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이네요^^ 저에겐...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입니다.
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무척이나 긴 글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고, 이야기의 앞뒤가 없지만....
여러분이 읽어 주시건 안 읽어 주시건..이렇게라도 말해야지만
그 동안 답답한게 뚫릴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저는 현재 고2입니다.
제가 중3때 아버지께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그때 위암 판단을 받으셨습니다. //위암 2기 초....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저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부르시더군요.
"지금 아빠가 몸이 많이 안 좋은데 말이야... 병원가서 수술하면 괜찮아 질거래^^ 너무 걱정 하지말고 우리 힘내자"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화순 전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2005년 11월 11일 모두가 빼빼로 데이라며 즐거워 하고 있을때....
저는 학교에서 시험을 봤고, 아버지는 홀로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으셨으며, 어머니는 수술실 앞에 홀로 앉아 울기만 하셨답니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 적으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 쉬는 시간 마다 전화하고.... 시험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난 주말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말하고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몸상태가 안 좋으심에도 불구하고....
저한테 "어디 아픈덴 없고 잘 지내고 있니?"라며 제 걱정을 먼저 해주시더군요... 자신은 위암과 투병중이면서.. 자식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주시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집으로오셔서, 직장에는 출근 하지 못 하셨지만... 담배도 끊으시고, 술도 줄이시고, 매일 꾸준히 운동도 하시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해 나가셨습니다.
2006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외가댁에 방문하기위해 서울에 갔다가,
임진각 통일전망대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마지막 사진이였습니다.
3월초 고1이 되면서 야자를 하게 됐고... 아버지는 피곤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3~4번은 저희 학교앞에서 기다리시며 저를 데려가곤 하셨습니다. 놀토가 있는주말에는 금요일 저녁 저를 데리고 가까운 호프집에가셔서 술도 사주시고....[저희 부모님은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하는거라며, 남들이 뭐라 하시건 가끔 술도 사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말씀들도 해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말은.... "이 세상에서 변화를 제외하고 영원한것은 아무 것 도 없단다..." 이 말인거 같군요... 그말을 들으때는 전혀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3월 말쯤 정기 검진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화순 전대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오셨는데..이틀이 지나자 배가아프시다며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급하게 병원에 전화해서 며칠뒤로 예약을 하셨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병원에 가셨지만.... 담당의사란 인간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위암 수술을 한 환자가 겨우 그정도 복통도 못참고 쪼르르 달려왔습니까? 별 이상 없는거 같으니 돌아가시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오셨지만 아버지께서는 계속 고통을 호소하셔서 집근처 내과에 가보셨습니다.
내과에가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간쪽이 안 좋아 지신것 같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시죠"라고 하셨답니다... 화순전대병원에 갔다운지 이틀 만에 들은 소립니다. 그때 담당의사란 인간이 피검사 한번이라도해줬으면 미리 예방할수도 있었을거라고 판단합니다.
아버지는 다음날 저녁... 저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내셨습니다.
"아들.... 오늘은 아빠가 일이 있어서 데리러 못 갈것 같구나.. 미안하다."
저는 괜찮다고 답장을 보냈고, 야자가 끝나고 친구랑 집에 오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놀라지 말고 듣거라. 아빠가 다시 몸이 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왔는데, 간단한 검사 몇가지만 하고, 몇일만 있으면 퇴원해서 집으로 갈수 있을거래. 동생 잘 챙기고, 밥 잘먹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있으렴. 아빠가 약속하는데 금방 갈꺼야."
제 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화 통화한 내용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약속을 하시면 꼭 지키는 편이셨습니다. 술을 많이드시고 한 약속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지키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헌데 며칠뒤 어머니께 전화가 오더군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버지께서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2주가 지나고나서야... 아버지는 순천으로 내려오실수 있었습니다. 집근처 병원에 오신날 저는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야자를 빠진채 아버지의 병실로 향했습니다.
많이 좋아지셨으니까 집 근처로 내려오신거겠지...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채....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흐르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체격도 좋으신 편에 속하십니다. 키 180이 넘으시고 몸집도 좋으신 분인데.... 병실 침대위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제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였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든든한 후원군 역활을 해주시던 아버지가 아닌.... 초라하고, 지치고, 힘든 모습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속에서도 아버지는 저를 걱정 하시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모성애보다 더 한단계 위 인것은 부성애라고 생각 되더군요.
