고 가슴을 밀면 역시 죽을 수 있지만 부검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케이스를 만나면 만날수록 얄팍한 과학의 한계가 두렵고,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
사람이 죽어 아래쪽으로 피가 몰릴 때 생기는 멍자국 비슷한 형태의 시반(屍班)이 수사 단서로 쓰이는 장면도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 부검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
부검의가 스무 가지 단서를 말할 수 있는 사건도 기본 정보가 부족하면 다섯 개 정도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무소견 부검(negative autopsy)’으로 결론 날 확률이 커지고, 잡을 수 있는 범인도 놓치게 되는 겁니다.”
.......
<동아일보 본문 내용중>
<원문>
==========================================================================
[밀착 취재]
스물 일곱 번의 칼질… 그러나 死者는 말이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과의 4박5일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
<생략>위치,인원,역사, 기타등등...
.
.
영화와 현실 사이의 거리
부검의 첫 번째 작업은 사체의 눈꺼풀을 확인하는 일. 질식사의 경우 눈꺼풀에 있는 모세혈관이 터진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부검팀이 샤워기로 사체의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현장 감식반이 확인한 스물일곱 군데의 상처 이외에 왼쪽 어깨 위로 화상 모양 비슷한 긁힌 상처가 발견됐다. 쇠로 된 자를 상처에 넣어 찔린 깊이와 크기를 확인하는 작업을 마친 부검팀이 사망자의 굽은 손을 폈다. 손가락 군데군데에 베인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방향이나 각도로 봐서 칼을 막다 생긴 방어흔임에 분명하다.
“묶여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과장이 담당 경찰관에게 묻는다.
“네. 감식반 말로는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팔다리에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요.”
경찰관의 말에 이과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뭐야, 찌르고 나서 묶었다는 얘기야?”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칼이 이 각도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찌르고 묶고 다시 찔렀다? 말이 안 되잖아. 현장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담당 경찰관이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게…, 저도 감식반이 작업을 끝내고 현장을 본 거라서….”
형사의 말에 이과장이 한숨을 내쉰다.
CSI 과학수사대’나 ‘X 파일’ 같은 외화에서는 흔히 사체의 온도나 경직상태(屍剛)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사람이 죽어 아래쪽으로 피가 몰릴 때 생기는 멍자국 비슷한 형태의 시반(屍班)이 수사 단서로 쓰이는 장면도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 부검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부검실에 올 때까지 보통 이틀이 걸린다. 법의관(ME : Medical Examiner)이 현장을 조사하고 부검 여부를 판단하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사건을 보고하면 담당검사가 부검 필요성 여부를 결정한다. 검사가 판사로부터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비로소 사체는 국과수로 올 수 있다. 그 사이 냉장 시설에 보관된 사체의 온도나 시강을 따지는 일은 의미 없는 작업이다. 부검의는 현장에 나간 경찰이나 감식반이 기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해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기본 정보란 발견 당시 사체의 상황이나 현장의 정황을 말한다. 발견 당시 사체의 자세와 상태, 혈흔의 모양 등을 정확히 알수록 죽음을 해석하는 일도 더 정확해진다. 사체와 함께 감식반이 작성한 감식 보고서가 부검의에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한영 과장의 설명이다.
“단순히 이 사람이 왜 죽었나, 질식사인지 약물중독인지 그 사인(cause of death)을 확인하는 것이 부검의 임무라면 기본 정보가 부실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병사인지 의료사고인지 죽음의 종류(manner of death)를 알아내려면 기본 정보가 필수적이죠. 법의학은 단순히 사체만 들여다보는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처 숫자 세려고 부검하는 게 아니니까요.
부검의가 스무 가지 단서를 말할 수 있는 사건도 기본 정보가 부족하면 다섯 개 정도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무소견 부검(negative autopsy)’으로 결론 날 확률이 커지고, 잡을 수 있는 범인도 놓치게 되는 겁니다.”
