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탄금대 전투.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대군을 이끌고 4월14일에 부산포에 상륙, 조선을 침략한 것이 임진왜란의 시작입니다. 왜군 제 1대 고니시 유키나가의 18700명의 군대는 부산진성,동래성을 파죽지세로 몰아 붙입니다. 이에 조선조정은 왜군의 규모가 거대함을 알고 급히 신립을 도순변사로,이일을 순변사로,류성룡을 도제찰사로 임명합니다. 이일이 상주로 내려가 적과 싸웠으나 결국 패퇴하게 됩니다. ... 신립은 충주에 내려와보니 당시 조선의 전략체계인 제승방략에 따라 8천의 군대가 모여 있었습니다. 신립은 부장들과 충주를 지킬까? 조령을 지킬까? 하며 의논했습니다. 종사관 김여물등이 적은 대군이고 우린 수가 적으니 산세가 험한 조령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적을 막자고 하였으나 신립은 군사들이 오합지졸이므로 전투가 벌어지면 흩어질 것을 염려,또한 우리의 주력이 기마이니 적을 넓을 벌판에서 쓸어야 한다며 결국 충주의 탄금대에서 달래강을 등 뒤로 한 배수진을 선택했습니다. 28일.고니시 유키나가군이 탄금대에 도착.일대 격전을 치루게 됩니다. 당시 신립부대의 주력이 기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왜군에게 그런 구식기병은 허수아비에 불과햇습니다. 바로 신무기 조총이 있었습니다. 물론 1렬로 서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면 충분히 왜적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조총은 화약과 총탄을 따로 장전하고 심지에 불까지 붙여야 했으니 장전시간은 오래 걸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전국시대를 걸쳐 단련되고 숙달된 군사들 입니다. 오다노부나가의 '3렬장전'의 진형에 의거 철포대가 3렬로 서서 1렬은 발사 2렬은 발사준비 3렬은 장전. 이런식으로 연사를 가했습니다. 신립은 전투중에 불리한 상황을 깨닫고 종사관 김여물에게 빠져 나가라고 했지만 김여물은 그 것을 거절하고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결국 조선군 8천은 궤멸됐고 신립은 달래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습니다. 이로써 충주 탄금대의 전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한양으로 진격하는 사실상 최대의 방어선이었던 충주가 무너지자 조선 조정은 파천을 서두르게 됩니다. (위 사진은 달래강 입니다.)1
임진왜란-충주-
충주 탄금대 전투.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대군을 이끌고
4월14일에 부산포에 상륙, 조선을 침략한 것이 임진왜란의 시작입니다.
왜군 제 1대 고니시 유키나가의 18700명의 군대는
부산진성,동래성을 파죽지세로 몰아 붙입니다.
이에 조선조정은 왜군의 규모가 거대함을 알고
급히 신립을 도순변사로,이일을 순변사로,류성룡을 도제찰사로 임명합니다.
이일이 상주로 내려가 적과 싸웠으나 결국 패퇴하게 됩니다.
...
신립은 충주에 내려와보니 당시 조선의 전략체계인
제승방략에 따라 8천의 군대가 모여 있었습니다.
신립은 부장들과 충주를 지킬까? 조령을 지킬까?
하며 의논했습니다.
종사관 김여물등이 적은 대군이고 우린 수가 적으니
산세가 험한 조령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적을 막자고 하였으나
신립은 군사들이 오합지졸이므로 전투가 벌어지면
흩어질 것을 염려,또한 우리의 주력이 기마이니
적을 넓을 벌판에서 쓸어야 한다며 결국 충주의 탄금대에서
달래강을 등 뒤로 한 배수진을 선택했습니다.
28일.고니시 유키나가군이 탄금대에 도착.일대 격전을 치루게 됩니다.
당시 신립부대의 주력이 기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왜군에게 그런 구식기병은 허수아비에 불과햇습니다.
바로 신무기 조총이 있었습니다.
물론 1렬로 서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면 충분히 왜적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조총은 화약과 총탄을 따로 장전하고 심지에 불까지 붙여야 했으니
장전시간은 오래 걸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전국시대를 걸쳐 단련되고 숙달된 군사들 입니다.
오다노부나가의 '3렬장전'의 진형에 의거
철포대가 3렬로 서서 1렬은 발사
2렬은 발사준비 3렬은 장전. 이런식으로 연사를 가했습니다.
신립은 전투중에 불리한 상황을 깨닫고
종사관 김여물에게 빠져 나가라고 했지만
김여물은 그 것을 거절하고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결국 조선군 8천은 궤멸됐고 신립은 달래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습니다.
이로써 충주 탄금대의 전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한양으로 진격하는 사실상 최대의 방어선이었던
충주가 무너지자 조선 조정은 파천을 서두르게 됩니다.
(위 사진은 달래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