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속 남자가 여자보다 왜 작냐고? 나이 먹을수록 마누라가 점점 커져…"

갤러리스토어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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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왈종(63)씨는 경기도 화성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연필에 침 묻혀가며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골똘히 따라 그렸다. 아들이 "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으레 재떨이를 집어 던지던 시절, 그는 "요행히 몸이 약해" 의지를 관철했다. "어른들이 '어차피 농사도 못 지을 놈인데 뭐' 하고 내버려뒀거든. 하하!"

14일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이씨의 개인전이 열린다. 장지에 그린 한국화, 목판에 새긴 부조, 도자기로 빚은 입상 등 어느 것을 들여다보건 따뜻한 색채와 명랑한 디테일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씨는 18년 전 추계예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제주 서귀포로 내려갔다. 제주를 택한 이유는 첫째, 서울에서 멀고, 둘째, 아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결연하게 서울을 떠나 제주 작업실에 장지를 쟁여놓고 앉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림이 안 돼. 자꾸 서울 생각이 나고. 속 터지지요. 붓을 싹 내다버렸어요. 몸이 고단해야 그림이 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달렸어요. 밀감 밭 지나서, 돌담 지나서…. 한정 없이 가다 보니 숲 속이에요."

우두커니 앉아있을 때 잡초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이름 모를 작은 풀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러자 문득 잡념의 응어리가 녹았다. "꼭 마음을 '하이타이'로 빤 것처럼"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까지 새롭게 보였다. 다시 그림을 그릴 힘이 생겼다.

이후 그는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며 하늘 아래 새가 날고, 산 밑에 꽃이 피고, 조그만 지붕 아래 남녀가 발가벗고 사랑을 나누거나 낮잠을 자는 그림과 부조를 왕성하게 생산해왔다. 그는 일과가 단순하다. 서울 출입은 명절 때 고향에 가려고 거쳐가는 것까지 합쳐 1년에 5번 안팎이다. 그는 새벽 3시에 기상한다. 희미한 전구를 켠 방에 앉아 그날 그릴 그림을 구상하고, 날이 밝기 전에 산책을 한 다음, 기분이 나면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킨다. 그는 오후 5시까지 거의 바깥 손님을 만나지 않고 작업만 한다. 인근 골프장 주인이 그의 팬이라 1주일에 두세 번 골프장에 간다.

이번 전시는 2005년 이후 3년 만의 개인전이다. 특유의 서정과 해학이 화폭 가득 약동하는 가운데 '탱크'가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씨는 "바둑을 둬도 그렇다는데, 골프를 치면 사람을 바닥까지 알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친하고 점잖은 사람도 내기를 하면 눈빛이 달라져요. 전쟁이야, 전쟁. 인생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탱크를 그렸어요."

그림 속 인간들도 조금 변했다. 낮잠 자는 그림이건 차 마시는 그림이건, 대체로 남자가 여자보다 좀 작다. "그림 속 인간들은 내 자화상인데…. 거 참, 나이 먹을수록 마누라가 점점 커지더라고." 전시는 11월 2일까지. (02)519-0800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