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삼 선수 : 1차, 2차 방어 후 오랜만에 시합을 하는거예요. 개인적으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바를 다 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2년 2월 15일(3차 방어 D.day 8일...) INT 중....
그로부터 6년 후... 최요삼 선수의 공식 사망일은 그가 좋아하는 숫자인 2008년 1월 3일로 기록되었다.
지난 2007년 12월 25일 -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인도네시아의 도전자 헤리 아몰을 3대 0 판정승으로 물리친 후, 의식을 잃은채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을 달리한 최요삼 선수...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애틋한 응원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최 선수는 끝내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나라로 떠났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었을까...
나 : 최요삼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2002년 3차 방어전 준비 중)
장정구 선수(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 자질이 뛰어나죠. 복싱의 3박자 - 스피드, 테크닉, 강도를 모두 갖춘 훌륭한 선수입니다.
조민 관장 :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이고, 스타 근성이 있는 선수입니다. 인격적으로 깊이있고...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자기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좋은 시합을 할 것입니다.
최경호 실장 (메니저/동생) : 독종이에요. 자신이 해야 하는 건 꼭 하는 사람. 나는 형의 1/10만 닮으면 성공할 것 같아요. 형처럼 다부지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지금의 현실, 세계 챔피언이라는 현실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데, 꿋꿋하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운동에만 전념하는 형을 보면 대견하고 멋있죠. 형은 멋있는 사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멋있는 사람 같아요.
최요삼 선수 : 저는 큰 짐을 못져요. 저는 큰 배를 운행하는 선장이 아닙니다. 정원이 몇 명인 작은 배의... 큰 배를 저어서 멋있게 항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쬐그만한 아담한 배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가고 싶어요. 큰 꿈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큰 꿈이 있었는데, 현실에 만족하고 자그마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뛰어난 선수라는 주변 사람들의 절대적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 선수 본인은 자신을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최선수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현실 자체가 무색하리만큼 비참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99년 태국의 사만 소르자투롱 선수를 판정으로 물리친 후 세계 챔프로 등극한 최선수는 2000년 차트 키아트페치(태국) 선수를 5RKO로 격파하였다. 2001년 사만 선수를 다시 7RKO로 방어하였으나, 그 뒤 스폰서의 부재로 방어전을 치를 수 없었다. 그의 불타는 투지도 "복싱 = 치고받는 경기 = 헝그리 스포츠"라는 사회의 통념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진실을 향해 가는 자에게 빛을 내려주었고, 꼬박 1년 후, 최 선수는 꿈에 그리던 3차 방어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이번 방어전이야말로 한국 복싱의 위기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원정 경기로 이루어진 이 시합의 하루 전날, 최요삼 선수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속내를 드러낸다.
최요삼 선수 : 난 자신 있어요. 나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내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그림들이 스쳐가고 있어요. 내가 죽으면 끝난다는 생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전쟁입니다. 내가 만약에 지면 나는 죽어버릴거예요. 링 위에서... 최요삼이라는 놈은 내려올 때가 아직 아니에요. 정신력이 강한 놈이기 때문에 나는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일본에 최요삼이라는 역사책을 써내려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꿈이 있기에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2002년 2월 22일(3차 방어 D.day 1일...) INT 중....
끝내 그는 약속을 지켰다. 최요삼 선수는 2002년 2월 23일 일본 야마구치 신고 선수를 10BTKO로 물리치며 3차 방어에 성공한다. 일본 NK홀 특설링에서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리며 승리의 표호를 내질렀다. 그 날 일본의 밤하늘에는 최요삼이라는 자랑스런 한국의 별이 떠올랐다. 하지만 감동의 환희도 잠시...
다음 날 인천 국제 공항의 게이트를 빠져나온 세계 챔피언은 참담한 한국 복싱의 현실과 언론의 냉대를 온 몸으로 막아서야 했다. 공항 게이트 앞에는 몇 몇의 권투 위원회 관계자와 프로모션 식구들, 그외 잡지 기자 한 명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 3사는 커녕 스포츠 전문 기자들 조차 그의 승전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챔피언의 승리는 거기까지였다. 지나가는 인파들 중 어느 한 사람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멍든 얼굴로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는 챔피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그 후, 최요삼 선수는 멕시코의 호르헤 아르세 선수와 4차 방어전을 치렀으나 6RTKO로 패하며 잠시 링을 떠난다. 그리고 지난 20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국민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선사해 주고 싶다며 다시 링 위에 오른 최요삼 선수는, 마지막 투지를 불사른 후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며 서른 다섯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로써, 그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어... 드디어... 한국 언론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전에 챔피언이 되고도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최요삼 선수의 죽음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연일 주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매 시합이 있을 때마다 중계 조차 하지 않았던 방송사 각 채널에서 복싱의 역사와 함께 최 선수의 인생을 조명한다. 언론의 무관심으로 복싱을 제대로 알지 조차 못했던 국민들에게 뒤늦게 복싱을 알린 미디어는, 설상가상으로 복싱의 안전성을 끄집어 낸다. 이어 구멍난 스포츠 응급 의료 체제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건투위의 건강기금 횡령 의혹 수사가 착수된다. 뇌사 판정 후 6명의 목숨을 살리며 장기를 기증한 최 선수의 빈소에서는, 장례식을 앞두고 권투계 갈등이 고조화 된다. 현 문화장관, 보건 복지부 장관, 차기 대통령 당선인 등의 조문이 이어지고, 최선수의 영정 앞에 체육훈장이 수여된다.
