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땅 함경도 신포에 건설중이던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의 공사가 중단된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이 원전용으로 우리국내에서 제작중이던 원자로와 터빈발전기등 대형설비들이 공사가 중단되면서 고철로 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설비들은 구형이 되어 국내신규원전에도 사용할수가 없고 해외에 수출할수도 없는 형편인 모양이다.
이설비들을 떠안고 있는 한전은 원전사업 재개가능성에 대비 일단 2010년까지는 보관한뒤 그이후에는 폐기할 계획이라고 한다.이원자력설비들을 만드는데 그동안 거의 9천억원의 돈이 들어갔고 1년에 보관비용만 1백억원이 든다니 보통일이 아니다.고철로 팔면 얼마나 받을수 있는지 모르겠다.또 한전이 입은 손실은 누가 보상해야하는가?
내가 중단된 북한의 경수로 원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함경도에서 원전건설공사가 한창이던 2002년에 우리 통일부산하의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에서 특별보좌역으로 일했다.그해 그일로 북한에 여섯번이나 출장을 다녀왔다.그래서 신포지구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던 원전 건설현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초 우리나라와 미국,일본등이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라는 기구를 설립해 북한에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한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목적이 있었다.
북한은 1987년이래 평안북도 영변지역에 소규모의 흑연감속로형 원전( 핵무기의 원료가되는 풀루토늄을 만들어내기 쉬운 원전형이다)을 가동해왔는데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보기에는 전력생산보다는 핵무기를 개발하기위한 연료를 생산하기위한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에서만나 협상을 한끝에 1994년 10월소위 미북기본합의서(agreed framework)라는것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내용은 북한이 가동중이던 문제의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에 2003년까지 1천메가와트( 1백만 킬로와트)규모의 경수로형 원전 2기를 지어주기로 한것이다. 경수로형원전은 핵무기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를 생산하기에는 부적합한 원전이다.
당시 북한의 1년전력생산량이 2백만킬로와트정도였던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전력생산능력을 거의 두배로 늘려주는 엄청난 규모의 약속이었다.
또 이 신규원전이 완공될때까지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포기함으로서 발생한 에너지손실부분만큼의 대체에너지로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제공하는것도 약속했다.
북한이 핵무기제조욕망을 포기하는대가로 막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말하자면 돈으로 북한핵을 포기시킨 셈이다.
한국과 미국이 막대한돈(약 50억불규모)을 들여 이러한 약속을 하게된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북한이 오래가지못하고 붕괴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같은것이다. 조만간 우리것이 될테니 미리 지어놓는것도 괜찮겠다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쨋든 97년부터 부지 정리공사가 시작되어 원전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이런저런 북한과 남한측의 사정으로 공사가 당초 계획대로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공사는 계속 되고 있었다.그리고 이와중에(2002년) 나는 부지런히 북한을 드나들고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다시 시작했다는 주장이 미국에 의해 제기되면서였다. (이번에는 농축우라늄방식으로). 이를 부인하는 북한과 미국의 논전끝에 2002년 11월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제공해오던 중유공급을 중단했다.공교롭게도 나는 중유공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뉴욕개최 KEDO 이사회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 미국 일본 EU대표와 이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했다.
북한이 이에 크게 반발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2003년 10월에는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하였고 이에맞서 2003년11월 KEDO는 원전건설중단을 결정함으로서 파국을 맞았다.
공사중단상태에 있던 KEDO원전은 2006년 1월 함경도 신포지구에 남아있던 우리 인력들이 전원 철수함으로서 완전히 끝이 났다.굴착기 크레인등 중장비, 버스 승용차등( 모두 4백55억상당)은 북한이 가져가지못하게 함으로서 두고왔다.
그이후의 북한핵과 관련한 사태진전은 우리가 이미 아는것과 같다.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강행 핵실험까지 했다.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우여곡절끝에 소위 6자회담의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우리나라는 북한과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재개된 회담에서는 더이상 북한이 핵연료를 추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협상의 촛점이 맞추어졌다.이과정에서 북한은 계속 경수로원전공사 재개를 요구해온것으로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함과 동시에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한다는 명분하에 시작된 경수로원전건설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 상황이 되었다. 핵개발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막대한 돈만 날린셈이다.(그동안 1조5천6백2십억원의 돈이 들어갔는데 그중 1조3천6백55억원이 한국이 부담한것이다. 나머지는 일본정부 부담)
지금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본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굳이 책임을 따진다면 번번이 북한의 대응에 대해 판단착오를 거듭한 미국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수있을것이다.
