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기대했던 날이라 그런지 정말 안풀리는 하루였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의 커플때문에 지하철을 간발로 놓치고 돈찾으러 은행에 갔더니 카드에 잔액이 하나도 없고 레슨을 15분이나 늦어서 45분밖에 못 받았을 뿐더러 브람스와 하이든 2악장을 말 할 수 없이 형편없게 쳤고 약속 나가봐야 되는데 집에 내 카드까지 놓고왔던 서둘러 나오다가 구두신는 것 조차 깜빡했던 불행의 연속이었다. 페라이어가 얼마나 나에게 기쁨을 주려고 이런 운명을 만들었을까.
클래식 공연 중 피아노 연주회 관객의 특징은 대다수 곡을 숙지하고 있으며 수준이 한층 높다는 것이다. 다른 악기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면 악장 간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은데 피아노 연주회의 관객들은 악장 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 모두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시끌벅적하게 음악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페라이어에게 한 수 배우러 찾아온 전공생들과 선생님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페라이어가 걸어나온다. 페라이어를 보는 첫 느낌은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나는 페라이어의 신들린 연주 동영상이라면 세계적으로 떠도는 동영상들을 수백번 봐왔다. 페라이어는 피아노에 앉자 마자 연주회의 가장 첫 곡을 시작했다. 얼마나 연주회를 많이 갖고 익숙해져야 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할 수 있을까. 나라면 손도 안풀렸을 것인데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페라이어는 그렇게 박수소리가 멈추자 마자 연주회장에 신성한 그의 음색을 깔았다. 내가 잘 모르는 바흐의 파르티타를 어떻게 치든 별 상관 없었다. 실제로는 처음 듣는 페라이어의 음색만 생각했다. 매우 빠르고 음표도 많은 파르티타를 마치 잔물결 위에 멜로디가 떠있듯한 음색으로 조용하게 연주했다. 그야 말로 완벽한 컨트롤이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를 연주할 수록, 그리고 들을수록 바흐에 빠져들어 가는데 페라이어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바흐는 정말로 좋은 진정한 음악이라는 매력을 느낀다. 바흐의 음악은 너무나도 경건하고 신성하다. 저절로 내 자신을 낮추고 그 음악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역행하여 낭만 이후로 고전, 그리고 바로크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르티타는 1번의 마지막 곡 지그였는데 라디오에서 아마 안스네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연주자의 14살적 연주로 들은 적이있었다. 파르티타는 멜로디 진행 자체는 빠르지 않지만 전체 음표의 진행이 빨라서 14살짜리 피아니스트의 연주로는 화려한 현대음악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페라이어를 통해 다시 본 바흐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흐뭇한 잔잔한 음향만이 있었다.
시대를 하나 건너와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바로크에서 전기 후기 고전과 낭만으로 차례대로 진행했다. 모차르트 소나타 12번 F장조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연주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감동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모든 음표 하나하나 마다 큰 의미가 있었다. 페라이어는 이러한 의미들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시켰다. 그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모차르트의 텍스트를 마침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색은 지옥에서부터 천국에 이르는 공간 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이 넓고 다양했다. 그 한곡에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도 쳤었던 곡이지만 이 곡의 0.1%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음색을 사용 할 수 있기때문에 그 엄청난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미세한 음색의 차이를 실제로 듣는 것은 매우 미묘하기 때문에 수십장의 음반을 수백번을 들었다 해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1악장, 2악장, 3악장 모두 완벽한 주옥과 같은 연주였다. 마음의 이쪽 저쪽을 파고 들었다. 페라이어의 음색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깊기때문에 그야말로 가슴 속 깊이 마음을 울린다. 2악장에서는 마음의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세계에는 없는 무엇과 같았다고 할까. 음 하나의 깊이가 땅속을 파고 드는 듯 했다. 장조와 단조로 각기 빠져드는 아름다운 선율들 뿐만 아니라 각각의 프레이즈마다 다르게 담긴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역시 모차르트는 모든 음악의 궁극점이며 천재 음악가이다. 