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중국 심양 출생으로 함흥 출신 아버지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해방군예술학원 무용과 졸업, 제1회 타오리배 전국무용경연대회 소년부 최우수상,
제2회 우수연원상을 수상했다. 광주 무용학교 현대무용 실험반에 입학하여 미국 유학생으로 뽑혔으나
허가를 받지 못하고 결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1988년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무용제(A.D.F)에서
진원하는 장학금으로 유학, 4년간 마사 그레이엄, 호세 리몽, 엘빈 에일리, 모리스 커닝햄,
니콜라이&마리 루이스 무용단 등에서 현대무용을 익히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국영TV방송 '라이 우노'에서
안무가로 활동, 벨기에 왕립무용학교 현대무용 교수로 일했다. 중국 최초의 개인 무용단인 북경 현대무용 앙상블을 창단, 상하이로 건너와 진싱현대무용단 창단,
상해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수석 무용수로 임명되었으며 현재 프리마 발레리나로 있다.
작품으로는『울부짖는 용』『절반의 꿈』『적과 흑』『귀비취구』『카르미나브라나』등이 있다.
대륙을 움직이는 조선족
진싱은 함흥 출신 아버지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1967년 중국 심양에서 출생한 후 9살 때 심양군구 전진가무단에 입대, 10여 년간 영화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강도 높은 무용 교육과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21살에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의 신분이었다.
그 사이 은사 쑹차오쿤 선생님의 초청으로 북경 해방군예술학원 무용과를 졸업했고, 제1회 타오리배
전국무용경연대회 소년부 최우수상, 이듬해 제2회 대회에서 우수연원상을 수상하면서 중국 최고의 남성
무용수로 공인받았다.
그즈음 광주 무용학교에서 현대무용 실험반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광주 무용학교가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 무용제(ADF)'의 후원을 받아 만드는,
중국 - 미국간 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는 말에 고무되어 광주행을 결심했지만,
가무단 측에서는 절대로 보내줄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 진싱은 탈영과 무용대회 불참을 선언하며 투쟁한 끝에
가까스로 광주 무용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년 간의 훈련 후 무용계 최초의 유학생으로 뽑혔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무단 측은 유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가무단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진싱은 중국 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는 여권을 발급받기가 쉽지 않다. 비자가 나와도 여권이 나오지 않아서 해외로 못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간인에게도 좀처럼 내주지 않는데 군인 신분으로 여권을 얻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참담한 심정에 빠진 진싱은 결국 군대에서 탈영하여 '목숨 걸고' 뉴욕에 건너가,
자유를 향한 새 삶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혼과 몸의 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춘기 이후 28살 때까지
10여 년간 '가면을 벗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성전환을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수술은 태어난 나라 중국으로 돌아와서 받았고, 가슴 성형 · 수염 제거와 목젖 제거 · 하반신 수술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마지막 수술 당시 3시간의 대출혈과 함께 간호사의 실수로 왼쪽 다리의
신경이 손상되고 근육이 마비됐다. '다시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자살까지 결심했으나,
혹독한 재활 치료와 의지력으로 결국 무대에 복귀했다.
1988년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무용제(A.D.F)에서 지원하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4년간 마사 그레이엄 · 호세 리몽 · 엘빈 에일리 · 모리스 커닝햄 · 니콜라이 & 마리 루이스 무용단 등에서
현대무용의 '느낌'을 몸으로 익혔다. 그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국영 TV방송 '라이 우노'에서 안무가로 활동했고,
벨기에 왕립무용학교 현대무용 교수로 일했다(이때 White Wind Dance Company 창단).
중국으로 돌아와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최초의 개인 무용단인 북경 현대무용 앙상블을 창단했다(1996).
그리고 2000년에 상하이로 건너와 진싱현대무용단을 창단했고, 동시에 상해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수석 무용수로 임명되었다. 현재 중국 현대무용을 주도하는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13억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3년 나는 그를 한국에 초대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함께 공연을 했다.
난 그에게 보이차를 소개했고 현재 그가 사는 상하이에서 나도 가까운곳에 생활하고 있다.
가끔씩 차도 함께 했고 기회가 되면 좋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올바른 차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상해교민들이 좋은차를 많이 해서 건강한 생활이 되기를 기대한다.
자료제공 중국보이차연구회(http://cafe.daum.net/Buddhahood 3432-0104 茶한잔 하러오세요)
상해에서 같이 차를 즐겨하는 차벗...

