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사주를 잘 믿었었다. 결혼 앞두고 궁합을 보는 사람들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랑 만나면 사주까페도 쪼르르 달려가곤 했고 그날 사주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만남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쩌다 궁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아이러니한 기록이 하나 있더란다.정말 이런 궁합 없다는 찰떡궁합인 부부가. 함께 산지 1년도 채 안되어남편이 부인을 살해했다는 이야기. 물론,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엄마가 한참 집이 안풀릴 당시, 대체 집이 어떻게 되려나 싶어서 점이라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보러 가셨다고 한다. 그때 아이들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해서 물어봤단다. 그랬더니 우리 애들은 엄마 아빠가 고생하면서 쌓은 덕이 많아 다 잘된다고 했단다. 특히 큰딸이 스타트를 잘 끊어주는데 교대가서 선생님 한다고, 선생님 시켜놓으면 그 다음에는 시집 잘 가서 잘 먹고 잘 산다고. 자, 그런 것도 전혀 모르는 나는교대에 들어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 1년의 동굴생활을 거쳐 드디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들어서. 순간 좀 허무했다. 나는 죽어라 노력해서 된건데, 정해져 있었다면? 뭐. 야. 이. 게. 사람사는 스토리 매우 재미없어지지 않는가. 이제 내가 변명할 차례다.내가 교대를 들어간건 순전히 공부를 해서 수능봐서 원서를 썼는데<교대 밖에 붙은 데가 없어서>이다.이것저것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운이 좋아서,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었지만내가 수능모의고사 5등급에 빛나는 성적을 받았던 2002년 9월 말 당시.270점 정도 맞았을까. 여름방학때보다 몇십점이 폭삭 주저 앉았다. 운이 없었다, 라고 말하기에는 엄청난 하락이었기에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밀려쓴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아, 어떡하지.그 때,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었다. 나는 실수한거다, 절대 수능을 못볼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금까지 해오던 페이스대로 공부를 꾸준히 했다. 수도권 4년제도 힘들거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싹 무시해버리고서.그렇게 수능을 치고 여름방학 이전의 성적으로 간신히 회복을 해 놓고 나니간당간당하게 교대를 쓸 수 있는 성적이 되어서 교대를 하나 쓰고,등록금이 미치도록 비싸기로 소문난 사립대 두 곳 사범대를 지원했다.그러나, 경쟁률은 사립대 두곳은 예년과 달리 팍 치솟았고교대는 평균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나는 비평준화 고등학교 학생의 비애때문에(중간, 기말고사 점수가 100점일 때에만 석차 1등, 96점이면 230등-_-)닭갈비가 맛나다는 c교대를 뒤로한 채 g교대로 부랴부랴 원서를 넣으러 가는데참, 앞이 깜깜했었다. 어디든 되긴 될텐데. 그렇게 몇일 뒤,나머지 두군데는 예비로 되고 교대도 예비로 됐다. 집에서는 자취하면 안된다며 서울로 갈 것을 종용하며 나의 지방행을 결사 반대했지만 등록금이 싸기 때문에 집에서도 몇백만원의 등록금을 대기는 어렵고나도 채무자의 상태로 사회에 나가기는 싫었기 때문에(정말 생계적인 이유로)결국은 예비합격자가 합격자로 변한 유일한 대학인 교대로 나는 짐을 싸들고 홀홀단신 내려갔다.그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고 작년에 공부기간을 거쳐 또 천안으로 내려왔다.운이 좋았다고들 한다. 나도 그냥 끄덕인다.이 여학생이 하도 불쌍하고 답이 안나오니까, 어쩔수 없이 하늘이 도왔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절대 수능을 못볼리가 없어>라는 단호한 마음가짐 말이다.임용을 칠 때에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뭔가 좀 불안했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뭐 그런거. 그 마음가짐이 딱 들어맞았다.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충남으로 내려올 때도 그랬다. 또 집에서 떨어져 살아야 해? 라고 생각했다.아이고 지긋지긋해.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내가 노력해서 된거야.안 된 일들은 내가 못해서 그런거야.잘하면 할 수 있어. 라고 끊임없이 생각했다.그래야 사주나 궁합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할 팔자다. 가 아니라 충남이 가산점도 있기 때문에 합격 확률이 높다. 라고 말이다. 사주 궁합에 관심은 많아서 사주까페에 쏟아부은 돈이 꽤 되긴 하지만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보기도 자주 봤다. 말을 하자면, 한 10군데 중 8군데 정도가 같은 말을 했다. 연애복이 없어서 남자는 꼭 소개로 만나야 되고(연애도 못하고)금기운이 많아서 칼을 쓰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대체적으로 직업이 뭐냐고 물어본 다음에 말이 바뀐다. 사주에 열이 많아 말을 많이 해서 밖으로 뿜어내는 말을 해야된다고)관운, 명예운이 있어서 잘먹고 잘산다.집에서 떨어져 살아야 일이 잘 풀리고남편복이 있다.