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인 즉 이렇다. 원고마감일은 닥쳐오는데 극장 간 지는 지난 원고 때가 마지막이고, 마치 시험을 앞두고 초치기 하듯 근처의 영화관으로 달려갔는데, 볼 영화가 없더란 얘기다. 어쩜, 어쩜, 한국영화 점유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더니만 정말 그런가 보다. 열흘 전쯤 개봉한 는 벌써부터 간판 내릴 준비를 하느라 띄엄띄엄 상영을 하고 있고, 그나마 시간 맞는 영화는 밖에 없다. 물론 반드시 한국영화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헐리우드영화 역시 끌리는 것 없기는 마찬가지. 기왕이면 불황을 겪고 있다는 한국영화에 응원이라도 보내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흑심모녀라…… 배우 구성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알아? 처럼 의외의 대박이 될지!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 보는 내내 아주 자주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웃겨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어이없어서 웃었다. 원제가 ‘사랑을 배달해 드립니다’라던데, 원제 그대로 아주 착하게(사실 착한 게 아니라 무식하게, 무대뽀로) 실천한 영화였다. ‘흑심모녀’라는 제목은 한마디로 사기였다. 영화에 모녀의 흑심 따위는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트렌드인 ‘줌마렐라’를 꿈꾸는 나이든 여성관객을 꼬시려는 사기마케팅인 것 같다. (요즘 왜 이리 영화마케팅에 사기극이 많아졌을꼬. 쳇!) 이 영화는 로맨스라기보다는 동화다. 그래서 어이없는 장면들도 ‘대략 신선’(상식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뻔뻔하게 자행되니까)하게 넘겨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동화라고 해도 개연성은 있어줘야지. 배우들의 연기도 어설픔과 과장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다.
누님들의 판타지, 대중문화를 점령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 나름 선전하는 영화란다. 특히 여성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단다. 짐작컨대, 흑심모녀라는 제목이 우선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조카뻘 되는 꽃띠 총각과 중년 누님의 로맨스가 영화와 드라마를 장악한 지 오래. ‘흑심모녀’라는 영화제목은 바로 그 유행에 묻어가려는 수작(?)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여성들의 지지를 얻어낼 만한 이유를 억지로 찾자면, 심혜진이 분한 남희의 캐릭터다. 사실 의 봉순씨에 비하면 너무 단면적인 캐릭터라 칭찬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건 남희밖에 없다. 어쨌든 남희는 치매에 걸린 엄마와 철없는 20대 딸을 부양하는 중년여성가장이다. 여자 3대가 사는 이 집안은 온전히 남희의 몸뚱아리에 달려 있다. 트럭을 몰고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과일을 파는 남희가 드러눕는 순간 이 집 3대는 굶어죽는다. 그런 남희 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나타난 준은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해주는 환각제다. “준이 강에서 건진 건 사과가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유치찬란한 남희의 고백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했지만, 어찌됐든 준의 순수함은 강퍅한 현실에 지친 남희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억척같은 생활인, 아줌마에게 정말 필요한 것
앞서 말했듯 난 에 대해 할 말도, 별 관심도 없다. 다만 주목하는 것은 요즘 뜨고 있는 ‘줌마렐라’들의 현실이다. 의 남희뿐 아니라 의 봉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의 선희, 그녀들은 하나같이 결혼이란 걸 해본 아줌마다. 그러나 그녀들 곁에 남편은 없다. 남희의 남편은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애만 낳고 도망갔거나 변변한 유산도 없이 저세상으로 뜬 것 같다. 봉순의 남편은 형식적으로는 봉순의 옆자리에 있으나 미용실 여자와 바람이 났고, 노래방 사장님 직함은 가지고 있으나 걸핏하면 땡땡이다. 선희의 남편은 처자식 내팽개치고 저 혼자 잘살아보겠다고 돈 많은 여자에게 가버렸다. 소위 생계부양자였던(혹은 그럴 줄로 철썩 같이 믿었던) 남편이 떠난 자리에서 그녀들은 과일장수를 하든 하숙을 치든 파출부를 하든 억척같이 살아낸다.