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篆刻)이란 협의로는 인(印)을 각(刻)하는 것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완성된 인장(印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인의 문자를 대체적으로 전자(篆字)를 취택함으로써 흔히 전각이라고 일컫는데, 이 말은 실용의 범위에서 차원을 높여 예술적인 미감, 즉 금석기와 문자조형을 중시한 인장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양동 교수(대구 계명대 서예과)가 에서 밝힌 전각의 개념 정의다.
그의 인장에 대한 정의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印)은 치민수국(治民守國)하는 집정관의 진물(眞物)임을 확인하는 신표(信標)라는 뜻이다. 인의 사용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장과 전각에 대한 김양동 교수의 개념정의를 굳이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그것이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인장과 전각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도 먼저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장과 전각사를 그리는데 개념적 정의 없이 접근했다가는 잎이 나기도 전에 덩굴처럼 얽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장과 전각의 개념은 매우 다의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논지를 전개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정의와 내용도 조금씩 달라지고 그 기준도 조절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제대로 개념정의가 되지 않았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그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객관성 상실한 개념정의
2006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주최한 ‘조선왕실의 인장’ 특별전 도록에 쓴 김양동 교수의 를 보면 인장과 전각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를 찾기 힘들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글을 풀어가면서 밝혀질 것이다.)
물론 김양동 교수는 그 자신의 글에서 인장과 전각에 대해 개념 정의를 내렸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는 전각(篆刻)에 대해 ‘협의로는 인(印)을 각(刻)하는 것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완성된 인장(印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고, 인장에 대해 ‘인(印)은 치민수국(治民守國)하는 집정관의 진물(眞物)임을 확인하는 신표(信標)’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장은 관인과 사인이 실용목적일 때 인장으로 호칭하고, 원․명 이후 문인들의 실용 인장이 발전되어 서화예술과 결합되었을 때는 전각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그 나름대로(?) 구분한 기준은 ‘실용성과 예술성’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를 인장시대와 전각시대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인장과 전각을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나누는 것은 합당한가하는 점이며, 그런 기준에 대해 ‘일반적’이라는 표현은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인장․전각계에서 이런 기준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면 할 말이 없다. 과연 그럴까?
을 들춰보면 전각은 인장의 하위 목록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가 될 듯 하여 잠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금․은․동․옥․돌 ․․․ 등의 인재에 글씨․그림․문양 등을 조각하여 인주․잉크 등을 발라 찍음으로써 개인․단체를 증명할 수 있는 신물(信物)’
인장에 대한 정의를 한 후 그 아래로 인재, 전각, 금석, 서법에 대해 각기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전각은 ‘인면에 인문을 전사하고 포치하여 조각하는 것이다. 즉 전각은 일종의 인장을 제작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이 글은 한국전각학회 회장을 역임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이 쓴 것이다.
모순에 부딪친 개념정의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김양동 교수는 전각이 인장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며, 이들은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김응현은 전각은 인장의 하위개념임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실용성과 예술성은 인장과 전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김양동 교수의 주장이 옳다는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모순이 부딪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용목적일 때 인장으로, 서화예술과 결합되었을 때는 전각이란 그의 주장은 몇 가지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전각은 실용성이 없는가?
둘째, 인장은 예술성이 없는가?
셋째,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는 인장이나 전각은 불가능한가?
이런 의문에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다면 김양동 교수의 주장은 객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첫 번 째 모순부터 한번 살펴보자.
전각은 실용성이 없는가?
불행히도 전각은 매우 높은 실용적 성격을 띠고 있다. 먼저 서화가들이 작품에 낙성관지(落成款識)하는 이유에서부터 그 실용성을 말해준다.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후세에 한 작가의 작품이 진적인지, 위작인지를 가리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실용성인 것이다.
한(漢) 인장으로 공부하는 이유?
인장은 예술성이 없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성이 없는가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전각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범으로 익히는 것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
전각을 공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적인 학습경로는 한인(漢印)을 익힌 뒤 오창석 등 근대 중국전각가의 작품을 모각하거나 인각한다. 이 과정에서 한인은 전각예술의 범본(範本)으로 전해왔으며, 한인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국내의 전각가들에 의해 학습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인은 인장인가 전각인가?
인장이 예술성이 없다면 왜 예술(전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인장을 놓고 공부하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김양동 교수 자신도 낙랑의 인장을 평가하며 ‘한(漢) 대의 무전(繆篆)으로 단정 근엄하여 포만감 있고 혼후(渾厚)한 풍격을 지닌 표준적인 인풍’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인장이 비록 실용적 목적의 산물이긴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세 번 째 의문인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는 인장이나 전각은 불가능한가라는 부분에 대한 답은 저절로 유추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김양동 교수가 내놓은 인장과 전각에 대한 실용성과 예술성이란 기준은 잘못된 것이다.
김양동 교수에게 던지는 공개질의2 - <묵가 5월호 내용>-2회연재
< 문화평론가 김사민씨가 묵가 잡지에 기고한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 인장과 전각이란 무엇인가?
