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반적인 두 남녀의 만남을 생각해보자. 처음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그 매력은..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외적인 매력, 서로 '다름'에서 오는 매력, 경제력이나 유머 감각에 대한 매력 등..
그리고 이 매력이 깊어지면 서로 '연애'를 시작한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함께 있는 순간이 애틋하고 보기만 해도 너무 좋고 심장이 요동친다.
그럼 이것이 사랑인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같은 가치관으로 '세뇌'시켜버리는 TV나 영화에서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짧은 시간에 묘사하기에 가장 좋고.. 무엇보다 영상에 담기 좋은 '예쁜 그림'들이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TV나 영화를 위해 사랑의 개념을 호도시켜서는 안된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서로의 '매력'으로부터 시작된 '연애'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연애'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Love Code를 파악할 수 있는
시발점이다.
왜 그런지는 이 두 남녀의 이후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기만 했던 그 '매력'들이.. 이제는 점점 진부해진다. 돈이 많은 것도.. 너무너무 예쁜 것도.. 재밌는 농담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브래드 피트를 보라.. 완벽한 여성인 제니퍼 애니스톤을 두고
바람을 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함께 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함께 가는 모든 곳이 새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같은 까페..같은 술집. 이제는 그냥 '일상화'가 되어버린다. (일찍이 015B라는 한국의 명밴드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서 이런 모습을 기가 막히게 묘사했다.'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상을 묻곤 하지.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그러면서 회의가 온다. 과연 이것이 사랑인가? 애인을 두고 자꾸 '신선한'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불편함'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Love Code때문에 생긴 '거부현상'이다. 매력과 신선함만으로 만난 '연애'의 감정을 결코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럼 '사랑'이란 것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일단 누구를 만나든 '지루'해지고 매력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상대방을 이제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예쁜 모습..유머 감각..좋은 조건..좋은 차가 아니라.. '다른 것'을 봐야 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매우 외로운 존재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한다. 세계 60억 인구가 다 이렇다보니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다들 자신만 생각하는 와중에, 누군가 한번쯤은 그 '이기심'을 넘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으면 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나만을 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위한다고? 게다가.. 위하는 정도가 아니라 희생까지 한다면? 그래. 바로 그것이 '사랑'의 요체다.
생각해보자.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를 키우면서 주었던 그 '희생'과 '존중'.. 그것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매우 거북한가?
세상 모든 사람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받은.. 예수님의 행동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몹시 어색한가?
왜 사랑을 자꾸 어렵게 생각하는가? 왜 남녀의 사랑과 그런 숭고한 사랑은 다르다고 하는가?
수많은 문학과 종교에서 거듭 말한 '사랑'의 대명사는.. 아주 간단히..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이기심을 버리고 나보다 상대방을 위해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까지 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졌다면.. 다른 눈으로 봐야 할 '다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존중''이해''희생' 이 3단어만 기억하면 된다.
그렇게 예뻤지만 지금은 지루해진 그녀를.. 그렇게 재밌고 멋있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그를.. 정말 나를 버리고 나보다 더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수 있겠는가?
세상 59억 9천 9백 9십 9만 9천 9백 9명이.. 그를 무시하거나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때에도 그를 정말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의 어두운 과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맞닥뜨려서도.. 욕하기 보다는 받아들여주고 깊이 안아줄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한 어떤 좋은 것이 있어도.. 그를 위해서는 포기하고 고통받을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예수님과 우리 부모님이 행하신 '사랑'의 모습이다.
그를 다시 보자. 그녀를 다시 보자.
그와 그녀의 어떤 꿈과 어떤 의견도 일단 세심하게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고..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다음에 생각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얘기해줄 수
있는가?
그와 그녀의 암울한 과거, 큰 실수 앞에서.. 핀잔을 주고 화를 내기 전에 그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일단 안아줄 수 있는가?
그와 그녀의 행복을 위해 내가 포기하고 내가 고통받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돌이켜보니 그런 일들이 많았다면..
나는 상대방을 '연애'를 넘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고개 끄덕여 진다면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 역시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은 '완성'될 수 있다.
