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유치한 게 아니라 마법인 거야.

박숙영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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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매력1- 브루노 베텔하임

 

나는 어린 시절 냉엄한 현실로 인해 너무 일찍 마법을 박탈당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청년기 후반에 마술에 몰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마치 그 시기를 놓치면 인생에서 그 심각한 결핍 상태를 더 이상 메울 기회가 없음을 그 젊은이들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또는 마법에 매혹된 그 달콤한 경험 없이는 성인의 가혹한 삶에 대처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는 갑자기 약물에 의한 몽환의 세계에 빠져들거나, 도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거나, 점성술을 믿거나, "흑마술"의 실행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또 이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이 갑자기 멋지게 바꾸어지는 마법적인 사건이 생길 거라는 현실 도피적인 백일몽에 빠져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젊은이들 중에는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어른들의 조숙한 시각으로 현실을 보게끔 억압을 받았던 경우가 많다. 그런 식의 현실도피 성향 이면에는 초기 성장과정에서 현실적인 방법으로 삶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자라지 못하게 한 어떤 원천적인 경험들이 있기 마련이다.

 

각 개인에게 바람직한 것은 자신의 한평생 속에서 과학적인 사고의 역사적인 발생 과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인류가 살아 온 과정을 보면 꽤 오랫동안 정서적인 투사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신들에 관한 개념도 그러한데, 그런 정서적인 투사는 인간, 그가 속한 사회, 우주에 관해 설명하려는 미숙한 희망과 걱정들로부터 생겨났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회적, 과학적, 기술적으로 성숙해짐에 따라 인류는 서서히 바로 그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로부 터 벗어날 수가 있게 된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보다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인간은 설명적인 도구로 과거에 이용하던 그 투사들이 타당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치한" 투사가 어느덧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보다 합리적인 설명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중간 중간 긴장되고 막막하던 시기에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거처하는 장소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 "유치한" 생각으로 위로를 받았다.

 

인간 행동의 관점으로 바꾸어 보면, 사람은 세상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유아적인 "투사"에 의존할 필요가 적어진다. 즉,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신화난 옛이야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며,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어한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의 세계가 우주에서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여유가 많아진다.

 

일단 자신의 주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면, 사람은 우주 속에서의 자기 행성의 중요성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된다.

 

반면에 그 자신과 보금자기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며 더욱 자기 안으로 움츠리거나 아니면 정복을 위한 정복을 하러 외부로 나아간다. 이 정복은 안도감 속에서 자유롭게 호기심을 드러내는 탐구와는 정반대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주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는 한, 수호천사와 같은 초인적인 힘이 자기를 지키고 있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세상과 그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라고 믿을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본적 안도감을 제공하는 가족의 역할과 어린이가 자라면서 합리적 탐구에 몰두하게 할 독서 사이의 연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