저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아버지 병실에 들렸고, 주말이면 아버지 병실에서 살다 시피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기에.....
그러던중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하실 얘기가 있으시다면서...
" 아버지가 많이 힘드 시다고,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고, 큰 병원에 있으면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 보다, 가족들과 같이 있고싶다고하셔서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신거다. 병원에서 말하는데... 오래 못 버티실것 같다더구나.... 예상 날짜는 5월5일이래..."
5월은 가정의 달.... 남들 다 행복해 할때 저는 슬프더군요, 왜 하필 5월인지, 담당의사란 인간은 왜 그렇게 환자에게소홀할건지...
드디어 5월달이 다가왔고, 저는 5월1일부터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마치면 병실로 달려가 시험공부를 했고, 아버지를 간호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5월4일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더고 하더군요... 저는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빠지려고했는데,,,, 담임샘 께서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께서 그걸 원치 않으신다는구나.... 친구들하고 함께 어울렸으면 하신대..." 저는 그 말을 듣고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내일 하는 와중에도 자식이 친고와 어울리며 밝은 모습을 보이길 바라시는 아버지....
저는 소풍에 가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잊고 놀자고 생각하고.... 놀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더군요... 7시쯤 병원으로 갔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앞으로는 일찍 일찍 다니고, 늦을거 같으면 미리 연락해라. 엄마가 걱정 하시더구나." 저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수 없었습니다.
5월5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씻는둥 마는둥 병원으로 향해... 하루종일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계속 링겔을 맞으셨는데..
링겔을 맞으시면서 하루종일 잠만 자셨습니다. 가끔 깨어나도 가장먼저 저희 가족을 챙기시고 자신은 뒷전 이신채.... 그렇게 하루를 넘겼습니다. 5월6일... 아버지와 저만 병실에 남게됬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구나.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이야...
아빠는 사실 정말 살고싶다. 간 이식을 해서라도... 어떻게해서든
살아서 우리 가족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다...아빠가 노력해서 꼭 병 을 털어버리고 일어나마, 약속할게.. " 라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5월7일 아빠는 하루종일 잠만 자셨습니다. 가끔 꿈을 꾸시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고, 가족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저는 옆에서 아버지의 손만 잡아드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해주시게 많으신데 저는 아버지께 해드릴수 있는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간신히 깨어나셔서 내일 학교에도 가야되고 시간 도 늦었으니 집에가서 일찍 자라고 하시면서 저와 동생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게 마지막 말이셨습니다.
잠자리에 들기전.... 아버지가 약속을 하셨으니 꼭 지킬거라고 생각한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결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병원에 있으셔야할 어머니가 왜 집에 계실까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어머니께 아버지에 대해 여쭸더니 학교에 전화하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습니다. 자고있는 동생을 깨워 병원에 있는 영안실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만 덩그러니 있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께 술을 올리고, 절을하고, 상주복으로 갈아 입고, 완장을 차고. 사람들이 오면 인사를하고.... 빈소를 지키는 3일동안 아무 생각없이 아버지 사진만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추억들을 생각하며....
아니.. 할수있는 일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어머니께 들은 얘긴데... 아버지께서는 임종때 저와 동생을 부르지 말라고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집에서 불과 7분 거린데....
새벽 1시가 넘어서 울며불며 병원으로 달려와 한없이 초라해지고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으셔서였을까요....?
빈소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습니다. 영안실 관리자분 께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빈소는 처음 본다며 아버지께서 참 좋으신 분이셨던거 같다는 소리를 하시더군요. 아버지를 본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관...
가족들이 모두 바라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관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애써 외면하며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수의가 그렇게 입고 싶어서 이렇게 빨리가냐고 오열을 하셨고, 가족들은 전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께 들은 소린데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위암 판단을 받으신뒤 본 표정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셨다고 합니다.
티벳 속담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났을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즐거워 하였다
내가 내몸을 떠날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울고 괴로워 하였다"
딱 맞는 말인것 같더군요.