더이상 언급했다가는 상처를 내버릴 것만 같은 페라이어 연주의 비밀은 역시 연습과 끝없는 고뇌. 나는 한때 완벽한 피아니스트라면 곡을 천천히 연습할 필요가 있을지 그들도 정말 천천히 연습을 하는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페라이어의 연주를 들으니 천천히 연습하지 않고서야 결코 불가능한 것, 모든 악구와 한마디 한마디, 음표 하나하나까지도 한없이 고뇌하고 다듬어 마침네 빛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층 엄숙해진 분위기의 베토벤 열정속으로 들어갔다. 페라이어의 베토벤은 전혀 손색이 없다. 이렇게 고전이 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인줄 처음 알았다. 오히려 낭만보다 고전이 훨씬 잘 맞는다. 베토벤 소나타에도 최대한의 내용을 담았다. 열정소나타를 이정도로 한음한음 자세하게 치는 사람이 있었던가 싶었다. 모든 아이디어 하나하나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모차르트보다는 크게 흘러가는 구성이어서 모차르트가 이 곡보단 훨씬 어렵겠다고 실감했다. 나는 열정의 절정감을 3악장에 이르기 전에 이미 1악장에서 경험했다. 첫 도입부에서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거침없는 싱코페이션의 코드에서부터 시작하여 특히 1악장 코다의 강렬함이 기억에 남는다. 부드럽게 균형잡히고 가득찬 매우 빠른 아르페지오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페라이어는 종종 강한 다성부 화음에서 베이스를 윗 성부와 시간차를 두어 조금 늦게 나오게 했는데 그 효과에 대한 생각은 피아노가 울리는 방향의 특성상 윗 소리를 밀어내어 더욱 풍부하게 울릴 수 있게 하는 미묘한 음향적 수법이 아닌가 한다. 이는 메트로놈을 피아노의 왼쪽에 놓고 저음과 함께 울리게 했을 때 소리가 증폭되어 오른쪽에 놓고 고음부와 함께 울릴 때보다 더 크게 들리는 현상으로 보아 일리가 있다. 2악장에서도 역시 음표 하나마다 전해주는 메시지와 마치 소리가 떠다니는 듯 하고 서스테인 페달에 음이 적절히 축적되면서 내는 매우 아름다운 음향을 들을 수 있었다. 3악장 코다는 얼마나 빨랐는지 그러면서도 적절한 음색을 구사하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소름끼쳤다. 3악장이 끝나가면서 나는 흐뭇함을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페라이어의 연주를 듣게 된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회에 가지 않고 6시간동안 연습을 하는 것 보다, 같은 시간동안 수십장의 음반을 듣는 것 보다 훨씬 얻은 것이 많은 대체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끝나자 마자 브라보와 환호를 주고 싶었지만 시원한 박수로 대신했다. 선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연주였다. 그러면서 페라이어는 여전히 젊음을 가진듯 했다. 역시 모든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최고로 좋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그냥 페라이어의 음반을 듣는 것이 그나마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물론 들리는 것보다 한층 깊은 음색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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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거침없는 강렬함. 폭풍질주. 그 속에 녹아드는 아름다움.
루빈스타인에서 짐머만, 그 사이에 페라이어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쇼팽의 세 기둥이다. 페라이어의 쇼팽은 충실하면서도 사소한 독창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욱 독창적인 쇼팽이었다. 발라드 3번은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는지 시원시원했다. 게다가 격렬하게 요동치기도 했다. 그것은 발라드 3번 악보 속 보여지는 감정 그 보다는 다른 쇼팽의 감정을 끄집어 올린 것 같았다. 그의 템포에서 갑작스러운 발라드 3번의 시간적 구성을 느꼈다. 에튀드 25-1번도 템포 루바토가 쥐어짜는 듯 하였고 명료한 멜로디와 잔잔한 파도의 대비는 그간 들어본 실황연주와 비교할 바가 안된다. 25-3번 에튀드는 다른 에튀드의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 가끔 듣는데 아직 모든 부분이 익숙한 것이 아니여서 페라이어의 연주를 들으며 새로운 멜로디와 프레이즈를 발견했다. 그만큼 페라이어는 내용을 잘 담았고 관객에게 잘 전달시킨다. 너무나 아름다운 에튀드 25-5번은 에튀드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곡이다. 빠른 템포를 구사했는데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각각의 프레이즈 하나씩 한 폭의 그림에 담은 듯 한 눈에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마지막 에튀드 혁명에서도 스타일의 변혁을 볼 수 있었다. 보다 강렬하고 시원시원했는데 페라이어의 부드러운 펼친 진행은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따라나오는 아랫 성부를 깊고 푹신하면서 잘 나타나게 연주하니 곡 전체 이미지는 보다 끌어 올려졌다. 마지막 발라드 4번은 거장과 어울리는 거장의 대곡이었다. 프로그램의 맨 마지막 곡으로 정착감이 들어야 할 때에 쇼팽의 선율 속에 오히려 배회했다. 연주회 전에는 가장 기대했던 쇼팽이지만 막상 감동은 고전에 못 미쳤다.