(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내가 남편복이 있어서 못난 사주의 사람도 나와 살아서 복이 생겨 더 잘 되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나보다 원래 잘난 사람을 만나서 내가 편하게 사는 경우도 있고결국 누구랑 하든 나의 페이스대로 잘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웃기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일복이 많고이혼수 없고 자, 지금부터는 아주 웃기는 항목들이다. 눈여겨 봐주시길.결혼을 서른 넘어서 해야된다, 스물일곱이 적령기다, 남편은 사업하는 사람은 안된다, 연애는 전혀 못한다. 아니다 주변에 맴도는 사람이 많으니 잘 잡아서 결혼해라, 남자보는 눈이 바닥에 붙어서 소개팅을 해야된다.아니다 남자가 쫓아다녀서 만나면 연애도 가능하다.공직에 조용히 종사하되 예술계통은 건들지도 말아라, 아니다 재능이 열두가지가 넘기 때문에 세상을 비출 수 있다, 남자는 내가 기가 세기 때문에 연하여야 한다, 아니다 네다섯이 많아야 내 기를 누르고 내가 애교를 부릴 수 있다, 자식은 셋이다, 둘이다, 자식복 없다, 가족과의 관계가 그닥 좋지 않다, 형제애가 너무 좋다. 결국 여기에 나온 수많은 말들 중에 뭐가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저 말은 누구에게나 가져다 붙여도 아, 내가 그렇구나, 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쭉 써놓고 읽으니 우스울지경이다. 저게 다 내가 들은 말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사주는 통계학이라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반대로 무시해버리면 실제로 그 사주대로 흘러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는 생각 할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이 삶에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교원 다닐때 한 젊은 스님의 고백. "내가 이건희 회장보다 사주가 더 좋은 기업가 사주라고 했었어."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한 커플이 결혼 허락을 앞두고 남자집에서 미리 궁합을 봤는데 미치도록 나쁘게 나와서(일반적인 사항들.. 자식복 없고 여자가 남자 잡을 사주) 남자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 했다. 이 커플은 고민끝에 궁합을 본 집으로 다시 찾아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시간>을 찾아내서 다시 궁합을 봐달라고, 여자쪽의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해 부모님을 모셔 다시 궁합을 보게 했고 궁합은 당연히 좋게 나왔다. 가뿐하게 양가에서 결혼을 허락받고 무사히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아 잘 기르고 있고, 사업은 번창하고, 주말마다 여행 다니고, 부부는 친구처럼 너무도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결국 세상에 각종 철학자들이 난무하지만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거다. 결국은 운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운명을 <실행>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 첫걸음이 바로 핑계대지 않기.내가 잘못한 것은 내가 신중하지 못하고 주의깊게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데에서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결국 궁합이나 사주라는 것은 내 인생의 큰 기로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결정이 잘 되었을, 혹은 잘못 되었을 경우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어떠한 <그릇된 방패막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기점은 자신이 정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게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가끔 힘들면 뭘 좀 배웠다고 생각하고, 실수하면 좀 혼나고 책임지면 되는거고. 그걸 내 운이 꼬였네 어쨌네 생각하면, 나는!결국 "운"이라는 녀석에 내 인생을 책임지게 만들어버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거다. 나는 90%의 확률로 예언한 사주처럼 되었을까?칼을 잡은 사람이 되지도 않았고, 소개팅은 하는 족족 박살났고(실패율100% 달성), 집에서 떨어져 살아서 돈이 더 많이 나가 가끔은 더 힘들고. 하여간 통계학은 회칼이 생선뼈를 스쳐가듯 나를 비껴갔다. 그게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나는 적어도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면 아무말 없이 손을 꼭 먼저 내밀어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궁합이나 혹은 나의 운을 핑계삼아 비겁하게 물러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 성향 자체도 니 팔자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곧 닥쳐올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바로 그것이다. 그 중요한 인생의 시점에서 통계학이 만들어놓은 다른이의 의견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 도대체 그것이 내 삶에 저지르는 무슨 무례한 짓이란 말인가.2
나는 사주와 궁합을 믿지 않는다.
