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11일의 민중총궐기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오가고 있다. 적극 민중총궐기를 조직하자는 의견부터 21세기 시대에 맞지 않는 폐기되어야 할 구식방법으로 치부하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의 혁명과정에서 대중투쟁은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베네수엘라, 민중투쟁으로 집권 가능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전 세계 진보역량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들은 자신들의 ‘볼리바리안 혁명’ 운동의 시원을 1992년 2월 4일에서 찾는다. 이 날 이후로 매년 2월 4일이면 그들은 대규모의 집회와 가두행진을 조직해서 전국을 붉은 티셔츠의 물결로 넘치게 한다. 올해 2월 4일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2월 4일은 어떤 날인가?
1992년 2월 4일은 차베스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쿠데타로 잘못 알려졌지만,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운동세력이 전민항쟁의 횃불을 밝힌 날이다.
1989년 2월, IMF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카라카소)에 대해 집권세력이었던 페레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서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은 민중들의 봉기를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상황은 결국 대량학살사태로 끝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에게 총을 쏘는 정권에 대해 베네수엘라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차베스를 중심으로 민간운동 세력과 일상적인 교감을 가져온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진작부터 계획하고 준비해온 전민항쟁을 결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를 결정했다. 항쟁이 성공했을 때는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새로운 민중공화국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마침내 1992년 2월 4일 군부 내의 혁명운동 세력은 전민항쟁의 횃불을 들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민간운동 세력들의 대부분이 거리로 나서지 않음으로 인해 항쟁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쿠데타가 되었다.
당시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1994년 감옥에서 나온 차베스는 자신이 건설한 혁명조직을 전국적으로 키워내고 ‘2월 4일’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98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했다. 대규모의 집회와 네 차례에 걸친 전국순회행진을 통해 민중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차베스는 역대 최다득표 및 최연소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성공적인 혁명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중남미에서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좌파정권의 도미노 집권이 대중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그리고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가 대통령 선거 승리를 통해 제헌의회 소집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결된 민중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2월 4일’ 운동을 시점으로 강력한 대중운동이 벌어졌다. 볼리비아에서는 노동자운동과 농민운동이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제국주의와 국내의 매판 자본가들에 부역하는 대통령 두 명을 연이어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강력한 연대를 구축했다. 그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콰도르 역시 지난 10년간 민중항쟁을 통해 여러 명의 매국적인 대통령을 끌어내린 대중투쟁의 결과로 라파엘 코레아를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대중투쟁이라야 가능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국가기구, 생산수단, 미디어를 자신들의 손에 틀어쥐고 물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총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총공세에 맞서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대중들의 투쟁 외에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대중투쟁의 혁명적 에너지 없이 부르주아식으로 표를 구걸하는 선거운동과 사민주의식 정책 나부랭이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내부에 이런 방식의 운동(?)으로 집권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우리 진보진영의 정책이 언제 훌륭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우리의 정책들은 저들의 그것보다 항상 우월했다. 우리 진보진영은 항상 민중들의 위한 정책,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해왔다. 민중들이 단지 정책의 우월성만으로 선거에서 지지를 표했다면 우리는 진작 집권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실이 보여주듯이 진실은 그렇지 않다.
11월 11일 진보진영이 모든 역량을 집결해서 민중총궐기를 조직하고 있다.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오히려 매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할 목표를 가지고 선거투쟁에 임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 무슨 부르주아식 선거운동이나 사민주의식 정책 나부랭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로 단결된 대중의 투쟁역량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공간에서 대중의 투쟁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선거투쟁 승리로 가는 진보진영의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만들 공화국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제시할 새로운 공화국의 비젼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새로운 공화국의 비젼은 그 무슨 사민주의식 정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총체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조해서 근로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하는 기획을 얘기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공약들이란 것이 한마디로 얘기하면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대중들은 당장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냐고. 근로대중들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필자가 베네수엘라 혁명에서 ‘제헌의회’와 ‘국유화’에 주요하게 관심을 두고 관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투쟁의 혁명적 에너지가 ‘새로운 민중공화국 건설’ 이라는 목표로 집중되었을 때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선거공간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의 좌파진영 선거승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정 세상을 바꾸려는가?, 길은 "거리"에 있다
** 11월 5일 에 기고한 글입니다 **
진정 세상을 바꾸려는가?, 길은 '거리'에 있다
베네수엘라와 중남미의 대선과 대중투쟁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11일의 민중총궐기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오가고 있다. 적극 민중총궐기를 조직하자는 의견부터 21세기 시대에 맞지 않는 폐기되어야 할 구식방법으로 치부하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의 혁명과정에서 대중투쟁은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베네수엘라, 민중투쟁으로 집권 가능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전 세계 진보역량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들은 자신들의 ‘볼리바리안 혁명’ 운동의 시원을 1992년 2월 4일에서 찾는다. 이 날 이후로 매년 2월 4일이면 그들은 대규모의 집회와 가두행진을 조직해서 전국을 붉은 티셔츠의 물결로 넘치게 한다. 올해 2월 4일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2월 4일은 어떤 날인가?