매우 숭고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들 중에 그 60억 인구 중에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딱 2명이 이번 생에서 만난다는 것이. 그리고 만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그런 감정을 확인한다는 것이.
이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확률적으로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불가능이요. 이처럼 사랑에 대해 둘 다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사랑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둘 다 모르거나 한 쪽만 알아서 가슴앓이를 하고 만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마땅히 인간의 일생의 목표가 될 만한 그 무엇이다.
평생 노력해도 만나고 또 만들기 힘든 것이기에.. 마땅히 '꿈'과 '목표'가 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달성되었을 때 얻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인간들 속에서..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나라면 무엇이든 존중하고 이해해주며 나를 위해 희생해줄 수 있는 '초인간'적인 Soul Mate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고 똑같이 느낀다면...
1. 나는 연애기가 벌써 끝났고 사랑기인데.. 상대방은 내 연애기가 자기보다 빨리 끝났다는 생각에 서운해하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우도 연애=사랑이라는 도식 때문에 생겨난다. 먼저 연애기가 끝난 사람은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아직 연애기가 끝나지 않은 사람은 서운해 하기 보다 사랑기에서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연인을 이해해줘야 한다.
싸우고 오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모두 다 다르다. 남자와 여자라는 특징 하나만으로도 너무 다르다. 의견 충돌과 오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자잘한 Code가 안 맞는다고 연애기를 거쳐 사랑기로
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잘한 Code 차이를
무시하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자잘한 연애기의 Code 차이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라고
오해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연애기에 헤어지면 많은 연인들이 괴로워한다. (물론 사랑기에 헤어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90%는 사랑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또는 있는지 알지도 못한채 연애기가 끝나면 바로 헤어져버린다.)
그 때의 괴로움은.. 어쩌면 인간 깊숙히 내재된 '사랑기'의 미련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연애기에 느꼈던 매력을 더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반면 둘 다 사랑기가 무엇인지 알고 사랑기에 서로의 '존중/이해/희생'을 확인해보니.. '아니다'라고 결론내고 헤어진 커플들은 오히려 깔끔하다. 이렇기 때문에 연애기/사랑기 도식을 알고 서로 만남을 진행하는 커플은 매우 성숙되고 안정적이다.
2. 어쨋든..이렇게 볼 때 사랑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런 물음도 생긴다. 이렇게까지 해서.. 연애기와 사랑기를 거쳐 완전한 사랑을 만나야 할까? 평생 연애기만 반복해도 오히려 더 재밌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 땐 간단하게 이 생각을 해보면 된다. 내가 사업을 해서 수십억을 벌었다. 날 듯이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 진심으로 날 위해 박수쳐 줄 사람이 없다면..? '연애기'에 있어서 아주 깊은 진심은 아니고, 그냥 겉으로 기뻐해줄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처럼 진정으로 나의 성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성공은 빛이 바래고 스스로 외로워질 것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큰 실패로 내가 나락에 떨어졌다고 해보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면..? 이 경우 '연애기'에 있던 상대방은 나를 손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처럼,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나의 실패를 감싸안아주고 북돋워줄 사람이 없다면..? 인생은 비참하고 또 비참할 것이다.
Soul Mate는 이러한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픈 그리고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외로운 인간의 삶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진정한 인생의 등불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연애만 하는게 왜 사랑하는 것보다 하등하냐고?
수많은 고전과 종교에서.. 바로 이러한 사랑과 이러한 Soul Mate를 일찍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고전'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천년 동안 같은 말을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헷갈리고 애매한 경우가 있는가? 그럼 인류가 수천년전부터 얘기해왔던 '절대가치'를 '고전' 속에서 찾으면 선택은 간단하다.
꿈, 사랑, 자유... 이 단어들이 기준이 되면 선택은 Simple하다.
가슴이 뛰고 순간적 매력에 설레는 '연애'는 인류가 오랫동안 강조해왔던 '절대가치'가 아니다.
'연애'는 최근들어 영상 매체에서 자꾸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절대가치인양 혼동하는 하등한 가치이다.
TV와 영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살 수 없다.