엥콜로는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듣고 동심을 느끼는 듯 했지만 그것은 극도의 폐단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고귀하다. 실제로 동네학원에서 들리는 것과 달리 이 곡에 얼마나 많은 순결한 음색들이 들어있는가 말이다. 작품 90-4는 특히 좋은 곡이다. 이 곡의 장조선율은 천상의 소리와 같다. 나는 페라이어의 트리오부분 벨런스에서 약간 불안함을 느꼈다. 페라이어는 격렬하기를 원했고 왼손이 선율을 방해하기에 이르렀으나 나는 좀더 애처롭고 차분한 선율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직 클라이맥스에서만 격렬하게 치닫아야한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는 큰 충격을 받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페라이어로부터 얻은 새로운 고전음악으로의 깨달음이 내 가슴에 깊이 뿌리박힌 쇼팽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쇼팽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고전음악의 형식미에 대단히 매료되었다. 거장들도 분명히 이처럼 느낄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쇼팽을 연주하도록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쇼팽의 온갖 감정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을 좋아했다. 쇼팽의 음악은 정말 서정적이다. 하지만 고전음악 앞에서 쇼팽은 너무도 외소해졌다. 형식이 자유로운 낭만음악 속에 나타나는 그 새로운 형식을 발견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쇼팽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이외에 악보의 표면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자체적인 것은 아직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연주회가 끝나고 페라이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분수에 안맞는 모든 말들을 접어두고 묻고싶었던 한 마디는 '당신은 왜 쇼팽을 연주하는가'였다.
페라이어에 대한 회상
2008년 10월 30일 황홀했던 페라이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너무 기대했던 날이라 그런지 정말 안풀리는 하루였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의 커플때문에 지하철을 간발로 놓치고 돈찾으러 은행에 갔더니 카드에 잔액이 하나도 없고 레슨을 15분이나 늦어서 45분밖에 못 받았을 뿐더러 브람스와 하이든 2악장을 말 할 수 없이 형편없게 쳤고 약속 나가봐야 되는데 집에 내 카드까지 놓고왔던 서둘러 나오다가 구두신는 것 조차 깜빡했던 불행의 연속이었다. 페라이어가 얼마나 나에게 기쁨을 주려고 이런 운명을 만들었을까.
클래식 공연 중 피아노 연주회 관객의 특징은 대다수 곡을 숙지하고 있으며 수준이 한층 높다는 것이다. 다른 악기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면 악장 간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은데 피아노 연주회의 관객들은 악장 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 모두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시끌벅적하게 음악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페라이어에게 한 수 배우러 찾아온 전공생들과 선생님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페라이어가 걸어나온다. 페라이어를 보는 첫 느낌은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나는 페라이어의 신들린 연주 동영상이라면 세계적으로 떠도는 동영상들을 수백번 봐왔다. 페라이어는 피아노에 앉자 마자 연주회의 가장 첫 곡을 시작했다. 얼마나 연주회를 많이 갖고 익숙해져야 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할 수 있을까. 나라면 손도 안풀렸을 것인데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페라이어는 그렇게 박수소리가 멈추자 마자 연주회장에 신성한 그의 음색을 깔았다. 내가 잘 모르는 바흐의 파르티타를 어떻게 치든 별 상관 없었다. 실제로는 처음 듣는 페라이어의 음색만 생각했다. 매우 빠르고 음표도 많은 파르티타를 마치 잔물결 위에 멜로디가 떠있듯한 음색으로 조용하게 연주했다. 그야 말로 완벽한 컨트롤이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를 연주할 수록, 그리고 들을수록 바흐에 빠져들어 가는데 페라이어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바흐는 정말로 좋은 진정한 음악이라는 매력을 느낀다. 바흐의 음악은 너무나도 경건하고 신성하다. 저절로 내 자신을 낮추고 그 음악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역행하여 낭만 이후로 고전, 그리고 바로크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르티타는 1번의 마지막 곡 지그였는데 라디오에서 아마 안스네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연주자의 14살적 연주로 들은 적이있었다. 파르티타는 멜로디 진행 자체는 빠르지 않지만 전체 음표의 진행이 빨라서 14살짜리 피아니스트의 연주로는 화려한 현대음악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페라이어를 통해 다시 본 바흐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흐뭇한 잔잔한 음향만이 있었다.