“부검의도 현장에 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청객인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위해 이상용 법의관이 열변을 토했다. 사건의 절반밖에 볼 수 없는 ‘앉은뱅이 부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부검의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경찰조서 등 간접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그들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기 쉬우니까요. 또 법의학자의 눈으로 보면 감식반이 그냥 넘길 수 있는 단서들을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장 감식과 부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최소한 현재 인원의 두 배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은 한해 대략 6만 건 내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변사자의 30~50%에 대해 부검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10%를 간신히 넘어섰다. 그나마 법의관에 의해 부검이 이뤄지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국과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경우 경찰에서 일반 외과의사를 ‘공의’로 위촉해 메스를 맡긴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부검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의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5급 의무사무관 신분인 국과수 법의관의 임금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비슷한 연차의 의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때문에 법의관은 이직률이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부병리학을 전공한 의사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돈 되는’ 과목에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해부병리학과는 정원의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상용 법의관이 국과수의 앞날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가 처음 국과수에 온 1997년 무렵에는 상황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서울본소에 법의관이 네 명뿐이었으니까요. 각 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단순 변사는 의뢰를 자제해 달라’고 사정했죠. 그후 힘겹게 사람을 끌어모아 이 정도 인력이라도 확보했습니다.
의대생들의 요즘 추세로 보면 부검의 구하기가 점점 더 하늘의 별따기일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1960~70년대처럼 일반 의사가 부검을 맡아야 할 판이에요.”
학문적 성취감 아니면 사명감
외상 확인을 끝낸 부검팀이 메스를 들었다. 흉복부를 Y자로 절개하자 누런 지방층 밑으로 흉곽이 드러났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피가 출혈이 심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엌에서 쓰는 국자로 피를 떠낸 뒤, 펜치처럼 생긴 늑골도로 갈비뼈를 하나하나 잘라내고 흉골판을 들어올린다. 순간 견디기 힘든 비릿한 냄새가 부검실에 가득 퍼졌다. 무슨 냄새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온다.
“예상대롭니다. 폐와 간에 난 상처가 깊었습니다. 심장은 말끔한데요.”
사체의 장기를 하나하나 꺼내 저울에 달기 시작했다. 간 1170g, 비장 120g, 신장 210g…. 위를 절개해 내용물을 밀폐용기에 담는다. 소화가 덜 된 밥알이 보인다.
“오전에 죽었다고 했죠? 아침 먹고 바로 살해당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목도 좀 살펴봅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것 같은데.”
목 졸린 흔적이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사체의 가슴 위부터 턱밑까지 절개해 나갔다. 한참을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뒷목을 깊이 찔린 상처가 뇌까지 닿았음이 발견됐다.
“현장에 피가 많던가요? 뿌려진 형태던가요, 그냥 흘렀던가요?”
이과장이 다시 경찰관을 향해 물었다.
“둘 다였습니다. 군데군데 분수처럼 흩어진 자국도 있었고요. 온통 피 천지였습니다.”
“그럼 맞는 것 같은데…. 사인은 과다출혈이에요. 묶인 채로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겁니다. 이제는 머리 좀 살펴봅시다.”
부검은 대개 오후가 늦기 전에 끝난다. 이때부터 법의관들은 감정서를 쓰는 작업에 몰두한다. 부검 당직이 아니었던 법의관들도 마찬가지다. 오전 내내 부산하던 건물이 조용해졌다. 대개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는 부검의들은 돌아볼 틈도 없이 사진자료와 분석 결과에 파묻힌다. 박혜진 법의관의 방문을 두드렸다.
“왜 부검의가 되셨습니까. ‘의료계의 3D 업종’이라던데.”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냥 감기환자나 보며 살긴 싫었거든요. 검사로 일하고 있던 남편도 부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까 선뜻 동의했고요.”
“만족하세요?”
“할수록 재미있어요. 집요하게 뭔가를 파헤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리하고, 그 결과를 감정서에 논리적으로 담아 설득하는 일은 평범한 의사라면 경험하기 힘드니까요. 점점 더 어려운 케이스를 만나면서 새로운 걸 익히는 성취감도 있고요.