생각해보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단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 성경은 수만 줄을 할애하고 있다. 아주 우직하고..지루하게 차근차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다.
반면 영상은? 멜 깁슨이 만든 그 고매한 예수 영화에서도..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마지막 죽는 장소까지 걸어가는 장면 하나에만 2시간을 할애하고
있다.성경에는 딱 2,3줄로 묘사된 부분만 골라서 2시간으로 말이다.
어느 것이 더 제대로 된 가치를 묘사할 수 있겠는가?
단편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TV와 영화를 경계하라. 우직한 고전을 가까이 하라. 절대가치를 찾아라.
3. 마지막 반문.. 연애기를 뛰어넘어 사랑기로 바로 갈 수는 없는가?
물론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우정'이다.
연애가 필요한 것은 솔직히 '본능적 욕구' 때문이다. 더 정확히.. 남자와 여자가 끌리는 욕구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전이라기 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역시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물의 특징이기도 하며,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는 프로이트가 말했듯 필연적으로 '성적 욕구'가 가미될 수 밖에 없고, 이 성적 욕구가 '매력'으로 이어져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연애기에는 별 것이 없다. 서로의 매력을 마음껏 즐기고 설레는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역시
마음껏 즐기면 된다. 최대한으로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서로의 매력을 느끼면 된다. 그리고 성적 욕구에 기반한 연애가 시들해졌을 때.. 오히려 그렇게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동성간의 만남에는.. '성적 욕구와 이 욕구의 감소, 비워짐'의 3단계가 없고 바로 사랑기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사랑이다. 그러나 구분을 위해 우리가 친숙한 단어 '우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연애기와 사랑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매력이 시들해지면 연예기가 끝났다고 받아들여라. 단, 그것이 끝이 아니고 사랑기가 있음을 기억하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은 지독히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Soul Mate를 찾는 일은 포기해서는 안되는
사랑을 바로알자..!! Love Code
먼저 일반적인 두 남녀의 만남을 생각해보자.
처음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그 매력은..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외적인 매력, 서로 '다름'에서 오는 매력, 경제력이나 유머 감각에 대한 매력 등..
그리고 이 매력이 깊어지면 서로 '연애'를 시작한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함께 있는 순간이 애틋하고 보기만 해도 너무 좋고 심장이 요동친다.
그럼 이것이 사랑인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같은 가치관으로 '세뇌'시켜버리는
TV나 영화에서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짧은 시간에 묘사하기에 가장 좋고..
무엇보다 영상에 담기 좋은 '예쁜 그림'들이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TV나 영화를 위해 사랑의 개념을 호도시켜서는 안된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서로의 '매력'으로부터 시작된 '연애'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연애'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Love Code를 파악할 수 있는
시발점이다.
왜 그런지는
이 두 남녀의 이후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기만 했던 그 '매력'들이..
이제는 점점 진부해진다.
돈이 많은 것도.. 너무너무 예쁜 것도.. 재밌는 농담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브래드 피트를 보라.. 완벽한 여성인 제니퍼 애니스톤을 두고
바람을 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함께 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함께 가는 모든 곳이 새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같은 까페..같은 술집.
이제는 그냥 '일상화'가 되어버린다.
(일찍이 015B라는 한국의 명밴드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서 이런 모습을 기가 막히게 묘사했다.'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상을 묻곤 하지.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그러면서 회의가 온다. 과연 이것이 사랑인가?
애인을 두고 자꾸 '신선한'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불편함'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Love Code때문에 생긴 '거부현상'이다.
매력과 신선함만으로 만난 '연애'의 감정을 결코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럼 '사랑'이란 것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일단 누구를 만나든 '지루'해지고 매력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상대방을 이제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예쁜 모습..유머 감각..좋은 조건..좋은 차가 아니라..
'다른 것'을 봐야 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매우 외로운 존재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한다.
세계 60억 인구가 다 이렇다보니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다들 자신만 생각하는 와중에,
누군가 한번쯤은 그 '이기심'을 넘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으면 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나만을 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위한다고?
게다가.. 위하는 정도가 아니라 희생까지 한다면?
