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과 어업 민족이었던 일본인의 식생활은 530년 경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700 년경(우리 나라의 통일 신라시대)에 이르러 궁중의식과 신에 대한 의식등의 필요성에 의해서 일본 요리의 규범이 제정되었다.
다이호우리쓰료우(원년 701년에 제정된 율령11권의 명칭)가 제정된 이래, 이율령은 927년(우리나라의 고려 건국후)요우로우리쓰료우에 의해 보정 되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요리를 만드는 방법,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규정된 연희식이라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이와 함께 이때에는 조리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요리를 담는 그릇에서도 현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밥과 부식을 담는 그릇을 시작으로 술잔, 받침대 등에도 고도의 예술성이 가미된 작품이 등장하게 된 시기였다. 또한, 이 당신에는 신분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지는 도구의 계급제도가 생겨나 귀족은 청동기, 은기, 옻기 등을 사용하였다. 이 무렵은 헤이안지다이 라는 불리는 귀족지배의 시기였다. 당시의 고고덴노우가 요리를 좋아하여 요리 연구에 열성적이었다. 고고덴노우는 현대에 전해져 오는 요리도의 사조류의 개조로서 요리의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338년, 바쿠후가 가마쿠라에서 교토 무로마치로 옮겨 무가와 공가의 교류가 성행하고 동산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시대는 우아한 생활을 과시하는 사회가 되어 요리의 세계에서도 사조류, 대초류, 진사류, 그리고 생간류 등의 다양한 세력들이 형성됐다. 각파는 요리 만드는 법을 포함하여 조리기술, 자르는 방법에 기교를 집중시킨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됨으로써 일본의 요리 기술과 조리법이 두드러지게 진보하는 요리계의 전국시대를 열어 나갔다. 아울러 공가사회와 무가사회의 쌍방에 예법이 생겨나 축의의 의식이 더욱 더 엄격해져 식의 선이 정해지고 식사의 예법에 따른 본선요리의 향응 형식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1500년경 천리휴들에 의해서 차도가에 따라 다도와 차회석이 완성되었다. 이 당신에는 외국와의 교류무역이 성행하여 남만 요리(쇠고기나 닭고기,생선들에 파를 넣어 섞어 조린 음식)등도 건너와서 일본인의 식생활도 점차 육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1639년 에도도쿠가와에 쇄국령이 떨어져 다시 생선과 야채를 위주로 하는 식생활로 되돌아 갔다.
이때는 완전한 무가정치의 시대였지만 중산층의 활약이 눈부셔 상인들의 부가 위력을 발휘하여 사치스런 요리와 호화스러운 그릇을 쓰는 주연요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1800년경에는 본선요리, 정진 요리,회석요리, 중국요리, 남만요리등이 상호 융합하여 소화, 흡수되는 시대로서 일본의 독특한 요리문화가 완성되었다. 많은 국가가 그러하듯 요리의 발전 과정은 그 나라의 종교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일본 요리의 발건 과정은 신과 불교의 공물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 요리는 요리 전국시대에 많은 유파가 생겨나 서로 경쟁해 가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본 요리가 이론적으로도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요리의 큰 흐름을 총괄해 보면 귀족, 무가지배의 봉건사회에서 향응의 접대연회는 상층계급이 하층계급에게 '밥상을 받게 해 주고','위로해 준다.' 라고 하는 형식이었고, 엄격한 식사 작법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명치 후기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변화해 오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안락한 분위기 에서 즐기는 식미본위의 주연을 중심으로 한 향응의 회석요리가 주류를 이루러 왔다.
현재 이 회석요리는 결혼 피로연, 희수,(77세 잔치),미수(88세 의 잔치)등의 축하연과 일반 연회 등 모든 초청 연회에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석요리는 때로는 본선형식을 도입하기도 하고 차회석의 흐름을 추가 하기도 하면서 제각기 응용할 수 있게 끔 되었다.
