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의 제약 요인과 유의점"

박기동20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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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경색과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금융완화정책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불안에 따른 정책 유효성 저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정책효과를 제한할 수 있는 요인들을 검토하고, 금융정책의 실행과정에서 유의할 점에 대해서 살펴본다.

경기침체에 맞서 각국의 금융

완화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제로금리로 접어드는 등 각국의 저금리 정책이 본격화되었으며, 유동성 공급 및 금융기관 자본확충을 위한 자금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12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 포인트 인하하는 등 유례없이 강력한 통화확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강력한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하면서 그 효과에 대한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지원과 더불어 제로금리 정책까지 시행함에 따라, 통화량 공급에도 금리가 낮아지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는 통화정책 무력화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기준금리가 3% 수준인 우리나라의 경우 제로금리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유동성 함정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하지만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은 금리, 자산가격, 환율, 신용창출 등의 경로를 통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의 경우 급격한 자산가격 하락과 국제 공조적 통화확장정책으로 인해 자산가격이나 환율 경로를 통한 통화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리 및 신용이 통화정책의 효과가 파급되는 주된 경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금리 하락에 따른 부채부담 경감, 저축 유인 감소에 따른 소비 진작, 자금 조달 여건 개선에따른 대출 증가 등을 통한 실물 경제 회복 등의 효과가 기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증가, 디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금리 및 신용 경로 역시 제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중개기능 저하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먼저 금융기관의 중개 기능 저하를 들 수 있다. 현재 자산가격의 하락이 계속되고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기업구조조정과 같은 이슈도 남아 있어 경제의 불확실성은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기관은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영하여 여신의 부실화를 방지하려는 동기가 커지게 된다. 게다가 감독당국이 건전성 감독을 강화할 경우 금융기관은 부실위험이 있는 자산의 보유를 줄이려 하기 때문에 대출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신용경색과 더불어 금융기관의 위험 기피적 태도로 인해 대출을 통한 신용창출마저 감소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동성 공급의 효과가 반감되면서 신용 경로를 통한 통화정책의 파급이 제약된다.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자금의 단기부동화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자금공급의 쏠림 현상도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투자자금이 적절한 장기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대기성 자금의 성격으로 단기 금융상품에 유입되는 ‘단기부동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지난해 주가하락으로 각종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단기 정기예금 및 MMF 등에 자금이 집중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자금의 공급이 단기 상품에만 집중될 경우 통화정책의 파급이 제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단기금리는 빠르게 하락하는 반면 장기금리는 높은 수준에 일정기간 머무르게 되고, 이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장기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장기금리 역시 하락한다. 그러나 금융불안이 심할 경우 상대적 고금리의 유인에도 불구하고 장기 금융상품으로의 자금유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장기금리의 하락이 제한되면서 금리 인하의 유효성이 낮아질 수 있다.

게다가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자산가격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자산가격의 변동성 확대는 다시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자금의 쏠림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위와 같은 현상은 유동성함정 논란이 있었던 90년대 말 일본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1999년 들어 제로금리 정책 등 강력한 통화확장정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대출 증가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협의통화(M1) 증가율은 광의유동성(L)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이는 단기자금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음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단기부동자금을 추정한 결과, 2008년 이후 10월까지의 단기부동자금 증가율은 평균 14.7%로 같은 기간 동안의 광의유동성(L) 평균 증가율인 13%를 상회하였다. 이는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단기부동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에서도 앞으로 대출 태도를 강화할 전망이라고 나타나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위험회피 경향 심화에 따른 신용경색

불확실성에 따른 또 다른 자금공급의 쏠림 현상으로는 무위험 자산의 선호를 들 수 있다. 금융불안 및 경기침체에 따라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확대되어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국고채 등 무위험 자산에 자금이 집중되는 것이다. 위험기피현상이 심화될 경우, 위험자산이 상대적 고금리를 제공하더라도 자금이 유입되지 않아 신용 스프레드(위험자산 금리-무위험자산 금리)가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투자의 증가도 제한된다. 기업의 사정 악화는 다시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져 신용 스프레드를 더욱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

최근 두 차례의 금리 인하 후 채권 종류별 신용 스프레드 추이가 나타나있다. 큰 폭의 금리 인하와 금융기관 지원을 통해 은행채의 신용 스프레드가 크게 감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카드채의 경우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신용 스프레드가 다시 상승하여, 2008년 12월 31일 현재 508bp로 200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였다.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 역시 낮아지지 못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근 통화 완화 정책과 금융기관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위험회피 경향이 크게 낮아지지는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통화정책의 효과가 경제 전반의 신용경색 해소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원 대상의 자금사정 완화에만 국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험회피 경향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금리경로를 통한 정책 효과의 파급이 제약될 가능성이 크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최근 들어 커지고 있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 기대가 있을 경우,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실질이자율의 하락폭은 줄어들게 된다. 이는 소비 및 투자의 감소로 이어져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최근과 같이 레버리지가 높은 상

