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바다같은 호수, 티티카카

이강섭200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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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남미여행 (07.12.17 ~ 08.01.10)

 

12/23  : 바다같은 호수, 티티카카

 

 

[11:40pm]

 

뿌노에 도착한 첫 날.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섬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빼놓을 수 없겠으나 아담하면서 아기자기한 마을 모습

역시 인상적인 곳이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뿌노 시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려는 열기로 뜨겁다.

 

새벽에 도착한 후 숙소를 잡고 곧바로 투어준비에 나섰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티티카카 우로스 섬 투어를 신청하고 남은 시간

아침식사를 했다. 꾸스꼬에서 사 온 빵과 물이 그 주인공. 따뜻한

물을 얻어 커피를 마시니 한결 좋았다. 어젯밤 버스에서의 잠이

영 신통치 않아 피곤했지만 티티카카 호수를 볼 생각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현대차 '스타렉스'를 타고 티티카카 입구에 내렸다. 5분 정도

걸어야 선착장이 나오는데 저 멀리서부터 눈부시게 푸른 물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발 3,810m 에 위치한, 세계에서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의 호수로 알려진 티티카카 호수(Lago

Titicaca).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잔잔한 물결로

우리를 맞아준다.

 

벤츠 자동차 엔진을 쓴다고 자랑하는(-_-;) 작은 배에 노련한

가이드 한 분을 모시고 투어 시작. 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이

이어지며 티티카카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예전엔 감옥이었고

지금은 최고급 호텔로 변신한 건물을 시작으로, 곳곳에 피어나는

갈대 숲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티티카카

호수가 얼마나 넓은지 더욱 실감하게 된다. 횡단하는데만 26시간이

걸리고 그 면적은 우리나라 충청북도 정도 되는 대단한 규모다.

저 멀리 아득하게만 보이는 두 개의 큰 섬이 지도에서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도 채 안되는 거리로 표현돼 있다. 이렇게 큰 호수도

있구나. 우리의 우로스 섬 당일투어는 전체 티티카카 호수 중

1/10은 커녕 1/50 정도 보는 셈이다. 하지만 당일투어가 제일

괜찮다는 조언을 기억하며 가이드 설명에 더욱 귀를 기울여 본다.

 

5~10분 정도 더 들어가니 갈대로 만들어진 섬, 우로스가 나타난다.

새파란 하늘에 그림같이 하얀 구름, 그 하늘을 마주 대하는 호수.

여기에 노란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우로스 섬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특유의 전통의상을 입은 우로스섬 여인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카마시라끼~! (how are you?)"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우로스 섬(익숙할 리가 없다. ㅡㅜ).

곳곳을 살펴보려고 총총걸음을 내딛는 순간, 가이드 분이 우리를

어느 곳으로 데려가더니 우로스 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매일같이 여행객을 상대하는 곳이라 우로스 섬 설명을 위한 장소와

적당한 소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햇볓의 강렬함과 높은

자외선 강도로 유명한 티티카카 태양 아래에서, 가이드 분은

한껏 흥을 돋우며 적당한 유머와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말로만 듣던 갈대 섬의 생성원리와 섬 주민들의 삶은 생각보다

더 신기하였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약 40여개의 갈대섬이 있는데

우로스 섬은 그 중 하나. 이들은 주로 낚시와 사냥, 곡물채취와

무역거래 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높은 곳에 사람 뿐 아니라

물고기, 닭, 오리 등도 함께 산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요즘엔 관광수입 역시 무시 못할 것이겠지만 여전히 송어(현지어로

'뜨루차'라고 한다)를 잡아먹고 닭을 키우며, 매주 감자 등을

사오는 생활은 여전하였다.

 

갈대섬의 경우 그 특성상 영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갈대가

자연적으로 썩어 들어가고 갈대섬의 크기, 무게가 일정수준 이상을

벗어나면 다른 섬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아니, 옮긴다기보다 다른

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확하다. 자연의 섭리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생활의 방법을 터득해가는 지혜가 놀랍다. 보기엔 우리보다

못 사는 것 같고 우리가 더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 같지만 우로스

섬 사람들도 그들만의 문화와 지혜를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이 곳

티티카카 호수에 신이 내려와 잉카제국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자부심 또한 크겠지. 그들이 가진 자원이라곤 갈대 하나

뿐인데 그걸로 섬을 만들고 집, 배, 각종 생활기구를 만들어 낸

것을 보니 이 섬에서 직접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분의 설명이 끝난 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을 비롯해

집 내부와 섬 곳곳의 모습을 찍고 경치좋은 곳에서 사진을 박으며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섬을 둘러보았다. 빨강, 노랑, 녹색, 파랑 등

원색위주로 만들어진 그들의 옷도 볼거리 중 하나였다. 페루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여기 사람들 체구가 매우 독특하다는 점.