이 모든일이 죽음 후에야 이루어졌다. 최선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진실의 눈을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헤드라인에 속아선 안된다. 전파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작은 모퉁이 기사에 파묻혀 있는 제2의 최요삼을 찾아내야 한다. 진정한 주인공은 그 곳에 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또 다른 도전자에게 더 늦기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최요삼 선수 : 이 세상은 과정은 필요 없는 거예요.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프로 세계에서는 끝이에요. 내가 패자가 되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어쩌구저쩌구 변명해봤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니가 졌다고 이야기를 해요. 승자가 되어서 나는 이렇게 이렇게 싸웠다. 그 말이 빛나는 거지, 누가 패자의 말을 들어줍니까? 요즘 세상에... 들어주는 사람 있습니다. 나와 같이 피를 나눈 형제, 부모... 그 사람말고는 없어요. 이 세상이 그런 거예요. 나에게 위로의 말을 던져 주는 사람들은 있겠죠. 그런데 그 말은 다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 세상은 진짜 냉정한 세상입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 이 세상은 너무나 냉정한 세상이에요.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지면 끝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내 사전에 다음은 없습니다. 최요삼이라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잘해 낼거라고 믿을 거예요. 나 역시 내 자신을 믿습니다.
최요삼 선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나 : 3차 방어를 앞두고,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최요삼 선수 : 1차, 2차 방어 후 오랜만에 시합을 하는거예요. 개인적으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바를 다 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2년 2월 15일(3차 방어 D.day 8일...) INT 중....
그로부터 6년 후... 최요삼 선수의 공식 사망일은 그가 좋아하는 숫자인 2008년 1월 3일로 기록되었다.
지난 2007년 12월 25일 -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인도네시아의 도전자 헤리 아몰을 3대 0 판정승으로 물리친 후, 의식을 잃은채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을 달리한 최요삼 선수...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애틋한 응원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최 선수는 끝내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나라로 떠났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었을까...
나 : 최요삼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2002년 3차 방어전 준비 중)
장정구 선수(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 자질이 뛰어나죠. 복싱의 3박자 - 스피드, 테크닉, 강도를 모두 갖춘 훌륭한 선수입니다.
조민 관장 :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이고, 스타 근성이 있는 선수입니다. 인격적으로 깊이있고...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자기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좋은 시합을 할 것입니다.
최경호 실장 (메니저/동생) : 독종이에요. 자신이 해야 하는 건 꼭 하는 사람. 나는 형의 1/10만 닮으면 성공할 것 같아요. 형처럼 다부지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지금의 현실, 세계 챔피언이라는 현실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데, 꿋꿋하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운동에만 전념하는 형을 보면 대견하고 멋있죠. 형은 멋있는 사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멋있는 사람 같아요.
최요삼 선수 : 저는 큰 짐을 못져요. 저는 큰 배를 운행하는 선장이 아닙니다. 정원이 몇 명인 작은 배의... 큰 배를 저어서 멋있게 항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쬐그만한 아담한 배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가고 싶어요. 큰 꿈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큰 꿈이 있었는데, 현실에 만족하고 자그마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뛰어난 선수라는 주변 사람들의 절대적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 선수 본인은 자신을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최선수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현실 자체가 무색하리만큼 비참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99년 태국의 사만 소르자투롱 선수를 판정으로 물리친 후 세계 챔프로 등극한 최선수는 2000년 차트 키아트페치(태국) 선수를 5RKO로 격파하였다. 2001년 사만 선수를 다시 7RKO로 방어하였으나, 그 뒤 스폰서의 부재로 방어전을 치를 수 없었다. 그의 불타는 투지도 "복싱 = 치고받는 경기 = 헝그리 스포츠"라는 사회의 통념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진실을 향해 가는 자에게 빛을 내려주었고, 꼬박 1년 후, 최 선수는 꿈에 그리던 3차 방어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이번 방어전이야말로 한국 복싱의 위기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원정 경기로 이루어진 이 시합의 하루 전날, 최요삼 선수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속내를 드러낸다.
