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내가 뭘 어쩌지 않아도 그냥 저냥 살아지는 것 같다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난제처럼 사람을 버거웁게한다.
잘 버티다가도 한 걸음씩 휘청이게 되고,
화가 치밀어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경제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난린데, 일할래도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적어도 난 일 만큼은 속을 썩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나.. 이 정도도 감사한다고..?
일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내 노력이나 선택이 불가항력일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나는 숨이 막힌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버리고 싶어질 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인게 싫다.
말하지 않는 나.. 화도 나지 않는.. 참담함..
무릎을 끌어안고 몇 시간을 앉아 있다가 친구를 불러내 술을 마셨다.
말이 없는 나를 한참 웃겨보려 애쓰던 친구에게 내가 한 말은.. 답답해..
나 때문에 일부러 월차를 낸 친구와 바다를 보러갔다.. 겨울 바다.
푸슬푸슬 눈이 내리는.. 오후가 다가도록 바다로 만 향해 있는 나의 시선..
뭐 그렇게 볼게 있냐고 물어보면 정작 할 말은 없지만....
너무 추워 뼈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바다 바람.. 그 찬기운에 나를 다 씻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좀더 가벼워지기를.. 바다를 뒤로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아니 무슨 복이 있어서 였을까.
넓고 탄탄한 길을 비켜두고 친구는 굳이 구불구불한 그 길을 거쳐서 가자고 했다.
밤은 이미 가파른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서울까지 오려면 3시간은 더 달려야 되는 먼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해도 괜찮다며 혼자 긴 시간을 운전해 온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다음에 가자고 하는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가로등도 없는 그 길을 굳이 거쳐서 가자 했다.
"지금은 마침 눈이 안내려서 그렇지,
한번 눈이 내리면 내년 3월까지는 차가 끊기는 곳이야.
가 보면 아마 좋아할 거야. 너 오지 보고 싶다고 했잖아"
언젠가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었나보다..그렇게 엉겁결에 가게 된 곳이었다.
눈 내리면 세상과 차단되는 곳. 그렇게 세상과 절연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는 길은,
세상에 절어 눅눅해진 내 영혼을 여과시키기라도 하듯 산 허리를 여러 겹 돌아가야만 했다.
한 고개 넘고, 두 고개 넘어 길가 풀숲에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이 없어질 즈음,
그곳에.... 어둠과 달빛이 있었다.
"지난번에 이곳에서 노루를 봤어.
캄캄한 밤이었는데, 갑자기 노루가 나타나서 차를 멈춘적이 있었지.
오늘도 나타나려나...."
그러면서 친구는 잠시 차를 멈추고 시동을 껐다.
친구가 차 안의 모든 불빛을 죽이고 숨 죽이며 노루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문을 열고 달빛 속으로 들어갔다.
달은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교교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은 태양처럼 눈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글거렸다.
혼자 말없이 이글거리며,
지구 속의 작은 점과 같은, 아니 내 옆에 서 있는 서걱거리는 갈대 잎과 마른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잡풀같은 나를 말없이 비추고 있었다.
한 때는 소금을 뿌려 놓은듯 흐뭇하게 메밀 밭을 비추던 달빛이 겨울나무 사이로 가만가만 내려앉았다.
저 달빛 아래서라면,
가슴속에 사랑하는 연인을 담지 않은 사람이라도 동짓달 기나긴 밤을 보내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숲길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눈이 내려 발 밑으론 걸을 때마나 눈이 뭉개지는 소리가 늦은 밤의 침묵을 깨뜨리고..
나는 몹시 추웠지만 달빛에 빛나는 눈길을 마냥 걸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친구가 차에 있던 담요를 가지고 나와 내 등에 씌우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내가 어렸을 때, 밤길을 걸은 적이 있어.
그런데 혼자 집에 가려니까 얼마나 무섭던지. 그래서 막 달렸거든?
그런데 달이 계속 나를 따라오는 거야. 무서워죽겠는데...."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달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친구....
올려다 본 그의 눈동자에 어느덧 달무리가 지고 있었다.
친구의 마음이 달빛처럼 부드럽게 내 마음을 비추는 듯했다.
그 눈동자의 달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