2002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중단을 결정했을때도 미국정부는 북한이 다시 벼랑끝 전술로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당시 미국은 체니 럼스펠트등 신보수주의인맥이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었고 기세등등했다.북한이 감히 미국에 정면으로 대들고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 같다.그러나 북한은 죽기아니면 살기로 강경하게 나왔고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과적으로보면 미국의 역대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온양면의 정책을 오락가락하면서 아무것도 하지못했다.강경하게 밀어붙여 북한정권을 항복시키던지 그럴 방책이 없으면 확실히 북한체제를 인정해주어 핵무기없이도 생존해 나갈수있다는 확신을 주던지 했어야했다.불행이도 어느쪽도 아니었다.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고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당시 우리정부의 대북기본정책만을 가지고 따진다면 경수로원전은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가장 필요한것은 전기였다.북한은 경제발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전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되는게 없었다.국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것도 크게 보면 이런 기본적인 산업 인프라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이도 우리정부의 나름의 비전은 국제권력정치의 틀속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경수로원전의 비전은 오간데 없어지고 원전의 운명은 미북핵협상의 종속변수로서만 기능했다.미북협상이 출렁일때마다 경수로공사도 흔들거렸다.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공사에 애궂은 국민의 세금만 쏟아붓고 있었다.
거대한 흉물로 남은 북한땅 경수로원전
:`한반도의 빛과 힘, KEDO 원전`
북한땅 함경도 신포에 건설중이던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의 공사가 중단된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이 원전용으로 우리국내에서 제작중이던 원자로와 터빈발전기등 대형설비들이 공사가 중단되면서 고철로 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설비들은 구형이 되어 국내신규원전에도 사용할수가 없고 해외에 수출할수도 없는 형편인 모양이다.
이설비들을 떠안고 있는 한전은 원전사업 재개가능성에 대비 일단 2010년까지는 보관한뒤 그이후에는 폐기할 계획이라고 한다.이원자력설비들을 만드는데 그동안 거의 9천억원의 돈이 들어갔고 1년에 보관비용만 1백억원이 든다니 보통일이 아니다.고철로 팔면 얼마나 받을수 있는지 모르겠다.또 한전이 입은 손실은 누가 보상해야하는가?
내가 중단된 북한의 경수로 원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함경도에서 원전건설공사가 한창이던 2002년에 우리 통일부산하의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에서 특별보좌역으로 일했다.그해 그일로 북한에 여섯번이나 출장을 다녀왔다.그래서 신포지구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던 원전 건설현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초 우리나라와 미국,일본등이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라는 기구를 설립해 북한에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한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목적이 있었다.
북한은 1987년이래 평안북도 영변지역에 소규모의 흑연감속로형 원전( 핵무기의 원료가되는 풀루토늄을 만들어내기 쉬운 원전형이다)을 가동해왔는데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보기에는 전력생산보다는 핵무기를 개발하기위한 연료를 생산하기위한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에서만나 협상을 한끝에 1994년 10월소위 미북기본합의서(agreed framework)라는것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내용은 북한이 가동중이던 문제의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에 2003년까지 1천메가와트( 1백만 킬로와트)규모의 경수로형 원전 2기를 지어주기로 한것이다. 경수로형원전은 핵무기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를 생산하기에는 부적합한 원전이다.
당시 북한의 1년전력생산량이 2백만킬로와트정도였던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전력생산능력을 거의 두배로 늘려주는 엄청난 규모의 약속이었다.
또 이 신규원전이 완공될때까지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포기함으로서 발생한 에너지손실부분만큼의 대체에너지로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제공하는것도 약속했다.
북한이 핵무기제조욕망을 포기하는대가로 막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말하자면 돈으로 북한핵을 포기시킨 셈이다.
