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 두 사람.. 살면서 이런 저런 일을 해 보았다. 지금이야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편하게 일하지만, 예전 돈을 벌기 위해 아무일이나 했던 그때는 그리 편한 직장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보통사람과 조금 달랐다. 25살이었나보다 아버님의 직업을 대신하기 위해 원단을 공부해야 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원단공장에서 직접 막일을 뛰는 것이었다. 빠르고 효과적이긴 했다.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친듯이 할 수 있었으니까 원단 공장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이란사람 베트남사람 몽골사람등이 대표적이며 장급이상은 한국인이다. 그리고 몇명은 외국인들과 같이 일을 한다. 그 몇명중 눈에 띄는 사람이 두명 있었다. 난 처음 일하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 두 분이 많은걸 알려주었고, 그러다 보니 쉽게 친해 질 수 있었다. 한여름에 300도되는 덤블러에서 원단을 꺼내고 맨손으로 말고, 80kg 짜리 원단롤을 수레에 담는법이라던지, 얍력으로 검은색 원단을 물들이고, 원단을 염색하고 롤에 말때 조절레버를 잡다가 자주 졸던 나를 매번 깨워주어 덜 혼나게 해주는등너무너무 감사한 분들이었다. 한명은 나보다 좀 어린 20대 초였고, 한명은 30살이었다. 둘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다. 그러나 그 둘은 언제나 붙어 다녔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서로 티걱테걱하면서도 참 잘 붙어다닌다고 생각만 했는데... 어느날 30살인 분이 아파서 쉬게 되었다. 20대초 동생은 맨날 옆에서 티걱테걱하던 분이 없어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고, 오후쯤에 내가 원단을 말고 있는데 옆에서 서 있게되었다. 한참 정신없이 포장하고 있는데 동생이 옆에서 쓰러진다. 거품을 물고 몸을 떨었다. 처음보는 장면이었고, 겁도 났다. 다행이 근처에 사람들이 있어 제갈을 물리고 병원으로 갔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동생은 정신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었다. 30살 형이었던 분은 정신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덜 성숙해 있었고... 그 둘은 언제나 붙어다녀야 했다. 동생분은 항상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줘야 했고, 형이었던 분은 슈퍼에가서 혼자 먹을 거 하나 살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땀흘리고 끝나고 맥주 한캔을 먹으면 샤워도 하면서 땡땡이도 치고 그렇게 6개월가량 친해졌다. 나에게는 그들이 정상인이라는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땀흘리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값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언제나 웃어주었고, 위로해 주었으며, 희망을 보여줬다. 혼자서는 공장 앞에도 나갈 수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둘이면 세상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난 힘들때 그들 생각을 한다. 혼자서는 세상앞에서 그 누구보다 초라하지만, 함께 세상을 헤쳐가는 모습은 내가 태어나 만나온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항상 여러문제에 붙이치는 것 같다. 어떻게 어떤길로 가야 할지 매번 선택에 놓이게 되며,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며,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알려준 다른 세상때문에 행복하다. 한사람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나에게는 훨신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들에게 항상 감사한다. 앞으로도 힘든일이 있겠지만, 내 가슴 한편에는 그들이 있다. 지금도 열심히 살아 가시는 분들 홧팅!!
삶이 힘드신 분들을 위해..두 사람
기억속 두 사람..
살면서 이런 저런 일을 해 보았다.
지금이야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편하게 일하지만,
예전 돈을 벌기 위해 아무일이나 했던 그때는 그리 편한 직장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보통사람과 조금 달랐다.
25살이었나보다 아버님의 직업을 대신하기 위해 원단을 공부해야 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원단공장에서 직접 막일을 뛰는 것이었다.
빠르고 효과적이긴 했다.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친듯이 할 수 있었으니까
원단 공장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이란사람 베트남사람 몽골사람등이 대표적이며
장급이상은 한국인이다. 그리고 몇명은 외국인들과 같이 일을 한다.
그 몇명중 눈에 띄는 사람이 두명 있었다.
난 처음 일하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 두 분이 많은걸 알려주었고,
그러다 보니 쉽게 친해 질 수 있었다. 한여름에 300도되는 덤블러에서 원단을 꺼내고
맨손으로 말고, 80kg 짜리 원단롤을 수레에 담는법이라던지, 얍력으로 검은색 원단을 물들이고,
원단을 염색하고 롤에 말때 조절레버를 잡다가 자주 졸던 나를
매번 깨워주어 덜 혼나게 해주는등너무너무 감사한 분들이었다.
한명은 나보다 좀 어린 20대 초였고, 한명은 30살이었다. 둘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다.
그러나 그 둘은 언제나 붙어 다녔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서로 티걱테걱하면서도
참 잘 붙어다닌다고 생각만 했는데...
어느날 30살인 분이 아파서 쉬게 되었다. 20대초 동생은 맨날 옆에서
티걱테걱하던 분이 없어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고,
오후쯤에 내가 원단을 말고 있는데 옆에서 서 있게되었다.
한참 정신없이 포장하고 있는데 동생이 옆에서 쓰러진다. 거품을 물고 몸을 떨었다.
처음보는 장면이었고, 겁도 났다. 다행이 근처에 사람들이 있어 제갈을 물리고 병원으로 갔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동생은 정신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었다. 30살 형이었던 분은 정신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덜 성숙해 있었고...
그 둘은 언제나 붙어다녀야 했다. 동생분은 항상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줘야 했고,
형이었던 분은 슈퍼에가서 혼자 먹을 거 하나 살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땀흘리고 끝나고 맥주 한캔을 먹으면 샤워도 하면서 땡땡이도 치고
그렇게 6개월가량 친해졌다.
나에게는 그들이 정상인이라는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땀흘리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값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언제나 웃어주었고, 위로해 주었으며, 희망을 보여줬다.
혼자서는 공장 앞에도 나갈 수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둘이면 세상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난 힘들때 그들 생각을 한다. 혼자서는 세상앞에서 그 누구보다 초라하지만,
함께 세상을 헤쳐가는 모습은
내가 태어나 만나온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항상 여러문제에 붙이치는 것 같다.
어떻게 어떤길로 가야 할지 매번 선택에 놓이게 되며,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며,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알려준 다른 세상때문에 행복하다.
한사람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나에게는 훨신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들에게 항상 감사한다.
앞으로도 힘든일이 있겠지만, 내 가슴 한편에는 그들이 있다.
지금도 열심히 살아 가시는 분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