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사실 어느정도 타인에 대해 신경쓸 줄 아는 사람이면 늘 한번씩은 해봤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더 고민하시라. 그것 사이의 간극이 어느정도인지 그 간극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실제 자기자신의 내면에서는 어느정도의 파괴적임이 있다" 흔히들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할꺼라고 본다. 당신은 아닌가?
"일중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당신은 아닌가?
물론 그 간극에 대한 고민이 조금 적은 유형들도 있다.
"난 내 주관대로 살아간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이 없지만, 될 수 있으면 트러블 만들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되 내면적으로는 절대 얕보이지 않겠다. 그래도 힘든일이 많은건 사실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므로 죽고싶을정도로거나 극한적인 상황으로 나자신을 몰아가지는 않는다."
이것은 자부심이다 못해 자기중심성이 타자에 대한 생각자체를 합리적인 범위 이외에서는 아예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조금은 정이 떨어지지. 참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미워할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있다보면 나도 그래야 겠다고 몇백번 다짐하게 되고, 나또한 이런 사람들에게는 나를 다 내주지 않는것이 사실이므로.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만드는 것은 가식이 아니다. 조금 후에 가식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겠다. 남에게 보이는 나를 만드는 것은 엄연히 고도의 노력이 수반되는 행동이며 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방책일 경우 더더욱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게 된다.
사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하기에 남에게 보이는 나를 늘 의식하고 자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식이라 함은 이사람하게 하는 행동은 선인데, 저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악일때 가식이라 한다. 국어사전의 정의가 어떻든간에, 내가 아는 가식은 이사람에게 어느날은 선한듯 행동하다가, 다른날은 악한듯 행동하는 것을 가식이라 한다. 그런 인간들을 보면 정말 배신감을 넘어서 분노를 쳐느낀다.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입발린 소리를해놓고는, 그 기대가 워낙 크셔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연락 한 통 없이 먼저 뒤돌아버렸던 사람들. 난 그들이 가식꾼이라고 생각한다. 밝아보이고 순진해보이는 나지만, 주변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힘들다.
당신이 이 사회를 위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진정한 자기만들기를 한다면, 지금 자기가 보는 자기자신의 현재모습과 남이 보는 자기의 모습, 그 다름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차 말하지만 당연한 것이다. 사람마다 이중성은 누구든지 갖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당신이 노력해서 만들고 있는 이미지는 미래의 당신본연의 '좋은' 성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자기삶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남이 아닌 나자신이 되어야 한다. 혹여 수십년 후에 "나 이젠 착한 사람 안할래!"하며 소리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스럽다.(사실 나자신도 조금은 이러한 부류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는 뜻이다. 나 자신을 위하면서도 타인과 사회를 위한 방향으로 균형감 있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물론 힘들겠지. 균형과 그 지속이라는 것은. 하지만 어느 한쪽만을 택하는 것은 이 복잡다양한 세상속의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않나.
타인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사실 어느정도 타인에 대해 신경쓸 줄 아는 사람이면 늘 한번씩은 해봤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더 고민하시라. 그것 사이의 간극이 어느정도인지 그 간극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실제 자기자신의 내면에서는 어느정도의 파괴적임이 있다" 흔히들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할꺼라고 본다. 당신은 아닌가?
"일중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당신은 아닌가?
물론 그 간극에 대한 고민이 조금 적은 유형들도 있다.
"난 내 주관대로 살아간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이 없지만, 될 수 있으면 트러블 만들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되 내면적으로는 절대 얕보이지 않겠다. 그래도 힘든일이 많은건 사실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므로 죽고싶을정도로거나 극한적인 상황으로 나자신을 몰아가지는 않는다."
이것은 자부심이다 못해 자기중심성이 타자에 대한 생각자체를 합리적인 범위 이외에서는 아예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조금은 정이 떨어지지. 참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미워할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있다보면 나도 그래야 겠다고 몇백번 다짐하게 되고, 나또한 이런 사람들에게는 나를 다 내주지 않는것이 사실이므로.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만드는 것은 가식이 아니다. 조금 후에 가식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겠다. 남에게 보이는 나를 만드는 것은 엄연히 고도의 노력이 수반되는 행동이며 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방책일 경우 더더욱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게 된다.
사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하기에 남에게 보이는 나를 늘 의식하고 자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식이라 함은 이사람하게 하는 행동은 선인데, 저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악일때 가식이라 한다. 국어사전의 정의가 어떻든간에, 내가 아는 가식은 이사람에게 어느날은 선한듯 행동하다가, 다른날은 악한듯 행동하는 것을 가식이라 한다. 그런 인간들을 보면 정말 배신감을 넘어서 분노를 쳐느낀다.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입발린 소리를해놓고는, 그 기대가 워낙 크셔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연락 한 통 없이 먼저 뒤돌아버렸던 사람들. 난 그들이 가식꾼이라고 생각한다. 밝아보이고 순진해보이는 나지만, 주변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힘들다.
당신이 이 사회를 위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진정한 자기만들기를 한다면, 지금 자기가 보는 자기자신의 현재모습과 남이 보는 자기의 모습, 그 다름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차 말하지만 당연한 것이다. 사람마다 이중성은 누구든지 갖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당신이 노력해서 만들고 있는 이미지는 미래의 당신본연의 '좋은' 성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자기삶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남이 아닌 나자신이 되어야 한다. 혹여 수십년 후에 "나 이젠 착한 사람 안할래!"하며 소리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스럽다.(사실 나자신도 조금은 이러한 부류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는 뜻이다. 나 자신을 위하면서도 타인과 사회를 위한 방향으로 균형감 있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물론 힘들겠지. 균형과 그 지속이라는 것은. 하지만 어느 한쪽만을 택하는 것은 이 복잡다양한 세상속의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