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미니스커트

김수연200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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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미니스커트

희망과 절망,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상황의 차이일까?

아니면 인식의 자이일까?

 
다른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도 자살을 한 재벌그룹 회장과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도 웃고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몇 년 전 일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났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한 젊은 여성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전복된 화물트럭에 깔렸다.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의 상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다리는 찌그러진 차체에 짓눌려 무릎 위까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져 있고, 복부는 또 다른 외상으로 인해 소장과 대장이 여섯군데나 파열되어 있었다.

처음 응급실에서 환자를 대하는 순간 생명을 구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사고가 났을때,병원에서 처치를 하는 순서는 제일 먼저 호흡을 확보하고 두번째로 지혈을 시키고, 세번째로 혈압을 올리고, 제번째로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을 하는 순서는 가슴 - 머리 - 배 - 팔 - 다리 순서다.
예를 들어 뇌출혈과 폐기흉이 동반되면 폐기흉을 먼저 수술한 다음 뇌를 수술하는 것이고,퇴출혈과 장파열이 동반되면 뇌수술을 먼저하는 것이다.

물론 장파열과 동시에 장출혈이나 키타 복강 내 출혈이 있으면 배를 먼저 수술한다.

어쨌거나 어떤 경우에도 팔다리는 생명을 구하는 응급수술에서는 가장 후순위로 밀린다.

그러나 인주 씨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오른쪽 다리가 압착손상으로 완전히 짓눌려 있어서 정상적인 지혈이 불가능했고 근육이나 혈관, 기타 인대와 대퇴골의 손상이 워낙 심각해서 만약 수술이 늦어질 경우에는 심각한 합병증이 초래될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출혈성 쇼크 상태를 개선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의사가 20대 후반 여성의 다리를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함부로 절단하겠는가.

하지만 차량이 전파되면서 환자만 후송된 탓에 신원 확인이 늦어져 수술 동의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환자는 쇼크 상태였고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복부 시티촬영상 복부의 출혈은 보이지 않았자만,

 장파열이 확실한 상황에서 수술시간을 늦추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형외과 팀은 다 같이 난감해하면서 선뜻 먼저 수술을 하겠다고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리다가 결국 전체 의료진이 연대 서명하고 수술을 감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환부 곳곳을 돌아가며 상세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간호사와 양 과의 스태프 네 명이 병력 기록지에 응급수술과 우측 하지 절단술, 아울러 개복수술에 대한 필요성을 적은 다음 전원이 비장하게 사인을 했다.

얼른 생각하면 당연한 일 같지만 내가 그때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은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열가지 중에 하나로 꼽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보호자 동의 없는 수술은 자칫하다간 엄청난 소송의의 휘오리에 휘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주 씨는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외과 의사다. 그리고 국가기관에서 의뢰하는 공식 검안 및

부검의이기도 하고 법의학 자문의이기도 하다.

이 말은 내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이 바닥에서는 볼 것 못 볼 것을 다 봤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술이 절단수술이다.

그것은 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외과 의사도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게다가 특히 환자가 여성이나 어린아이의 경우라면 그야말로 할 짓이 못 된다.

나는 정형괴과에서 절단수술이 끝나는 대로 바로 이어서 개복수술을 하기로 하고, 수술 대기실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수술할 환자의 다리가 절단되는 상황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취과 스크린 뒤쪽에서 젊은 여성의 가늘고 고운 다라가 골반 아래쪽에서 잘려 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메스가 부딧히는 소리, 켈리와 모스키토가 혈관을 결찰하면서 일으키는 금속성 마찰음, 메사가 근막을 절개하는 소리, 그리고 대퇴골을 절단하는 전기톱의 소름 돋는 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채우더니,
불과 30분 만에 한 여인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정형외과 스태프는 절단된 다리를 남은 피부로 덮어씌우고는

위쪽에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수고해!" 하고 한마디를 남기고 수술실을 나갔다.

 

이런 수술이 진행될 때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수술은 얼른 끝내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복부수술은 쉽게 진행되었다.