남녀 모두 대체적으로 키가 작다. 특히 아이마라 족 사람들은

키가 작으면서도 옆으로 펑퍼짐한 체형이 발목이 매우 두껍다.

여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는데 이걸 그냥 놔두거나 혹은 양 끝을

이어 원으로 만든 모습도 자주 보인다. 그리고 머리엔 작은 모자를

쓰며 치마는 우산처럼 반원 모양이다. 우로스 섬 사람들 역시

지금 말한 체형이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비슷한 체형에

비슷한 복장, 그래서 정말 우로스 섬은 왠지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질 때 뒤쪽에서는 전통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장소가 준비되고 있었다. 또 우로스 섬 구경을 마친 뒤에는 반대편

섬으로 건너갔는데 그곳은 아예 여행객들을 위한 장소로 꾸며져

있었다. 기념품 판매부터 시작해 음식점, 매점 등이 몰려있었다.

물론 여기도 갈대섬. 관광지가 되면 상업적 용도로 변하는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섬

사람들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우리는, 이들을 이용하고 있거나

이들의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여전히 그들의 눈빛은

순수하고 맑아 보였으나 마치 그 눈빛이 내게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한비야는 이들을 두고

'여행객에게 닳고 닳은 사람들' 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왠지 그

표현이 잊혀지지 않았다. 몇 가지 기념품을 구경하다가 그냥 배에

올랐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과 뭉게구름이 핀 하늘, 깊고 푸르른

티티카카 호수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덧 오후였다.

 

숙소 근처 음식점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중국인 주방장이 인상 좋게 웃었으나 음식은 대략낭패. ㅡㅡ;;;

식사 후 남은 오후 시간을 휴식하기로 했다. 여행을 하며 늘 바삐

움직일 수만은 없는 법. 1~2시간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뿌노의 일상을 누렸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 되자 숙소 앞의 재래시장 구경에 나섰다. 꼭 봐야 할

유적지, 혹은 유명한 무언가가 있지 않더라도 이런 시장모습처럼

자연스런 모습 또한 눈을 즐겁게 한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골라 골라 잡아잡아 골라' 를 외치는 아저씨, 작은 행사 하나

차려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할머니, 아들과 함께 장 보러 나왔다가

아들이 보채는 통에 난감해하는 어머님, 그냥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니며 즐거워하는 꼬마아이들, 힘겹게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노숙자, 그 사이에서도 경박한 모터소리로 열심히 달리는

오토릭샤까지......뿌노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 재미있고 유익했다. 한 번은 모자와 장갑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모자 대부분이 한국에서 수입한 것이어서 놀랐다. 한글이

있는 것은 물론 '이마트'라고 씌여진 선명한 상표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세상 참 좁구나. 나도 인파에 묻혀 정신없이 걷다가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7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

 

동네 음식점을 찾아가 전통 송어요리와 오믈렛, 그리고 닭고기

요리를 시켜먹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 보았다. 여기 날짜로 이틀

후면 성탄절. 그래서인지 광장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창이었다.

이 곳에도 상당한 규모의 성당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장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일부 연인의 모습을 찍었다. 연인의 모습은

다 똑같나 보다. 서로 안 떨어지려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는데도

마냥 즐거워한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더 외로워지는 건 무슨 이유인지.....ㅜㅜ

 

소방차을 이용한 독특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등장했다.

소방차의 빨간색을 이용한 절묘한 아이디어였다. 소방차 3~4대

위로 동방박사, 헤롯왕 등의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올라타

손을 흔들어댔다. 퍼레이드 하는 건 좋은데, 저러다 근처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하는건지 참....ㅎㅎ 소방차는 극심한 매연을 뿜어

댔지만,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차를 따라다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전화도 자주 못했다. 어쨌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뒤 뿌노의 밤거리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외국에서 성탄절을

맞는 건 처음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한국

생각에 젖어있을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