한국과 미국이 막대한돈(약 50억불규모)을 들여 이러한 약속을 하게된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북한이 오래가지못하고 붕괴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같은것이다. 조만간 우리것이 될테니 미리 지어놓는것도 괜찮겠다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쨋든 97년부터 부지 정리공사가 시작되어 원전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이런저런 북한과 남한측의 사정으로 공사가 당초 계획대로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공사는 계속 되고 있었다.그리고 이와중에(2002년) 나는 부지런히 북한을 드나들고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다시 시작했다는 주장이 미국에 의해 제기되면서였다. (이번에는 농축우라늄방식으로). 이를 부인하는 북한과 미국의 논전끝에 2002년 11월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제공해오던 중유공급을 중단했다.공교롭게도 나는 중유공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뉴욕개최 KEDO 이사회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 미국 일본 EU대표와 이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했다.
북한이 이에 크게 반발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2003년 10월에는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하였고 이에맞서 2003년11월 KEDO는 원전건설중단을 결정함으로서 파국을 맞았다.
공사중단상태에 있던 KEDO원전은 2006년 1월 함경도 신포지구에 남아있던 우리 인력들이 전원 철수함으로서 완전히 끝이 났다.굴착기 크레인등 중장비, 버스 승용차등( 모두 4백55억상당)은 북한이 가져가지못하게 함으로서 두고왔다.
그이후의 북한핵과 관련한 사태진전은 우리가 이미 아는것과 같다.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강행 핵실험까지 했다.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우여곡절끝에 소위 6자회담의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우리나라는 북한과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재개된 회담에서는 더이상 북한이 핵연료를 추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협상의 촛점이 맞추어졌다.이과정에서 북한은 계속 경수로원전공사 재개를 요구해온것으로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함과 동시에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한다는 명분하에 시작된 경수로원전건설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 상황이 되었다. 핵개발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막대한 돈만 날린셈이다.(그동안 1조5천6백2십억원의 돈이 들어갔는데 그중 1조3천6백55억원이 한국이 부담한것이다. 나머지는 일본정부 부담)
지금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본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굳이 책임을 따진다면 번번이 북한의 대응에 대해 판단착오를 거듭한 미국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수있을것이다.
2002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중단을 결정했을때도 미국정부는 북한이 다시 벼랑끝 전술로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당시 미국은 체니 럼스펠트등 신보수주의인맥이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었고 기세등등했다.북한이 감히 미국에 정면으로 대들고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 같다.그러나 북한은 죽기아니면 살기로 강경하게 나왔고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과적으로보면 미국의 역대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온양면의 정책을 오락가락하면서 아무것도 하지못했다.강경하게 밀어붙여 북한정권을 항복시키던지 그럴 방책이 없으면 확실히 북한체제를 인정해주어 핵무기없이도 생존해 나갈수있다는 확신을 주던지 했어야했다.불행이도 어느쪽도 아니었다.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고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당시 우리정부의 대북기본정책만을 가지고 따진다면 경수로원전은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가장 필요한것은 전기였다.북한은 경제발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전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되는게 없었다.국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것도 크게 보면 이런 기본적인 산업 인프라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이도 우리정부의 나름의 비전은 국제권력정치의 틀속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경수로원전의 비전은 오간데 없어지고 원전의 운명은 미북핵협상의 종속변수로서만 기능했다.미북협상이 출렁일때마다 경수로공사도 흔들거렸다.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공사에 애궂은 국민의 세금만 쏟아붓고 있었다.
북한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함경도 바닷가 1백여만평의 옥토가 어지럽게 파헤쳐진채로 내팽겨져버렸으니 말이다.그나마 쓸만한 상당량의 건설중장비라도 건졌으니 다행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결국 경수로원전사업은 남북한 어느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막대한 국가예산의 낭비와 상처만을 남기고 끝났다.
지금도 북한 함경도 땅 신포지구 1백만평이 넘는땅에 건설되던
원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보라를 맞으면서 공사현장을 둘러보던 기억도 새롭다. 끝없이 펼쳐지던 하얀 해변백사장의 모습, 인근 북청땅의 아름답던 모습 모두가 눈에 선하다.너무도 조용하고 또 아름다운 땅이었다.
한동안 그사업에 정열을 바쳤던 인연의 힘이란 어쩔수없는 것인가보다. 나는 아직도 한반도 핵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어 더이상 늦기전에 경수로원전공사가 재개될수있기를 기대해본다.
< 경수로사업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10년간 경수로기획단의 단장을 역임 경수로원전사업의 산증인이라고 할수있는 장선섭대사가 발간위원장으로 편찬한 `KEDO 경수로사업지원백서`가 2007년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