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소장인 윤여상 박사는 탈북과 하나원 교육이후에도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혹한 수용소 생활과 부모 형제의 공개처형을 목격한 후유증과 고문등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하던 신씨를 직접 집에 데려가 먹이고 재우며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고 한다.
신동혁씨의 수기가 작년말 출간되었다는 뉴스는 들었지만 구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8월 들어 집 앞 GS 문고에서 구입해 읽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 뿐이었다.
완전통제구역인 개천수용소 출신 신씨에 비하면 그나마 혁명화구역인 요덕수용소 출신 강철환씨나 안혁씨를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책을 덮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도 잠자리에 누워 어둠속에서 잠을 청하려다가도 너무 기가 막힌 신씨와 다른 수용소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갑갑함과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났다. 어떤 죄도 없이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고통과 인권사각지대에서 이 순간에도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수십만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들의 삶에 대해 몰랐다면 모를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북한당국이 가장 철저히 북한인권문제며 정치범수용소의 실태에 대해 은폐하고 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북한 정권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유화책도 펼치지 않게 될 테니...
오랫동안 민족주의적 감성에서 출발해 친북(?)적 활동을 해온 386 소위 주체사상파 출신들중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탈북자들을 통해 특권층만 거주하는 조작된 평양거리가 아닌 실제 북한 주민들 특히 수용소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니 니 하는 것이 얼마나 나이브한 환상이었는지 깨닫고 등을 돌리고 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나 며칠전 타계한 솔제니친의 , 혹은 조차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들의 수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라 해야 할까.
이런 현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고 여전히 북한이나 김정일정권에 대한 그 어떤 환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나 당국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불쌍한 자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
신동혁(1982년 출생)은 완전통제구역인 개천14호 정치범수용소 출생자로써 최 초로 완전통제구역의 정치범 수용소를 2005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2006년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신동혁은 태어나서 24년간 완전통제구역인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 하였다.
“나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 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 의미를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 행복, 즐거움, 불행, 억울함, 저항은 수용소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우린 덧셈과 뺄셈, 그리고 작업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한 채 노동현장에서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되었다.“
[(사)북한인권정보센터 제공]
목차
제1부 삶의 시작 : 수용소 생활의 시작 제2부 수용소 생활 제3부 수용소내 학교 생활 제4부 막장(갱)과 발전소 건설현장의 희생자들 제5부 수용소내 비밀 감옥에서의 고문과 수용생활 제6부 어머니와 형의 탈출시도와 공개처형 제7부 목장과 피복공장 시절 제8부 완전통제구역에서의 탈출, 그리고 성공 제9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마비된 인권의식 회복을 기원하며
[(사)북한인권정보센터 제공]
= 신동혁씨와 저서 소개 보도중 퍼옴
신씨는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수용소 출신 가운데 최초로 탈북에 성공, 한국에 입국한 인사다. 그의 수기는 공개처형 등 개천 14호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인권침해 실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북한 인권운동가들은 개천 14호의 인권실태가 이보다 앞서 강철환씨가 전해준 요덕 수용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씨는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부모가 죄를 저질렀는데 왜 무고한 어린이들까지 당해야 하는가"라며 "이러한 실상을 외부에 알려 수용소 어린이들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그는 14세 때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공개처형된 뒤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취재진에 바지를 걷어올려 전기충격으로 인해 다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옮기던 짐을 떨어뜨린 죄로 손가락이 하나 잘리는 끔찍한 경험도 했다고 말했다.
외부 세계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 평양이 수도인지 조차 몰랐던 그는 해외여행을 경험한 적이 있는 다른 죄수의 영향을 받아 바깥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그 호기심이 결국 탈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 죄수는 신씨와 함께 탈출을 감행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씨의 수기는 그다지 남한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를 돕는 인권운동가들은 강철환씨의 '평양의 수족관' 처럼 일본어판과 영어판이 화제를 불러일으켜 그 여파가 역수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 죄수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김상훈씨는 "북한 인권문제를 향한 남한 사회의 무관심은 지독하다"면서 "신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한 최초의 인물인 만큼" 그의 수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생략)
세상 밖으로 나오다/신동혁
이 책은 북한인권정보센터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다.