마지막 발행.....
아버지의 친구분들께서 운구를 해주셔서 광양 영세공원에 도착하여 화장장으로 향했습니다.
관이 들어가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혼절 하시더군요. 붙잡아도 끌려들어가는 관....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덕이 돌아가는소리.... 30분쯤 흘렀을까요?
조용해 지기 시작하며 화덕의 문이 열렸읍니다. 나온것은 유골...
아버지께서는 간이 안좋아지심에 따라 황달을 겪으셨는데...
관리하시는 분께서 황달기가 있어서 유골이 노랗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골을 유골함에 담으려고 분쇄를 하는데... 사람의 몸이 자그마한 단지 안에 들어가는게 참 믿기지도 않더군요.
아버지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키고.... 마지막으로 제사를 지내고.... 동생을 이제 중학교1학년인데 어려서 그런지 모르는거 같더군요. 이제 아버지가 안계신다는걸...
그로부터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가끔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로 연락이 오는데... 술 한잔 드신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전화를 하십니다.
"뻔히 아는데... 목소리를 못 들을것도 아는데.... 나도 모르게 이 번호를 누르게되고... 전화를 하게 되더라구요.." 라며 전화를 하시고.
저에게 많은 말씀들을 해주십니다. 나중에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게 바르게 살라고....
주위 사람들의 위로속에 꿋꿋이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거짓말 이라는 것도 알게됬고... 한번에 지우는것보다 조금씩 천천히 지우는게 더 쉽다는것도 알게됐는데....
여전한건 사진을 볼때마다 뭔가 모르게 가슴이 막히는것과... 아버지와함께했던 장소들을 지나면 괜히 울컥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괜시리... 겉으로 괜찮은척 하면서 혼자 있게되면 미친듯이 웁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는 참 친구같은 분이셨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때는 저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자신의 얘기도 해주시고, 앞으로의 계획에대해 물어보기도 하시고 아버지의 목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참 행복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이제 벌써 1년이 흘렀네요.....
너무나 슬픈 어버이날입니다... 한번만 읽엊쉐요
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무척이나 긴 글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고, 이야기의 앞뒤가 없지만....
여러분이 읽어 주시건 안 읽어 주시건..이렇게라도 말해야지만
그 동안 답답한게 뚫릴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저는 현재 고2입니다.
제가 중3때 아버지께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그때 위암 판단을 받으셨습니다. //위암 2기 초....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저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부르시더군요.
"지금 아빠가 몸이 많이 안 좋은데 말이야... 병원가서 수술하면 괜찮아 질거래^^ 너무 걱정 하지말고 우리 힘내자"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화순 전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2005년 11월 11일 모두가 빼빼로 데이라며 즐거워 하고 있을때....
저는 학교에서 시험을 봤고, 아버지는 홀로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으셨으며, 어머니는 수술실 앞에 홀로 앉아 울기만 하셨답니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 적으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 쉬는 시간 마다 전화하고.... 시험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난 주말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말하고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몸상태가 안 좋으심에도 불구하고....
저한테 "어디 아픈덴 없고 잘 지내고 있니?"라며 제 걱정을 먼저 해주시더군요... 자신은 위암과 투병중이면서.. 자식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주시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집으로오셔서, 직장에는 출근 하지 못 하셨지만... 담배도 끊으시고, 술도 줄이시고, 매일 꾸준히 운동도 하시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해 나가셨습니다.
2006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외가댁에 방문하기위해 서울에 갔다가,
임진각 통일전망대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마지막 사진이였습니다.
3월초 고1이 되면서 야자를 하게 됐고... 아버지는 피곤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3~4번은 저희 학교앞에서 기다리시며 저를 데려가곤 하셨습니다. 놀토가 있는주말에는 금요일 저녁 저를 데리고 가까운 호프집에가셔서 술도 사주시고....[저희 부모님은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하는거라며, 남들이 뭐라 하시건 가끔 술도 사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말씀들도 해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말은.... "이 세상에서 변화를 제외하고 영원한것은 아무 것 도 없단다..." 이 말인거 같군요... 그말을 들으때는 전혀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3월 말쯤 정기 검진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화순 전대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오셨는데..이틀이 지나자 배가아프시다며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급하게 병원에 전화해서 며칠뒤로 예약을 하셨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병원에 가셨지만.... 담당의사란 인간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위암 수술을 한 환자가 겨우 그정도 복통도 못참고 쪼르르 달려왔습니까? 별 이상 없는거 같으니 돌아가시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오셨지만 아버지께서는 계속 고통을 호소하셔서 집근처 내과에 가보셨습니다.
