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랑, 버버리가 젊어졌다

RAINBOW COW2007.07.25
조회173

영국의 사랑, 버버리가 젊어졌다

 

영국의 사랑, 버버리가 젊어졌다


 

영국의 사랑, 버버리가 젊어졌다


 


버버리의 상징이 된 흑백 광고


패션, 블랙을 사랑하다


영국인들 "버버리 너마저.."

 


지난 2월 14일 영국 런던을 비롯한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의 버버리(Burberry) 매장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영국 웨일스에 있는 버버리의 트레오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걸 반대하는 시위였다. 버버리의 한 매장 앞엔 버버리 머플러를 두른 10여명이 “버버리를 영국제로 놔두라(Keep Burberry British)”고 쓴 피켓을 들고 나타났고, 런던 본사엔 “버버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쓴 대형 밸런타인 카드가 배달됐다. 유럽 의회의 영국 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보낸 것이었다.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운동엔 각계 각층의 사람이 힘을 모았다.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 가수 톰 존스, 영화배우 마이클 신과 에마 톰슨…. 영국 왕실의 찰스 왕세자까지 공감을 표했다.

인건비 등 제작단가를 감안해 공장을 동유럽이나 중국 등지로 옮기는 것은 요즘 럭셔리 브랜드의 추세다. 버버리도 이미 동유럽 등 해외에서 여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데 유독 영국에 있는 버버리 공장 폐쇄가 문제시되는 건 왜일까.

버버리는 영국인 사이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브랜드’다.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 민주주의와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800년대 말 에드워드 7세 왕을 비롯해 윈스턴 처칠 전 수상,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왕세자 모두 버버리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버버리는 1955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왕실 납품권(Royal Warrant)을 수여받았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캐서린 헵번, 제인 폰다, 더스틴 호프만 같은 미국 할리우드 배우도 버버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 유명해져서 고객층이 넓어진 게 오히려 문제였다. 버버리가 100년 넘게 고수한 일정한 패턴의 체크무늬는 짝퉁업자에게 쉽게 베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값싼 취향의 젊은이들이 버버리의 체크무늬 모자를 흉내낸 짝퉁 모자를 즐겨 쓰자 버버리는 아예 이 모자 생산을 중단했다. 오늘날 버버리의 성장을 이끌어낸 체크 무늬와 트렌치 코트는 여전히 인기였지만 고객은 ‘그 다음’을 원했다. 1856년 조그만 포목점으로 시작된 버버리의 변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버버리코리아의 프레스 룸. 얼마 전 문을 연 이곳의 한쪽 벽엔 지난 겨울 밀라노에서 열린 버버리 F/W 컬렉션 영상물이 흐르고 있었다. 새틴과 밍크 소재의 패딩 코트, 보들보들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은 모델이 캣 워크(무대 위에서 걷는 모습)를 하고 있었다.

넓은 홀에 진열돼 있는 핸드백과 구두, 옷에선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 가을·겨울 컨셉트는 은근한 섹시미와 강한 여전사를 내세운 ‘중세(Medieval)’. 뾰족한 실버 장식이 달린 백 이름도 ‘더 나이트(The Knight·기사)’다. 달리는 말을 탄 기사 그림과 ‘Burberry established 1856’라 새겨진 남성용 가죽 가방과 ‘페이턴트 레더’라 불리는 에나멜 백이 놓여있었다.

깎은 밍크로 모양을 낸 패딩 코트, 뱀피를 퀼팅해서 만든 트렌치 코트, 옷핀 수백 개를 이어붙인 ‘작품’ 같은 옷도 걸려 있었다. 버버리의 체크무늬는 ‘더 나이트’라는 이름의 백 안쪽에 살짝 보일 뿐이었다.

버버리의 1차 변신은 1997년 로즈 마리 브라보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미국 메이시(Macy) 백화점에서 20년 가까이 구매 담당 등으로 일했고 삭스(Saks) 백화점 CEO를 7년간 역임한 패션가 베테랑이었다. 아이디어가 발랄한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유명 패션 사진작가와 수퍼모델을 내세운 뒤 낡고 남성 중심적인 이미지를 여성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모든 광고 캠페인은 블랙&화이트로 바뀌었다.


2001년 들어선 구찌와 도나 카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영입했다. 서른다섯 살이 채 안된 젊은 디자이너가 150년 역사의 ‘버버리 제국’을 맡게 됐다. ‘프로섬(Prorsum·라틴어로 ‘전진’이란 뜻)’이라는 라인도 이때 나왔는데, 런던 컬렉션이 아니라 밀라노 컬렉션에서 첫선을 보인 점도 독특하다.

2002년 성장세가 주춤하자 체크무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컨셉트를 세련되게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어 지난해 앤젤라 배런이란 새 CEO가 취임한 뒤 버버리는 수익률이 높은 핸드백, 신발, 아이웨어 같은 액세서리 라인을 공략하고 있다.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보면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요즘 버버리 광고 캠페인엔 머리를 바짝 깎은 강하면서도 섹시한 여성 모델과 반항아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성 뮤지션이 대거 등장한다. 모두가 젊고, 모두가 영국인이다. 고급스럽고 모던한 ‘프로섬’ 라인은 물론 ‘런던 컬렉션’ 라인과 ‘라이프 스타일’ 라인이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일관된 메시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지난해 버버리의 주가는 51%나 뛰었다. 2002년 기업공개 때에 비하면 두 배 가까운 성장이라고 한다. 1990년대 말 4억9700만달러에 이르던 매출액은 최근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버버리 코리아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얼마 전 문을 연 여주의 신세계 첼시 아웃렛에서 가장 매출액이 높은 브랜드도 버버리라고 한다. 버버리코리아의 윌리엄 킴 사장은 “개버딘을 처음 개발한 고품질 실용주의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 힘이 프로섬 라인을 중심으로 뻗어나갈 것”이라며 “폴로셔츠 같은 라이프 스타일 라인도 함께 갖고 갈 것”이라고 했다. ▒
 

버버리 코트

1차 대전 때 개발한 전투용 코트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로

1856년 토머스 버버리는 영국 햄프셔 배싱스트로크에 작은 포목점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버버리’란 이름이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후 버버리는 농부나 목동을 위해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직물을 개발했다. ‘개버딘’이란 옷감이다.


버버리 개버딘 코트의 품질이 영국 왕실에까지 알려졌다. 에드워드 7세는 이 코트를 입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내 버버리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1911년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최초로 남극 탐험을 할 때 동료 탐험가에게 알리기 위해 ‘버버리 개버딘’으로 만든 텐트를 남극에 두고 왔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장교들이 50만벌의 버버리 개버딘 코트를 입었다. 전쟁사령부는 버버리 회사에 전투용 코트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수류탄과 지도, 탄약통이 든 가방을 갖고 다닐 수 있도록 D형 고리가 생겨났고 쌍안경과 가스 마스크를 고정시키기 위해 어깨 견장도 추가됐다. 오른쪽 가슴에 덧단을 댄 것은 장총을 쓰다가 개머리판이 닿아 원단이 마모되는 걸 줄이도록 한 것이다. 참호(trench)에서 입는 옷이란 뜻의 ‘트렌치코트(Trench Coat)’의 시작이었다. 실버 장식물을 붙이거나 밍크나 패딩 소재를 쓰는 등 트렌치코트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 http://town.cyworld.com/rainbowc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