센터 소장인 윤여상 박사는 탈북과 하나원 교육이후에도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혹한 수용소 생활과 부모 형제의 공개처형을 목격한 후유증과 고문등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하던 신씨를 직접 집에 데려가 먹이고 재우며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고 한다.
신동혁씨의 수기가 작년말 출간되었다는 뉴스는 들었지만 구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8월 들어 집 앞 GS 문고에서 구입해 읽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 뿐이었다.
완전통제구역인 개천수용소 출신 신씨에 비하면 그나마 혁명화구역인 요덕수용소 출신 강철환씨나 안혁씨를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책을 덮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도 잠자리에 누워 어둠속에서 잠을 청하려다가도 너무 기가 막힌 신씨와 다른 수용소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갑갑함과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났다. 어떤 죄도 없이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고통과 인권사각지대에서 이 순간에도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수십만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들의 삶에 대해 몰랐다면 모를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북한당국이 가장 철저히 북한인권문제며 정치범수용소의 실태에 대해 은폐하고 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북한 정권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유화책도 펼치지 않게 될 테니...
오랫동안 민족주의적 감성에서 출발해 친북(?)적 활동을 해온 386 소위 주체사상파 출신들중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탈북자들을 통해 특권층만 거주하는 조작된 평양거리가 아닌 실제 북한 주민들 특히 수용소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니 니 하는 것이 얼마나 나이브한 환상이었는지 깨닫고 등을 돌리고 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나 며칠전 타계한 솔제니친의 , 혹은 조차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들의 수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라 해야 할까.
이런 현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고 여전히 북한이나 김정일정권에 대한 그 어떤 환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나 당국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불쌍한 자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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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1982년 출생)은 완전통제구역인 개천14호 정치범수용소 출생자로써 최 초로 완전통제구역의 정치범 수용소를 2005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2006년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신동혁은 태어나서 24년간 완전통제구역인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 하였다.
“나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 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 의미를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 행복, 즐거움, 불행, 억울함, 저항은 수용소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우린 덧셈과 뺄셈, 그리고 작업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한 채 노동현장에서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되었다.“
[(사)북한인권정보센터 제공]
목차 제1부 삶의 시작 : 수용소 생활의 시작
제2부 수용소 생활
제3부 수용소내 학교 생활
제4부 막장(갱)과 발전소 건설현장의 희생자들
제5부 수용소내 비밀 감옥에서의 고문과 수용생활
제6부 어머니와 형의 탈출시도와 공개처형
제7부 목장과 피복공장 시절
제8부 완전통제구역에서의 탈출, 그리고 성공
제9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마비된
인권의식 회복을 기원하며
[(사)북한인권정보센터 제공]
= 신동혁씨와 저서 소개 보도중 퍼옴
신씨는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수용소 출신 가운데 최초로 탈북에 성공, 한국에 입국한 인사다. 그의 수기는 공개처형 등 개천 14호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인권침해 실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북한 인권운동가들은 개천 14호의 인권실태가 이보다 앞서 강철환씨가 전해준 요덕 수용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씨는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부모가 죄를 저질렀는데 왜 무고한 어린이들까지 당해야 하는가"라며 "이러한 실상을 외부에 알려 수용소 어린이들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그는 14세 때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공개처형된 뒤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취재진에 바지를 걷어올려 전기충격으로 인해 다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옮기던 짐을 떨어뜨린 죄로 손가락이 하나 잘리는 끔찍한 경험도 했다고 말했다.
외부 세계에 관한 지식이 전무해 평양이 수도인지 조차 몰랐던 그는 해외여행을 경험한 적이 있는 다른 죄수의 영향을 받아 바깥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그 호기심이 결국 탈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 죄수는 신씨와 함께 탈출을 감행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씨의 수기는 그다지 남한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를 돕는 인권운동가들은 강철환씨의 '평양의 수족관' 처럼 일본어판과 영어판이 화제를 불러일으켜 그 여파가 역수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 죄수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김상훈씨는 "북한 인권문제를 향한 남한 사회의 무관심은 지독하다"면서 "신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한 최초의 인물인 만큼" 그의 수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생략)
- 전문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3&total_id=2938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