내과에가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간쪽이 안 좋아 지신것 같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시죠"라고 하셨답니다... 화순전대병원에 갔다운지 이틀 만에 들은 소립니다. 그때 담당의사란 인간이 피검사 한번이라도해줬으면 미리 예방할수도 있었을거라고 판단합니다.
아버지는 다음날 저녁... 저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내셨습니다.
"아들.... 오늘은 아빠가 일이 있어서 데리러 못 갈것 같구나.. 미안하다."
저는 괜찮다고 답장을 보냈고, 야자가 끝나고 친구랑 집에 오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놀라지 말고 듣거라. 아빠가 다시 몸이 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왔는데, 간단한 검사 몇가지만 하고, 몇일만 있으면 퇴원해서 집으로 갈수 있을거래. 동생 잘 챙기고, 밥 잘먹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있으렴. 아빠가 약속하는데 금방 갈꺼야."
제 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화 통화한 내용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약속을 하시면 꼭 지키는 편이셨습니다. 술을 많이드시고 한 약속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지키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헌데 며칠뒤 어머니께 전화가 오더군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버지께서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2주가 지나고나서야... 아버지는 순천으로 내려오실수 있었습니다. 집근처 병원에 오신날 저는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야자를 빠진채 아버지의 병실로 향했습니다.
많이 좋아지셨으니까 집 근처로 내려오신거겠지...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채....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흐르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체격도 좋으신 편에 속하십니다. 키 180이 넘으시고 몸집도 좋으신 분인데.... 병실 침대위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제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였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든든한 후원군 역활을 해주시던 아버지가 아닌.... 초라하고, 지치고, 힘든 모습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속에서도 아버지는 저를 걱정 하시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모성애보다 더 한단계 위 인것은 부성애라고 생각 되더군요.
저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아버지 병실에 들렸고, 주말이면 아버지 병실에서 살다 시피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기에.....
그러던중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하실 얘기가 있으시다면서...
" 아버지가 많이 힘드 시다고,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고, 큰 병원에 있으면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 보다, 가족들과 같이 있고싶다고하셔서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신거다. 병원에서 말하는데... 오래 못 버티실것 같다더구나.... 예상 날짜는 5월5일이래..."
5월은 가정의 달.... 남들 다 행복해 할때 저는 슬프더군요, 왜 하필 5월인지, 담당의사란 인간은 왜 그렇게 환자에게소홀할건지...
드디어 5월달이 다가왔고, 저는 5월1일부터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마치면 병실로 달려가 시험공부를 했고, 아버지를 간호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5월4일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더고 하더군요... 저는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빠지려고했는데,,,, 담임샘 께서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께서 그걸 원치 않으신다는구나.... 친구들하고 함께 어울렸으면 하신대..." 저는 그 말을 듣고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내일 하는 와중에도 자식이 친고와 어울리며 밝은 모습을 보이길 바라시는 아버지....
저는 소풍에 가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잊고 놀자고 생각하고.... 놀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더군요... 7시쯤 병원으로 갔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앞으로는 일찍 일찍 다니고, 늦을거 같으면 미리 연락해라. 엄마가 걱정 하시더구나." 저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수 없었습니다.
5월5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씻는둥 마는둥 병원으로 향해... 하루종일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계속 링겔을 맞으셨는데..
링겔을 맞으시면서 하루종일 잠만 자셨습니다. 가끔 깨어나도 가장먼저 저희 가족을 챙기시고 자신은 뒷전 이신채.... 그렇게 하루를 넘겼습니다. 5월6일... 아버지와 저만 병실에 남게됬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구나.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이야...