일본요리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 까
수렵과 어업 민족이었던 일본인의 식생활은 530년 경 중국에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700 년경(우리 나라의 통일 신라시대)에 이르러 궁중의식과 신에 대한 의식등의 필요성에 의해서 일본 요리의 규범이 제정되었다.
다이호우리쓰료우(원년 701년에 제정된 율령11권의 명칭)가 제정된 이래, 이율령은 927년(우리나라의 고려 건국후)요우로우리쓰료우에 의해 보정 되어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는 방법과 요리를 만드는 방법,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규정된 연희식이라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이와 함께 이때에는 조리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요리를 담는 그릇에서도 현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밥과 부식을 담는 그릇을 시작으로 술잔, 받침대 등에도 고도의 예술성이 가미된 작품이 등장하게 된 시기였다. 또한, 이 당신에는 신분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지는 도구의 계급제도가 생겨나 귀족은 청동기, 은기, 옻기 등을 사용하였다. 이 무렵은 헤이안지다이 라는 불리는 귀족지배의 시기였다. 당시의 고고덴노우가 요리를 좋아하여 요리 연구에 열성적이었다. 고고덴노우는 현대에 전해져 오는 요리도의 사조류의 개조로서 요리의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338년, 바쿠후가 가마쿠라에서 교토 무로마치로 옮겨 무가와 공가의 교류가 성행하고 동산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시대는 우아한 생활을 과시하는 사회가 되어 요리의 세계에서도 사조류, 대초류, 진사류, 그리고 생간류 등의 다양한 세력들이 형성됐다. 각파는 요리 만드는 법을 포함하여 조리기술, 자르는 방법에 기교를 집중시킨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됨으로써 일본의 요리 기술과 조리법이 두드러지게 진보하는 요리계의 전국시대를 열어 나갔다. 아울러 공가사회와 무가사회의 쌍방에 예법이 생겨나 축의의 의식이 더욱 더 엄격해져 식의 선이 정해지고 식사의 예법에 따른 본선요리의 향응 형식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1500년경 천리휴들에 의해서 차도가에 따라 다도와 차회석이 완성되었다. 이 당신에는 외국와의 교류무역이 성행하여 남만 요리(쇠고기나 닭고기,생선들에 파를 넣어 섞어 조린 음식)등도 건너와서 일본인의 식생활도 점차 육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1639년 에도도쿠가와에 쇄국령이 떨어져 다시 생선과 야채를 위주로 하는 식생활로 되돌아 갔다.
이때는 완전한 무가정치의 시대였지만 중산층의 활약이 눈부셔 상인들의 부가 위력을 발휘하여 사치스런 요리와 호화스러운 그릇을 쓰는 주연요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1800년경에는 본선요리, 정진 요리,회석요리, 중국요리, 남만요리등이 상호 융합하여 소화, 흡수되는 시대로서 일본의 독특한 요리문화가 완성되었다. 많은 국가가 그러하듯 요리의 발전 과정은 그 나라의 종교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일본 요리의 발건 과정은 신과 불교의 공물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 요리는 요리 전국시대에 많은 유파가 생겨나 서로 경쟁해 가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일본 요리가 이론적으로도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요리의 큰 흐름을 총괄해 보면 귀족, 무가지배의 봉건사회에서 향응의 접대연회는 상층계급이 하층계급에게 '밥상을 받게 해 주고','위로해 준다.' 라고 하는 형식이었고, 엄격한 식사 작법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명치 후기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변화해 오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안락한 분위기 에서 즐기는 식미본위의 주연을 중심으로 한 향응의 회석요리가 주류를 이루러 왔다.
현재 이 회석요리는 결혼 피로연, 희수,(77세 잔치),미수(88세 의 잔치)등의 축하연과 일반 연회 등 모든 초청 연회에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석요리는 때로는 본선형식을 도입하기도 하고 차회석의 흐름을 추가 하기도 하면서 제각기 응용할 수 있게 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