시대를 하나 건너와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바로크에서 전기 후기 고전과 낭만으로 차례대로 진행했다. 모차르트 소나타 12번 F장조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연주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감동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모든 음표 하나하나 마다 큰 의미가 있었다. 페라이어는 이러한 의미들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시켰다. 그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모차르트의 텍스트를 마침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색은 지옥에서부터 천국에 이르는 공간 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이 넓고 다양했다. 그 한곡에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도 쳤었던 곡이지만 이 곡의 0.1%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음색을 사용 할 수 있기때문에 그 엄청난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미세한 음색의 차이를 실제로 듣는 것은 매우 미묘하기 때문에 수십장의 음반을 수백번을 들었다 해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1악장, 2악장, 3악장 모두 완벽한 주옥과 같은 연주였다. 마음의 이쪽 저쪽을 파고 들었다. 페라이어의 음색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깊기때문에 그야말로 가슴 속 깊이 마음을 울린다. 2악장에서는 마음의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세계에는 없는 무엇과 같았다고 할까. 음 하나의 깊이가 땅속을 파고 드는 듯 했다. 장조와 단조로 각기 빠져드는 아름다운 선율들 뿐만 아니라 각각의 프레이즈마다 다르게 담긴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역시 모차르트는 모든 음악의 궁극점이며 천재 음악가이다. 더이상 언급했다가는 상처를 내버릴 것만 같은 페라이어 연주의 비밀은 역시 연습과 끝없는 고뇌. 나는 한때 완벽한 피아니스트라면 곡을 천천히 연습할 필요가 있을지 그들도 정말 천천히 연습을 하는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페라이어의 연주를 들으니 천천히 연습하지 않고서야 결코 불가능한 것, 모든 악구와 한마디 한마디, 음표 하나하나까지도 한없이 고뇌하고 다듬어 마침네 빛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층 엄숙해진 분위기의 베토벤 열정속으로 들어갔다. 페라이어의 베토벤은 전혀 손색이 없다. 이렇게 고전이 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인줄 처음 알았다. 오히려 낭만보다 고전이 훨씬 잘 맞는다. 베토벤 소나타에도 최대한의 내용을 담았다. 열정소나타를 이정도로 한음한음 자세하게 치는 사람이 있었던가 싶었다. 모든 아이디어 하나하나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모차르트보다는 크게 흘러가는 구성이어서 모차르트가 이 곡보단 훨씬 어렵겠다고 실감했다. 나는 열정의 절정감을 3악장에 이르기 전에 이미 1악장에서 경험했다. 첫 도입부에서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거침없는 싱코페이션의 코드에서부터 시작하여 특히 1악장 코다의 강렬함이 기억에 남는다. 부드럽게 균형잡히고 가득찬 매우 빠른 아르페지오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페라이어는 종종 강한 다성부 화음에서 베이스를 윗 성부와 시간차를 두어 조금 늦게 나오게 했는데 그 효과에 대한 생각은 피아노가 울리는 방향의 특성상 윗 소리를 밀어내어 더욱 풍부하게 울릴 수 있게 하는 미묘한 음향적 수법이 아닌가 한다. 이는 메트로놈을 피아노의 왼쪽에 놓고 저음과 함께 울리게 했을 때 소리가 증폭되어 오른쪽에 놓고 고음부와 함께 울릴 때보다 더 크게 들리는 현상으로 보아 일리가 있다. 2악장에서도 역시 음표 하나마다 전해주는 메시지와 마치 소리가 떠다니는 듯 하고 서스테인 페달에 음이 적절히 축적되면서 내는 매우 아름다운 음향을 들을 수 있었다. 3악장 코다는 얼마나 빨랐는지 그러면서도 적절한 음색을 구사하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소름끼쳤다. 3악장이 끝나가면서 나는 흐뭇함을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페라이어의 연주를 듣게 된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회에 가지 않고 6시간동안 연습을 하는 것 보다, 같은 시간동안 수십장의 음반을 듣는 것 보다 훨씬 얻은 것이 많은 대체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끝나자 마자 브라보와 환호를 주고 싶었지만 시원한 박수로 대신했다. 선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연주였다. 그러면서 페라이어는 여전히 젊음을 가진듯 했다. 역시 모든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최고로 좋았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그냥 페라이어의 음반을 듣는 것이 그나마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물론 들리는 것보다 한층 깊은 음색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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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거침없는 강렬함. 폭풍질주. 그 속에 녹아드는 아름다움.
