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기(5)

김지훈20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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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패키지의 미학과 누런 용

     패키지의 미학과 누런 용미학과 누런 용

 

  호텔 아닌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정말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씻지도 못하였다. 하긴 싸구려 패키지 여행에서 무얼 바라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티벳 여행기(5)

장족 마을 / 대리석과 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건물을 지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가 조금 넘어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버스는 첫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한참을 가더니 첫날에 보았던 장족들의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옛 고성의 자리)로 들어갔다. 마을보다는 공예품 전시장이었다. 여기 저기 많은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패키지에서 가는 코스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쩔 수 없이 표찰을 받아 들어갔다. 전시된 공예품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귀찮았다. 일행 분의 얘기로는 여기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북경에서 만들어져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나와 버스에 탑승하였다. 다른 일행들이 돌아오고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1시간 정도를 이동하였다. 초원이 계속 펼쳐지고 가끔씩 설산이 보였다. 그리고 목우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초원 속에 큰 건물이 나타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차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보석 전시장이었다. 보석에 관심이 없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였고, 지금 가장 간절하였던 화장실을 찾았다. 볼일도 볼일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돈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시설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 때에 이런 곳에 들리면 항상 전시품보다는 화장실을 먼저 찾곤 하였다.

  이번에도 가장 빨리 버스에 탑승하였다. 버스는 다시 초원을 달렸다. 오늘의 목적지인 황룡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내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상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는데 말린 고기, 즉 육포 같은 것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점심 식사라도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판매장으로 들어가자 갓 만들어 낸 육포를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쑤시개를 들고 시식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침 식사가 형편없어 통 먹지 못해서였을까, 오랜만에 입에 맞는 음식을 먹게 된지라 자꾸만 손이 갔다. 다른 곳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염치없게 육포 시식 코너에 서서 육포에 푹 빠져버렸다.

  일행들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족발처럼 생긴 고기와 야크고기 삶은 것을 샀다. 아마도 우리 일행이 여러 판매장을 돌았지만 이렇게 무엇을 사기는 처음일 것이다. 특히 이교장선생님은 그 고기들을 성도로 복귀할 때까지 드셨고, 야크고기는 티벳 가셔도 계속 드셨다. 대단한 식욕이었다. 나는 냄새도 못맡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서비스로 술을 주었는데 나에게도 권하였지만 사양하였다. 그래서 대신 권석자 선생님이 함께 하기도 하였다.

  차가 생소한 곳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첫날 머물렀던 호텔로 들어갔다. 우린 이곳에서 역시 그날과 똑같은 메뉴의 이른 점심을 하였다. 여전히 나에게는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식사하였다. 하긴 어릴 적부터 먹어온 음식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한국 사람이 김치와 된장찌개 이런 것을 즐겨 먹는 것하고 뭐가 다르겠는가?


티벳 여행기(5)

황룡 가는 길 /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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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 황룡 가는 길에서 가장 높은 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식사를 마친 후 이제 버스는 정말 황룡을 목표로 달렸다. 중간에 휴게소 같은 곳에서 고산 증세를 극복할 수 있는 약을 구입하여 복용하였다. 우리 일행들은 출발하기 전부터 복용을 한지라 약복용하는 그들을 보고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후 버스는 지리산의 노고단, 한계령을 가는 것처럼, 아주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참 동안 올라갔다. 버스 밖으로 펼쳐진 풍경들,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여기에 비한다면 세발의 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나라의 가을처럼 푸른 하늘과 거기에 뭉게 뭉게 피어나는 구름, 그리고 따라 갈 수 없는 3000m이상의 해발고도에 난 도로, 녹색 빛의 초목들, 여기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우들, 정말 비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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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 / 계단식으로 펼쳐진 3400여 개의 석회암 연못으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버스가 해발 4050m에 다다르게 되자, 저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해발 6000m에 해당하는 산이었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는 가장 높은 산일지도 모른다. 그 산에 눈이 덮여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둘쨋날 구체구로 가는 도중에 잠깐 내 눈에 들어왔던 그 설산인 것 같다. 아무튼 그나마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황송함에 난 사진을 연신 찍었다. 한때는 버스의 흔들림으로 방해를 받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황룡의 정상에서 눈 앞에 펼쳐진 설산을 보고 난 버스에서 왜 그런 고생을 했는지 한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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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연못 / 침엽수림 사이로 비쳐진 연못의 빛깔이 아름다웠다.