아빠는 사실 정말 살고싶다. 간 이식을 해서라도... 어떻게해서든
살아서 우리 가족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다...아빠가 노력해서 꼭 병 을 털어버리고 일어나마, 약속할게.. " 라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5월7일 아빠는 하루종일 잠만 자셨습니다. 가끔 꿈을 꾸시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고, 가족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저는 옆에서 아버지의 손만 잡아드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해주시게 많으신데 저는 아버지께 해드릴수 있는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간신히 깨어나셔서 내일 학교에도 가야되고 시간 도 늦었으니 집에가서 일찍 자라고 하시면서 저와 동생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게 마지막 말이셨습니다.
잠자리에 들기전.... 아버지가 약속을 하셨으니 꼭 지킬거라고 생각한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결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병원에 있으셔야할 어머니가 왜 집에 계실까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어머니께 아버지에 대해 여쭸더니 학교에 전화하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습니다. 자고있는 동생을 깨워 병원에 있는 영안실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만 덩그러니 있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께 술을 올리고, 절을하고, 상주복으로 갈아 입고, 완장을 차고. 사람들이 오면 인사를하고.... 빈소를 지키는 3일동안 아무 생각없이 아버지 사진만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추억들을 생각하며....
아니.. 할수있는 일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어머니께 들은 얘긴데... 아버지께서는 임종때 저와 동생을 부르지 말라고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집에서 불과 7분 거린데....
새벽 1시가 넘어서 울며불며 병원으로 달려와 한없이 초라해지고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으셔서였을까요....?
빈소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주셨습니다. 영안실 관리자분 께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빈소는 처음 본다며 아버지께서 참 좋으신 분이셨던거 같다는 소리를 하시더군요. 아버지를 본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관...
가족들이 모두 바라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관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애써 외면하며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수의가 그렇게 입고 싶어서 이렇게 빨리가냐고 오열을 하셨고, 가족들은 전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께 들은 소린데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위암 판단을 받으신뒤 본 표정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셨다고 합니다.
티벳 속담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났을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즐거워 하였다
내가 내몸을 떠날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울고 괴로워 하였다"
딱 맞는 말인것 같더군요.
마지막 발행.....
아버지의 친구분들께서 운구를 해주셔서 광양 영세공원에 도착하여 화장장으로 향했습니다.
관이 들어가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혼절 하시더군요. 붙잡아도 끌려들어가는 관....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덕이 돌아가는소리.... 30분쯤 흘렀을까요?
조용해 지기 시작하며 화덕의 문이 열렸읍니다. 나온것은 유골...
아버지께서는 간이 안좋아지심에 따라 황달을 겪으셨는데...
관리하시는 분께서 황달기가 있어서 유골이 노랗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골을 유골함에 담으려고 분쇄를 하는데... 사람의 몸이 자그마한 단지 안에 들어가는게 참 믿기지도 않더군요.
아버지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키고.... 마지막으로 제사를 지내고.... 동생을 이제 중학교1학년인데 어려서 그런지 모르는거 같더군요. 이제 아버지가 안계신다는걸...
그로부터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가끔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로 연락이 오는데... 술 한잔 드신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전화를 하십니다.
"뻔히 아는데... 목소리를 못 들을것도 아는데.... 나도 모르게 이 번호를 누르게되고... 전화를 하게 되더라구요.." 라며 전화를 하시고.
저에게 많은 말씀들을 해주십니다. 나중에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게 바르게 살라고....
주위 사람들의 위로속에 꿋꿋이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거짓말 이라는 것도 알게됬고... 한번에 지우는것보다 조금씩 천천히 지우는게 더 쉽다는것도 알게됐는데....
여전한건 사진을 볼때마다 뭔가 모르게 가슴이 막히는것과... 아버지와함께했던 장소들을 지나면 괜히 울컥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괜시리... 겉으로 괜찮은척 하면서 혼자 있게되면 미친듯이 웁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는 참 친구같은 분이셨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때는 저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자신의 얘기도 해주시고, 앞으로의 계획에대해 물어보기도 하시고 아버지의 목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참 행복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이제 벌써 1년이 흘렀네요.....
담당의사란 인간은 행복한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 시간을 할애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