루빈스타인에서 짐머만, 그 사이에 페라이어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쇼팽의 세 기둥이다. 페라이어의 쇼팽은 충실하면서도 사소한 독창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욱 독창적인 쇼팽이었다. 발라드 3번은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는지 시원시원했다. 게다가 격렬하게 요동치기도 했다. 그것은 발라드 3번 악보 속 보여지는 감정 그 보다는 다른 쇼팽의 감정을 끄집어 올린 것 같았다. 그의 템포에서 갑작스러운 발라드 3번의 시간적 구성을 느꼈다. 에튀드 25-1번도 템포 루바토가 쥐어짜는 듯 하였고 명료한 멜로디와 잔잔한 파도의 대비는 그간 들어본 실황연주와 비교할 바가 안된다. 25-3번 에튀드는 다른 에튀드의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 가끔 듣는데 아직 모든 부분이 익숙한 것이 아니여서 페라이어의 연주를 들으며 새로운 멜로디와 프레이즈를 발견했다. 그만큼 페라이어는 내용을 잘 담았고 관객에게 잘 전달시킨다. 너무나 아름다운 에튀드 25-5번은 에튀드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곡이다. 빠른 템포를 구사했는데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각각의 프레이즈 하나씩 한 폭의 그림에 담은 듯 한 눈에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마지막 에튀드 혁명에서도 스타일의 변혁을 볼 수 있었다. 보다 강렬하고 시원시원했는데 페라이어의 부드러운 펼친 진행은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따라나오는 아랫 성부를 깊고 푹신하면서 잘 나타나게 연주하니 곡 전체 이미지는 보다 끌어 올려졌다. 마지막 발라드 4번은 거장과 어울리는 거장의 대곡이었다. 프로그램의 맨 마지막 곡으로 정착감이 들어야 할 때에 쇼팽의 선율 속에 오히려 배회했다. 연주회 전에는 가장 기대했던 쇼팽이지만 막상 감동은 고전에 못 미쳤다.
엥콜로는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듣고 동심을 느끼는 듯 했지만 그것은 극도의 폐단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고귀하다. 실제로 동네학원에서 들리는 것과 달리 이 곡에 얼마나 많은 순결한 음색들이 들어있는가 말이다. 작품 90-4는 특히 좋은 곡이다. 이 곡의 장조선율은 천상의 소리와 같다. 나는 페라이어의 트리오부분 벨런스에서 약간 불안함을 느꼈다. 페라이어는 격렬하기를 원했고 왼손이 선율을 방해하기에 이르렀으나 나는 좀더 애처롭고 차분한 선율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직 클라이맥스에서만 격렬하게 치닫아야한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는 큰 충격을 받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페라이어로부터 얻은 새로운 고전음악으로의 깨달음이 내 가슴에 깊이 뿌리박힌 쇼팽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쇼팽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고전음악의 형식미에 대단히 매료되었다. 거장들도 분명히 이처럼 느낄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쇼팽을 연주하도록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쇼팽의 온갖 감정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을 좋아했다. 쇼팽의 음악은 정말 서정적이다. 하지만 고전음악 앞에서 쇼팽은 너무도 외소해졌다. 형식이 자유로운 낭만음악 속에 나타나는 그 새로운 형식을 발견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쇼팽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이외에 악보의 표면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자체적인 것은 아직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연주회가 끝나고 페라이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분수에 안맞는 모든 말들을 접어두고 묻고싶었던 한 마디는 '당신은 왜 쇼팽을 연주하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