“전각(篆刻)이란 협의로는 인(印)을 각(刻)하는 것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완성된 인장(印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인의 문자를 대체적으로 전자(篆字)를 취택함으로써 흔히 전각이라고 일컫는데, 이 말은 실용의 범위에서 차원을 높여 예술적인 미감, 즉 금석기와 문자조형을 중시한 인장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양동 교수(대구 계명대 서예과)가 에서 밝힌 전각의 개념 정의다.
그의 인장에 대한 정의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印)은 치민수국(治民守國)하는 집정관의 진물(眞物)임을 확인하는 신표(信標)라는 뜻이다. 인의 사용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장과 전각에 대한 김양동 교수의 개념정의를 굳이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그것이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인장과 전각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도 먼저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장과 전각사를 그리는데 개념적 정의 없이 접근했다가는 잎이 나기도 전에 덩굴처럼 얽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장과 전각의 개념은 매우 다의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논지를 전개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정의와 내용도 조금씩 달라지고 그 기준도 조절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제대로 개념정의가 되지 않았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그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객관성 상실한 개념정의
2006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주최한 ‘조선왕실의 인장’ 특별전 도록에 쓴 김양동 교수의 를 보면 인장과 전각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를 찾기 힘들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글을 풀어가면서 밝혀질 것이다.)
물론 김양동 교수는 그 자신의 글에서 인장과 전각에 대해 개념 정의를 내렸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는 전각(篆刻)에 대해 ‘협의로는 인(印)을 각(刻)하는 것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완성된 인장(印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고, 인장에 대해 ‘인(印)은 치민수국(治民守國)하는 집정관의 진물(眞物)임을 확인하는 신표(信標)’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장은 관인과 사인이 실용목적일 때 인장으로 호칭하고, 원․명 이후 문인들의 실용 인장이 발전되어 서화예술과 결합되었을 때는 전각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그 나름대로(?) 구분한 기준은 ‘실용성과 예술성’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를 인장시대와 전각시대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인장과 전각을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나누는 것은 합당한가하는 점이며, 그런 기준에 대해 ‘일반적’이라는 표현은 올바른가 하는 점이다. 인장․전각계에서 이런 기준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면 할 말이 없다. 과연 그럴까?
을 들춰보면 전각은 인장의 하위 목록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가 될 듯 하여 잠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금․은․동․옥․돌 ․․․ 등의 인재에 글씨․그림․문양 등을 조각하여 인주․잉크 등을 발라 찍음으로써 개인․단체를 증명할 수 있는 신물(信物)’
인장에 대한 정의를 한 후 그 아래로 인재, 전각, 금석, 서법에 대해 각기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전각은 ‘인면에 인문을 전사하고 포치하여 조각하는 것이다. 즉 전각은 일종의 인장을 제작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이 글은 한국전각학회 회장을 역임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이 쓴 것이다.
모순에 부딪친 개념정의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김양동 교수는 전각이 인장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며, 이들은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김응현은 전각은 인장의 하위개념임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실용성과 예술성은 인장과 전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김양동 교수의 주장이 옳다는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모순이 부딪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용목적일 때 인장으로, 서화예술과 결합되었을 때는 전각이란 그의 주장은 몇 가지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전각은 실용성이 없는가?
둘째, 인장은 예술성이 없는가?
셋째,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는 인장이나 전각은 불가능한가?
이런 의문에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다면 김양동 교수의 주장은 객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첫 번 째 모순부터 한번 살펴보자.
전각은 실용성이 없는가?
불행히도 전각은 매우 높은 실용적 성격을 띠고 있다. 먼저 서화가들이 작품에 낙성관지(落成款識)하는 이유에서부터 그 실용성을 말해준다. 서화작품에서 낙관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후세에 한 작가의 작품이 진적인지, 위작인지를 가리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실용성인 것이다.
한(漢) 인장으로 공부하는 이유?
인장은 예술성이 없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성이 없는가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전각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범으로 익히는 것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
전각을 공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적인 학습경로는 한인(漢印)을 익힌 뒤 오창석 등 근대 중국전각가의 작품을 모각하거나 인각한다. 이 과정에서 한인은 전각예술의 범본(範本)으로 전해왔으며, 한인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국내의 전각가들에 의해 학습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인은 인장인가 전각인가?
인장이 예술성이 없다면 왜 예술(전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인장을 놓고 공부하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김양동 교수 자신도 낙랑의 인장을 평가하며 ‘한(漢) 대의 무전(繆篆)으로 단정 근엄하여 포만감 있고 혼후(渾厚)한 풍격을 지닌 표준적인 인풍’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인장이 비록 실용적 목적의 산물이긴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세 번 째 의문인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는 인장이나 전각은 불가능한가라는 부분에 대한 답은 저절로 유추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김양동 교수가 내놓은 인장과 전각에 대한 실용성과 예술성이란 기준은 잘못된 것이다.
殷商時代 고새의 인장 외모와 인면(古璽的印章外貌及印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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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각이 인장을 삼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