그래. 바로 그것이 '사랑'의 요체다.
생각해보자.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를 키우면서 주었던 그 '희생'과 '존중'..
그것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매우 거북한가?
세상 모든 사람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받은..
예수님의 행동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몹시 어색한가?
왜 사랑을 자꾸 어렵게 생각하는가?
왜 남녀의 사랑과 그런 숭고한 사랑은 다르다고 하는가?
수많은 문학과 종교에서 거듭 말한 '사랑'의 대명사는..
아주 간단히..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이기심을 버리고 나보다 상대방을 위해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까지 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졌다면..
다른 눈으로 봐야 할 '다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존중''이해''희생' 이 3단어만 기억하면 된다.
그렇게 예뻤지만 지금은 지루해진 그녀를..
그렇게 재밌고 멋있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그를..
정말 나를 버리고 나보다 더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수 있겠는가?
세상 59억 9천 9백 9십 9만 9천 9백 9명이..
그를 무시하거나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때에도
그를 정말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의 어두운 과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맞닥뜨려서도..
욕하기 보다는 받아들여주고 깊이 안아줄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한 어떤 좋은 것이 있어도..
그를 위해서는 포기하고 고통받을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예수님과 우리 부모님이 행하신 '사랑'의 모습이다.
그를 다시 보자.
그녀를 다시 보자.
그와 그녀의 어떤 꿈과 어떤 의견도
일단 세심하게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고..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다음에 생각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얘기해줄 수
있는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그녀의 암울한 과거, 큰 실수 앞에서..
핀잔을 주고 화를 내기 전에
그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일단 안아줄 수 있는가?
그와 그녀의 행복을 위해
내가 포기하고
내가 고통받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돌이켜보니 그런 일들이 많았다면..
나는 상대방을 '연애'를 넘어 '사랑'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고개 끄덕여 진다면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 역시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은 '완성'
될 수 있다.
매우 숭고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들 중에
그 60억 인구 중에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희생할 딱 2명이 이번 생에서 만난다는 것이.
그리고 만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그런 감정을 확인한다는 것이.
이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확률적으로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불가능이요.
이처럼 사랑에 대해 둘 다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사랑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둘 다 모르거나
한 쪽만 알아서 가슴앓이를 하고 만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마땅히 인간의 일생의 목표가 될 만한 그 무엇이다.
평생 노력해도 만나고 또 만들기 힘든 것이기에..
마땅히 '꿈'과 '목표'가 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달성되었을 때 얻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인간들 속에서..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나라면 무엇이든 존중하고 이해해주며
나를 위해 희생해줄 수 있는 '초인간'적인 Soul Mate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고 똑같이 느낀다면...
이것은 기적이며
궁극의 행복이다.
연애기 사랑기
|-------------------------|-------------------------
매력 존중,이해,희생
1.
나는 연애기가 벌써 끝났고 사랑기인데..
상대방은 내 연애기가 자기보다 빨리 끝났다는 생각에
서운해하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우도 연애=사랑이라는 도식 때문에 생겨난다.
먼저 연애기가 끝난 사람은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아직 연애기가 끝나지 않은 사람은 서운해 하기 보다 사랑기에서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연인을 이해해줘야 한다.
싸우고 오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모두 다 다르다.
남자와 여자라는 특징 하나만으로도 너무 다르다.
의견 충돌과 오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자잘한 Code가 안 맞는다고 연애기를 거쳐 사랑기로
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잘한 Code 차이를
무시하고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자잘한 연애기의 Code 차이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라고
오해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연애기에 헤어지면 많은 연인들이 괴로워한다.
(물론 사랑기에 헤어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90%는 사랑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또는 있는지 알지도 못한채 연애기가 끝나면 바로 헤어져버린다.)
그 때의 괴로움은..
어쩌면 인간 깊숙히 내재된 '사랑기'의 미련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연애기에 느꼈던 매력을 더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반면 둘 다 사랑기가 무엇인지 알고
사랑기에 서로의 '존중/이해/희생'을 확인해보니..