  버스는 4050m를 통과하면서 다시 내려갔다. 여전히 험난한 길을 1시간을 달려 드디어 황룡에 도착하였다. 구체구와 마찬가지로 1992년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누런 용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황룡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12시쯤에 도착한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표를 받고, 4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황룡의 정상을 향해 이동하였다. 매표소를 통과하자 등산로가 열려 있었고, 등산로 옆으로는 침엽수림이 하늘을 이고 있었다. 정말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잘 관리가 되어 있는 곳을 정말 여유롭게 산책하듯이 올라가고 싶었지만 구체구보다 더 많은 인파로 인하여 황룡에서도 내내 여유를 느끼지 못하였다. 다시 한번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정말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주변의 광경에 조금씩 도취되어 갔다. 그러나 출발 전부터 고산증 하면서 엄살(?)을 부리던 박선생님은 결국 우리 일행과 멀어지게 되면서 우리 대열에서 이탈했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알아서 오시겠지 하면서 계속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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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히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석회암 연못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옆으로 펼쳐지는 석회암의 연못들, 그리고 그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침엽수림들, 높은 산과 뭉게 구름, 다시 한번 이 광경에 연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특히 훤히 바닥이 드러다 보이는 연못 이렇게 맑을 수가 있으랴? 정말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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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의 석회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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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연못 / 석회질이 침전된 강바닥에 물이 고여 계단식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동하는 도중 곳곳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도록 난간을 설치하는 센스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곳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인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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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 한 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일행들과 떨어져 등산로 옆으로 펼쳐진 석회암의 연못들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일행들과 잠시 결별을 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등산하는 것이라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이렇게 좋은 광경에 취해 힘들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7년의 군생활에 찌들여 등산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했던 나였다.

  나는 점점 일행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빨리 4000m 정상의 오채지로 가고 싶은 마음에 나의 발길은 더욱 빨라졌다. 가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리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발길을 옮겼다. 중간 중간에 고도를 알려주는 푯말을 통해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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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사원 / 3개의 사원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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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오채지 / 해발 4000m에 위치한 석회암 연못이다.


  어제와는 달리 화사한 햇살로 이 황룡의 석회암 연못의 수면이 더욱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었던 그 설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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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지의 빛깔 / 햇살에 받아 더욱 푸른 빛을 띠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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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지와 전경 /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설산을 바라보면서 발길을 재촉하였다. 왼편 중턱으로 움직이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이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오채지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곳으로 올라가는 것인 줄 알고 아직 멀었구나하는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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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연못 /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하다.


  해발 3700m 정도에 도달하자, 라마교 사원이 보였다. 황룡 안에 3개의 사원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그나마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역시 달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향을 무지 피워댔다. 개인적으로 향냄새를 좋아하지 않은 데다가 고산증세를 느낄 수 있는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향냄새는 정말 군대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화생방 훈련과 견줄 만 하였다. 하긴 군대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무슨 느낌인지는 모를 것이다.

  나는 오채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혼자 볼 수가 없어서 이곳에서 일행들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중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중국인 교사 가족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영어로 말을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첩에 짧은 영어를 써가면서 해석을 해 보았다. 정말 안되는 영어를 하려니 답답하였다. 결국 여러 번 물음 끝에 결론은 그분들이 카메라 배터리가 나가서 오늘 사진을 못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룡에서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e-메일 주소를 쪽지에 적어 주었다. 일단 받았지만 파일 용량의 거대함, 언어적 문제점으로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 동안 이 중국인 교사 가정과의 정이 있어서 아무래도 서울에 가면 정 옥 선생님께 조언을 받아서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사이 일행들을 만났다. 물론 박선생님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행들과 함께 황룡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채지로 이동하였다. 정말 인산인해였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오채지의 아름다운 빛깔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풍경을 사진에 담기조차 힘들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구체구와 황룡에서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같이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이 아름다움을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그 기쁨을 누가 알리오마는 오채지의 아름다운 광경에 흠뻑 취해서 해발 4000m의 고산 증세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체구에서 말썽이었던 햇살이 더욱 더 강렬하게 오채지를 집어 삼킬려는 듯이 내리쬐었다. 그런 햇살에 반항하듯이 오채지는 더욱 푸른 빛깔을 강하게 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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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에서의 나


  그러나 이곳에 더 오래 머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하산을 하였다. 휴게소 같은 곳에서 어제 간식으로 싸온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먹을 것을 앞에 두다 보니 역시 함께하지 못한 박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올라오는 길 반대편으로 설치되어 있는 하산하는 길을 따라 많은 인파들을 비집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그 많은 인파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방해받지 않고 빨리 사진을 찍는 데에만 몰두하였다. 그렇지 않고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가는 이 많은 인파에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끔 나의 묵직한 카메라를 보고는 몇 명의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거절할 수가 없어 찍어주기는 했지만, 남은 것은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작은 디카를 사용하려니 적응도 안되고, 잘못 나오면 어쩌나 하는 소심증, 때로는 그렇게 부탁하는 사람들은 커플이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약간의 장난기를 발동하기도 한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였으나 가이드와 제시한 시간이 왜 이리 빨리 다가오는지 우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불필요한 곳을 생략하였다. 중국인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서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전체의 한국인들이 욕믈 먹을까하는 맘에 우린 더욱 발길을 재촉하였다. 역시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나 이런 맘을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약속된 시간을 약간 오버하였지만 역시 가장 먼저 버스에 도착하였다. 처음에 우리 버스를 찾는데 너무나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뒤편에 가려진 버스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 넓은 주차장을 헤메고 다녔다. 정말 다시 황룡의 정상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다른 중국인 일행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시간 뒤가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어제 사서 트렁크에 보관하였던 수박을 꺼냈다. 트렁크 안이라 그런지 수박은 시원했다. 그 수박을 차량 옆에 앉아서 맨 손으로 쪼개서 먹는데 수박을 별루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그 순간은 정말 달콤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기름기에 찌들었던 내 목을 말끔하게 씻어내리는 듯하였다. 먼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 속에서 이렇게 쪼개 먹은 수박의 맛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도 이런 수박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행복이 나에게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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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폭포

