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널리 통용되어 이의 없이 공인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시샘이라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인 듯하다.
우리는 그런 시샘이 보통 사람으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통속의 감정일 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그 속담의 비악의성(非惡意性)을 서로가 인정해주고 있다.
하긴 그리스의 고대 신화에서 신(神)들 사이의 다툼은 대개 서로의 시샘에서 비롯하고, 기독교의 성경에서는 아예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공언하고 있기까지 하니,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야 시샘이 당연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악(善惡)과는 무관한 이유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곧 번뇌임을 모르는 무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도 시샘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기억하지 않고 주로 남에게서 시샘을 받은 적이 있음만을 기억하면서, 자기는 시샘의 피해자라고 믿기 일쑤이다. 물론 자신에게도 사소한 시샘이 있긴 하지만, 그 시샘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정도의 특별한 이유 없는 통속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우리의 일상 의식에 비추어볼 때, 시샘이란 이유없이 노여워하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에서 파생하며 탐착하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불교에서는 이런 시샘을 질(嫉)이라는 이름의 번뇌라고 한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타인의 성취에 대해 자신의 마음이 교란되는 것을 말하며,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나 불유쾌 등의 감정인 진(瞋)이라는 근본번뇌에 속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재산과 명예에 탐닉하는 자가 타인의 훌륭한 성공에 대해 참지 못하는 마음의 노여움을 말한다.
그러나 여러 경전에서 설하듯이, 시샘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일 뿐이다. 상대방과 비교되는 자신의 소유물이나 명예 등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그런 불편한 심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타인의 성공은 진정 축하해야할 일로써 자신의 성취의욕과 노력을 고취하는 계기로 삼아야 될 것이다.
우리가 시샘하는 번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스스로 만들어낸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지만 시샘이 경쟁심리를 유발함으로써 자기의 발전으로 이끈다고 생각하여 시샘의 긍정적인 효능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기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기대심리는 결코 시샘의 소산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보아 시샘은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이 일종의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시샘은 자신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추락을 기대하면서 자기의 정서를 어지럽힌다. 시샘하는 그 불편하고 교란된 심기에 갇혀있는 한은 자기 발전을 도모할 생각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다른 곳에 발산할 자신의 정열을 부질없는 시기로 소진할지언정 상대방의 성공을 자신이 능가해야 할 모범 사례로 인정할 만한 포용력이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샘
인간의 시샘
계환 스님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널리 통용되어 이의 없이 공인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시샘이라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인 듯하다.
우리는 그런 시샘이 보통 사람으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통속의 감정일 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그 속담의 비악의성(非惡意性)을 서로가 인정해주고 있다.
하긴 그리스의 고대 신화에서 신(神)들 사이의 다툼은 대개 서로의 시샘에서 비롯하고, 기독교의 성경에서는 아예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공언하고 있기까지 하니,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야 시샘이 당연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악(善惡)과는 무관한 이유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곧 번뇌임을 모르는 무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도 시샘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기억하지 않고 주로 남에게서 시샘을 받은 적이 있음만을 기억하면서, 자기는 시샘의 피해자라고 믿기 일쑤이다. 물론 자신에게도 사소한 시샘이 있긴 하지만, 그 시샘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정도의 특별한 이유 없는 통속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우리의 일상 의식에 비추어볼 때, 시샘이란 이유없이 노여워하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에서 파생하며 탐착하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불교에서는 이런 시샘을 질(嫉)이라는 이름의 번뇌라고 한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타인의 성취에 대해 자신의 마음이 교란되는 것을 말하며,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나 불유쾌 등의 감정인 진(瞋)이라는 근본번뇌에 속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재산과 명예에 탐닉하는 자가 타인의 훌륭한 성공에 대해 참지 못하는 마음의 노여움을 말한다.
그러나 여러 경전에서 설하듯이, 시샘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일 뿐이다. 상대방과 비교되는 자신의 소유물이나 명예 등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그런 불편한 심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타인의 성공은 진정 축하해야할 일로써 자신의 성취의욕과 노력을 고취하는 계기로 삼아야 될 것이다.
우리가 시샘하는 번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스스로 만들어낸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지만 시샘이 경쟁심리를 유발함으로써 자기의 발전으로 이끈다고 생각하여 시샘의 긍정적인 효능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기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기대심리는 결코 시샘의 소산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보아 시샘은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이 일종의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시샘은 자신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추락을 기대하면서 자기의 정서를 어지럽힌다. 시샘하는 그 불편하고 교란된 심기에 갇혀있는 한은 자기 발전을 도모할 생각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다른 곳에 발산할 자신의 정열을 부질없는 시기로 소진할지언정 상대방의 성공을 자신이 능가해야 할 모범 사례로 인정할 만한 포용력이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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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하면 질투가시작되고,이별을하면 집착이시작된다』
시샘-질투-집착
내가 싫어하는 단어들.
흉측하고발칙하고망측한이것들-이를 극복하는방법은..없을까?
ㅇ ㅏ 정말시러-!!!!!!내가그래도싫구,너가그래도싫어~
누구든,저놈들앞에서무릎꿇는다면예외될순없어.
나있잖아 정말이지,정말정말쟤네들너무싫어ㅠ.ㅜ
너죽고나죽고어디한번해바??????????
덤빌테면덤벼보라해!!!!!!!!!!!!!!!!!!!!!!!!!!!!
구겨구겨마구찢고구겨서쓰레기통에버려버릴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