'아니다'라고 결론내고 헤어진 커플들은 오히려 깔끔하다.
이렇기 때문에
연애기/사랑기 도식을 알고 서로 만남을 진행하는
커플은 매우 성숙되고 안정적이다.
2.
어쨋든..이렇게 볼 때
사랑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런 물음도 생긴다.
이렇게까지 해서..
연애기와 사랑기를 거쳐 완전한 사랑을 만나야 할까?
평생 연애기만 반복해도 오히려 더 재밌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 땐 간단하게 이 생각을 해보면 된다.
내가 사업을 해서 수십억을 벌었다.
날 듯이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 진심으로 날 위해 박수쳐 줄 사람이 없다면..?
'연애기'에 있어서 아주 깊은 진심은 아니고, 그냥 겉으로 기뻐해줄
사람이 아니라..
Soul Mate는 이러한 것이다.
어머니처럼 진정으로 나의 성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성공은 빛이 바래고 스스로 외로워질 것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큰 실패로 내가 나락에 떨어졌다고 해보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면..?
이 경우 '연애기'에 있던 상대방은 나를 손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처럼,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나의 실패를 감싸안아주고 북돋워줄 사람이 없다면..?
인생은 비참하고 또 비참할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픈
그리고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외로운 인간의 삶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진정한 인생의 등불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연애만 하는게 왜 사랑하는 것보다 하등하냐고?
수많은 고전과 종교에서..
바로 이러한 사랑과
이러한 Soul Mate를 일찍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고전'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천년 동안 같은 말을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헷갈리고 애매한 경우가 있는가?
그럼 인류가 수천년전부터 얘기해왔던 '절대가치'를
'고전' 속에서 찾으면 선택은 간단하다.
꿈, 사랑, 자유...
이 단어들이 기준이 되면 선택은 Simple하다.
가슴이 뛰고 순간적 매력에 설레는 '연애'는
인류가 오랫동안 강조해왔던 '절대가치'가 아니다.
'연애'는 최근들어 영상 매체에서 자꾸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절대가치인양 혼동하는 하등한 가치이다.
TV와 영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살 수 없다.
생각해보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단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
성경은 수만 줄을 할애하고 있다.
아주 우직하고..지루하게 차근차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다.
반면 영상은?
멜 깁슨이 만든 그 고매한 예수 영화에서도..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마지막 죽는 장소까지 걸어가는 장면 하나에만 2시간을 할애하고
있다.성경에는 딱 2,3줄로 묘사된 부분만 골라서 2시간으로 말이다.
어느 것이 더 제대로 된 가치를 묘사할 수 있겠는가?
단편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TV와 영화를 경계하라.
우직한 고전을 가까이 하라.
절대가치를 찾아라.
3.
마지막 반문..
연애기를 뛰어넘어 사랑기로 바로 갈 수는 없는가?
물론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우정'이다.
연애가 필요한 것은 솔직히
'본능적 욕구' 때문이다.
더 정확히..
남자와 여자가 끌리는 욕구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전이라기 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역시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물의 특징이기도 하며,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는
프로이트가 말했듯 필연적으로 '성적 욕구'가 가미될 수 밖에 없고,
이 성적 욕구가 '매력'으로 이어져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연애기에는 별 것이 없다.
서로의 매력을 마음껏 즐기고 설레는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역시
마음껏 즐기면 된다.
최대한으로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서로의 매력을 느끼면 된다.
그리고 성적 욕구에 기반한 연애가 시들해졌을 때..
오히려 그렇게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동성간의 만남에는..
'성적 욕구와 이 욕구의 감소, 비워짐'의 3단계가 없고
바로 사랑기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사랑이다.
그러나 구분을 위해 우리가 친숙한 단어
'우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연애기와 사랑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매력이 시들해지면 연예기가 끝났다고 받아들여라.
단, 그것이 끝이 아니고 사랑기가 있음을 기억하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은 지독히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Soul Mate를 찾는 일은 포기해서는 안되는
'평생의 목표'이다.
퍼가실때는 스크랩, 리플 남겨주세요^^
http://cafe.daum.net/romance2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