물론 사명감이나 동료애 때문에 남아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직을 생각하는 법의관이 꽤 있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자리를 지킬까, 이 사람들이 더 고생할 텐데,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박법의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부검을 의뢰한 경찰관이 감정서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네, 타살인 건 확실해요. 그런데 유족들이 뭐라고 한다고요? 아니에요. 겉으로 멍이 안 보인다고 해서 목 졸린 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팔로 목을 조르면 이번처럼 외상 없이 피하출혈만 생겨요. 잘 아시잖아요. 조른 사람이 여자 아니냐고요? 그건 알 수가 없죠. 수사로 밝혀내셔야지. 중요한 사항이 나오면 연락 드릴게요.”
경찰이나 검찰은 흔히 법의학을 만능으로 생각한다는 박법의관의 말이 이어진다.
“영화에서처럼 한 번의 부검으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 주길 바라죠. 물론 소설 쓰듯 지어내면 황당한 스토리도 만들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법의학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돼 있거든요. 법의 부검을 해본 일이 없는 의사들이 대충 쓱 보고 생각나는 대로 유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정말 화나요. 법의관은 프로입니다. 별다른 게 없어 보이는 교통사고 하나를 해석하기 위해 직접 차체를 들여다보고 교통분석과 연구관들과 회의를 해요. 부검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지는 거니까요.”
칼보다 천 배는 무거운 펜
메스로 머리를 한바퀴 돌려나가자 생각보다 쉽게 벗겨진 두피 아래로 두개골이 드러난다. 톱질이 시작됐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힘이 부친 연구사들이 교대로 톱을 잡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두개골이 열렸다.
하얀 경뇌막을 걷어내자 누런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뇌를 들어내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이 순서에 따라 척척 진행되는 부검. 목관절을 살피던 연구사의 한마디가 무거운 침묵을 깬다.
“골절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부검팀의 표정이 달라졌다. 연구사가 들고 있는 뼛조각을 한참 동안 살피던 이한영 과장이 입을 열었다.
“골절은 아니야. 간혹 발견되는 기형의 일종인데,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모르니까 사진 찍어두세요. 이따가 다시 얘기해 보자고. 자, 더 봐야 할 것 있습니까? 없으면 그만 끝냅시다.”
이과장의 말에 따라 봉합이 시작됐다. 흉골판을 다시 잘 닫고 피부를 덮은 뒤 가슴부터 바느질을 하는 작업과, 두개골을 닫고 두피를 봉합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익숙한 손길만이 낼 수 있는 속도였다. 순식간에 봉합을 마친 연구사들이 사체를 닦아내고 방수포를 덮었다. 왔던 길 그대로, 사체는 냉장실을 거쳐 앰뷸런스에 실렸다. 썰렁한 대기실에서는 유족들이 멍한 표정으로 TV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회의가 열렸다. 흩어져 있던 법의관들이 각자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회의실에 모였다. 대부분의 부검은 논란 없이 종결되지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1%가 부검의를 괴롭힌다. 이럴 때 부검의는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각 대학 법의학 교실에 흩어져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배 법의관들에게 도움말을 듣는다. 방안 가득 쌓여 있는 외국 서적이나 저널은 물론 인터넷도 뒤져야 한다.
사체 하나를 부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봐야 두 시간 남짓이지만, 감정서 작성에는 두 달이 걸리는 수도 있다. 펜을 드는 것이 메스를 드는 것보다 천 배는 더 무겁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견을 나눈다 해도 사람에 따라, 그동안 경험한 케이스 차이에 따라 의견이 나뉘면, 끝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훈 중위,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 등 ‘법의학자들끼리 싸운다’며 사회적 시선을 모은 사건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뒤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뇌성마비 1급 장애아인데요, 뇌의 3분의 1이 없습니다. 뇌경막과 우측 두개골 사이에 또 다른 뇌경막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 안에는 누런 점액만 가득하고요. 사인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인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이 사체 부검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양경무 법의관이 사진을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 난민처럼 비쩍 마른 팔다리로는 나이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죽은 아이의 나이는 열 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다른 법의관들이 하나 둘씩 의견을 제시한다.