최요삼 선수 : 난 자신 있어요. 나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내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그림들이 스쳐가고 있어요. 내가 죽으면 끝난다는 생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전쟁입니다. 내가 만약에 지면 나는 죽어버릴거예요. 링 위에서... 최요삼이라는 놈은 내려올 때가 아직 아니에요. 정신력이 강한 놈이기 때문에 나는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일본에 최요삼이라는 역사책을 써내려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꿈이 있기에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2002년 2월 22일(3차 방어 D.day 1일...) INT 중....
끝내 그는 약속을 지켰다. 최요삼 선수는 2002년 2월 23일 일본 야마구치 신고 선수를 10BTKO로 물리치며 3차 방어에 성공한다. 일본 NK홀 특설링에서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리며 승리의 표호를 내질렀다. 그 날 일본의 밤하늘에는 최요삼이라는 자랑스런 한국의 별이 떠올랐다. 하지만 감동의 환희도 잠시...
다음 날 인천 국제 공항의 게이트를 빠져나온 세계 챔피언은 참담한 한국 복싱의 현실과 언론의 냉대를 온 몸으로 막아서야 했다. 공항 게이트 앞에는 몇 몇의 권투 위원회 관계자와 프로모션 식구들, 그외 잡지 기자 한 명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 3사는 커녕 스포츠 전문 기자들 조차 그의 승전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챔피언의 승리는 거기까지였다. 지나가는 인파들 중 어느 한 사람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멍든 얼굴로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는 챔피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그 후, 최요삼 선수는 멕시코의 호르헤 아르세 선수와 4차 방어전을 치렀으나 6RTKO로 패하며 잠시 링을 떠난다. 그리고 지난 20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국민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선사해 주고 싶다며 다시 링 위에 오른 최요삼 선수는, 마지막 투지를 불사른 후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며 서른 다섯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로써, 그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어... 드디어... 한국 언론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전에 챔피언이 되고도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최요삼 선수의 죽음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연일 주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매 시합이 있을 때마다 중계 조차 하지 않았던 방송사 각 채널에서 복싱의 역사와 함께 최 선수의 인생을 조명한다. 언론의 무관심으로 복싱을 제대로 알지 조차 못했던 국민들에게 뒤늦게 복싱을 알린 미디어는, 설상가상으로 복싱의 안전성을 끄집어 낸다. 이어 구멍난 스포츠 응급 의료 체제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건투위의 건강기금 횡령 의혹 수사가 착수된다. 뇌사 판정 후 6명의 목숨을 살리며 장기를 기증한 최 선수의 빈소에서는, 장례식을 앞두고 권투계 갈등이 고조화 된다. 현 문화장관, 보건 복지부 장관, 차기 대통령 당선인 등의 조문이 이어지고, 최선수의 영정 앞에 체육훈장이 수여된다.
이 모든일이 죽음 후에야 이루어졌다. 최선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진실의 눈을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헤드라인에 속아선 안된다. 전파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작은 모퉁이 기사에 파묻혀 있는 제2의 최요삼을 찾아내야 한다. 진정한 주인공은 그 곳에 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또 다른 도전자에게 더 늦기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최요삼 선수 : 이 세상은 과정은 필요 없는 거예요.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프로 세계에서는 끝이에요. 내가 패자가 되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어쩌구저쩌구 변명해봤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니가 졌다고 이야기를 해요. 승자가 되어서 나는 이렇게 이렇게 싸웠다. 그 말이 빛나는 거지, 누가 패자의 말을 들어줍니까? 요즘 세상에... 들어주는 사람 있습니다. 나와 같이 피를 나눈 형제, 부모... 그 사람말고는 없어요. 이 세상이 그런 거예요. 나에게 위로의 말을 던져 주는 사람들은 있겠죠. 그런데 그 말은 다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 세상은 진짜 냉정한 세상입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 이 세상은 너무나 냉정한 세상이에요.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지면 끝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내 사전에 다음은 없습니다. 최요삼이라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잘해 낼거라고 믿을 거예요. 나 역시 내 자신을 믿습니다.
최요삼 선수... 무조건 평안히 쉬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투지와 꿈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차마 그 말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곳에서도 당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내시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당신이 바로 챔피언이니까요.
그 자리 절대 빼앗기지 마세요. 끝까지 당신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