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온 꽃미남 총각들(남희-준, 봉순-구상, 선희-재민)이 바로 ‘줌마렐라’들의 판타지다. 줌마렐라들의 왕자님은 신데렐라의 왕자님처럼 그녀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줌마렐라들은 왕자님을 만난 후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억척스레 노동하며 살아간다. (톱스타 재민과 결혼한 선희가 어찌 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줌마렐라의 판타지는 신데렐라의 왕자가 가지고 있던 권력과 돈이 아니었다. 남희는 수년간 자신을 쫓아다닌 순정남 정씨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뭘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은 오랜 구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철벽 수비녀 남희를 만들었다. 그러나 남희를 만나자마자 남희 자신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부터 물어보던 준에게 남희는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쌀집 정씨에게는 없고 꽃총각 준에게는 있는 그 무엇은 바로 들을 줄 아는 능력, 소통의 능력, 배려의 능력이다. 어쩌면 줌마렐라들은 철없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고단한 현실에게 자신을 구원해줄 백마 탄 왕자님은 원래부터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왕자가 나타나든 그렇지 않든 그녀들은 억척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녀들이 가질 수 있는 환상이 있다면, 자신의 고단한 일상을 들어주고 하루 종일 힘든 노동으로 단단하게 뭉친 근육을 풀어줄 열린 귀와 부드러운 손짓 정도다.
줌마렐라로부터 2MB를 떠올리다
촛불집회 정국이 계속되다 보니 모든 생각이 MB와 연결된다. 줌마렐라로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문득,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 쳐서 대통령이 된 후 눈과 귀를 닫은 채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나아가는 2MB가 떠오른다. 그는 더 이상 국민들이 신데렐라의 왕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호위호식하게 해주겠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남편들은 결국 줌마렐라들을 떠났는데 말이다. 지금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귀이며, 아픔을 함께 느낄 가슴이다.
흑심모녀
흑심모녀 (2008)
감독 : 조남호
영화 핑계로 수다떨기 - '줌마렐라'가 정말 바라는 것
사연인 즉 이렇다. 원고마감일은 닥쳐오는데 극장 간 지는 지난 원고 때가 마지막이고, 마치 시험을 앞두고 초치기 하듯 근처의 영화관으로 달려갔는데, 볼 영화가 없더란 얘기다.
어쩜, 어쩜, 한국영화 점유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더니만 정말 그런가 보다. 열흘 전쯤 개봉한 는 벌써부터 간판 내릴 준비를 하느라 띄엄띄엄 상영을 하고 있고, 그나마 시간 맞는 영화는 밖에 없다. 물론 반드시 한국영화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헐리우드영화 역시 끌리는 것 없기는 마찬가지. 기왕이면 불황을 겪고 있다는 한국영화에 응원이라도 보내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흑심모녀라…… 배우 구성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알아? 처럼 의외의 대박이 될지!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 보는 내내 아주 자주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웃겨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어이없어서 웃었다. 원제가 ‘사랑을 배달해 드립니다’라던데, 원제 그대로 아주 착하게(사실 착한 게 아니라 무식하게, 무대뽀로) 실천한 영화였다. ‘흑심모녀’라는 제목은 한마디로 사기였다. 영화에 모녀의 흑심 따위는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트렌드인 ‘줌마렐라’를 꿈꾸는 나이든 여성관객을 꼬시려는 사기마케팅인 것 같다. (요즘 왜 이리 영화마케팅에 사기극이 많아졌을꼬. 쳇!)
이 영화는 로맨스라기보다는 동화다. 그래서 어이없는 장면들도 ‘대략 신선’(상식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뻔뻔하게 자행되니까)하게 넘겨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동화라고 해도 개연성은 있어줘야지. 배우들의 연기도 어설픔과 과장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다.