소개ㅣ진싱상하이 진싱현대무용단 단장.
1967년 중국 심양 출생으로 함흥 출신 아버지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해방군예술학원 무용과 졸업, 제1회 타오리배 전국무용경연대회 소년부 최우수상,
제2회 우수연원상을 수상했다. 광주 무용학교 현대무용 실험반에 입학하여 미국 유학생으로 뽑혔으나
허가를 받지 못하고 결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1988년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무용제(A.D.F)에서
진원하는 장학금으로 유학, 4년간 마사 그레이엄, 호세 리몽, 엘빈 에일리, 모리스 커닝햄,
니콜라이&마리 루이스 무용단 등에서 현대무용을 익히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국영TV방송 '라이 우노'에서
안무가로 활동, 벨기에 왕립무용학교 현대무용 교수로 일했다.
중국 최초의 개인 무용단인 북경 현대무용 앙상블을 창단, 상하이로 건너와 진싱현대무용단 창단,
상해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수석 무용수로 임명되었으며 현재 프리마 발레리나로 있다.
작품으로는『울부짖는 용』『절반의 꿈』『적과 흑』『귀비취구』『카르미나브라나』등이 있다.
대륙을 움직이는 조선족
진싱은 함흥 출신 아버지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1967년 중국 심양에서 출생한 후 9살 때 심양군구 전진가무단에 입대, 10여 년간 영화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강도 높은 무용 교육과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21살에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의 신분이었다.그 사이 은사 쑹차오쿤 선생님의 초청으로 북경 해방군예술학원 무용과를 졸업했고, 제1회 타오리배 전국무용경연대회 소년부 최우수상, 이듬해 제2회 대회에서 우수연원상을 수상하면서 중국 최고의 남성 무용수로 공인받았다.
그즈음 광주 무용학교에서 현대무용 실험반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광주 무용학교가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 무용제(ADF)'의 후원을 받아 만드는, 중국 - 미국간 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는 말에 고무되어 광주행을 결심했지만, 가무단 측에서는 절대로 보내줄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 진싱은 탈영과 무용대회 불참을 선언하며 투쟁한 끝에 가까스로 광주 무용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년 간의 훈련 후 무용계 최초의 유학생으로 뽑혔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무단 측은 유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가무단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진싱은 중국 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는 여권을 발급받기가 쉽지 않다. 비자가 나와도 여권이 나오지 않아서 해외로 못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간인에게도 좀처럼 내주지 않는데 군인 신분으로 여권을 얻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참담한 심정에 빠진 진싱은 결국 군대에서 탈영하여 '목숨 걸고' 뉴욕에 건너가, 자유를 향한 새 삶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혼과 몸의 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춘기 이후 28살 때까지 10여 년간 '가면을 벗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성전환을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수술은 태어난 나라 중국으로 돌아와서 받았고, 가슴 성형 · 수염 제거와 목젖 제거 · 하반신 수술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마지막 수술 당시 3시간의 대출혈과 함께 간호사의 실수로 왼쪽 다리의 신경이 손상되고 근육이 마비됐다. '다시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자살까지 결심했으나, 혹독한 재활 치료와 의지력으로 결국 무대에 복귀했다.
1988년 미국아시아 문화기금회와 미국무용제(A.D.F)에서 지원하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4년간 마사 그레이엄 · 호세 리몽 · 엘빈 에일리 · 모리스 커닝햄 · 니콜라이 & 마리 루이스 무용단 등에서 현대무용의 '느낌'을 몸으로 익혔다. 그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국영 TV방송 '라이 우노'에서 안무가로 활동했고, 벨기에 왕립무용학교 현대무용 교수로 일했다(이때 White Wind Dance Company 창단).
중국으로 돌아와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최초의 개인 무용단인 북경 현대무용 앙상블을 창단했다(1996). 그리고 2000년에 상하이로 건너와 진싱현대무용단을 창단했고, 동시에 상해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수석 무용수로 임명되었다. 현재 중국 현대무용을 주도하는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13억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3년 나는 그를 한국에 초대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함께 공연을 했다. 난 그에게 보이차를 소개했고 현재 그가 사는 상하이에서 나도 가까운곳에 생활하고 있다. 가끔씩 차도 함께 했고 기회가 되면 좋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올바른 차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상해교민들이 좋은차를 많이 해서 건강한 생활이 되기를 기대한다. 자료제공 중국보이차연구회(http://cafe.daum.net/Buddhahood 3432-0104 茶한잔 하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