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제3제국의 선전장관이자 <총력전> 선전위원이었던 그는 히틀러의 나치 제국의 여러 화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이며, 사실상 주관자라고 불려도 좋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서도 여러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그는 특히 <총력전>, <속도전> 이런 부분이 많았지요. 밀어붙이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도 한 원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나치즘의 화신>, <정치심리의 천재적 예술가>라고 이른바 아티스트 반열로 놓기도 합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선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열정적 선동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본래 <선동>(煽動)이라는 단어는 '부채를 움직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 의미로 볼 때는 아주 모호합니다.
"남을 부추겨서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
너무 심플하지요. 이것으로 어떤 죄목이 형성될 듯 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죄>를 붙여서 <선동죄>로 해석을 해보지요.
"다른 사람이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하여 범죄실행을 결심하게 하거나 그 결심을 자주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여기서는 <정당한 판단>이라는 것이 키워드입니다. 이 모호한 구석이 바로 <선동>이 가능하게 만들어 버리지요. 괴벨스의 여러 말들은 많은 책들이 다루었습니다. 역사학박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란 책이 있고, 그가 편집한 <괴벨스 일기>, <히틀러, 정치적 전기>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그>(괴벨스)의 언어를 빌어볼까요?
"언론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언론장악과 통제를 통하지 않고는 '제국'에 대한 선동, 나아가 나치즘 자체의 당위를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것은 사실상 거의 기초 작업에 해당되었던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예술이다."
그는 <선동>을 말하지 않았지요. <선전>. 바로 위기 속의 기회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정치란 불가능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밀어붙이기나 우기기는 이렇게 해서 탄생을 합니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일정한 의식은 다음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한 여러 방정식이 등장을 합니다. 그 중에는 여러 거짓도 포함되지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엔 믿게 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도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 그에게 <뉴스>는 일종의 도구입니다. 국민에게 적절한 수준을 소화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한 선전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 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 부분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대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꽤나 불쾌한 뉴스가 너무 가감없이 마구 흘러나옵니다. 경제위기 국면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도저히 낙관주의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어떤 방향인 것이지요. 괴벨스가 생각했던 국민...선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 가운데서 <낙관과 현실이라는 것의 융통성, 연계성>은 반드시 일정 부분 있어야 한다는 그림까지 연결되는군요.
괴벨스는 좌파 지식인에서 극우 파시스트로 변신했지요. 그는 왜 광기의 선동가가 되었을까? 아무래도 그 또한 불우한 어린시절...이렇게 보여지는 인생역정과는 달리 어느 한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을 무조건 세상에 펴보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그를 추종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적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눈이 '뻘겋게' 되었던 허다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역사는 이렇게 선전과 선동, 그리고 몇십년 전으로부터 오늘까지 이르는 일련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괴벨스의 행위가 정말 예술이었던가? 그건 바로 악(惡)의 정치심리였다고 지금은 평가되는 것이지요. 하늘이 좀 시커먼 날, 그가 구름 위에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괴벨스>, 그로부터 읽어보는 2008년 대한민국 냄새
이 세상엔 바보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아무도 자기가 바보인지는 모른다
저마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을 뿐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는
제 멋대로 만들고 있다 (중략)
세상에 잘난 바보보다 무서운 건 없다
그걸 아는가 나의 생각 만이 옳을 뿐이다
나의 의견 따위는 듣기도 싫다
이 세상은 단지 검정과 흰색 중도주의자는 회색분자다
- 공일오비, 노래 <바보들의 세상> 중에서
<당신의 바로 그 허상 제5화> '괴벨스', 그로부터 읽어보는 2008년 대한민국 냄새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나치 제3제국의 선전장관이자 <총력전> 선전위원이었던 그는 히틀러의 나치 제국의 여러 화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이며, 사실상 주관자라고 불려도 좋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서도 여러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그는 특히 <총력전>, <속도전> 이런 부분이 많았지요. 밀어붙이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도 한 원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나치즘의 화신>, <정치심리의 천재적 예술가>라고 이른바 아티스트 반열로 놓기도 합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선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열정적 선동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본래 <선동>(煽動)이라는 단어는 '부채를 움직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 의미로 볼 때는 아주 모호합니다.
"남을 부추겨서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
너무 심플하지요. 이것으로 어떤 죄목이 형성될 듯 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죄>를 붙여서 <선동죄>로 해석을 해보지요.
"다른 사람이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하여 범죄실행을 결심하게 하거나 그 결심을 자주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여기서는 <정당한 판단>이라는 것이 키워드입니다. 이 모호한 구석이 바로 <선동>이 가능하게 만들어 버리지요. 괴벨스의 여러 말들은 많은 책들이 다루었습니다. 역사학박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란 책이 있고, 그가 편집한 <괴벨스 일기>, <히틀러, 정치적 전기>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그>(괴벨스)의 언어를 빌어볼까요?
"언론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언론장악과 통제를 통하지 않고는 '제국'에 대한 선동, 나아가 나치즘 자체의 당위를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것은 사실상 거의 기초 작업에 해당되었던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예술이다."
그는 <선동>을 말하지 않았지요. <선전>. 바로 위기 속의 기회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정치란 불가능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밀어붙이기나 우기기는 이렇게 해서 탄생을 합니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일정한 의식은 다음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한 여러 방정식이 등장을 합니다. 그 중에는 여러 거짓도 포함되지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엔 믿게 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도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 그에게 <뉴스>는 일종의 도구입니다. 국민에게 적절한 수준을 소화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한 선전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 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 부분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대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꽤나 불쾌한 뉴스가 너무 가감없이 마구 흘러나옵니다. 경제위기 국면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도저히 낙관주의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어떤 방향인 것이지요. 괴벨스가 생각했던 국민...선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 가운데서 <낙관과 현실이라는 것의 융통성, 연계성>은 반드시 일정 부분 있어야 한다는 그림까지 연결되는군요.
괴벨스는 좌파 지식인에서 극우 파시스트로 변신했지요. 그는 왜 광기의 선동가가 되었을까? 아무래도 그 또한 불우한 어린시절...이렇게 보여지는 인생역정과는 달리 어느 한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을 무조건 세상에 펴보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그를 추종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적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눈이 '뻘겋게' 되었던 허다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역사는 이렇게 선전과 선동, 그리고 몇십년 전으로부터 오늘까지 이르는 일련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괴벨스의 행위가 정말 예술이었던가? 그건 바로 악(惡)의 정치심리였다고 지금은 평가되는 것이지요. 하늘이 좀 시커먼 날, 그가 구름 위에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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