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잇는 남자

최진환2007.05.21
조회21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였다.

 

어머니를 따라 이사오면서 학교를 옮기게 된게 이때였다.

 

내 기억에 따르면 나란 키작고 빈혈이 심한 어린 꼬마였던것 같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그들보다 돋보이고싶은 생각이 강했다.

 

그런 내게 한가지 무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사온 집은 깊은 산 한자락에 있었기에 친구들과 노는 일은

 

제한되었고, 더구나 컴퓨터라는 녀석과 조우하게 된 것은

 

5학년이 되어서야 되었기에 내게 친구란 책뿐이었다.

 

그나마도 있던 책들은 300쪽가량의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세계명작전집이라던지, 비슷한 분량의 삼국지, 사기등의 책들뿐.

 

하지만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나는 그들을 읽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글에 대한 매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눅눅한 책의 알싸한 감촉과 익숙한 책내음,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끌었던 작가들의 위대한 세계는 어린 나의

 

세계를 넓게 열어주는 좋은 선생님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여기서 얻은 가르침을 따라 글을 썼고,

 

이것은 내 자존심을 세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초등학교 2년 반동안 글쓰기로 받은 상장이 2~30여장이었고,

 

중학교때도 그에 못지않은 실적을 올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학교때는 라이벌이었던 한 여자애덕에 많이 막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전국대회에 출품한 작품덕에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이 조금 달라진 것은 고2를 지나며였다.

 

학기초였을 것이다.

 

우연치않게 동시에 글 두개가 외부대회에서 당선되어

 

10만원이라는 짭잘한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한참 밴드생활을 하면서 품위유지비가 못내 아쉬웠던 내게

 

이 10만원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 10만원은 내게 글쓰기에 새로운 도전을 주었다.

 

바로,, 용돈벌기였다.

 

물론 학교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대회도 많이 나갔다.

 

하지만 이제 내게 가장 이상적인 대회는 외부에서 주관하는 대회다.

 

학교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대회는 매우 짜다.

 

아무리 잘써도 상장에 도서상품권, 더하면 책에 올리는 정도..

 

하지만 외부는 지갑을 아주 쉽게 연다.

 

실적에 따라 그냥 지급을 해준다.

 

이처럼 관대하고 자애로운 이들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래서 고2때부터는 가능하면 외부로 많이 나갔고,

 

고2말에 드디어 전국규모의 대회에서 입상하는 실적도 올렸다.

 

물론.. 그 모든 상금은 매우 유용하게 잘 쓰여졌다.

 

 

잠깐 글을 쓴다는 것이 심각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고3,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모를 어둠속을 방황하던 어느 때에,

 

평소 나를 아껴주시던 시인 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 분께서

 

글쓰는 것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문예창작과를 추천하신 것이다.

 

덩달아 같이 놀던 한 친구가 영화제작과로 마음을 정하면서

 

나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물론, 결국 선택한 것은 신학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가 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떤 삶이 펼쳐지고 있을까

 

생각해보며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대학교에 오면서 글을 쓰는 양이나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이제는 학교에서 주던 대회나 용돈벌이용 대회도 없을 뿐더러,

 

솔직히 글쓰는 것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20살이었다.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을 때.

 

나는 글쓰는데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 자체가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글을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레포트를 위해 매주 써야하는 때가 있기도 했으니까.

 

 

요즘은 자꾸만 글이 쓰고싶다.

 

하지만 예전처럼 신선한 글감도, 감성적인 문체도 안나온다.

 

가끔은 써놓고 바로 찢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글쓰는게 자못 힘들기까지 하다.

 

하지만, 또 어느 한편으로는 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글을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 내게 글짓기는

 

글을 잇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시작이 어렵지만, 막상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글들이 이어지는 느낌이 재밌다.

 

그러면서 쓰고싶어하는 장르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논설, 비평, 또 선생님은 극구 반대하셨던 시를 썼다면

 

요즘은 이야기를 쓰고싶다.

 

그냥, 이어지고 이어지는 글이 재밌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렸을 때, O.헨리의 단편집을 읽으며 참 거저먹는 책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아주 절실히 거저먹는게 아님을 느낀다.

 

그리고 또 예전에는 한번 글을 쓰고나면 내 글이라는 느낌이

 

없었는데, 요즘은 그 글 자체가 나인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글을 씀에도 신중해지는 것 같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강대상에 걸터앉아 내가 지은 동화를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런 목사님이 되고싶다.

 

이야기꾼 목사님, 얼마나 멋있는가.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비록, 나 자신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졸작이 열개중 아홉이라 해도,

 

사람들에게 감동줄 수 있는 한편을 위해 펜을 잡는다.

 

 

삶을 한편의 소설처럼 아름답게 풀어갈 줄 아는 사람.

 

내 삶의 로맨티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