소장과 몇 군데 파열되었지만 다행히 장간막의 손상이 심하지 않았고,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고 이어 붙인 다음, 식염수 20리터로 복강 내를 세척하고 쉽게 배를 닫을 수 있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의 바이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다리에서 나는 출혈의 멈추었고 복강내의 적지 않은 양의 출혈도 곧 지혈이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10파인트 이상의 수혈을 받은 때문인지 환자의 피 색깔도 비교적 선명했고, 수술칼이 지나간 자리로 적당하게 선홍색 피가 흘러나왔다.

장의 생깔이나 피부의 온도까지 이만하면 환자가 쇼크 상태를 벗어난 게 틀림 없었다.
휴게실로 나가니 정형외과 스태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을까? 퍼미션도 없이 앰퓨테이션까지 했으니, 나중에 이거 멱살 잡히는 거 아냐?"
정형외과 스태프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비록 내가 같이 동의서를 작성하고, 불가피한 상황이니 절단을 하라고 주도적으로 부추기빈 했지만, 절단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환자는 살았고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얼마 후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회복실에서 이미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을 때는 의식이 거의 회복되었다.
행운이었다. 자동차가 전파되고 다리가 압착손상을 입고 장파열이 된 환자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사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귀중한 다리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는 긴장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 다음, 그때서야 도착한 보호자를 상대로 나와 정형외과 스태프는 릴레이로 길고도 신중한 설명을 해야 했다. 다행히 보호자는 상황을 납득했다.
우리가 수술실에서 자칫하면 소송이 걸릴 가능성이 있으니, 수술 전후의 정황을 잘 기록하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첨부해서 미리 자료를 만들어두자고 했던 작은 모의(?) 들은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오히려 보호자들은 동의 없이 수술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특히 그녀의 약혼자는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감사하다면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였다.
환자는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이 스물일곱에 이미 자신이 근무하는 외국계 은행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모의 젊은 커키어 우먼이었다.
게다가 다음달에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 고장을 수료하기 위해 해외 유학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사회적 위치만큼이나 그녀의 절망도 컸을 것이다.

그녀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동의 없이 자신의 다리를 절단한 우리를 향해 끊임없는 원망을 쏟아냈고 교통하고를 일으킨 상대방 운전자를 저주했으며 자신의 처지를 심각하게 비관했다.
아울러 한동안 치료까지 안강하게 거부해서 의료진의 속을 엄청나게 태우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가 이해되었다.
이세상에 어느 누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평일 낮 고속도로를, 그것도 모든 규칙을 준수하며 안전하게 운전하던 자기에게 난데없이 트럭이 돌진하고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배에는 30세티미터 길이의 수술 자국이 나 있고, 옆구리에는 네 개나 되는 호스가 끼워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소중한 다리 한쪽이 사라져 버렸을 때, 과연 어느 누가 그 상황을 운명이라고 순응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무려 한달간의 팬덤현상(유령현상)에 시달렸다.

인간에게 바디이미지란 무서운 것이다.

인간은 뇌의 기억 단위 안에 스스로의 바디이미지를 치미하게 저장하고 있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일부가 사라져버리게 되어도 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경우도 오른쪽 다리는 분명히 27년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거나 걸음을 걸어려고 할 때
그녀의 뇌는 예전의 습관 처럼 그 다리의 근육에게 자신의몸을 지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 그녀의 뇌는 지난 27년간 그래왔듯이, 걸음을 걸을 때 왼쪽 다리를 디딘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오른쪽 다리를 교대로 디디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녀의 몸은 그 명령에 따라 저절로 왼쪽 다리에서 오른쪽 다리로 중심을 이동하고, 그 결과 매번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뿐 아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분명히 그 다리는 잘려나가고 없는데, 밤이면 짓눌려 으깨어진 오른쪽 다리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그녀의 뇌가 27년 동안 기억하는 바디 이미지는 분명히 두 두리가 멀쩡히 존재하고, 다만 한쪽 다리가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는 것뿐이다.
즉 그녀의 뇌는 단지 그녀의 다리가 짓눌려진 마지막 상황,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밤, 없어진 다리가 짓이겨지느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울부짖었고, 그때마다 고강도의 진통제를 찾았다.
그녀는 새로운 바디이미지가 생겨날 때까지 거의 몇 달간을 고단위 마약성 진통제를 맞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현상이 바로 팬텀현상이다.
그녀는 상당한 기간 이러한 현상에 시달렸으며, 정신적 고통의 크기만큼 우울증의 강도도 깊어갔다.