원래 나는 사주를 잘 믿었었다.
결혼 앞두고 궁합을 보는 사람들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랑 만나면 사주까페도 쪼르르 달려가곤 했고
그날 사주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만남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쩌다 궁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아이러니한 기록이 하나 있더란다.
정말 이런 궁합 없다는 찰떡궁합인 부부가. 함께 산지 1년도 채 안되어
남편이 부인을 살해했다는 이야기.
물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가 한참 집이 안풀릴 당시, 대체 집이 어떻게 되려나 싶어서
점이라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보러 가셨다고 한다.
그때 아이들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해서 물어봤단다.
그랬더니 우리 애들은 엄마 아빠가 고생하면서 쌓은 덕이 많아 다 잘된다고 했단다.
특히 큰딸이 스타트를 잘 끊어주는데 교대가서 선생님 한다고,
선생님 시켜놓으면 그 다음에는 시집 잘 가서 잘 먹고 잘 산다고.
자, 그런 것도 전혀 모르는 나는
교대에 들어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
1년의 동굴생활을 거쳐 드디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들어서.
순간
좀 허무했다. 나는 죽어라 노력해서 된건데, 정해져 있었다면?
뭐. 야. 이. 게.
사람사는 스토리 매우 재미없어지지 않는가.
이제 내가 변명할 차례다.
내가 교대를 들어간건 순전히 공부를 해서 수능봐서 원서를 썼는데
<교대 밖에 붙은 데가 없어서>이다.
이것저것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운이 좋아서,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었지만
내가 수능모의고사 5등급에 빛나는 성적을 받았던 2002년 9월 말 당시.
270점 정도 맞았을까. 여름방학때보다 몇십점이 폭삭 주저 앉았다.
운이 없었다, 라고 말하기에는 엄청난 하락이었기에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밀려쓴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아, 어떡하지.
그 때,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었다. 나는 실수한거다, 절대 수능을 못볼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금까지 해오던 페이스대로 공부를 꾸준히 했다.
수도권 4년제도 힘들거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싹 무시해버리고서.
그렇게 수능을 치고 여름방학 이전의 성적으로 간신히 회복을 해 놓고 나니
간당간당하게 교대를 쓸 수 있는 성적이 되어서 교대를 하나 쓰고,
등록금이 미치도록 비싸기로 소문난 사립대 두 곳 사범대를 지원했다.
그러나, 경쟁률은 사립대 두곳은 예년과 달리 팍 치솟았고
교대는 평균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나는 비평준화 고등학교 학생의 비애때문에
(중간, 기말고사 점수가 100점일 때에만 석차 1등, 96점이면 230등-_-)
닭갈비가 맛나다는 c교대를 뒤로한 채 g교대로 부랴부랴 원서를 넣으러 가는데
참, 앞이 깜깜했었다. 어디든 되긴 될텐데.
그렇게 몇일 뒤,
나머지 두군데는 예비로 되고 교대도 예비로 됐다.
집에서는 자취하면 안된다며 서울로 갈 것을 종용하며 나의 지방행을 결사 반대했지만
등록금이 싸기 때문에 집에서도 몇백만원의 등록금을 대기는 어렵고
나도 채무자의 상태로 사회에 나가기는 싫었기 때문에
(정말 생계적인 이유로)
결국은 예비합격자가 합격자로 변한 유일한 대학인 교대로 나는 짐을 싸들고 홀홀단신 내려갔다.
그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고
작년에 공부기간을 거쳐 또 천안으로 내려왔다.
운이 좋았다고들 한다. 나도 그냥 끄덕인다.
이 여학생이 하도 불쌍하고 답이 안나오니까, 어쩔수 없이 하늘이 도왔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절대 수능을 못볼리가 없어>라는 단호한 마음가짐 말이다.
임용을 칠 때에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뭔가 좀 불안했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뭐 그런거. 그 마음가짐이 딱 들어맞았다.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충남으로 내려올 때도 그랬다. 또 집에서 떨어져 살아야 해? 라고 생각했다.
아이고 지긋지긋해.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내가 노력해서 된거야.
안 된 일들은 내가 못해서 그런거야.
잘하면 할 수 있어. 라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래야 사주나 궁합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할 팔자다. 가 아니라
충남이 가산점도 있기 때문에 합격 확률이 높다. 라고 말이다.
사주 궁합에 관심은 많아서 사주까페에 쏟아부은 돈이 꽤 되긴 하지만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보기도 자주 봤다.
