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단편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박명관200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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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단편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_ 프랭크와 나

 


실직한 남편은 랍스터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프랭크 라는 친척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남편은

 

랍스터는커녕 엉뚱한 일에 휘말리고 마는데…….

 


 

+ 본문 중에서

 


랍스터를 먹으며 우린 마피아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가 LA에서 에이플릴과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그리고 코리안 인들은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스무 살이나 어린 브라질 여자가 사촌 형 프랭크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얘기를 나누며 우린 조금씩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의 희망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던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우리는 끝내 배꼽을 잡고 의자에서

뒹굴었다. 랍스터를 먹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 한마디

 

실종일관 낄낄대고 웃다, 삶의 불예측성과 불확실성에 희망을 거는 이들은 그래도 용감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은 건강하게 이 삶을 두 발로 걸어가고 있으며, 예상치 못한 물웅덩이나 진창에 발이 빠지더라도 씩씩하게 다시 걸어 나갈  인물들이다. 

 

 

 

 


_ 유쾌한 하녀 마리사

 


남편 토마스에게 정부가 생긴 것을 눈치 챈 주인공. 유서를 남겨두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하녀 마리사에 의해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 본문 중에서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웠다면 얼마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듯이 남편에게 정부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먼저 상대가 누군지 궁금할 거예요.

 


토마스, 얼마 안 있으면 집에 도착하겠군요. 이제 내 계획을 들려줄까요? 당신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천천히 샴페인을 마실 거예요. 그리고 그 샴페인 안에는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 아코니틴이란 독약이 들어 있어요. (중략) 죄 많은 여인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할 만큼 독성이 강하답니다.

 

 

 

 

 

_ 세일링 (sailing)

 


추석 일주일 전. 대서는 성묘를 하기위해 부인과 딸 경와와 함께 나선 길이다. 우연히 목격하게 된 고속도로 위 차량사고로 인해 가뜩이나 심란한 그의 마음은 더욱 예민해진다.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 대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유형구가 누구냐’ 묻고, 부인은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중엔 이혼을 요구한다. 

 


+ 본문 중에서  

 

어차피 지금은 그 무엇도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서는 자신의 인생이 안개 속에서 어디론가 제 멋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 한 복판에 홀연히 나타난 배의 존재가 더 이상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경아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이

없다. 한동안 배의 뒤를 따라가던 대서는 우회전을 해야 할 사거리에서 차를 멈춘다. 배를 바라보던 그는 알 수 없는

숭고한 감동에 길게 한숨을 내쉰다.

 

+ 한마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며 살 수 없다는 것에 동의 하면서도 내 인생의 방향은 내가 결정하며

살아 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저 거대한 바다위의 쪽배마냥 그저 밀려온 것이 아닐까? 파도에 한번 씩

밀릴 때마다 원래 가고 싶던 방향이 이곳이었다고 짐짓 모른 척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럴 줄 알고 있었다고

허세만 부리고 온것은 아닐까?

 

 

_ 자동차 없는 인생

 


간호사와 4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 주인공. 여덟 군데나 직장을 옮겨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 결국 자동차도 팔아버린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미용실의 미용사가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그녀의 한마디 물음에 주인공은 당혹스러워진다. “차 있으시죠?”

 


+ 본문 중에서

 


 

“앞으로 혼자서 잘해봐. 하지만 모든 게 쉽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당신은 수술이 필요한 인생이거든.

 

그것도 아주 대대적인.”

 


“그런데 아까 얘기한 그 친구 말예요. 그 여자는 어쩌다가 인생이 그렇게 꼬인 거죠?”

“틀림없이 남자를 잘못 만난 거겠죠. 아니면 지독히도 운이 없었거나......”

 

 

 

 

_ 더 멋진 인생을 위해 -마티에게

 


폴 디미치는 일종의 해결사로서 지미라는 전문 도박사를 디트로이트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았다. 가는 도중 둘은 한 모텔에 들어가게 되고 그 모텔은 디미치로 하여금 과거를 떠오르게 만든다. 바로 샌디라는 여성과 블랙이라는 흑인 마술사를.

 

 

 

+ 한마디 

 

추억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개를 들어 현실의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현실이 과거보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을 때 추억은 잔인한 칼날이 되어 나의 무력한 의지를 찌른다. ‘멍청이! 어쩌다 인생을 이 따위로 살게 내버려 둔거야. 과거의 흔적은 다 어디다 내팽겨 뒀지?’ 아이고, 그걸 알면 지금이라도 찾고 싶군.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추억은 아름답다. 하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_ 숟가락아 구부러져라.

 


추운 겨울 날 보호시설에 노숙자들 틈에 끼어 밥을 먹고 있는 주인공. 그의 주머니엔 기억자로 꺾인 숟가락이 들어 있다. 그가 고등학교 때 티브이에서 유리겔러를 보았던 그 시절부터 간직해 온 바로 그 숟가락!

 


 

+ 본문 중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그때부터 이미 구부러져 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만일 그 때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이 숟가락을 구부려 보았다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구부러진 숟가락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자기 인생의 모든 비밀이, 그리고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그 숟가락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마디

 

간혹 주인공처럼 내 인생의 모든 불행이 우연한 하나의 사건 때문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릴 때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내 인생은 말을 더듬듯 답답하게 풀리지 않는 것을 아닐까 하는. 하지만, 결국 그런 생각은 모래 속에 머리를 쳐 박는 타조처럼 우매한 행동일 뿐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 가치선택을 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구부러진 숟가락 마냥 과거에 이것만 잘했으면 이것만 있었다면 하는 게 있다면 버리시길. 그런 게 있었다 해도 당신의 모습은 그대로일 것이다. 인생은 한 순간의 마법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_  二十 歲  (20 세)

 

-작가 천운영의 자전적 소설

 

+본문 중에서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나이였는데도 아미 수십 년을 굴러다닌 자동차처럼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털이 다 빠진 늙은 개처럼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뱃속이 늘 휑한 기분이었다. 그러니 내 미래에 대해 뭘 말할 수 있었겠는가? 앞날에 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나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알지 못했으니, 당시 내 솔직한 심정은 그저 빨리 군대나 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사실 스무 살 나이엔 아무것도 절실한 게 없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빛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욕망이 구체화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그저 무지와 암흑의 카오스에 갇혀 있는 어설픈 가능태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당시 내게 필요한 건 심심함을 달래줄 만화책과 담배 값, 그리고 아무데고 내키는 대로 쏘다니는 수 있는 자전거……. 그 외에 또 뭐가 있었을까?

 

 

 

기차역이 멀어지며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어는 한 지점과 영원히 작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한마디

 

청춘은 뒤 돌아 볼 때에만 아름답다. 그 안에 있을땐 그저 텅빈 방안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 뿐이다.

그렇다고 늙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무것도 욕망하고 있지 않는것이 문제이다.

'대체 다들 날 보고 어쩌라는 거지?' 정확히 이 상태가 청춘이다.

하지만 청춘은 그런 불안이 있기에 욕망할 수 있고 깨어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에 떠는 청춘들이여. 너무 불안해 말지어다. 누구나 한 번쯤 청춘의 불확실성에 그 한심함에

몸서리쳐 보았고  떨어 보았다. 그게 정상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당신의 가슴 깊이 욕망하는 대상이 생길 것이다. 그 때 가 비로소 청춘의 열정이 태동하는 때이니

맘 껏 욕망하시기를... 그러다 다치시길.

그때가 환상의 폭력으로 제대로 청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