누님들의 판타지, 대중문화를 점령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 나름 선전하는 영화란다. 특히 여성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단다. 짐작컨대, 흑심모녀라는 제목이 우선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조카뻘 되는 꽃띠 총각과 중년 누님의 로맨스가 영화와 드라마를 장악한 지 오래. ‘흑심모녀’라는 영화제목은 바로 그 유행에 묻어가려는 수작(?)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여성들의 지지를 얻어낼 만한 이유를 억지로 찾자면, 심혜진이 분한 남희의 캐릭터다. 사실 의 봉순씨에 비하면 너무 단면적인 캐릭터라 칭찬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건 남희밖에 없다.
어쨌든 남희는 치매에 걸린 엄마와 철없는 20대 딸을 부양하는 중년여성가장이다. 여자 3대가 사는 이 집안은 온전히 남희의 몸뚱아리에 달려 있다. 트럭을 몰고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과일을 파는 남희가 드러눕는 순간 이 집 3대는 굶어죽는다.
그런 남희 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나타난 준은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해주는 환각제다. “준이 강에서 건진 건 사과가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유치찬란한 남희의 고백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했지만, 어찌됐든 준의 순수함은 강퍅한 현실에 지친 남희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억척같은 생활인, 아줌마에게 정말 필요한 것
앞서 말했듯 난 에 대해 할 말도, 별 관심도 없다. 다만 주목하는 것은 요즘 뜨고 있는 ‘줌마렐라’들의 현실이다. 의 남희뿐 아니라 의 봉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의 선희, 그녀들은 하나같이 결혼이란 걸 해본 아줌마다. 그러나 그녀들 곁에 남편은 없다. 남희의 남편은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애만 낳고 도망갔거나 변변한 유산도 없이 저세상으로 뜬 것 같다. 봉순의 남편은 형식적으로는 봉순의 옆자리에 있으나 미용실 여자와 바람이 났고, 노래방 사장님 직함은 가지고 있으나 걸핏하면 땡땡이다. 선희의 남편은 처자식 내팽개치고 저 혼자 잘살아보겠다고 돈 많은 여자에게 가버렸다.
소위 생계부양자였던(혹은 그럴 줄로 철썩 같이 믿었던) 남편이 떠난 자리에서 그녀들은 과일장수를 하든 하숙을 치든 파출부를 하든 억척같이 살아낸다.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온 꽃미남 총각들(남희-준, 봉순-구상, 선희-재민)이 바로 ‘줌마렐라’들의 판타지다. 줌마렐라들의 왕자님은 신데렐라의 왕자님처럼 그녀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줌마렐라들은 왕자님을 만난 후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억척스레 노동하며 살아간다. (톱스타 재민과 결혼한 선희가 어찌 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줌마렐라의 판타지는 신데렐라의 왕자가 가지고 있던 권력과 돈이 아니었다. 남희는 수년간 자신을 쫓아다닌 순정남 정씨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뭘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은 오랜 구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철벽 수비녀 남희를 만들었다. 그러나 남희를 만나자마자 남희 자신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부터 물어보던 준에게 남희는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쌀집 정씨에게는 없고 꽃총각 준에게는 있는 그 무엇은 바로 들을 줄 아는 능력, 소통의 능력, 배려의 능력이다.
어쩌면 줌마렐라들은 철없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고단한 현실에게 자신을 구원해줄 백마 탄 왕자님은 원래부터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왕자가 나타나든 그렇지 않든 그녀들은 억척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녀들이 가질 수 있는 환상이 있다면, 자신의 고단한 일상을 들어주고 하루 종일 힘든 노동으로 단단하게 뭉친 근육을 풀어줄 열린 귀와 부드러운 손짓 정도다.
줌마렐라로부터 2MB를 떠올리다
촛불집회 정국이 계속되다 보니 모든 생각이 MB와 연결된다. 줌마렐라로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문득,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 쳐서 대통령이 된 후 눈과 귀를 닫은 채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나아가는 2MB가 떠오른다. 그는 더 이상 국민들이 신데렐라의 왕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호위호식하게 해주겠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남편들은 결국 줌마렐라들을 떠났는데 말이다.
지금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귀이며, 아픔을 함께 느낄 가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