1992년 2월 4일은 차베스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쿠데타로 잘못 알려졌지만,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운동세력이 전민항쟁의 횃불을 밝힌 날이다.
1989년 2월, IMF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카라카소)에 대해 집권세력이었던 페레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서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은 민중들의 봉기를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상황은 결국 대량학살사태로 끝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에게 총을 쏘는 정권에 대해 베네수엘라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차베스를 중심으로 민간운동 세력과 일상적인 교감을 가져온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진작부터 계획하고 준비해온 전민항쟁을 결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를 결정했다. 항쟁이 성공했을 때는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새로운 민중공화국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마침내 1992년 2월 4일 군부 내의 혁명운동 세력은 전민항쟁의 횃불을 들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민간운동 세력들의 대부분이 거리로 나서지 않음으로 인해 항쟁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쿠데타가 되었다.
당시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1994년 감옥에서 나온 차베스는 자신이 건설한 혁명조직을 전국적으로 키워내고 ‘2월 4일’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98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했다. 대규모의 집회와 네 차례에 걸친 전국순회행진을 통해 민중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차베스는 역대 최다득표 및 최연소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성공적인 혁명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중남미에서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좌파정권의 도미노 집권이 대중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그리고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가 대통령 선거 승리를 통해 제헌의회 소집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결된 민중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2월 4일’ 운동을 시점으로 강력한 대중운동이 벌어졌다. 볼리비아에서는 노동자운동과 농민운동이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제국주의와 국내의 매판 자본가들에 부역하는 대통령 두 명을 연이어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강력한 연대를 구축했다. 그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콰도르 역시 지난 10년간 민중항쟁을 통해 여러 명의 매국적인 대통령을 끌어내린 대중투쟁의 결과로 라파엘 코레아를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대중투쟁이라야 가능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국가기구, 생산수단, 미디어를 자신들의 손에 틀어쥐고 물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총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총공세에 맞서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대중들의 투쟁 외에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대중투쟁의 혁명적 에너지 없이 부르주아식으로 표를 구걸하는 선거운동과 사민주의식 정책 나부랭이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내부에 이런 방식의 운동(?)으로 집권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우리 진보진영의 정책이 언제 훌륭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우리의 정책들은 저들의 그것보다 항상 우월했다. 우리 진보진영은 항상 민중들의 위한 정책,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해왔다. 민중들이 단지 정책의 우월성만으로 선거에서 지지를 표했다면 우리는 진작 집권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실이 보여주듯이 진실은 그렇지 않다.
11월 11일 진보진영이 모든 역량을 집결해서 민중총궐기를 조직하고 있다.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오히려 매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할 목표를 가지고 선거투쟁에 임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 무슨 부르주아식 선거운동이나 사민주의식 정책 나부랭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로 단결된 대중의 투쟁역량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공간에서 대중의 투쟁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선거투쟁 승리로 가는 진보진영의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만들 공화국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제시할 새로운 공화국의 비젼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새로운 공화국의 비젼은 그 무슨 사민주의식 정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총체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조해서 근로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하는 기획을 얘기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공약들이란 것이 한마디로 얘기하면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대중들은 당장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냐고. 근로대중들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필자가 베네수엘라 혁명에서 ‘제헌의회’와 ‘국유화’에 주요하게 관심을 두고 관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투쟁의 혁명적 에너지가 ‘새로운 민중공화국 건설’ 이라는 목표로 집중되었을 때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선거공간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의 좌파진영 선거승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