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훈단 당시 보기는 했지만 그땐 왠지 강박관념이라고 할까요? 제대로 보지 못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시간이 남아 영화 I am Sam을 봤습니다.
7살 짜리 '아이 어른'인 샘과 라베카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리고 맙니다. 홀로 아이와 남겨진 샘은 아이의 이름을 '루시 다이아몬드 도슨'이라 지으며 아이를 극진히 키웁니다.
시간이 지나 7살이 되어버린 루시는 아버지보다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까봐 학업을 게을리 합니다. 그러자 사회복지 기관에서 방문을 하고 양육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설로 옮겨지게 되고 딸을 되찾기 위한 샘의 노력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제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삶 그 자체였고 충분히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딸에게 지겹도록 읽어주는 책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딸이 식상해할까봐 다른 책을 읽어줍니다. 한참을 읽어주던 샘은 다르다의 뜻인 'Different'를 읽지 못해 D... D... D... 라고 더듬습니다. 듣고 있던 루시가 'Different'라고 읽자 그는 맞아 하고는 멋쩍게 웃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 계속 읽어나갑니다. 헌데 어느 순간 루시가 읽질 않습니다. 그리고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읽어 나가라' '모르겠다'라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난 네가 읽어가는 것이 기쁘다라고 말하자 루시는 이내 책을 다시 읽어갑니다.
아빠가 자주 읽어주는 책 이름을 대며 그 책이 더 재밌다고 하자 샘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바뀌며 '나는 샘이야(I am sam)'이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딸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사랑하는 맘에 모르는 척 감싸주고 자신감을 얻게 하려는 생각이 묻어있고 또한 아버지는 "나는 괜찮으니 네가 희생할 필요없다" 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 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싶은 조건없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보호시설에서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샘은 변호인을 찾아갑니다. 변호인 리타는 엉겁결에 무료 변호를 맡고 재판에 임합니다. 재판에서 아무리 변호를 잘해도 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양육 부적합 판정을 받고 딸과 헤어지게 됩니다.
하루하루 샘은 여러가지 일들을 하며 딸이 안보이는 먼 발취에서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좋은 삶을 주고 싶어서 딸을 되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타는 그가 포기하지 않길 원합니다. 편견과 맞서 싸우라고 자신감을 북돋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기 싫은 마음에 샘은 다시 결심하고 꾸준히 연습합니다. 재판대에 선 샘은 말합니다. (변호인과)
아버지로서 저는 저를 존경합니다.
당신은 일곱 살 지능에 불과합니다. 뭘 보고 능력이 있다는 거죠? (중략) 뭐로 7세 딸의 양육을 자신하죠? 10세, 13세가 되면요? 무슨 뜻인지 압니까? 당신보다 여섯 살 위가 되는겁니다. 어떻게 자신을 하는 거죠? 무엇으로 장담하죠? 무엇으로 장담합니까?
전... 수없이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게 어떤 건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부모는 한결 같아야 되며 동시에 인내해야 되며 들을 수 없는 상황에도 귀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루시의 말처럼 사랑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삽니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많이 잃고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행복을 쫓으며 그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남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합니다.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이와는 상관없는 답일지 모르지만 행복은 편견과 오만 없는 무차별적인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장애인이라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 하찮은 선긋기에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그렇게 어제부터 오늘까지 울었던 겁니다.
지금 여러분에 가슴 속에 누군가를 품고 계십니까?
사랑한다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용기가 없어 못하십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에 책임감이 따른다고요..
그렇죠.. 하지만 때론 머리가 주장하는 이성보다 가슴이 시키는 한마디가 옳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있게 말하려 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아직도 설레입니다.
그리고 그 설레임과 감동은 제 왼쪽 가슴을 적십니다.
기훈단 당시 보기는 했지만 그땐 왠지 강박관념이라고 할까요? 제대로 보지 못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시간이 남아 영화 I am Sam을 봤습니다.
7살 짜리 '아이 어른'인 샘과 라베카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리고 맙니다. 홀로 아이와 남겨진 샘은 아이의 이름을 '루시 다이아몬드 도슨'이라 지으며 아이를 극진히 키웁니다.
시간이 지나 7살이 되어버린 루시는 아버지보다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까봐 학업을 게을리 합니다. 그러자 사회복지 기관에서 방문을 하고 양육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설로 옮겨지게 되고 딸을 되찾기 위한 샘의 노력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제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삶 그 자체였고 충분히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딸에게 지겹도록 읽어주는 책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딸이 식상해할까봐 다른 책을 읽어줍니다. 한참을 읽어주던 샘은 다르다의 뜻인 'Different'를 읽지 못해 D... D... D... 라고 더듬습니다. 듣고 있던 루시가 'Different'라고 읽자 그는 맞아 하고는 멋쩍게 웃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 계속 읽어나갑니다. 헌데 어느 순간 루시가 읽질 않습니다. 그리고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읽어 나가라' '모르겠다'라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난 네가 읽어가는 것이 기쁘다라고 말하자 루시는 이내 책을 다시 읽어갑니다.
아빠가 자주 읽어주는 책 이름을 대며 그 책이 더 재밌다고 하자 샘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바뀌며 '나는 샘이야(I am sam)'이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딸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사랑하는 맘에 모르는 척 감싸주고 자신감을 얻게 하려는 생각이 묻어있고 또한 아버지는 "나는 괜찮으니 네가 희생할 필요없다" 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 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싶은 조건없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보호시설에서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샘은 변호인을 찾아갑니다. 변호인 리타는 엉겁결에 무료 변호를 맡고 재판에 임합니다. 재판에서 아무리 변호를 잘해도 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양육 부적합 판정을 받고 딸과 헤어지게 됩니다.
하루하루 샘은 여러가지 일들을 하며 딸이 안보이는 먼 발취에서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좋은 삶을 주고 싶어서 딸을 되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타는 그가 포기하지 않길 원합니다. 편견과 맞서 싸우라고 자신감을 북돋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기 싫은 마음에 샘은 다시 결심하고 꾸준히 연습합니다. 재판대에 선 샘은 말합니다. (변호인과)
아버지로서 저는 저를 존경합니다.
당신은 일곱 살 지능에 불과합니다. 뭘 보고 능력이 있다는 거죠? (중략) 뭐로 7세 딸의 양육을 자신하죠? 10세, 13세가 되면요? 무슨 뜻인지 압니까? 당신보다 여섯 살 위가 되는겁니다. 어떻게 자신을 하는 거죠? 무엇으로 장담하죠? 무엇으로 장담합니까?
전... 수없이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게 어떤 건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부모는 한결 같아야 되며 동시에 인내해야 되며 들을 수 없는 상황에도 귀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루시의 말처럼 사랑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삽니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많이 잃고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행복을 쫓으며 그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남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합니다.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이와는 상관없는 답일지 모르지만 행복은 편견과 오만 없는 무차별적인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장애인이라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 하찮은 선긋기에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그렇게 어제부터 오늘까지 울었던 겁니다.
지금 여러분에 가슴 속에 누군가를 품고 계십니까?
사랑한다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용기가 없어 못하십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에 책임감이 따른다고요..
그렇죠.. 하지만 때론 머리가 주장하는 이성보다 가슴이 시키는 한마디가 옳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있게 말하려 합니다.
I Love you so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