“누런 점액의 성분은 뭐예요? 분석 결과 나왔어요?”
“아직 안 나왔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인 것은 확실한데 사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일단 분석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양선생 생각은 어때요?”
“저도 일단 분석 결과를 받아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검은 곧 인권’
법의관이 작성한 부검감정서는 의뢰기관에 발송되기 전에 법의학 과장과 부장의 결재를 거친다. 결재 과정에서 성급한 결론이나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바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지적일 뿐, 최종 결정권은 사체를 직접 부검한 담당자에게 있다.
과장이나 부장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경우 담당 법의관에게 재검토를 지시할 수 있다. 담당자의 견해가 확고부동할 경우 전체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이후에도 담당자가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면 그대로 최종 감정서가 발송된다. 대신 부검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감정서에 서명을 한 담당 법의관이 진다. 감정서에는 과장이나 부장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사진이나 자료를 본 선배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실체를 보았던 부검의라는 판단 때문이다.
“감정은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대우 받을 수 있는 최후의 절차입니다. 누군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부검이니까요. 거꾸로 잘못된 부검은 결백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확신할 수 있는 것만을 기록할 수밖에요. ‘부검은 곧 인권’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부검의들의 심경은 재판정에 선 판사의 그것과 비슷할 겁니다.”
경력 14년, 4000여 건의 부검을 집도한 이원태 법의학 부장의 말이다.
부검을 오래 한 법의학자들은 대부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을 한두 개씩은 갖고 있다. 이부장의 경우 1989년 5월 발생한 조선대생 이철규씨 변사사건이 그랬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중이던 이씨는 얼굴이 검게 변색된 처참한 모습으로 광주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됐다. 2년차 법의관이었던 이부장은 이 사건의 부검을 맡으면서 ‘실족사냐 타살이냐’의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
“시위 학생들이 건물 밖에 몰려든 상황에서 부검을 하는데, 메스 끝이 덜덜 떨리더군요. 장기 내부의 플랑크톤 검출 결과 등을 종합해 익사라고 결론지었지만 외력에 의한 것인지 실족사인지는 확정할 수 없었습니다.”
신의 영역 1%
그 사건을 통해 이부장은 부검의에게는 부검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사체의 진실을 둘러싼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죽음의 종류를 단정지을 수 없을 때 부검의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비난에 맞서, 부검도 신의 영역에 속하는 1%는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완전 범죄를 할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창호지에 물을 적셔서 영아의 입과 코에 붙여두면 흔적 없이 살인할 수 있습니다. 만취한 사람을 벽에 대고 가슴을 밀면 역시 죽을 수 있지만 부검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케이스를 만나면 만날수록 얄팍한 과학의 한계가 두렵고,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부검의가 진실을 감출 수 있다는 의심, 권력에 의해 감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의혹은 뿌리가 깊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국과수 법의학 과장으로 재직하던 황적준 박사(현 고려대 교수)가 경찰의 단순 쇼크사 발표를 뒤집고 진실을 폭로한 일은 국과수로서는 자랑스런 기억이자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법의관들은 그 사건 이후 국과수가 권력에 흔들린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명시적인 압력이 아니라도 기본 정보의 왜곡이나 선입견이 부검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때문에 국과수가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행정자치부 소속이다. 경찰관에게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듣거나 중요한 단서를 구두로 통보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고 회의해야 하는 것이 법의관의 원칙이라고 이부장은 말한다.
.
.
<생략> 앞으로 나갈 길 기타등등
.
.
==========================================================================
우리나라 검시제도와 은폐조작 논란
바로가기 http://cyplaza.cyworld.nate.com/10210/20070215185414087549
카페 정다빈사랑방 에서 퍼온글
바로가기 http://cyplaza.cyworld.nate.com/10210/20070217130114104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