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니는 가수 션의 교회비판, 왜?

김연주20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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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국대에서 각종 자원봉사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지누션의 맴버 '션'씨의 강연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원래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알려진 그는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크리스천 안에 예수의 모습이 사라진 탓이라고도 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소수이긴 하나 션과 같이 교인들 사이에서 한국 기독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로 대표되는 흉물스러운 한국 기독교의 현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배타성'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우리' 아닌 모든 타인에 대한 배격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해괴한 구호로 이어진다.  이 뿐인가.  이러한 기독교의 배타성의 절정은 우리 선조들 모두가 지옥에 기거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강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한국교회의 설파들을 보면서 '원래 교회란 저렇구나' '하나님이란 작자는 원래 저런 존재구나' 라고 느끼게끔 하기에 충분하다.  한국 기독교의 근원이자 현재에도 룰모델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대의 미국을 보아도 우리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말 기독교란 본래 이런 구제불능의 존재인걸까.  그러나 신학자들의 얘기는 목사들과는 다르다.  미국과 한국이 신학사조로 치면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한국 기독교의 최초 전파과정을 살펴보면 왜 한국 교회가 이렇듯 혐오스러워 졌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근본주의 신학'이라는 것이 매우 소수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의 성서해석적 기초는 '축자영감설' 이다.  축자영감설이란, 성경을 적은 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적은 것이므로 성경에는 단 한 글자의 오류도 없어 모두를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해 사본 등 부터 시작되어 흠정변역서에 이르기까지, 번역자가 번역하는 과정에도 하나님의 영감이 작용했기에 하나의 번역 버전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현대의 자연과학과의 충돌을 낳았으며, 성서 해석을 경직시킴으로써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에게 유리한 하나의 성서해석만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한반도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했던 유명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바로 이 근본주의자였다.  오늘날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해괴망측한 구호도 여기서 나오게 된 것이고, 신학자들은 이러한 구호가 성서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교회다니는 가수 션의 교회비판, 왜?
  신학자들은 이런 한국 기독교의 괴물화에 대해 신학과 종교현장 간 괴리가 너무 커진 탓이라고 한다.  목사 직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모두 신학교를 다니면서 여러가지 신학사조들을 배우고, 다양한 성서해석을 접하면서도 현장에 나아가 목회활동을 할 때에는 어김없이 보수적인 '근본주의적 신학'을 고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 특유의 샤머니즘적인 기복 신앙에 배타적인 근본주의적 성서해석을 곁들이면서 교회의 폭발적인 '양적' 팽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재벌화된 공룡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교회의 재벌화는 필연적으로 보수 정치세력과의 결탁을 낳았고, 이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층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증가시키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촛불집회 당시 한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후려맞으며 사탄의 자식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한국 교회가 살기 위해선 이러한 근본주의적 신학을 버려야 한다.  민중신학, 해방신학이라는 훌륭한 신학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자생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빨갱이로 몰려 압살당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근본주의 신앙에 어긋나는 신학사조는 세계적으로 다수설인 것들도 모두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고 심지어 천주교까지 이단이라고 강변하기에 이르렀다.  성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사로 불리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기독교를 전파했던가.  이스라엘 민족 국가 종교에 불과했던 당시 어떻게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받고 전 세계를 대표하는 큰 종교가 되었던가.  성서를 죽어있고 고정된 것이 아닌, 시대에 맞는 살아있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바울 역시 현지문화와 구약 성서의 교류를 지속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전도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엄청난 수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는 한국교회,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 등 예수가 그리도 간절히 사랑하고 보살폈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신앙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홍글씨를 새겨왔던 한국교회, 미국을 신앙의 대상과 동일시한 덕분에 냉전 세력과 아직까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교회, 같은 기독교인도 자금력에 따라 달리 대우받는 한국교회.  자연과학을 배격하며 '창조과학'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고립을 자처하고 있는 한국교회.  이 모든 흉물상들은 하나님 마저 스스로 욕되게 하는 배타적 근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상들이다.

  기독교인들은 마치 미국 교회가 번영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재가(在家)신자의 폭발적 증가와 미국교회 구성원들의 노령화는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은 그 교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땅의 목사들은 그 원인을 다 알면서 모른체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배타성은 정치권력자의 습성과 너무 닮아있다.

관련도서 : 이상섭 - '무너지는 한국교회', 김지방 - '정치교회'