황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부채의 실질 가치 및 이자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만약 채무자들이 디플레이션을 예상할 경우 서둘러 채무를 상환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자산가격의 하락을 가져와 디플레이션을 심화시키는 ‘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확장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주체의 디플레 기대로 인해 정책 의도와는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의 상황이 물가 수준의 하락을 예상할 정도는 아니지만, 물가 상승률의 현저한 하락에 대한 기대가 형성될 경우 비슷한 경로를 통해 정책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세밀하고 다양한 정책 필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정책금리 인하와 같은 일괄적이고 간접적인 통화확장정책은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별적인 자금 공급 및 직접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정부 각 부처가 제시한 2009년 금융위기 극복방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부가 다양한 경로와 방향을 통해 금융위기에 대응하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상적 통화정책 이외에도 기업 자금지원, 가계 및 서민 지원, PF 대출 등 부실채권 매입 등 다각도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앞에서 제시한 일괄적인 정책의 한계 및 부작용을 일정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정부 각계 부처가 금융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강력한 정책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장 불확실성 축소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 확장정책의 부작용 가능성

그러나 선별적이고 직접적인 자금지원 역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불완전정보에 따른 위험 평가의 어려움이다. 시장의 위험기피적 태도가 지나치게 확대된 경우에는 정부가 위험을 일시적으로 떠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는, 시장이 기피하고 있는 사안에는 그만큼의 위험이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부실채권 매입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신용경색 및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채권의 부실화가 계속 심해지기 때문에 부실채권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최근 자산관리공사에서 저축은행 PF 대출 1조 3천억원 규모를 매입하기로 발표한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1조 7천억원으로 규모를 증가시킨 것이 이러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부실채권의 규모뿐만 아니라 매입가격의 산정 역시 문제이다. 매입가격을 높게 잡을 경우 정부가 위험을 과도하게 떠안게 되는 반면, 손실예상분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미국 정부가 문제자산구 제계획(TARP)을 통한 부실채권 매입 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부실채권 매입의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위험을 정부가 떠안는 과정에서 지원 대상의 도덕적 해이 논란도 있다. 정부의 자금지원은 지원 대상의 자구적 노력을 전제한 상황에서 자금시장의 효율성 제고 및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구적 노력에 대한 유인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도덕적 해이 현상은 지난 외환위기 당시에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으며, 정부의 직접적 지원 과정에 있어서 세심한 모니터링이 요구되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다른 점으로 형평성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직접적 자금 지원의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여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의 자동차 산업지원 결정과 관련해서도 형평성 논란이 거세게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형평성 논란은 자칫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과거 위기 사례의 경우 정치적 갈등이 위기를 증폭시켰던 적이 많았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원 마련 역시 문제이다. 현재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재원 마련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자금이 대체로 국채 발행, 세금 충당, 발권력 동원 등의 방법으로 조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상되는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규모의 통화증발은 결국 화폐 가치의 하락을 야기하여 국민에게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을 부과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과거 중남미 위기 당시, 통화증발을 통한 대규모 구제금융은 결국 높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국통화 가치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남겼다는 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할 경우 역시 발행물량 급증에 따른 채권시장의 수급 불안 및 금리 상승으로 금리인하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아울러 경제주체가 미래 세금 증가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를 예상할 경우 소비 및 투자가 제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실행 필요

위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한 확장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정책일수록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FRB의 연구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높은 비정통적 방식의 양적 완화정책(unorthodox quantitative easing)이라 할지라도 정책의 규모가 충분히 큰 경우에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시행이 선제적이고 과감해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되고 있다. 과거 장기 불황기의 일본의 경우 다양한 확장적 정책을 시행했으나, 그것이 신속하고 과감하기 보다는 장기간의 사후적 대응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정책 대응이 일본의 불황 탈출을 늦추었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는 현재 계획되어 있는 정책들을 선제적이고 과단성 있게 시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시장 원리를 고려한 정책 시행 역시 중요하다. 부실채권 매입, 기업 구조조정 지원 등 현재의 정책들 중 많은 부분이 시장의 활발한 참여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메커니즘의 문제로 현재의 금융불안이 야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주체가 각각의 경제적 선택에 입각하여 행동한다는 기본적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방적 방침 설정과 그에 대한 지도편달과 같은 과거의 방식보다는, 각 주체의 전략적 유인 체계를 고려한 정책 시행방안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원리의 활용을 통해 정책 비용의 절감도 꾀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인 효과라 할 수 있다. 과단성 있는 정책을 시행하되, 그 과정에서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활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출처: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