한 달이 지나자 정형외과에서도 더 이상 치료를 할 필요가 없었고, 나도 그녀에게 더 이상 치료를 해줄 것이 없었다.

쉽게 말해서 그녀는 의학적으로 안치 상태에 이른 것이다.

비록 한쪽 다리가 사라진 상태 이지만,
또 본인으로서는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의사로서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다행히 정신과적 치료와 약혼자의 눈물 겨운 노력 덕분에 그녀의 우울증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얼굴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퇴원하던 날 목발을 짚은 채 약혼자와 함께 내 방에 들렀다.
그녀의 길고 우아한 왼쪽 다리는 그녀의 긴 바짓단을 지나 왼쪽 종아리와 발목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지만, 잘려나간 오른쪽 다리 아래쪽은 마치 신장개업식에 쓰이는 공기인형의 다리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애처롭게 바람에 흔들렸다.
나와 외래에서 그녀의 오른쪽 바짓단을 매듭으로 묶어주면서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 반대쪽 바짓단은 이렇게 동여매고 다녀야지 아니면 거치적거려서 걷다가 넘어져요."
그녀는 내가 자신의 바짓단을 묶어주는 동안 약혼자와 부모님에게 어깨를 기댄 채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내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은 엉뚱하게도 약혼자와의 관계였다.
그녀의 다리 하나가 사라진 상황을 두 사람이 과연 무난히 극복해낼 수 있을지, 설령 그녀의 애인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그녀가 과연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인주 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의 부모보다는 오히려 애인을 진료실로 자주 불러서 그녀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재활에 대한 조언이나 장파열 이후의 유착 관리, 아울러 절단 환자들의 심리상태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칫하면 순간적으로 자해를 할 가능성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었고. 그는 진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내 나름의 심모원려였다.
다행히 그녀와 그의 관계는 나와 같은 오버맨이 잔꾀를 부린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간단한 관계는 아니었다.
가끔 1-2주에 한번씩 외래로 들리는 그녀의 얼굴에는 차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젠 목발도 제법 잘 사용하고, 꽤 긴 시간 동안 혼자 목발을 짚고 서 있을 만큼 팔의 힘도 길러졌다.
그녀는 퇴원 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비록 전에 다니던 화사가 외국계 회사였고 그녀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덨다 하더라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자에게 열어줄 수 있는 히애의 한계란 고작 그 정도였다.
나는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한 것인지, 스스로 그만둔 것인지, 그녀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난관을 당당히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서 잘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것은 어느 날부터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더니던 그녀의 애인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네댓 번 동안은 한번도 병원에 같이 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직장을 그만둔 것과 같은 사유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웠지만 차마 그녀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두어 달의 시간이 흘러 이제 더 이상의 외래 통원도 필요없게 되었다.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든 문제가 있으면 다시 찾으라는 말을 인사로 그녀와 마지막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인주 씨가 다시 외래를 찾아왔다. 어번에는 그녀의 곁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애인이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운 손에는 하얀색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청첩장이었다.
다음달에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가슴 벅찬 청첩장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두사람은 손을 꼭 잡고 말이다.

"바쁘신 선생님을 꼭 오시라고 드리는 건 아니고요, 왠지 제가 결혼 한다는 걸 선생님들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햇살 같은 웃음이 지나갔다.
그녀가 새로 얻은 직장은 바로 두 사람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일생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이제 곧 결혼할 두 사람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청첩장을 들고 서 있는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동화 속 그림처럼 혹은 어느 봄날의 꿈속처럼 참으로 가슴 벅찬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미니스커트' 였다.


그녀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태가 돋보이는 고운 왼쪽다리를 스커트 아래에서 길게 뻗어 땅을 디디고 있었지만, 사라진 오른쪽 다리는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사라진 오른쪽 다리가 다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착각이 될 정도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느꼈다.

한쪽 다리가 절단 된 아름다운 숙녀의 미니스커트,

나는 그것으로 그녀가 드디어 가혹한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 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이긴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있어 그녀의 한쪽 다리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줄 것이며. 어떤 강인한 자가 있어 그녀의 승리보다 더 단단한 승리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출처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