말을 하자면, 한 10군데 중 8군데 정도가 같은 말을 했다.
연애복이 없어서 남자는 꼭 소개로 만나야 되고(연애도 못하고)
금기운이 많아서 칼을 쓰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대체적으로 직업이 뭐냐고 물어본 다음에 말이 바뀐다.
사주에 열이 많아 말을 많이 해서 밖으로 뿜어내는 말을 해야된다고)
관운, 명예운이 있어서 잘먹고 잘산다.
집에서 떨어져 살아야 일이 잘 풀리고
남편복이 있다.(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내가 남편복이 있어서 못난 사주의 사람도
나와 살아서 복이 생겨 더 잘 되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나보다 원래 잘난 사람을 만나서 내가 편하게 사는 경우도 있고
결국 누구랑 하든 나의 페이스대로 잘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웃기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일복이 많고
이혼수 없고
자, 지금부터는 아주 웃기는 항목들이다. 눈여겨 봐주시길.
결혼을 서른 넘어서 해야된다, 스물일곱이 적령기다,
남편은 사업하는 사람은 안된다, 연애는 전혀 못한다.
아니다 주변에 맴도는 사람이 많으니 잘 잡아서 결혼해라,
남자보는 눈이 바닥에 붙어서 소개팅을 해야된다.
아니다 남자가 쫓아다녀서 만나면 연애도 가능하다.
공직에 조용히 종사하되 예술계통은 건들지도 말아라,
아니다 재능이 열두가지가 넘기 때문에 세상을 비출 수 있다,
남자는 내가 기가 세기 때문에 연하여야 한다,
아니다 네다섯이 많아야 내 기를 누르고 내가 애교를 부릴 수 있다,
자식은 셋이다, 둘이다, 자식복 없다,
가족과의 관계가 그닥 좋지 않다, 형제애가 너무 좋다.
결국 여기에 나온 수많은 말들 중에 뭐가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은 누구에게나 가져다 붙여도 아, 내가 그렇구나, 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쭉 써놓고 읽으니 우스울지경이다. 저게 다 내가 들은 말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사주는 통계학이라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반대로 무시해버리면 실제로 그 사주대로 흘러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는 생각 할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이 삶에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교원 다닐때 한 젊은 스님의 고백.
"내가 이건희 회장보다 사주가 더 좋은 기업가 사주라고 했었어."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한 커플이 결혼 허락을 앞두고 남자집에서 미리 궁합을 봤는데
미치도록 나쁘게 나와서(일반적인 사항들.. 자식복 없고 여자가 남자 잡을 사주)
남자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 했다.
이 커플은 고민끝에 궁합을 본 집으로 다시 찾아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시간>을 찾아내서 다시 궁합을 봐달라고,
여자쪽의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해
부모님을 모셔 다시 궁합을 보게 했고 궁합은 당연히 좋게 나왔다.
가뿐하게 양가에서 결혼을 허락받고 무사히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아 잘 기르고 있고,
사업은 번창하고, 주말마다 여행 다니고, 부부는 친구처럼 너무도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결국 세상에 각종 철학자들이 난무하지만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거다.
결국은 운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운명을 <실행>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핑계대지 않기.
내가 잘못한 것은 내가 신중하지 못하고 주의깊게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데에서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
결국 궁합이나 사주라는 것은
내 인생의 큰 기로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결정이 잘 되었을, 혹은 잘못 되었을 경우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어떠한 <그릇된 방패막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기점은 자신이 정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게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가끔 힘들면 뭘 좀 배웠다고 생각하고, 실수하면 좀 혼나고 책임지면 되는거고.
그걸 내 운이 꼬였네 어쨌네 생각하면,
나는!
결국 "운"이라는 녀석에 내 인생을 책임지게 만들어버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거다.
나는 90%의 확률로 예언한 사주처럼 되었을까?
칼을 잡은 사람이 되지도 않았고, 소개팅은 하는 족족 박살났고(실패율100% 달성),
집에서 떨어져 살아서 돈이 더 많이 나가 가끔은 더 힘들고.
하여간 통계학은 회칼이 생선뼈를 스쳐가듯 나를 비껴갔다.
그게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나는 적어도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면
아무말 없이 손을 꼭 먼저 내밀어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궁합이나 혹은 나의 운을 핑계삼아 비겁하게 물러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 성향 자체도 니 팔자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곧 닥쳐올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중요한 인생의 시점에서 통계학이 만들어놓은 다른이의 의견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
도대체 그것이 내 삶에 저지르는 무슨 무례한 짓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