 

  달콤한 수박의 맛이 머리 속에서 채 지워지기도 전에 박선생님이 떠올랐다. 낙오된 박선생님이 걱정되어서 이교장선생님과 함께 찾아 나섰다. 다행이 조금 위쪽으로 이동하자 힘든 모습으로 내려오시는 박선생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선생님으로부터 그동안 자초지종을 들으니 혼자 낙오된 후 천천히 올라오다가 천식으로 인해서 호흡곤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산소빠에서 산소호흡까지 하고 천천히 올라 오채지까지 구경을 하고 마침 내려오는 길에 우릴 만난 것이라고 한다. 또 중간에 하도 힘들어서 케이블카를 타볼려고 했지만 그것도 힘들었다고 막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아무튼 힘든 고생 끝에 정상에 오른 박선생님을 또 한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1시간 남짓 되어서 다른 일행들이 도착하였고, 버스는 출발하였다. 오전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오면서 보았던 때와는 감동이 덜했지만 여전히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는 첫날 숙소에서 숙식을 할거라고 예상하였지만 그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버스는 계속 이동하였고, 첫날 마지막으로 물을 보충하였던 곳에서 버스는 멈추었고, 십 여분 정도를 시간을 보냈다.

  다시 출발을 한 버스는 하염없이 성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지도를 보면서 또 추측을 하였다. 도대체 이 버스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리고 늦은 저녁식사는 언제 하게 되는지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슬슬 짜증이 밀려왔고 우린 막 여행사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3박 4일이라면 처음에 일정표를 주어야 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내용이었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뒤에 앉아있던 중국인 교사 부부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 그 분들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정말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국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중국인 일행들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하게 있었을뿐더러 오히려 자기네 일행들끼리 떠들면서 즐기고 있었다. 음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날도 어두워져가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버스는 그 험난한 협곡을 엄청난 속도로 경적을 울리면서 무법질주를 하였다.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밤이라서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도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같은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긴 이 버스나 운전기사는 얼마나 많은 횟수로 이 길을 달려겠는가? 그 역시도 답답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우리들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엎치락 뒤치락 버스는 다른 버스와 경쟁하듯이 달렸고 우리들 뒤로도 많은 버스들이 즐비하게 움직였다. 이 구체구나 황룡 패캐지 여행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춤없이 잘 가던 버스는 10시쯤이 되면서 갑자기 멈처섰다. 첫날 이곳으로 올 때 보았던 좁은 길을 교차로 움직이는 곳을 지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워낙 차들이 많이 밀려서 30분쯤은 한동안 멈추었다. 일행들은 답답하다고 잠시 내렸고, 난 버스에서 이 답답한 현실에 투덜대면서 미니 수첩에 여행기를 적어나갔다. 황룡과 구체구의 아름다움에 취해 속세의 미련을 벗어버렸나 싶었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서 또 다시 원상 복구되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였다.

  한동안 멈추었던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앞쪽 협곡쪽으로 빽빽하게 줄지어선 버스들의 불빛의 한 여름밤을 수놓았다. 그 버스들이 황룡과 구체구에서 나온 차들이니 내가 황룡과 구체구에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힘들었다는 얘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로가 정체되었던 이유는 커브길에서 바로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이런 마음은 티벳에서도 또 한번 느꼈다.

  정체된 구간을 지나자, 버스는 무사천리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1시가 넘어서 한 읍내의 큰 호텔에 도착하였다. 많은 버스와 사람들로 복잡하였다. 일행들은 호텔의 강당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다름아닌 식당이었다. 식당 안은 아수라장 같았다. 밖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 많은 버스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가득 채운 느낌이었다. 난 식사 생각이 없었지만 일행들과 함께 해야한지라 어쩔 수 없이 그 틈바구니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위생상태의 엉망으로 난 더욱 거부감을 느꼈다.

  한 식탁에 역시나 함께한 중국인 교사가족, 그리고 대가족이 함께한 중국인 관광객의 일부와 함께 하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식사 준비가 늦어지자, 식탁에 앉아 있던 한 중국인 아줌마가 참다 못해 분노를 표출하였다. 직접 가서 막 머라고 하더니 본인이 모든 것을 챙겨 가져왔다. 아마도 이 아줌마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식사 시간이 좀 더 늦추어졌을 것이다. 대단한 아줌마의 파워를 볼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그곳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떠서 숙소로 먼저 들어갔다. 오늘 하루 세상의 가장 아름다움과 가장 짜증스러움과 안타까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2007. 7. 24.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